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3화 (34/388)

33. 인퍼머르, 용이 잠든 도시 (3)

지하 공동의 최하층은 공사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페르난데스는 조심스럽게 나무 계단을 밟으며, 발 밑을 살피고 있었다.

‘열다섯 명.’

-전원이 다 마법사야. 저 중 하나는 제법 하는 놈이군.

‘저렇게 완벽한 유해는 처음 보네.’

최하층의 한 가운데엔 상반신이 드러난 용의 뼈가 놓여 있었다. 나머지 유해는 아마도 아직 바닥에 매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짧은 가시 범위의 탓도 있었겠지만, 용은 한 눈에 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로브를 뒤집어 쓴 마법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용의 뼈와 바닥에 마법진과 룬을 그려 넣고 있었다.

용의 두개골에 달린 어금니 하나가, 어지간한 어린 아이만큼 컸다. 짙은 마력이 공동을 가득 채워 안개처럼 흩어졌다.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로 농밀한 마력 밀도에, 페르난데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거의 완성 되었군. 부활 의식이라. 이천 년은 족히 흐른 유해를 되살릴 수 있나?’

-이론적으론 가능해.

‘그래. 이론적으론.’

죽은 자를 되살리는 마법만큼 다양한 종류를 지닌 마법이 있을까. 부활과 관련된 네크로맨시 학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범위’였다.

영성의 격, 혼백의 경험과 기억, 본질의 유무. 어느 범위까지 되살릴 것인가? 당연한 일이겠지만, 생전에 가까운 부활일수록 어려웠으며, 죽기 전 그대로를 되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따라서 저 자들의 마법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원본 그대로의 ‘드래곤’은 불가능하다. 드래곤의 저열한 마이너카피에 불과한 괴물이 탄생하겠지.

그럼에도, 드래곤의 작은 편린만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위협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제대로 된 놈들이다.

‘저런 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는데 왜 우리가 모르는 거지?’

페르난데스가 보기에도, 놈들의 마법은 대단히 정교한 축에 속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 그것도 실험 중인 네크로맨서는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 페르난데스는 단검을 움켜쥐었다.

-쒜에에엑!! 푸확!!

허리를 굽혀,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 넣던 마법사 하나가 그대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

그 곁에서 마력 흐름을 조절하던 마법사가 기겁하며 쓰러진 마법사를 살폈다. 마법사의 이마 한 가운데에 단검이 깊게 박혀 있었다.

“바인!!! 이, 이게 무슨?!”

“거기까지!”

페르난데스는 나무 계단에서 훌쩍 뛰어내려 바닥에 내려 앉았다. 당황한 마법사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이, 인간?! 프란츠리트 놈들!! 대체 뭘 하는···.”

“너무 그러지 마. 걔들도 열심히 저항 했어.”

마법사들은 황급히 페르난데스에게서 물러났다. 페르난데스의 튜닉은 흡혈귀의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넌 누구냐! 왜 우리를···억!”

-콰직.

페르난데스는 그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마법사에게 단검을 집어 던졌다. 마법사들은 움찔거리며 조용해졌다.

교단의 전투용 비도 두 자루를 모두 사용했다. 페르난데스는 이가 빠진 장검을 꽉 쥐곤 마법사들을 훑어 봤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지?”

“···.”

마법사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 그때, 용의 두개골 너머에서 한 마법사가 나타났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란이지? 넌 누구냐!”

“아, 너로군.”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이단 종파든, 흑마법사 학파든간에 우두머리라는 것들은 티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법이다. 억압된 사회에서 남 눈치 보며 살아 남은 녀석들 특징이었다.

“룬레이븐 학파, 맞아?”

“···누가 보냈나?”

페르난데스는 장검을 뻗어 하늘을 가리켰다. 마법사는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단심문관?! 어떻게 냄새를 맡았지? 아니, 엘프들의 땅에 이단 조사 파견이 나올 리가 없지. 만신전이 엘핀 서펜트 킹과 손을 잡았나? 그게 현명해 보였나?”

마법사는 주춤 뒤로 물러서며 용의 두개골에 손을 얹었다. 그는 위축된 표정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엘프는 결코 인간의 편이 아니야! 차라리 악마는 인간을 지배하고 싶어하지. 엘프들은? 놈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륙의 재정복이다! 인간을 기생충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보지 않는다고!”

“그래서 악마 숭배가 정당화 된다고 생각하나?”

