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번외 작전 : 해질녘 산책
*
깊은 밤, 하늘은 하얗게 타오르고 있었다. 숲과, 한때 숲을 이루고 있었던 재, 먼지, 숯, 그리고 화염으로, 지금 이 깊은 산골 마을은 색맹이 그린 유화처럼 온갖 색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그 사이, 네 명의 남자가 불길을 해치고 걷고 있었다.
사내, 안젤로는 불에 휩싸여 떨어지는 나무 기둥을 방패로 막아내고, 뒤로 흘렸다. 그 사이 다른 사내가 그의 옆을 지나, 나무 밑을 칼로 쑤셨다. 그는 곧 반짝이는 돌을 집어 들었다.
“다비드의 표식입니다. 이 난장판은 그가 만들었겠군요.”
“다비드가 그랬다면, 그랬을 이유가 있을 거다. 베드로, 에르미노와 함께 동쪽으로. 키릴츠는 나와 함께 직진. 베드로, 목표 지점까지 거리는?”
“35m.”
“목표 지점을 양방향에서 진입한다. 진입 시점에서 적아 모두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임무를 포기한다. 랑데부 포인트-1 에서 재집결.”
“영광을.”
“베이타서스의 영광을.”
두 사내, 베드로와 에르미노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안젤로와 키릴츠는 칼을 빼 전진했다.
*
마을 입구는 불에 반쯤 허물어져 쓰러져가고 있었다. 마을을 둘러친 긴 담장은 군데군데 붕괴되고, 그 안으로 비치는 초가들 중 온전히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저 멀리 보이는 종탑 뿐이었다.
베이타서스의 열쇠검 문장이 새겨진 종탑은 한때 마을의 중심지였을 것이다.
안젤로와 키릴츠는 임무 지역에 진입한 후 처음으로 발을 멈춰 섰다. 그들은 반쯤 남은 마을 입구를 바라보았다. 마을 입구의 불타는 기둥엔 시체들이 묶여 있었다.
이마에 기이한 흉터를 새긴 그들은, 머리를 제외하곤 도저히 인간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뒤틀려 기둥을 감싸고 있었다.
“다비드가 살아···”
“살아 있어야 한다.”
키릴츠가 무심코 내뱉은 말을 가로막으며, 안젤로는 무기질적으로 말했다. ‘신병이란.’ 그러나 안젤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리더의 감정은 부하에겐 독과 같다. 그러나 그들은 오로지 악마와 이단, 그리고 마녀에게만 독을 먹이는 이들이다.
그들은 베이타서스의 독사이며, 단검이다. 안젤로는 장검을 휘둘러 기둥에 얽힌 이들을 떨어트렸다.
-와르르.
뼈나 시체라기보단 차라리 숯이 떨어지는 것에 가까운 소리였다.
안젤로는 자못 정성스럽게 떨어진 이들의 두개골을 하나하나 찔렀다. 그리고 그는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아, 안젤로. 아직 베드로 팀이 보이지 않습니다.”
“타겟 포지션은 종탑이다. 키릴츠. 빠지고 싶다면 먼저 빠져도 좋지만, 적어도 종탑 전까진 따라와. 누군가는 교단에 이 일을 알려야 하니까. 정보는 정확 할수록 좋다.”
키릴츠는 안젤로의 말이 함의하고 있는 짙은 죽음의 냄새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천천히 안젤로의 뒤를 따라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을이 불타는 소리는 을씨년스러웠고, 분명 착각이 아닌 것 같은 비명소리, 그리고 비명소리를 닮은 바람소리, 바람소리에 섞여 들리는 또 다른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어떨 때는 가까이서, 어떨 때는 멀리서. 남자의, 여자의, 아이의.
“삿된 모든 것들아. 주 베이타서스를 두려워하라. 사람의 아들아. ‘찾았어?’ 주를 찬미하여라. 또한 그 걸음에······”
키릴츠는 낮은 목소리로, 살짝 말 끝을 흐리며 찬미경을 읊었다. 안젤로는 굳이 키릴츠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았다. 어쨌건 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는 이 상황에 긍정적일 수 있다.
물론 저렇게 겁에 질린 채로 말한다면 의미가 있겠냐마는. 안젤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주위를 훑으며 종탑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이제 10m.
“사람의 아들아. 이제 너희는 ‘찾았어?’ 증명하여라. 너희가 일어서 기도할 때 ‘찾았어?’ 주님을 따르듯 정갈하여라. 주께서 너희를 ‘찾았어?’ 보심이 언제나 ‘찾았어?’···”
안젤로는 순간 머리를 짚고 비틀거렸다. 두통. 불꽃과 주술적인 비명소리, 환하고, 어두운 밤하늘과 숲. 모든 것들이 그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키릴츠의 기도가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똑바로 안젤로를 바라보고, 그를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기도문을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찾았어?”
“···뭐라고 했지?”
안젤로는 장검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며 키릴츠를 바라보았다. 키릴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젤로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종탑을 향해 손짓하며 여전히 한 손은 묵주를 쥐고, 다른 한 손은 칼을 꼭 쥔 채였다.
