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긴급 명령 : 쥐 잡이
페르난데스는 녹이 낀 청동 거울을 바라보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이고, 뒤틀리고, 얽힌다.
손짓 한 번, 단 한 수의 움직임조차 마도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모든 움직임은 효율적이며 동시에 기계적이었다. 신성하기까지 한 만트라가 완성된다.
-고오오···
그의 머리 뒤로 검은 왕관 모양 헤일로가 떠올랐다. 페르난데스의 목에 걸린 비전 시야가 부르르, 떨었다. 청동 왕좌에 보존된 마력의 양이 급속도로 말라 붙고 있었다.
-스으으으···.
페르난데스의 입에서 하얀 김이 서리며, 천천히 두 눈이 뜨였다. 페르난데스가 손을 털자 헤일로가 허공으로 사그라들었다.
“아무리 해도 안되겠어. 부작용이 너무 커.”
-그러게. 이단심문관으로는 안 보이네.
“밖에서 대놓고 이 짓거리를 했다가는 그냥 이단 판정 받고 화형대 직행이겠는데.”
무슨 특별한 이단적인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 검은 헤일로! 삐죽삐죽 가시가 돋아난 왕관 모양 헤일로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불경해 보였다.
전생에서 몇 차례 보기야 했지만, 청동 왕좌를 사용한 부작용이 아니라, 데일 페르타스 개인적인 마법 발현 방식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청동 왕좌를 처음 설계한 고대인이 생각하기엔, 검은 헤일로는 시대의 패션 아이콘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용을 써도 마법의 발현 순간 발동되는 헤일로가 사라지지 않았다.
“마력을 사용하는 부분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마법이 구현되는 순간 발동되는 게 문제지.”
-그럼 차라리 다행 아닌가? 마력만 쓸 수 있다면 마력 쐐기 같은 주문은 가능하잖아.
“저번에 역주술 할 때 생각 안 나? 그때도 헤일로가 나타났었어.”
-흠···
아무리 뜯어봐도 기능적으로 헤일로가 나타나서 득이 될 일이 없는데··· 페르난데스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결국 페르난데스는 사흘간 밤을 지새운 실험은 실패했다. 실험의 끝에 알 수 있는 것은 디모니카로서 그가 최선의 정신적, 육체적 효율을 낼 수 있는 한계 뿐이었다.
-똑똑
“네, 들어 오십시오.”
누군가가 그의 문간을 두드렸다. 페르난데스는 청동 왕좌를 숨기며 말했다. 곧, 문이 열리고 거인이 들어왔다.
“아, 형제! 같이 찬송하러 가지 않겠나!”
“음···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전 이제 알렌 형제님과 검술을···”
“아쉽군! 알렌 형제님은 임무로 출타 중에 있다네!”
“그럼 키르하스와 대련을···”
“키르하스 자매님은 지금 토치맨 교육 훈련중에 있다네!”
“그럼 저는 엔마기카 형제님들과···”
“어허!”
거인, 파비아노는 페르난데스의 팔목을 꽉 움켜 쥐었다. 농업용 압착기에 짓눌린 것처럼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파비아노는 활달하게 말했다.
“나는 항상 형제님의 몸집이 걱정이었다네! 디모니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냘파! 걱정 말게.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찬송엔 건강한 육신이 깃든다네!”
“보통 반대 아닙니까?”
“무슨 소리인가? 육신이 건강하려면 우선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네!”
파비아노는 페르난데스를 꽉 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 페르난데스는 파비아노에게 끌려가며 외쳤다.
“솔직히 심심하시죠? 형제님들이 다 지금 임무 중이라 혼자 남아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음! 야외 찬송의 전당이 텅 비어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더군! 하지만 형제가 있어 기쁘다네!”
파비아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
“끄으으읍!”
“자, 할 수 있네. 형제! 한 번만 더 들어 보게!”
“끄으으으읍!!!”
페르난데스의 팔이 고통과 피로로 덜덜 떨렸다. 한계다! 페르난데스는 바벨을 들고 있는 손목에서 천천히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두에 전달되는 압박감이 느껴지는가?”
“으으으읍!!!”
“아닌가?! 형제! 자세가 틀렸다네! 팔에 집중하게!”
바가 휠 정도로 묵직한 철근이 매달린 바벨을 꽉 쥐고, 페르난데스는 전신에 땀을 흘리며 바벨 컬을 치고 있었다. 파비아노는 그의 맞은편에서 스쿼트를 치며 외쳤다.
“형제여! 외치게나! 찬송하게!”
“이··· 씹!”
“20? 대단한 근성이군! 좋네! 스무 번만 더!”
개새끼야!! 페르난데스는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입을 악 다물며 가까스로 바벨을 들어 올렸다.
