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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48화 (49/388)

48. 기사왕과 연극

*

아벨레사스는 성직자들이 내어 준 음식을 보며 귀품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토끼들이더냐?”

“···?”

삶은 감자와 산나물, 퍽퍽한 호밀 빵이 담긴 접시를 내려보며 아벨레사스는 단단하게 굳은 빵의 표면을 손끝으로 톡 쳤다.

“나는 사슴 고기가 먹고 싶구나. 먹어 보았느냐?”

“···아니오?”

“참으로 이 빵처럼 팍팍한 삶을 산 사내아이로구나. 너는. 사슴 고기는 근육과 지방의 비율이 아주 아름답지. 단단한 부분은 씹기에 좋고, 부드러운 기름은 삼키기에 좋다. 소금과 후추가 그립구나.”

페르난데스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아벨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왜 그러느냐?”

“아니, 뭐···. 심사는 잘 통과하셨나 궁금해서.”

“당연히 잘 되었지 않겠느냐. 무려 성자께서 공인한 협력자가 이단 판정을 받을 일은 없느니라.”

아벨은 짓궂게 웃으며 빵을 살짝 뜯고는, 숟가락으로 삶은 감자를 으깨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베이타서스의 성자일 줄은 몰랐구나. 내 너에게 궁금한 것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어쩐 일이냐? 내가 걱정이 되어 찾아 왔느냐?”

이단 심사의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던 탓에, 페르난데스는 늦은 점심을 아벨에게 건네 주었다. 아벨은 입맛이 없는 지, 으깬 감자를 그릇에 문지르며 그림을 그렸다.

“물질 세계의 정세에 완전히 무지하다 하지 않으셨소?”

“당연히 그러하다만?”

“그럼 대체 어떻게 심사를 이렇게 무사히···?”

페르난데스가 가장 걱정한 부분이 그것이었다. 아벨에겐 현대 사회의 일반 상식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이단심문청의 심층 심사를 통과한 방법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문제가 생겼을 경우 성자의 권위로 그녀를 빼올 각오까지 한 상태가 아니었던가.

“나는 엘프 와일드프린스에게 검술을 사사 받았으며, 무예로써 너를 도왔느니라. 엘핀 서펜트킹의 명령이었지. 네 감시역을 맡았지만, 네게 감화되어 베이타서스에게 귀의한 인간 ‘처녀’이니라.”

아벨은 이상한 부분에 강조를 넣고, 페르난데스의 눈치를 살짝 봤다. 페르난데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살짝 시무룩해진 표정을 지었다.

“제법 구체적이오?”

“암. 내 취미 중 하나가 인간 사회의 연극을 관람하는 일이었느니라.”

“검술은 할 줄 아시오?”

“···? 이거 안 되겠구나. 따라 나오거라.”

아벨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식기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도발이었지만,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일어섰다. 어쨌건 그녀의 전력을 파악해 놓는 것은 중요했다. 대부분의 경우, 용의 모습으로 활동하지 못할 테니까.

*

“내가 이긴다면, 나에게 사슴 고기를 진상하거라. 아, 혹시 여기 사제들은 모두 저런 식사를 하더냐?”

“수도원장까지 모두 다.”

“정말 변함 없이, 쓸데 없이 검소한 것들이구나. 아이는 잘 먹어야 잘 자라거늘.”

신의 가호로 몸이 자란다고 믿는 사제들 사이에서,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상식적인 말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이 이천 년 전 용이 오히려 더 상식적이란 생각을 하며 목검을 들어 올렸다.

디모니카의 [야외 찬송의 전당]은 운동하는 디모니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무기를 빼 든 아벨과 페르난데스를 흥미롭게 지켜보며 덤벨을 들거나, 바벨을 등에 얹고 있었다.

“나는 우리 형제의 승리에 150kg 3세트를 걸지!”

