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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3화 (24/388)

23. 예언대로 오셨군요, 위대한 학살자시여!

-콰아아앙!!!

“뒤져라!!! 악마야!!!!”

페르난데스가 한숨을 내쉬며 향로를 꺼내들 때, 저 멀리 납골당의 한쪽 벽이 터져나가며 워커, 아니 워커였던 것의 잔해가 하늘을 날았다.

“···형제님. 끝났습니다.”

“음, 헛! 놈은?!”

“제가 쓰러트렸습니다.”

“오오!!!!”

자욱한 먼지가 가시고, 그 안에서 거대한 몸집의 형체가 나타났다. 디모니카 파비아노는 피로 흠뻑 젖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워커들을 으스러트렸다.

“정의가 승리했도다! 찬미하리라!!!!”

“아, 네···.”

페르난데스는 머쓱한 표정으로 향로를 집어넣으며, 파비아노를 따라 성호를 그었다. 이 시기에도 여전히 디모니카는 괴물 집단이자 양성소였다. 이러니 악마 교단들이 디모니카가 떴다 하면 죄다 도망치기 바빴지.

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의 편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웃었다. 이제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다.

*

제레일과 붉은 도끼단은 워커 무리를 말 그대로 찢어 발기며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가면 갈수록 워커의 밀도가 높아졌다. 이는 차라리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청사 지구에 도착할 터였고, 청사 지구에 지금 어마어마한 워커 무리들이 몰려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씨, 씨발. 대장님 앞에 왠 놈들이···”

“워커야?”

“칼질 하는 댑쇼?”

“씨발, 얘들아 전투 준비!”

용병이든, 생존자든, 아니면 시가드 들이든 상관 없었다. 제레일은 눈 앞에 있는 것들이 움직이면 모조리 도륙을 내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피와 은화. 그것이 제레일을 움직이는 두 가지 요인이었다. 제레일은 도끼날을 만지작거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몸이 세로로 잘린 워커가 그를 향해 달려들 때 까지는.

“우와아악!! 씨바아알! 이거 뭐야!”

플라잉-워커다! 제레일은 기겁해 비명을 내지르며 도끼를 휘둘렀다. 반토막난 워커는 도끼에 맞고 바닥을 굴렀다. 하프-플라잉-워커가 순식간에 쿼터-플라잉-워커로 변했다.

다행히, 플라잉 워커라는 끔찍하고 악몽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정말 말 그대로, 반으로 토막 난 워커였다.

“···?”

정말 깨끗하게 일도양단 된 놈이었다. 산 사람을 세로로 쪼개다니···? 제레일은 조심스럽게 앞을 바라보았다.

“···씨발?”

워커들이 단체로 날고 있었다. 휙, 휙, 휙. 어딘가 신체가 반드시 한 부위 이상 결손된 워커들이 하늘을 팔랑거리는 모습이 대단히 비현실적이었다.

“저게 뭐냐 얘들아?”

“···어···”

거구의 사내와 청년이 워커들을 하늘로 날리고 있었다! 근육이 옹골차게 들어간 몸집의 오우거 같은 사내가 하나, 그리고 그 반절 정도의 호리호리한 청년이 하나.

그들은 거의 쓰레기 청소부들이 쓰레기 묶음을 던지듯이, 워커들을 토막 내고 – 집어 던지고 – 다시 토막 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반 토막 난 워커들을 찍어내는 주물 공장!

“이런 씨바아알! 저, 저새끼들 뭐야아아아!!!!”

놈들은 그야말로 도살자들이었다! 제레일은 덜덜 떨며 워커 청소부들을 보았다. 호리호리한 청년은 그나마 이성의 편린이라도 느껴지는 날렵한 몸짓과, 검술로 워커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거대한 놈은 그냥 오우거가 사슴을 찢어 먹듯이 워커들을 쪼개고 있었다! 도끼도 아니고, 장검으로!

제레일이 내지른 비명에, 그 도살자들이 이쪽을 바라봤다.

“오! 오오오! 생존자! 훌륭하오! 반갑소! 이리로 오시오!”

“저, 저리 꺼져!!!!”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썰어 버리자는 제레일의 계획은, 정말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도축해버리는 거인의 앞에서 산산 조각나고 있었다!

“으, 은공?!”