“안젤로, 이제 ‘찾았어?’ 까지 7m도 남지 않았 ‘찾았어?’. 그런데 아직 베드로는 ‘찾았어?’ 이제 돌아가야’찾았어?’”
“흠.”
안젤로는 머리를 짚은 손을 내리고 천천히, 천천히 방패를 쥐었다. 그는 키릴츠에게 두어 발자국 떨어지며 말했다.
“마장급 정신오염개체. 형제여, 임무를 포기하고 집결지로 복귀하라. 정화성사를 받고 이 일을 교단에 보고하도록. 나는 임무를 속행하겠다.”
“찾았어? 찾았어? 찾았어? 찾았···”
“그만. 3초 후에도 복귀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정신오염이 진행된 것으로 간주하고 구마를 시작하겠다. 3, 2.”
키릴츠는 안젤로의 말에 머뭇거리더니, 곧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 달려나갔다. 다행이다. 안젤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키릴츠는 오염되지 않았거나, 적어도 그 정도가 그 자신보단 적은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두어 번 젓고는 다시 종탑을 향해 몸을 돌렸다.
“찾았어?”
그의 코 앞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소리 없이 나타나, 종탑을 바라보고 서서, 계속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안젤로는 청각을 무시하기로 마음먹고, 그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경우를 가정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방패를 들어 그 사내의 등을 찔렀다.
“찾았어? 찾았어? 차아아아자아아써어어어?”
-우드득.
사내의 고개가 뒤로 꺾이고··· 비틀리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내며 완전히 뒤로 돌았다. 그의 몸은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마에 기이한 낙인이 찍힌 채로, 안젤로를 바라보는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
“찾았어어어어어?”
“뒤를 돌아 무릎을 꿇으라. 형제.”
다비드는 미동도 없이 그를 바라보고 비죽 웃었다. 안젤로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 칼을 그었다. 다비드의 목이 잠시 공중에 멈추었다가, 떨어져 굴렀다.
‘악마의 냄새가 옅다. 나는 준 정신오염이 진행된 것으로 간주한다.’
안젤로는 천천히 허물어지는 다비드의 몸을 방패로 밀고 그대로 전진해 종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종탑 안엔 두 사내가 한 아이를 포위하고 있었다. 종탑은 석조 건물인 탓에, 아직 내부에 화마가 들어 서진 못한 모양이었다.
안젤로는 부서진 의자들과 그 사이사이에 쓰러진 목 없는 시체, 그리고 조금씩 굴러다니는 다비드의 머리들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들과 시선이 맞을 때 마다 그들은 안젤로의 귓가에 속삭였다.
‘찾았어?’.
‘찾았어?’
“형제들. 보고를.”
“안젤로. 키릴츠는?”
베드로는 그에게 칼을 겨누며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 또한 정신오염이 제법 진척된 것 같았다. 그는 최대한 어느 한 구석에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교단으로 복귀했다.”
“왜 진입 시점에서 임무를 포기하지 않았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형제여. 임무가 끝난 뒤에 보고서를 작성하게. 그 아이는 누구지?”
“생존자라고 주장하는 악마빙의체.”
안젤로는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깡마른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흰 수의에 온몸을 감싸고 덜덜 떨면서 연신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안젤로는 그를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생존자. 경위를 설명하시오.”
“누, 누, 누구세요?”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소. 생존자. 중요한 것은 ‘네가’ 누구냐는 거지.”
“저, 저는 ‘찾았어?’에요! 사,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지금도 제 머릿속에 악마가, 악마가!”
“기도해 보시오.”
“네?”
“기도 하시오. 아무 신에게나. 어떤 말이든. 간절히.”
아이는 까딱거리던 고개를 멈추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베드로, 목을.”
베드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 에르미노의 칼이 베드로의 칼을 막았다.
-챙!
“다들 미치셨습니까? 무슨 소릴.. 형제님! 정신 차리십시오!”
“정신 차려야 할 것은 내가 아닐 텐데. 왜 악마를 감싸지?”
“악마는 안젤로가 아니라, 저 꼬마입니다!”
에르미노는 덜덜 떨면서 안젤로에게 손짓했다. 베드로는 잠시 멈추더니, 안젤로를 바라보았다. 베드로는 천천히 안젤로를 향해 말했다.
“안젤로. 기도를.”
“에르미노. 지금 저 아이가 나로 보인다는 건가?”
“기도를.”
“흠.”
마장급 정신오염개체. 까다롭기 그지 없는 상대이며, 특히 이렇게 테스크포스 팀을 짜고 움직일 때는 더 심각한 녀석이다.
안젤로는 조용히 묵주를 치켜들고 손에서 굴렸다. 그는 천천히 속에서 다섯을 셌다. 베드로와 에르미노는 식은땀을 흘리며 각자 아이와 안젤로를 겨누고 있었다. 악마의 냄새가 짙게 깔려 있었다. 안젤로는 베드로를 향해 물었다.