상완과 팔꿈치가 실시간으로 아작 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혈관을 타고 흐르는 괴물 같은 신성이 근섬유의 손상부위를 치유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근육의 파괴와 수복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이 무슨 지옥 같은 훈련법이란 말인가. 페르난데스는 끙끙거리며 바벨을 내렸다. 팔이 떨렸다.
“페르난데스 형제님?”
“어? 네! 접니다! 저!”
-쿠우우웅···
갑작스럽게 엔마기카 이단심문관이 나타나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페르난데스는 진심으로 성호를 그을 뻔 했다. 그는 재빨리 바벨을 바닥에 내던졌다.
“파비아노 형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아, 거기 엔마기카 형제님!”
“네, 넵?!”
엔마기카 이단심문관은 페르난데스의 화난 팔뚝과, 그를 바라보는 (페르난데스보다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파비아노의 분개한 허벅다리를 바라보며 겁에 질려 있었다.
“저한테 볼일 맞죠?”
“아. 네··· 넵. 베오른 수도원장님이 찾으십니다.”
이단심문청에 체류 중인 사람이 너무 없었던 탓일까. 베오른이 찾는 빈도가 높아졌다. 페르난데스는 살짝 긴장하며 베오른의 방으로 찾아갔다.
*
[긴급 명령 : 쥐 잡이]
작전 지역 : 데인 왕국, 바르베스 남작령 제 2 체크포인트.
작전 개요 : 상정 외 워커 사태 발생으로 인한 긴급 조사단 파견.
작전 테스크포스 팀 :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토치맨 키르하스 하트테이커.
음성 기호 : 페르난데스 – 안젤로(A), 키르하스 – 바실라(B)
악마를, 이단을, 마녀를 불태우리라.
최종 승인 :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장 베오른 실드베인.
*
베오른은 페르난데스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타부타 언질 없이 보고서를 넘겼다. 페르난데스는 보고서를 천천히 읽고 반으로 접어 품에 넣었다.
“데인 왕국에 워커 사태가 일어났다고요···?”
“그래. 바르베스 남작령 교구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네. 근방 수비대와 기사단에 연락을 했고, 3일 뒤에 그들 모두가 연락이 두절되었지.”
“고작 워커 사태에 기사단이 전멸했다는 말입니까?”
“전멸 까진 아니고, 그쪽에서 파견한 수행 기사들 몇이 임무에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더군.”
베오른은 홍차를 한 입 마시곤 지도의 한 귀퉁이를 짚었다.
“페이른 왕실 사건으로 지금 당장 파견할 인력이 극도로 부족하네. 그리고 청동 천칭단의 영향권 밖에서 일어난 첫 워커 사태일세. 만약 놈들의 지파가 데인 왕국으로 손을 뻗었다면···”
베오른은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데인 왕국까지 무너진다면 동부 왕국연합의 절반에 달하는 국가가 만신전의 영향력 밖으로 밀려나게 되네. 결코 용인할 수 없네.”
“바르베스 남작령은 프란츠리트 블러드라인의 영역이 아닙니까···? 놈들이 자기 땅에서 이단 종파가 발호하는 것을 놔둘 거라고 생각이 들진 않는데요···?”
“···? 무슨 소리인가? 프란츠리트는 서펜츠아일스의 귀족 가문 아닌가. 거리가 멀진 않지만, 놈들은 그 섬 밖으로 나오지 않는데?”
“???”
페르난데스는 지도를 바라보며 혼란에 휩싸였다. 흡혈귀 대귀족 가문 중, 문명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흡혈귀 혈족이 있다면 단연 프란츠리트일 것이다.
전생에 분명히 놈들이 활동한 지역은 서펜츠아일스를 기준으로 과부거미 해안선 전역이었는데?
-아직 서펜츠아일스 밖으로 발호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그럼 고작 몇 십년 만에 그렇게 성장한다고?’
-글쎄··· 뭔가 큰 사건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은 나지 않는군.
베오른은 활활 불타오르는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반드시, 선신 만신전의 힘을 보여주게. 감히 페이른 전역을 불태운 놈들이 영향력을 밖으로 돌리려 드는 것이라면··· 놈들에게 만신전의 진노를 보여주게.”
“놈들을 반드시 지옥으로 인도 하겠습니다. 수도원장님.”
“좋네. 형제. 가보게. 필요한 장비는 모두 단단히 챙기게. 긴 여정이 될 걸세. 부디 살아서 돌아오게나.”
데인 왕국의 바르베스 남작령은 이단심문청을 기준으로 마편을 잡고 닷새는 가도를 따라 달려야 나오는 곳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장기 여정이 아무래도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떴다.
“영광을.”
“베이타서스의 영광을. 형제.”
-끼이익.