그때, 옆에서 달려드는 워커를 찌르던 키르하스가 숨막힌 비명을 내질렀다. 거인과 청년의 시선이 키르하스에게 닿았다.

“오오! 자매님!”

“어···어.. 형제님. 반갑습니다···”

키르하스는 거인의 활달한 목소리에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귀를 쫑긋거리며 반갑게 소리쳤다.

“은공! 무사하셨군요!”

“그래! 반가워! 저쪽 신사 분들은 붉은 도끼단 여러분들이 맞나?”

“아, 넵!”

키르하스와 청년의 대화를 들으며, 제레일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저들은 조폐 공사를 노리는 무자비한 용병들이 아니었다.

부딪칠 일이 없다고 생각하자, 제레일은 안정을 되찾았다.

“어, 어··· 저쪽도 기사님들이시오?”

“아, 기사··· 음. 네! 제 선배들입니다!”

“씨부럴···”

앞으로 성 요한 기사단 위수지역 근처로도 가지 말아야겠다. 제레일은 신음을 내뱉었다. 아니, 성 요한 기사단이 참전한다는 소문만 들리면 그쪽 벌이는 포기해야겠다.

어느새 전방에서 느껴지는 워커의 압력이 거의 사라졌다. 두 도살자들이 워커를 일소한 탓이다.

호리호리한 청년이 제레일에게 대뜸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대들의 위맹은 내 익히 들었다! 반갑군, 나는 성 요한 기사단의 안젤로일세!”

“어···저는 붉은 도끼단의 제레일입니다만··· 저희를 어찌 아시는지···?”

“내 긴히 할 말이 있다네! 잠시!”

-콰아아앙!

쾌활하게 외친 청년, 페르난데스는 주홍색 법의로 둘러 싼 주먹을 대뜸 휘둘렀다.

“으익?!”

그 기세에 제레일이 움찔 떨었을 때, 제레일의 곁으로 달려들던 워커가 경추가 꺾인 채로 바닥을 뒹굴었다.

“형제! 힘이 더 강해졌군! 베이타서스의 가호가 함께 함일세! 막토!”

“아···예. 형제님. 막토 수페를라우도···”

거인은 껄껄 웃으며 후방의, 워커의 밀도가 지극히 높은 지역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페르난데스는 제레일에게 속삭였다.

“진홍대공의 승리를.”

“!!!!! 영원한 승리를!”

제레일은 페르난데스의 말에 실신할 것처럼 놀랐다. 성 요한 기사단은 베이타서스 계열의 성전 기사단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진홍대공 타이반을 찬양할 수 있지? 제레일은 페르난데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도셨습니까?”

“그래서 내가 자네들을 찾아 다녔다네. 사태가 이리 되어 내실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엔 무리가 있군.”

“낙인을 보여 주십시오.”

진홍대공 타이반. 전쟁의 신이자 살육의 마왕. 제 5계, 물질세계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다는 전설이 있는 대마신···.

워낙 머나먼 고대에 봉인된 데다 자신의 신도에게 내려주는 가호가 변변치 않아서. 교세라고 할 만한 세력이 거의 없었지만···

‘확실히 기사라면, 전사나 다름 없으니···’

제레일은 침을 삼키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주홍색 법의를 살짝 풀었다.

그의 왼쪽 주먹에는 마치 화상 흉터 같은 기이한 문양이 찍혀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없다면, 그저 아무런 의미 없는 흉터로 보일 수도 있었다. 손등이라는 곳은 상처가 나기 쉬운 부위니까.

하지만 제레일, 지금 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진홍대공 타이반의 전사로써는. 페르난데스의 손등에 박혀 있는 문양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맙소사··· 예언대로, 당신이 오셨군요. 위대한 학살자시여···”

그건 바로 진홍대공의 가장 총애 받는 챔피언에게 내려진다는 문양이었다. 진홍대공에게 직접 성유 부음 받은 자에게서만 나타난다는 명백한 성흔!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으며 감격에 덜덜 떠는 제레일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법의를 다시 감싸 손을 가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내 언제고 자네의 힘이 필요할 걸세. 그때까지 세력을 일구어 놓게나.”

“제가 어찌 당신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위대한 분이시여?”

“내 이름도, 내 직급도 알 필요 없네. 형제여. 그저 그분께서 바라는 바를 기꺼이 행하고 있는다면, 내가 그대를 찾아 가겠네.”