“이래서 선신 만신전 것들이란! 눈 앞의 일 밖에 보질 못하지!”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블러핑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위협을 해야 할 때였다. 마법사들은 불의의 기습에 당황하고 겁에 질려 있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고, 단숨에 끝내야 했다. 지금 그에겐 이 마법사들을 한 번에 도륙할 무장이 부족했다. 반면 마법사들의 실험은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만신전의 신들도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이라 할 수 없지. 놈들은 그저 인간을 양떼처럼 사육하고, 인류의 신앙을 수확하고 싶어할 뿐이니까.”

“···?”

마법사는 당황했다. 이단심문관이 하기엔 가히 이단적인 말이 아닌가.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몸을 도사리며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악마들은? 그들은 인간의 영성과 혼백을 탐한다. 그건 복구될 수 없어. 악마의 지배? 영혼 없는 꼭두각시들로 살아남아 장난감으로 소비될 뿐이다.”

“···의식을 완성해라!!!”

-콰직.

페르난데스는 소리치는 마법사의 멱살을 잡고 장검의 폼멜로 턱을 후려쳤다. 마법사는 저항하지 못하고 혼절했다.

“아, 아직 지배 술식이 완성 되지 않았는데···.”

“놈이 우리 모두를 죽일 거야! 빨리 해! 빨리!!”

페르난데스는 기절한 마법사를 집어 던지며 재빨리 뒤로 돌았다. 그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외쳤다.

“지금부터 가장 먼저 움직이는 놈부터 죽이겠다.”

“!!!!”

페르난데스의 기세에 압도된 마법사들이 일제히 얼어 붙었다. 페르난데스가 가장 가까이 있는 마법사를 향해 몸을 돌리자, 그 사이에 한 마법사가 재빨리 내달렸다.

“움직이지.”

-콰직!

“말라고, 했을텐데.”

“끄으읍···.”

마법사의 배에 페르난데스의 장검이 날아가 꽂혔다. 마법사는 격렬한 통증에 헐떡이며 주저 앉았다. 피가 흘러 바닥을 적셨다. 페르난데스는 쓰러진 마법사의 몸에서 칼을 회수하려 했다.

-파지지직.

마법사는 절명하기 전에, 자신의 피로 바닥에 무언가를 그렸다. 시동어. 마법진의 회로를 가동시키는 키워드였다. 페르난데스는 입술을 깨물며 뒤를 돌아보았다.

“시, 시작됐어!!!!”

-우우우우우···..

-쿠르르르릉···.

공동이 크게 흔들리며, 대기에 자욱하게 흩어진 마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붉게 달아오르는 마력 회로의 한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페이자쉬! 언데드 부활에 지배 의식이 필요하다는 뜻은···.’

-용의 영혼까지 부활시키겠다는 뜻이겠지.

‘제기랄.’

마력 쐐기를 박아 넣기엔, 지금의 마력량으로 시도할 수 없는 대주술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적어도, 놈들의 술식이 불완전하다는 점. 전생과 달리 불완전한 술식으로 만들어진 용의 부활을 제어할 수 있으리란 가능성이 지금 상황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의도치 않은 도박이지만, 해보는 수 밖에. 페르난데스는 전신을 불태울 듯 파고드는 마력을 느끼며, 수인을 짚었다.

-네크로맨시···. 치가 떨리는 군.

‘필요한 일이야. 필요한 일.’

페이자쉬가 아니라, 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네크로맨시와 언데드를 생각한다면 피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페르난데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쨌건, 이것도 아들을 위한 것이라 치자고. 페르난데스는 수인을 완성시키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용의 두개골 안에서, 푸른 귀화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천 년을 거쳐 마침내. 드래곤이 부활하고 있었다.

*

키르하스는 어두운 골목 사이로 몸을 숨기며 달리고 있었다. 골목의 여기저기에서 횃불을 들고 뛰어 다니는 이교도들이 느껴졌다. 한둘이라면 쓰러트릴 수야 있겠지만···. 놈들의 규모가 생각 이상이었다.

‘대체 엘프 도시에 왜 이교도들이 이렇게 많이 숨어 든거지?’

-콰지직!

“HuHe···. Xiche!”

“앗!?”

키르하스가 숨어 있던 담장이 터져 나가며, 근육 거한이 나타나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놈의 몸에 그려진 복잡한 문양이 기이한 푸른 빛을 내뿜었다.

그의 등 뒤로 까마귀의 형상이 보였다.

“Xiche···. 잡았다. 이 계집!”