베오른은 닫히는 문을 바라보다가 안경을 벗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지도에 체크된 붉은 표식들을 내려 보았다. 동부 왕국 전역이 마치 피를 쏟아내는 것처럼 붉게 번져 있었다.
올 해 안에 발생한 이단 사건들이다.
동부 왕국은 지금 제국의 서부 원정에 병력을 투사하고 있었고, 따라서 천천히 경제적으로 고사해가고 있었다.
기근과 기아가 너무나 흔한 시대였다. 그리고 그런 만큼, 피폐해진 백성들의 마음속으로 악마와 이단들이 파고들고 있는 시대였다.
죽음이 흔한 시대다. 그림자 속에선 악마가 울부짖고, 선인은 장대에 매달려 불타올랐다. 그런 광경을, 그런 모습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이단심문관 한 명이 교육을 마치고 실전에 들어갈 때 쯤이면, 이미 열 명 이상의 이단심문관들은 작전 중에 전사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명 사회의 승리는 희미해져만 가고 있었다.
늙은 이단심문관은 피로에 찌든 눈을 쓰다듬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품에 손을 넣어 열쇠검이 박힌 베이타서스의 로사리오를 꺼냈다.
“주여, 길을 알려 주소서.”
신은 언제나처럼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로사리오의 테두리에 조그마하게 새겨진 글자를 거친 손 끝으로 쓰다듬었다.
-너는 의(義)를 구하며, 선(善)을 바라고, 덕(德)을 행하라.
-그리하면 너의 천부께서 네게 정(正)을 더하시리라.
신의 심판은 신이 할 것이다. 베오른은 눈을 떴다. 이단에 대한 보고서와 신고 자료들이 그의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딸랑.
“넵, 수도원장님. 부르셨습니까!”
“파비아노 형제를 부르게.”
“넵!”
엔마기카 이단심문관이 재빨리 방 밖으로 나갔다. 베오른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신의 심판은 신께서 할 일이다.
그리고 이단들을 주의 심판대로 올리는 것은 우리들의 일이다.
*
마르테리오 형제는 다행히 임무를 배정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멋쩍게 웃으며 병기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엔 뭘 부수고 싶나? 페르난데스 형제.”
“에이, 형제님도 참. 들어만 보면 제가 매번 장비 부수는 걸 취미로 하는 줄 알겠습니다.”
“취미 아니었나? 첫 임무에 가져간 대검, 단검, 가방에 비도까지 싹 잃고. 다음 임무에서도 온갖 무기들을 다 부수고 결국 주먹으로 워커를 죽이다 왔다지?”
“그거는 업무상 어쩔 수 없었지요! 세상에, 리치를 잡을 줄은 몰랐지 뭡니까. 마르테리오 형제님. 형제님의 무기가 그야말로 리치 슬레이어였습니다!”
“흠···”
마르테리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썩 기분이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뭐가 필요한가?”
“방패 하나, 대검 한 자루, 장검 한 자루. 그리고 은제 말뚝도 하나 필요합니다.”
“···아주 그냥 뽕을 뽑아 가는구만. 형제.”
“하하··· 살아서 돌아와야죠!”
“그 말은 꼭 지키시게.”
마르테리오는 페르난데스의 농담에 피식 웃었다. 그는 주섬주섬 병기들을 꺼내 늘어 놓으며 말했다.
“은제 말뚝은··· 이번 임무가 흡혈귀 사냥인가?”
“혹시 몰라서요. 작전 지역 내에 흡혈귀 혈족이 있습니다.”
“음. 셀든버그?”
“아니오. 프란츠리트입니다.”
“어허. 멀리 가시는 군.”
마르테리오에게 무기를 받아 들어 장비 상태를 확인하며, 페르난데스는 스쳐가듯 중얼거렸다.
“프란츠리트든 셀든버그든, 만날 일 없길 바랍니다.”
대귀족 프란츠리트. 과부거미 해안선의 지배자이자 동부 왕국의 악몽. 말년에 다이란 쉬라이크와 아홉 제자들이 멸족시키기 전까지 그들이 끼친 피해가 어마어마했고, 그때 인류가 소모한 인적, 물적 자원들은 문명 사회의 멸망에 큰 영향을 끼쳤었다.
프란츠리트 혈족은 물론 언젠간 반드시 배제해야 했지만. 페르난데스가 홀로 해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디서 카를로마노 파빌로스 박사 하나 안 떨어지나··· 페르난데스는 혀를 차며 무기를 들어 장비했다.
“그럼, 이 친구들 무사히 다시 반납하러 오겠습니다!”
“바라지도 않네. 형제만 무사히 오게나.”
정말 마음씨 좋은 형제님이다. 페르난데스는 이 어마어마한 호의에 감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