“오오···.진홍대공의 승리를 위하여!”

제레일은 도끼에서 맹렬한 붉은 기운을 터트리며 감동했다. 진홍대공의 대전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자신의 대에 세계를 불태울 대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리였다!

페르난데스는 그의 감정을 깨끗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비록 이번 임무에서 활용하진 못했어도, 이들은 분명히 쓸만한 패였다. 그는 곧장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키르하스에게 다가갔다.

“본단으로 돌아간다. 바실라 경. 임무는 끝났다.”

“···네?? 하지만, 안젤로 경! 여긴 워커 사태가···”

“워커 따위에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시가드는 충분히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니. ‘사슬을 끊었다.’ 이제 메를린포트에 볼 일은 더 이상 없어.”

페르난데스는 씩 웃었다. 비전 시야에 청동 왕좌까지. 어마어마한 소득이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안젤로 경. 제가 도움이 되었나요···?”

반면 키르하스는, 그저 용병대와 함께 이동하며 워커들을 조금 해치운 전적 뿐이었다. 페르난데스는 키르하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충분히 되었네. 여기 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이 여행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였으니.”

페르난데스의 말을 듣던 제레일이 다시 한 번 감동으로 떨었다.

-하여간 단순한 것들.

페이자쉬는 조용히 투덜거렸다.

-차라리 우르카시아나 뭄토나··· 아니면 하다못해 사다르켈리사를 소환했어야 했어. 마법사가 무슨 타이반을 소환해서 이런 꼴을 봐야 했냔 말이야.

‘투덜거리지 마. 페이자쉬. 우리도 몰랐잖아 뭐가 나올 지.’

-마법사에게 무지는 변명이 아니라 수치지!

‘그건 그렇지. 뭐, 타이반도 나쁘진 않았어. 이 놈들도 쓸만한 놈들이고.’

전생에, 타이반의 신도들은 그야말로 인간 백정들이나 다름 없었다. 피를 보면 회까닥 도는 습성이 있기야 했지만, 타이반의 가호를 받으며 전장에 나설 때면 기사단도 육편 조각으로 갈아버리고는 했다.

비록 지금 타이반은 고대 드워프 유적지 어딘가에 잠들어 있고, 그 탓에 거의 어떤 가호도 내려주지 못하지만··· 어쨌건 그건 다른 이야기다.

페르난데스는 키르하스를 챙기며 조심스럽게 전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붉은 도끼단 용병들은 거의 눈을 뒤집으며 페르난데스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손등에 걸어둔 환상 마법을 해제하며 피로에 찌든 얼굴로 웃었다.

*

[작전 보고서 : 사슬 끊기]

작전 지역 : 페이른 왕국 제 3 체크포인트, 메를린포트.

작전 개요 : 청동 천칭단의 비처 탐색 및 이단 수색. 워커 역병의 진원지 수색.

작전 경과 :

1) 고대 리치 [기안-켈] 사살 및 메를린포트 도심 내부 맥라렌 교단의 이단 판정.

2) 도심 내부 광랑증 사태 해결.

3) 청동 천칭단의 시내 대규모 워커 사태 촉발 확인 및 대응.

4) 정체 불명의 중형 악마 개체 소환 정황 포착 및 섬멸.

5) 청동 천칭단 총대사제 [데일 페르타스] 사살 및 청동 천칭단 지파 섬멸.

6) 도심 내부 대규모 워커 사태에 대한 진압 지원 요청.

작전 테스크포스 팀 :

1)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 복귀

2) 디모니카, 파비아노 메이다스 – 합류 및 복귀

3) 토치맨, 키르하스 하트테이커 – 복귀

악마, 이단, 마녀를 불태우리라.

작전 책임자 :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

수도원장 베오른은 외눈 안경을 쓱 밀어 올리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눈빛 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베오른의 시선은 전략 병기였다.

“청동 천칭단을 괴멸시켰다고?”

“적어도 메를린포트와 그 인근에서 도주해 온 놈들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기안-켈은 또 뭔가?”

“맥라렌 교단의 주교로 위장하고 숨어든 리치였습니다. 제거했습니다.”

