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인퍼머르, 용이 잠든 도시 (1) [리메이크 전 마지막 화]
페르난데스는 습하고 악취 지독한 지하 수로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그의 삶 전반기는 추방자와 도망자, 노예와 빈민이었고 그런 그의 집이자 전장은 언제나 이런 장소였다.
빈민가와 지하 수로. 악마와 이단, 마녀와 흡혈귀, 광랑증 환자와 같은 광인들이 숨어드는 이런 장소에서 어설픈 귀족 서자가 살아남기 위해선 행운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촤악!
“그어어어어···.”
페르난데스의 발 밑에 잠긴 오폐수에서 반쯤 썩어 들어간 구울이 튀어나왔다. 폐수의 물이 솟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던 그는, 구울의 두개골을 잡고 그대로 벽에 처박아 터트렸다.
-철퍽!
“들킨 건가?”
-아마도 아직은···. 위!
“알아!”
“그어어어!!!”
천장에 달라 붙어 있던 구울 세 마리가 동시에 페르난데스를 향해 떨어졌다.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앞으로 몸을 굴리며 장검을 뽑아 두 번 그었다.
-촤악!
세 마리 구울이 다섯 조각으로 떨어졌다. 구울들은 사지가 부서진 상황에서도 꿈틀거리며 페르난데스를 향해 다가왔다.
-쾅!
페르난데스는 꿈틀거리는 구울들의 머리를 짓밟아 터트리며 지하수로 안으로 나아 갔다. 사실, 그럴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다. 굳이 숨는 다면 지하 수로가 맞겠지.
빛이 들지 않으며,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여기까지 기어 들어오는 빈민들은 실종되어도 의심 받지 않으며. 고귀한 엘프들은 이런 냄새 나는 곳에 가까이 오지 않고, 부패한 인간 병사들은 굳이 깊숙이 수색하지 않으니까.
“넌···. 누구냐···.?”
그러므로, 갑작스레 나타나 구울들을 으깨어 버리고 있는 페르난데스는 흡혈귀들에겐 천재지변이나 다를 바 없었다.
찢어지고 헤진 정장을 입은, 빼빼마른 남자가 붉은 눈으로 페르난데르를 노려보며 지하수로의 맞은 편에서 나타났다.
“프란츠리트?”
“?! 넌 뭐냐? 엘프는 아닌 것 같은데?”
-스르릉.
페르난데스가 장검을 뽑아 쥐고 다가서자, 사내는 당황해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자, 잠깐만! 잠깐! 우리 말로, 대화로 하자. 네 놈이 싸우는 모습은 충분히 봤어. 너도 굳이 이런 곳에서 흡혈귀와 싸우고 싶진 않을 텐데?”
“···?”
페르난데스가 잠시 멈추자, 사내는 픽 웃었다.
“그래, 말이 통하는 걸 보니 엘프 놈들은 아니군. 넌 왜 여기에 왔느냐? 인간이 여기까지 올 일이 없을 텐데?”
“흡혈귀를 찾아 왔지. 찾아서 기쁘군.”
사내는 페르난데스를 경계하면서도, 더 이상 물러서지는 않았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사내와 자신의 거리를 가늠하며 칼을 고쳐 쥐었다.
열두 걸음.
“왜 우릴 찾지? 인간과 얽힐 일은 없었는데?”
“장군이 보냈다.”
“···? 아직 작전 시기가 아닌데? 이런 위험한 짓을 했다고? 들키면 어쩌려고 이렇게 직접 찾아와?!”
“어떤 분이 보냈는지는 물어보지 않는군?”
“뻔하지! 이렇게 막 나가는 녀석은 아일데른, 그 작자 밖에 더 있겠어!”
열한 걸음.
“잠깐, 잠깐만. 아일데른 장군이 인간을 사자로 보냈다고···?”
“엘프가 이런 데에 올 것 같나?”
“아···. 그런가. 하기는···.”
열 걸음.
페르난데스의 어깨가 단단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튜닉 안에서, 팔뚝의 힘줄이 뱀처럼 꿈틀거렸다.
그 흉흉한 기색에 사내는 잠시 움츠러들었다. 어떻게 인간이 자기보다 더 포식자 같을 수 있지?
“아니, 그래서. 무슨 일로? 아직 작전은 며칠 더 남았잖아. 본가에서 선단이 오면 시작할 거라고 하지 않았어?”
“이걸 전해주라더군.”
아홉 걸음.
“뭔데?”
