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5화 (26/388)

25. 황야의 집법자

-그어어···

전신에 상처가 검게 썩어 들어가고, 구더기들이 들끓는 시체가 비척거리며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말라붙어 뿌옇게 쪼그라든 망막으로, 놈은 새로운 살점을 찾아 헤맸다. 물론 그런 것은 없었다.

-그어어억!!

무심코 담벼락의 그림자 밖으로 나선 시체 한 구가 햇살을 받았다. 시체의 피부가 새하얗게 타들어갔다. 놈은 온몸을 비틀며 저항하다가, 맥없이 쓰러졌다.

마을은 더 없이 황량했다. 돌아다니는 것은 먼지와 흙 뿐이었고, 시체들은 처마 밑이나 그림자 속에 웅크리고 앉아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바르베스 남작령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마을. 과부거미 해안선을 따라 나 있는 교역로로 이따금씩 활용되곤 하는 이 마을에.

이단심문관이 오고 있다.

*

“은공! 저 마을이 맞는 것 같아요!”

“이번엔 확실하지? 벌써 세 번째야.”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는 흙먼지와 피로가 잔뜩 절어 있는 행색으로 마을을 향해 달렸다. 그들이 타고 있는 말도 심각한 탈수로 반쯤 죽어가고 있었다.

“이번엔 진짜, 진짜로요!”

“그래··· 이번엔 맞았으면 좋겠다···.”

황량한 마을이었다. 그 흔한 개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버려진 마을이다. 페르난데스는 마을 입구에 내려서, 거품을 물고 있는 말의 궁둥짝을 가볍게 때렸다. 말은 깜짝 놀라며 어디론가 달려가버렸다.

“오래 살아라!”

“돌아갈 때는요?”

“돌아갈 때까지 저 놈이 살 것 같지가 않아.”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마을 입구로 들어서며 말했다. 키르하스는 그의 곁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데요, 은공?”

“있긴 있네.”

페르난데스가 가리킨 방향, 지붕의 처마 밑에 시체들이 앉은 채로 미동 없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키르하스는 섬칫 놀라 귀를 뾰족하게 세웠다.

“저거 시체에요?”

“저 자세로 죽은 시체들이 있다면?”

페르난데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붕 아래 마다, 처마 밑 마다, 그리고 그늘이 든다면 담벼락 마다··· 모든 그늘 아래에 시체들이 앉아 있었다. 같은 자세로, 오로지 그들을 노려보며. 섬뜩한 광경이었다.

“왜 저기 그냥 앉아만 있는 거죠? 워커는 이성이 없는 것 아니었나요?”

“주변에 술사가 있거나, 저것들이 워커가 아니거나.”

-스르릉

페르난데스는 칼을 뽑아 들었다. 키르하스도 재빨리 따라 발검하며 자세를 잡았다.

“워커가 아니야. 구울이다.”

제기랄. 꼭 없었으면 하는 것들은 꼭 나타나는 법이라니까.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구울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발생했다.

그 뜻은, 레드 헝거(Red hunger)에 시달리는 미치광이 흡혈귀가 잠복해 있을 거란 뜻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느긋하게 걸어가, 그늘 밑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수많은 구울들이 덮쳐 들었다.

-촤아악!

페르난데스의 칼이 덤비는 구울의 목을 치고 지나갔다. 구울의 목이 떨어지고, 그 목이 바닥을 구르기 전에, 다른 구울의 몸통이, 또 다른 구울의 팔뚝과 아랫턱이 떨어져 내렸다.

-촤악, 촥!

“으, 은공!”

키르하스는 재빨리 페르난데스의 등 뒤에 서서, 뒤에서 덮쳐 오는 놈들을 썰기 시작했다.

이성 없이 달려든다는 점 자체는 동일했다. 하지만 워커는 산 사람이 질병에 감염된 것이고, 이 놈들은 정말로 죽은 놈들이다.

“키르하스, 이놈들은 목을 쳐야 죽어.

“넵!”

키르하스는 덤벼드는 구울의 어깨를 썰고, 그대로 자세를 숙여 위를 찔렀다. 입을 쩍 벌리고 있던 구울이 턱부터 관통되어 정수리까지 뚫렸다.

구울은 경련 없이 축 늘어졌다. 신경의 반사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정말 시체인 것 같았다.

칼을 지르고, 다시 되돌려 빼는 데까지 자세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완벽하게 절제된 동작으로, 그녀는 구울을 도륙 내고 있었다.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은공도요. 검술 수련을 꾸준히 하시나 봐요!”

내가 그랬나? 페르난데스에게 검술은 반쯤은 취미요, 나머지 반은 디모니카 근력 수련에서 도망치기 위한 핑계였다.