베오른은 다시 한 번 보고서를 읽었다. 보고를 받은 즉시 확인했고, 다시 읽고, 직접 당사자에게 받아서 또 읽어봐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리치를 홀로 해치웠다고?”

“그 리치는 어쩐 일인지 힘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다행인 일이지요.”

“힘이 약해졌는지는 어떻게 아나? 과거에 리치를 만난 적이 있나?”

베오른의 날카로운 말에, 페르난데스는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다. 그러나 그는 표정에 미동도 없이 덤덤히 말했다.

“주먹으로 패서 죽었으면 약해진 것이 아닐까요?”

“씁··· 그럴 리가 없는데···”

베오른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긴 복무 기간 동안 그 또한 악마 숭배자 리치들을 썰어본 기억이 있었지만, 그건 교단의 성물과 형제들의 희생이 전제된 비극적이고 신화적인 전투였다.

그걸 무슨 곁가지 치듯이 어물쩍 해결했다고···?

“게다가, 청동천칭단의 총대사제라고? 이건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건가. 이 작자가 잡아달라고 달려들기라도 했었나?”

“파비아노 형제가 제 6 체크포인트에서 거의 다 잡아둔 녀석이었습니다. 놈이 이쪽으로 도주해오길래 파비아노 형제와 함께 사살했습니다.”

“이게 대체···.”

베오른은 한숨을 내쉬며 보고서를 내려 놓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성자라 하더라도, 그리고 제아무리 유능하다 하더라도 이게 가능한 업적인가?

“주께서 보우하셨나 봅니다.”

“그리고 메를린포트는 당분간 제 기능을 하지 못할 테지. 조폐 공사는 물론 황금항도 정지될 것이고, 도시 기능을 복구하는 데는 십여 년도 우습게 걸릴 것이다. 페르난데스 형제. 페이른 왕국은 지금 절체절명이야.”

베오른은 안경을 벗어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의 눈가엔 피로가 얽혀 있었다.

“제피스 형제에게 왕실을 견제하라 부탁했다지?”

“···네.”

“근거가 뭐였나?”

“뎀드리자드를 섬멸하는 과정에서 얻은 정보입니다.”

“왜 나에겐 보고하지 않았지?”

“확실한 정보만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악마의 말을 온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지요”

“···좋네. 알겠네. 이번 일은 훌륭히 처리했군.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걸세. 가서 쉬게, 고생 많았어.”

베오른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내쫓았다. 페이른 왕국의 전역에 번진 이단 사건들로 인해 지금 이단심문청은 심각한 수준의 인력 문제를 겪고 있었다.

쉴 시간, 혹은 심문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일어나지 않았다.

“할 말이 남았나?”

“제피스 형제는 지금 무얼 하고 있습니까?”

“페이른 왕실에 가 있네. 그래. 페르난데스 형제. 자네의 말이 맞았어. 왕실 내부에 사교 집단이 숨어 있었네. 당분간 제피스 형제는 그 일로 바쁠 거야.”

“알겠습니다.”

지금, 교단 내에서 ‘이단심문관’ 페르난데스를 가장 신뢰하는 이는 제피스일 것이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오히려 자신의 일에 가장 방해되는 사람을 제피스로 꼽았다.

제피스는 페르난데스의 실력을 믿었다. 첫 임무부터 두각을 보인 탓에, 그는 페르난데스에게 관심이 아주 많은 편에 속했다.

페르난데스에겐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하며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제피스가 당분간 이단심문청에 오지 않을 것이란 정보는 그에게 있어서 낭보였다.

페르난데스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오며 미소 지었다. 이제 자유로운 실험 시간이 보장되었다. 그의 팔목에 걸린 얇은 청동 팔찌가 볕을 받아 반짝였다.

*

“후···.”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베오른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이 텁텁했다.

‘성자라서? 계시를 받아서? 신의 가호를 받아서?’

물론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신앙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수십 년간 지하에 파고들어 암약하는 이단 교단들을 쓸어내던 ‘헤레티카’ 베오른 실드베인으로써 다져진 감각이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베오른은 펜을 들어 올리며 생각했다.

하지만 무너져가는 인류를 다시 세울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좋았다. 페르난데스의 속셈이 어떻든,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꾸미고 있더라도. 그것이 인류를 위한 것이라면 상관 없었다.

베오른에겐, 그리고 문명 세계에겐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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