사내는 이제 페르난데스의 시야에 온전히 잡힐 정도로 가까워졌다.
광원이라곤 거의 없는 어두운 지하 수로에서도, 여덟 걸음 정도의 거리라면 디모니카의 시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여덟 걸음 정도의 거리라면, 아슬아슬하지만. 흡혈귀의 반응속도로도 디모니카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쒜애액!
“무!?!?”
-퍼억!
페르난데스의 팔에서 장검이 마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사내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심장에 장검이 틀어 박혔다.
크로스가드까지 물릴 정도로 강하게 틀어 박힌 장검이, 사내의 등 뒤에 튀어 나와 파르르 떨었다.
“커···흡···.”
-저벅, 저벅.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는 비틀거리며 가슴에 박혀 있는 장검을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그는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올려 보았다.
“흑···흡···후욱···.”
너무나 큰 충격에, 폐와 심장이 찢어 발겨지며 흡혈귀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그의 눈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페르난데스는 칼자루를 움켜 쥐고, 사내의 배를 발로 밀었다.
-철퍽.
칼날이 놈의 몸에서 빠져나가며, 흡혈귀는 그 촉감에 바르르 떨었다. 축성된 세인트메탈 장검에 주요 장기들을 찢긴 흡혈귀로써는,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적어도 배신자 중 한 놈은 알았군.’
-가이메른 왕조는 엘븐 트라이던트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놈들이었어. 장군이 배신했다고 수도를 포기하고 유랑을 택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이제 그 사정도 한 번 들어보자.’
-한 놈만 더 잡으면 되겠군.
페르난데스는 쓰러진 흡혈귀의 시체를 질질 끌며 수로 안으로 나아갔다. 흡혈귀의 육체는 튼튼한 편이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해서 방패는 되어줄 것이다. 하다 못해 미끼라도.
*
-똑똑.
“레이아. 잠시 시간 괜찮으냐?”
“아, 왕자 저하. 네. 들어오십시오.”
레이아는 마른 수건으로 칼날을 닦으며 대답했다. 곧 문이 열리고, 엘프 청년이 들어왔다. 대리석 조각을 깎은 듯한 아름다운 외모와, 찰랑이는 은발이 그의 중성적인 미모를 빛내고 있었다.
아이나드 핀 가이메른. 가이메른 왕의 유일한 적자. 순혈 엘프만이 가지는 섬세함과, 어린 시절부터 전사로서 벼려진 단단함과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사내였다.
레이아는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녀자의 처소에 들이기엔 다소 늦은 시간이 아니옵니까?”
“하하, 관두거라. 동생아. 내 듣자 하니, 인간 사내를 알현실에 들였다고?”
아이나드는 시원스런 웃음을 띄며 레이아의 맞은 편에 앉았다. 레이아는 칼을 납도하고, 아이나드에게 물을 따라 건넸다.
“만신전의 이단심문관이었습니다. 프란츠리트 밀사가 도주 중에 사망했고, 그 유지를 이었더군요. 폐하를 반드시 만나 뵈어 저 스스로 직접 밀서를 건넨다기에 그리했습니다.”
“내 너를 추궁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동생아. 너는 어찌 나를 네 오라비가 아닌, 상관으로 대하느냐?”
아이나드의 눈에서 호의가 흘렀다. 그의 동생, 레이아는 하프 엘프다. 가이메른이 직접 ‘만든’ 하프 엘프. 가이메른 왕이 대륙을 향한 자신의 수족으로 삼기 위해 의도적으로 창조된 존재다.
천상 전쟁 이후, 스스로의 신을 버린 엘프들에게 내려진 저주. [다시는 대륙을 밟을 수 없으리라.] 대륙을 밟은 엘프는 급격하게 힘을 잃고 사그라든다.
그러나 인간과 통분하여 출생하는 하프 엘프들에겐 저주가 대물림 되지 않았다. 레이아는 그런 특성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는 그녀의 자랑이며, 동시에 천형이었다.
아이나드는 언제나 그런 레이아가 장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내 더 자세히 듣고 싶구나. 폐하께서 인간과 독대하여 무슨 하명을 하시었느냐?”
“이 도시에 파고든 이단을 찾아오라 하시었습니다. 그리고, 밀서에 따르길···.”
레이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목소리를 죽였다.
“다섯 장군 중에 배반자가 있어, 프란츠리트 혈족의 가주와 내통을 하고 있다 하옵니다.”
“···무어라?”