거한은 어눌한 말투로 더듬거리며 외쳤다. 그는 대륙 공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키르하스는 재빨리 몸을 뒤로 빼내며 칼을 뽑아 들었다.

-챙!

“큭! 무슨 힘이?!”

“나약한 쥐새끼!”

거한은 푸른 단검을 뽑아 키르하스의 칼을 쳐냈다. 병장기가 가지는 길이의 우위는 거한의 덩치에 밀려 동수를 이루고 있었다.

-챙! 챙!

“제법이군! 계집!”

키르하스는 연신 거한의 단검을 쳐내며 뒤로 물러섰다. 덩치에서 나오는 힘과 기세는 그 자체로도 폭력이었다. 그녀는 마치 디모니카 형제들과 대련하는 느낌을 받았다.

디모니카와의 대련. 힘과 감각으로 기술을 압도하는 괴물들과의 대련을 거친 그녀에게 있어서, 디모니카보다 떨어지는 거한의 둔중한 움직임은 오히려···.

‘익숙해!’

그녀는 자신보다 큰 적을 상대하는 데에 익숙했다! 그녀는 거한의 단검 궤적을 노려보며, 그 안으로 파고 들었다.

“뭣?!”

-후우웅!!

거한의 팔뚝이 그녀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키르하스는 재빨리 한 바퀴 굴러 거한의 등 뒤로 빠져나갔다. 키르하스의 칼이 달빛을 반사하며 번뜩였다.

-콰앙!

“윽?!”

칼날이 거한의 등을 파고들려는 찰나, 거한의 몸 주위를 맴돌던 까마귀 형상의 기운이 그녀를 거칠게 밀어냈다! 키르하스는 공중에서 재빨리 자세를 잡고 부드럽게 착지했다.

거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는 키르하스는 한 손으로 가리키며 손가락을 기이한 각도로 꺾었다.

“마법사!”

“Chreat! Xixe Charka!”

-화르륵!

거한의 손길을 따라 푸른 불꽃이 키르하스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키르하스는 뒤로 몸을 굴리며 불길의 범위에서 빠져나갔다. 키르하스가 있던 자리에서 불이 옮겨 붙으며, 담을 타고 골목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Tatch, Oraion!”

“??”

키르하스를 향해 불길이 점점 좁혀져 올 때, 골목 어귀에서 로브를 뒤집어 쓴 이교도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 소리쳤다. 거한은 고개를 꺾으며 이교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은빛 섬광이 허공을 찢어 발기고.

-스겅.

이교도의 머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놈의 얼굴에 아로새겨진 공포와 당황이 선명하게 보였다. 선혈이 길게 공중으로 치솟고, 다시 가라앉을 때 쯤에.

-투욱.

떨어진 이교도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한 박자 늦게 이교도의 몸이 허물어졌다.

“바실라 경. 밤 산책을 험한 곳에서 하는군?”

이교도의 등 뒤에서, 바람에 따라 은발이 흩어졌다.

-철컹.

레이아가 장검을 칼집에 납도하며, 걸어 나왔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거한을 바라보았다. 거한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놀란 듯 멈춰 있었다.

“마법을 거두어라, 인간.”

“Eld?! Eld ridare Bane!”

“북부 야만인 언어로군. 어떻게 북해를 건넜지?”

“엘프 투사!! 무능한 흡혈귀들!”

레이아는 거한을 향해 몸을 도사리며, 천천히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엘프 특유의 검술이다. 키르하스는 이단심문청의 장서고에서 봤던 교본을 떠올렸다.

선상에서 생활하는 엘프들 특유의 검술. 비좁은 선상에서 펼쳐지는 난전을 가정한 검술이다. 한 합으로 적의 신체 정중앙을 노리는 날카로운 일격!

“Eld Victi!! Wrela!”

레이아는 거한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잠시 발을 멈췄다. 거한은 그 모습을 보며 분노를 터트리곤 빠르게 골목 담장을 뛰어 올랐다.

“레, 레이아 공주! 놓쳤습니다!”

“경이 쫓아! 나, 나는 급한 일이 있어!”

“네?”

“아일데른 장군을 만나 봐야겠어!!”

레이아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골목을 벗어났다. 대장군 아일데른. 가이메른 왕의 최측근이자 왕실 수비대장! 그가 배신했다면 왕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어···.”

키르하스는 멀어지는 레이아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골목의 담을 타고 흐르던 불길은 어느새 잦아들고 있었다. 키르하스는 한숨을 내쉬며 품 안에 손을 넣었다.

향로가 만져졌다. 어쨌건 은공과 합류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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