그가 구울의 정수리를 내려 찍을 때 키르하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디모니카 형제님들의 몸을 가지고 계시면 무기술은 아무래도··· 뒷전이 되기 마련인데요···”

키르하스가 생각하는 디모니카들은 맹수 그 자체였다. 인간을 초월한 근섬유의 효율과 반사 신경, 감각으로 적을 말 그대로 분쇄하는 농업용 분쇄기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그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이었다. 양때에 떨어진 늑대처럼 수십 명을 도륙할 수 있는 육신을 가지고, 그걸 더 능숙하게 활용하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다니.

게다가 지난번 페르난데스의 임무 브리핑에서 그의 빛나는 지혜를 볼 수 있었다. 키르하스가 보기에 그는, 사자의 용맹과 악어의 힘 그리고 따오기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부족 전설에 나오는 태양을 삼킨 용사 루트마가르 그 자체!

“어··· 그래? 그렇게 봐주니 고맙네.”

페르난데스는 떨떠름하게 대답하며 자신에게 덤벼드는 마지막 구울을 반으로 쪼갰다. 아무래도 이 건물에 있는 구울은 모두 처리했지 싶다.

대부분의 언데드들이 그러하듯, 구울 또한 약하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구울은 워커보다 약했다. 근육과 반사신경을 유지하고 있는 워커와는 달리, 구울들은 사령술에 의해 일어난, 흡혈귀의 피해자에 불과했다.

고작 이 정도에 기사가 쓰러졌다고? 페르난데스는 칼을 납도하지 않은 채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비전 시야가 뱀파이어 특유의 마법 잔향을 경고하고 있었다.

*

“흡혈귀는 보통 지하에서 잠을 자지 않나요?”

“그건 미신이고, 일반적으로는 침대에서 잠을 자지. 높은 곳을 선호하고. 암막 커튼도 선호하고.”

페르난데스는 중갑을 갖춘 구울 두 마리를 썰며 말했다. 놈들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기습을 한 참이었다.

가뜩이나 느리고 약한 구울들이 갑옷까지 걸치고 있으니 움직임이 더 없이 굼떴다.

-챙그랑!

머리를 잃은 몸통이 쓰러지며 사슬갑옷이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페르난데스는 놈들의 몸을 옆으로 치우며 계단 위로 올랐다. 싸울 때는 몰랐는데, 그의 예민한 청각에 흐느낌이 잡혔다.

“위에 있는 게 확실하다.”

“네··· 울고 있네요.”

하긴 묘인족도 소리 잘 듣기로는 유명하지. 페르난데스는 키르하스의 뾰족한 귀를 바라보았다.

묘인족, 참 신기한 족속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히 인종차별주의자처럼 들리지만, 사람처럼 생긴 이목구비에 털 달린 귀가 올라와 있다니. 페르난데스는 그 순간 욕망을 참지 못하고 키르하스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앗, 은공?!”

-슥, 슥.

건틀릿을 차고 있는 손이라 촉감이 전해지진 않았지만. 페르난데스는 키르하스와 있을 때, 이따금 그녀의 귓가를 쓰다듬고는 했다. 페르난데스의 큰 키 탓에, 키르하스는 그의 가슴 정도에서 그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음, 읏··· 은공. 여기선 좀···”

“아, 그래. 미안해.”

페르난데스는 씁, 하고 침을 삼켰다. 고양이라··· 그러고보니 고양이를 키우던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마쿠스. 황금의 마쿠스. 놈이 고양이를 그렇게 죽어라 아꼈지.

‘아 기억 난다. 마지막에 용사들이 고양이를 죽였을 때 비명을 질렀다는 소리를 들었어.’

-큭큭, 어리석은 놈. 고작 미물에게···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방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

“크흐으···. 흐으···.”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 한 사내가 구석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거의 누더기가 된 정복은, 그럼에도 여전히 고급스러운 광택을 잃지 않았고, 하얗고 구불거리는 머리칼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였다.

“어이, 흡혈귀.”

“흐윽···”

사내의 고개가 살짝 들리며, 놈의 눈동자가 보였다. 사내는 붉게 빛나는 눈으로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가에서 붉은 액체가 툭, 툭 떨어지고 있었다. 레드 헝거의 증상이었다.

“저기?”

“···피···?”

“어?”

-콰지직!

그 순간, 사내의 몸이 사라졌다. 페르난데스는 들고 있던 칼을 재빨리 눈 앞으로 휘둘렀다. 어느새 페르난데스의 앞에 나타난 사내는 칼날을 피하며, 페르난데스의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놈!”

-투웅!

“크륵!”

페르난데스는 방패를 쥐고 있던 손을 휘둘러 달려드는 사내를 털어냈다. 사내는 바닥을 죄 쥐어 뜯으며 뒤로 밀려나, 자세를 잡았다.

“은공!”

“조심해!”

-콰직!