아이나드는 눈을 크게 치켜 뜨며 놀랐다. 레이아는 냉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지요.”
“참람하구나.”
엘프의 신이 만신전에서 자취를 감춘 이후, 엘핀 킹은 언제나 그들의 신과 같은 위상을 지녔다. 영생자이며 동시에 영도자. 천상 전쟁 이전부터 씨족을 다스려온 불멸자. 그런 그를 배신하다니?
레이아는 놈들이 과연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반드시 믿는 바가 있을 것이옵니다. 설령 다섯 장군···. 아니, 오라버니를 제외한 네 장군들 모두가 배반한다 하더라도. 오라버니와 폐하께서 직접 친전하신다면 그 적수가 있겠사옵니까.”
“···네 생각은 어떠하냐? 과연 놈들이 무얼 믿고 그런 짓을 저지르려 한단 말이냐?”
“밀서에는 프란츠리트 혈족과 인간 사교도를 언급했지만, 그들 정도로는 불가 하옵니다. 놈들은 해상에서 감히 가이메른 왕실의 함대를 대적하려 들 수 없습니다.”
엘핀 서펜트 킹의 기함에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무기는 이 세계에 단 셋 뿐이다. 고대 드워프의 화염, 용의 숨결, 그리고 대악마의 저주.
그리고 그 셋은 모두 사전에 대비가 가능하며, 물질 세계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가이메른 왕조의 함대는 무적에 가장 가까운 병력이다. 흡혈귀들은 해상에선 결코 인퍼머르를 침범할 수 없다. 따라서 내륙일 것이다.
내륙의 일은 그녀의 임무였다. 레이아는 창 밖에 펼쳐진, 저물어가는 항구 도시를 바라보았다.
“걱정이 되느냐?”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폐하께선 영민하시나, 내륙의 음험함은 이따금씩 상궤를 벗어나곤 합니다.”
“네 마음이 곱구나. 그 인간은 어떻더냐?”
레이아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어린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더군요.”
“강하더냐?”
“뛰어난 전사지만, 오라버니보다 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의지가 견정하고 심계가 깊습니다. 폐하께서도 그 인간을 특별히 감시하라 명하셨습니다.”
“폐하께오서? 이상한 일이구나. 폐하 말고, 네 생각은 어떠하느냐?”
“···괜찮은 사내더군요.”
“하하! 그래, 청춘이로다.”
아이나드는 웃으며 일어섰다. 그는 레이아의 머리칼을 헤집고는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벌써 가십니까?”
“폐하께서 네게 내린 임무가 있는데, 내 어찌 네 시간을 더 앗아갈 수 있겠느냐? 동생아, 이따금씩 이 오라비를 찾아와 세상 이야기를 해다오. 내 기다리고 있겠다.”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고생하거라.”
아이나드는 문을 닫고 멀어졌다. 레이아는 잠시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신 후에, 소드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델라, 있느냐?”
“네, 마마.”
“인간이 무얼 하고 있더냐?”
“아직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문 밖에서 들려온 시녀의 말에, 레이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게으른 인간 같지는 않았는데? 레이아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채비하거라. 직접 찾아가 보아야겠구나.”
*
-위잉, 위잉, 위잉.
“조장님!! 조장님!!! 침입자가 서쪽 통로에 나타났습니다!”
“뭐?! 아깐 13번 구역에 있었다면서!! 여기까지 벌써 뚫렸다고?”
“빠, 빨리 피하셔야···.”
지하 수로의 거대한 배수 시설에서, 시체처럼 새파랗게 질린 사내가 황급히 책과 실험 도구들을 가방 안에 쑤셔 박으며 외쳤다.
“막아!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벌어라!”
“네, 넵!!”
삐쩍 마른 사내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어둠이 짙게 깔린 통로 안으로 뛰어 갔다. 알람 마법이 깔린 통로는 시끄러운 경보음과 붉은 조명으로 어지러웠다.
프란츠리트 가문에서 모든 힘을 총동원해 모은 인재들. 여기에 모인 네크로맨서들은 서부 사령술 학회의 석학들이었다.
이들을 모두 잃어버린다면 학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의 신망이 크게 손상된다.
사내는 지하 깊은 곳으로 향하는 입구 앞에 서서, 봉인 장치를 조작했다. 이건 설령 가주가 직접 온다고 하더라도 봉인을 해주하는 데에 하루 반나절 이상 시간이 걸릴 단단한 봉인이었다.