“형제여. 영광을.”
“베이타서스의 영광을.”
베드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안젤로는 고개를 끄덕이곤 칼을 휘둘러-
-콰드득.
베드로의 목을 쳤다. 아이도, 에르미노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와 정확도.
베드로는 경악한 눈빛으로 잠시 공중에 떠 있다가, 툭. 떨어져 굴렀다. 천천히 베드로의 몸이 쓰러지고 뜨거운 피가 쏟아졌다. 안젤로는 아이와 에르미노를 향해 말했다.
“사라져라. 이제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어떻게 알았지?”
굴러다니던 베드로의 목이 안젤로를 향해 속삭였다. 안젤로는 베드로의 미간에 장검을 꽂아 넣었다. 베드로는 침묵했다. 그러나 저 멀리, 제단 앞 베이타서스의 석상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안젤로는 석상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더는 듣지 않는다.”
“너는 네 동료 둘을 벤 악마 숭배자처럼 보이는데?”
“악마.”
“뭐지?”
안젤로는 석상 앞에 멈춰 서서 그를 비웃는 석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곧장 칼을 휘둘러 그의 뒤를 베어냈다.
-푸화악!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피륙이 베이는 소리가 들렸다. 안젤로는 뒤를 돌아 바닥에 꿈틀거리는 촉수를 짓밟았다. 반으로 동강난 인간 형태의 촉수 덩어리가 거칠게 꿈틀거렸다.
“어, 어, 어떻게 찾았지?”
“악마는 냄새를 감추지 못한다.”
“넌 누구, 누구냐!”
“디모니카 이단심문관. 안젤로.”
“킥. 네가 안젤로라고? 내가 만난 서른여덟 번째 안젤로겠군.”
“그 이상 입을 열지 말라. 악마.”
악마에게 세례명을 알려주는 것은, 마치 악마의 진명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 악마와 사제는 대척점에 있는 이들이었다. 서로의 이름은, 서로에겐 비밀이었고. 그들은 작전 중엔 항상 음성 기호를 사용했다.
안젤로(a), 베드로(b), 키릴츠(c), 다비드(d), 에르미노(e).
안젤로는 꿈틀거리는 촉수 한 가운데에 있는 주먹 만한 눈알을 칼로 쑤시며 생각했다. 촉수의 마지막 움직임이 멎을 때까지 기다린 후, 그는 천천히 몸을 세우고 다시 종탑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는 품 속에서 향로를 꺼내 들었다. 곧, 푸른 전령이 나타나 그의 손등 위에 앉았다. 안젤로는 천천히 보고서를 작성하고, 전령의 입에 물렸다.
전령이 밤하늘을 뚫고 사라졌다. 안젤로는 눈가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페이른 왕실은 이제 완전히 정화되었다. 이로써 동부 왕국의 호흡은 고비는 넘겼다. 잠시간의 평화라 할 지라도.
길고, 피로한 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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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보고서 : 해질녘 산책]
작전 지역 : 페이른, 탈리안 남작령 제 13 체크포인트.
작전 개요 : [사건명 : 페이른 왕실] 제 11회 조사 및 저지 임무. 배후 추적 및 처치.
작전 경과 :
1) 배후로 추정되는 악마의 위치 추정.
2) 추적 과정에서 선발 조사원 마르젤 가멜 실종
3) 분대 분할 후 조사 개시, 2번 분대 실종
4) 선발 조사원 마르젤 가멜 발견 및 이단 판정 후 사살
5) 타겟 포인트, 마장급 정신오염개체 실체 확보 및 처치
작전 테스크포스 팀 :
1) 디모니카, 제피스 시라다스트 – 복귀
2) 헤레티카, 엘리안 카일 – 실종
3) 헤레티카, 펠릭스 제리코 – 복귀
4) 엔마기카, 마르첼 가멜 – 사망
5) 헤레티카, 율리안 뮐러 – 실종
악마를, 이단을, 마녀를 불태우리라.
작전 책임자 : 제피스 시라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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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이단심문관이 교육을 마치고 실전에 들어갈 때 쯤이면, 이미 열 명 이상의 이단심문관들은 작전 중에 전사했다. 만신전의 봉문 이래 30년. 인류의 어둠은 점차 곰팡이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우리는 가장 밝고, 가장 거칠게 빛나는 횃불이 되기로 맹세했다. 이단심문관들은 언제나, 문명 사회의 그림자 속으로 깊게, 그리고 보다 더 깊게 파고 들어갔다.
우리들의 묘비명은 언제나 ‘용기와 희생’이 되리라. 타고 남은 잿가루는 한때 그것이 빛났음을 증명하기에.
제피스는 향로를 내리며 묵주를 쓰다듬었다.
[너는 항상 주의 품 아래에서 간구하라.]
그리 하리라. 형제들의 시체 위에 빛이 도래한다면, 그리하여 인류가 비로소 살아남아 곧게 설 수 있다면 그리 하리라.
그리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