사내가 다시 사라졌다. 페르난데스의 예리한 시선에서도 거의 잔상으로 보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가까스로 놈의 움직임을 따라 팔을 뻗었다. 키르하스를 향해 달려들던 사내는 페르난데스의 방패에 턱을 얻어 맞고 튕겨나갔다.

“크윽!”

“임마!”

“가, 감사합니다!”

키르하스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긴장했다. 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과연 기사 둘을 잡아먹은 괴물이었다.

“크흐으···.”

“어이 프란츠리트. 정신차려 임마.”

아직 몰골이 사람꼴이니, 완전히 피의 갈증에 집어 삼켜진 놈은 아니었는데···. 페르난데스로써는 놈이 대체 왜 이 모양이 되어, 프란츠리트 영역 밖을 나돌아다니는 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없었다.

‘프란츠리트 블러드라인이라면 토벌대를 반드시 보낸다.’

놈들이 오기 전에 빠져나가야 했다. 다행히 아직 낮이지만, 그리고 오늘 밤에 바로 오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리 시간이 넉넉하진 않을 것이다.

“프란츠···리트···.”

“그래 임마. 말 하네!”

“프란츠리트으!!!!”

“아 썅.”

-쾅! 쾅! 쾅!

놈은 거의 거품을 물어가며 덤벼들어 페르난데스에게 팔을 휘둘렀다. 바싹 마르고, 뒤틀린 굵은 손가락이 마치 칼날처럼 방패를 긁었다.

저 마른 몸집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지, 페르난데스의 근력으로도 충격이 전해지고 있었다.

‘고위 귀족이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고위 귀족이 대체 왜 레드 헝거를 앓을 때 까지 굶주린단 말인가?

레드 헝거는 오랜 시간 흡혈을 하지 못한 흡혈귀가 피의 갈증에 집어 삼켜져 이성을 잃는 질병이었다.

레드 헝거를 앓는 흡혈귀는 이성과 자제심을 잃고 무분별하게 흡혈을 시작한다.

그 탓에 마을 하나, 크게는 도시 하나를 포식하게 되며, 이러한 행동이 혈족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위 혈족에서는 레드 헝거를 앓는 이들을 처형시키기 위한 처형 부대가 있다.

레드 헝거로 잃은 이성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즉, 놈은 이제 죽을 때 까지 산 자의 피를 빠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야 했다.

여기서 죽이는 편이 놈을 위한 것이겠지. 그리고 이 마을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페르난데스는 알아야 했다.

(1) 전생에 프란츠리트는 이 부근은 물론, 데인 왕국의 절반 가량을 집어삼킨 대영주였다.

(2) 하루 아침에 일구어낼 수 있는 성과가 아닌데도, 이번 생의 이 시간대에선 아직 서펜츠아일스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3)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프란츠리트 혈족이 그렇게 성장했는지 알아야 했고, 이를 저지해야 했다.

(4) 그 와중에, 프란츠리트 혈족으로 보이는 흡혈귀가 마을 밖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다.

반드시 이 사건엔 상관 관계가 있다. 아직 프란츠리트가 지역 강자에 불과할 때, 그 싹을 제거해 두는 편이 나았다.

“잠깐 그럼 몇 대만 칠게!”

“크흐윽?”

아무래도, 잠시간이라도 이성을 찾을 때 까지 교육이 필요할 것 같았다. 생존본능을 자극하면 일시적으로라도 이성을 붙잡을 수 있을 테니까.

늑대 인간도 그랬었으니, 흡혈귀도 그렇겠지? 페르난데스는 달려드는 놈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 꽂았다.

-콰아앙!

“크흣!?!”

고통에 발버둥치는 놈의 가슴을 짓밟으며, 페르난데스의 건틀릿 낀 주먹이 놈의 얼굴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흡혈귀가 쓰러져 있는 바닥 장판이 부서지며 나무 조각들이 비산했다. 키르하스는 그 기세에 주춤 뒤로 물러섰다.

“곰의 야만성···.”

-콰앙! 쾅! 콰아앙!

피와 나무 조각들이 튀어 오르는 끔찍한 폭력 현장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연신 주먹을 휘두르며 말했다.

“정신 차리면 손으로 바닥을 두 번 쳐!”

“그르르륵!!!!!”

-쾅! 쾅!

페르난데스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흡혈귀는 경련하며 연신 바닥을 내리쳤다. 저건 멈춰 달라는 신호일까, 아니면 조건반사적인 행동일까?

“아, 두 번이랬잖아.”

-쾅!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페르난데스는 흡혈귀의 미간을 내리찍고는 일어섰다. 건틀릿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얼굴이 엉망이 된 흡혈귀가 부들부들 떨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개새끼···.”

“오, 이제 말 하네.”

“따오기의 지혜···.”

페르난데스는 미소 지으며 방 구석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흡혈귀는 경련하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그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겁에 질린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자, 흡혈귀. 이름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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