이 안에서 바깥 일을 모른 채로 작업하고 있을 네크로맨서들에겐 미안하지만, 놈들의 작업이 끝나야 그들 모두가 살아나갈 수 있었다. 사내는 탈출구로 향하며 짐을 들어 올렸다.
-퍼드득.
그때, 익숙한 기척과 함께 박쥐들이 몰려 들었다. 사내는 인상을 찌푸렸다.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돌아 왔느냐? 놈은 어떻게 되었지?”
-퍼드득··· 쿵.
박쥐가 사람의 형체를 갖추며, 바닥에 툭, 떨어졌다. 사내는 화들짝 놀라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봤다.
“이게 무슨···?”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사내가 온 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내는 덜덜 떨며 부하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위잉, 위잉, 위잉.
통로는 붉은 경고등이 온통 반짝이고 있었다. 경고등이 꺼질 때 마다, 망막에 남은 잔상이 아려왔다.
불이 꺼진 통로는, 흡혈귀의 야간 시야로도 꿰뚫어 볼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두웠다.
“피하십···.”
-툭.
바닥에서 경련하던 부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사내는 도주로로 향하던 것도 잊고, 멍하니 통로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통로의 안쪽에서 무언가 커다란 물체가 날아왔다.
-철퍽.
“흐, 흐이이익!!!”
반토막 난 흡혈귀의 사체가 사내의 발치에 떨어졌다. 사내는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봉인된 지하 통로의 입구가 그의 등에 부딪쳤다.
-절그럭.
사내의 손에 있던 짐들이 바닥에 떨어져 흩어졌다. 저 멀리, 서쪽 통로의 입구에서 장검이 붉은 빛을 받아 번뜩였다.
곧, 호리호리한 청년이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왔다.
“누, 누구십니까? 왜 저희를 공, 공격하십니···까? 엘프? 엘프가 시킨 일입니까?”
“···.”
“어, 얼마를 받기로 하셨습니까? 저희가, 저희가 그 배를 드리겠습니다!”
이방인은 그림자 속에 멈춰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가벼운 튜닉 차림이었지만, 거의 온몸이 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게 부하들의 피라는 것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자신도 있었다.
걸 필요도 없었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거의 짐승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그의 귀엔 그렇게 들렸다는 뜻이다.
“무슨 짓을 꾸미고 있지?”
“어···어···.”
말 하면 죽는다! 가주와 엘프 둘 모두에게! 그러나 말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을까? 그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천천히 눈을 빛내고 있었다.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아멜리아 반 프란츠리트를 아나?”
“아, 아멜리아 아가씨···? 그, 그녀가 왜···.”
“그 흡혈귀보다 강한가?”
프란츠리트 혈족 안에서 아멜리아보다 강한 흡혈귀는 가주와 가주의 직계 자식들 뿐이었다. 프란츠리트의 사냥개가 괜히 사냥개라 불리겠는가.
그 쌍둥이 남매는 혈족의 배신자와 레드 헝거 같은 인물들을 처형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였다.
그가 대답하지 않자, 사내는 한 발자국 더 다가오더니 천천히 팔을 뒤로 당겼다.
“힘 조절을 해야겠군. 죽지 마라.”
“뭣, 넵?!”
-쒜애액!
“끄으으으읍!!!!!”
장검이 섬광처럼 날아들어, 사내의 복부에 틀어 박혔다. 사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아 헐떡였다. 대체 어떻게? 대체 왜? 혼란에 가득 찬 뇌가 비명을 질렀다.
-저벅, 저벅.
놈이 다가온다! 사내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넘어져 뒤로 물러섰다.
“흐으으읍!!! 오, 오지마!!! 저리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나, 흡혈귀?”
-턱.
사내의 단단한 다리가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 끔찍한 격통이 배와 가슴에서 치밀었다. 사내는 천천히 그의 복부에 박힌 칼자루를 움켜 쥐고 뽑아 올렸다.
“끄으으윽!!!”
“이 안엔 뭐가 있지?”
사내는 치밀하게 봉인된 통로 입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 살려주시는 겁니까, 마, 마, 말하면?”
"마음에 든다면.”
“요, 용입니다···.”
“···?”
앵?
한 순간, 사내의 몸이 멈칫했다. 용? 드래곤? 내가 아는 그 용? 사내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흡혈귀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든. 페르난데스는 지금 당황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용이라고?’
-용이라고???
용이 여기서 왜 나와···? 드물게도, 페이자쉬 마저 당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