“오, 형제여. 저 여인은 와일드프린스에게 직접 검술을 익혔다고 하네! 나는 저 여인의 승리에 65kg을 10세트로 걸겠네!”

디모니카들은 언제나처럼 미친 소리를 하며 웃어댔다. 페르난데스가 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훈련용 목검을 뽑아 들자, 아벨은 부드럽게 웃었다.

“어디, 자세를 잡아 보거라. 내가 직접 봐주겠다.”

그녀의 도발에 페르난데스가 눈을 흘기며 칼자루를 쥐었다. 아벨을 아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어깨에 힘이 과하구나. 그건 너희 이단심문관들의 특징이다. 네가 들고 있는 것은 한손검이니라. 아귀에 힘을 좀 더 빼고, 어깨에 긴장을 좀 더 풀거라.”

“···검술에 상당히 해박하신 것 같소?”

“아무렴? 어디 다인, 그 아이가 저 홀로 검을 배웠다고 여겼느냐?”

기사왕 데인은 어린 시절, 호수의 여신에게 검술과 기사도를 익혔다는 전설이 있었다. 페르난데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후웅.

그녀는 목검을 가볍게 휘둘러 칼 끝을 페르난데스에게 향했다. 아벨에게선 어떤 공격의 징후도, 의사도 보이지 않았다.

페르난데스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자세를 잡았다. 선공필승. 페르난데스의 기본 전술은 항상 선제 공격이었다. 여의치 않아 반격해야 할 경우를 제외한다면, 상대가 방심할 때, 대응할 수 없을 때, 기습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터엉!!

“큭!”

페르난데스의 칼이 허공에서 튕겨나갔다. 목검 특유의 탄성이 손목에 울렸다. 엄청난 힘이었다! 디모니카들이 오오, 하고 감탄하는 것이 들렸다.

“이건 힘으로 대응할 경우, 네 공세를 물리는 방법이다.”

아벨은 숫제 가르치는 말투로 말했다. 그녀는 부드럽게 속삭이듯 말하며, 칼을 휙 돌려 자세를 바꾸었다. 분명 같은 목검일 텐데, 그녀의 검이 잔잔한 호수에 이르는 파문처럼 일렁거렸다.

“다시 와보거라.”

“흡!”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달려들었다. 같은 방식의 검격! 그러나, 이건 그 나름의 허초였다. 상하 종베기로 시작해 상대의 검격 방향의 반대로 몸을 틀고—

-후웅!!!

아벨의 검이 가로로 큰 반원을 그으며 페르난데스의 검을 향해 나아갔다. 페르난데스는 그대로 휘두르는 자세 그대로 몸을 멈춘 채로, 허리를 비틀며 돌연 횡베기를 시도했다.

디모니카의 동체 시력, 그리고 탄력적인 코어 근력이 만들어낸 변칙적인 반격!

그러나 아벨의 검이 물결치듯 일렁이더니, 페르난데스의 검을 휘감아 위로 튕겼다. 그녀의 섬세한 손가락이 가볍게 뻗어 나와, 방비가 풀린 페르난데스의 가슴 어림에 닿았다.

-터엉!!

“커흑!!”

페르난데스의 몸이 튕겨 나가며 바닥을 거칠게 굴렀다. 그는 재빨리 몸을 튕겨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갑작스런 공격에 호흡이 끊기며 폐가 거칠게 수축했다.

“쿨럭, 큭. 대체 어떻게?”

“적어도 네 나이대에선 적수가 없을 법 하구나. 검술의 기본은 잡혀 있어. 아무래도 이단심문관 아이들의 그 ‘축복’ 덕분이겠구나.”

아벨은 천천히 페르난데스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며 말했다.

“무예는 육신의 불리함을 딛고 이기어 내기 위해 발달했다. 사람의 근력이 어디 곰보다 강하겠느냐? 트롤이나 오우거는? 거인은? 하다못해, 너보다 몸집이 더 큰 사람도 어렵다. 시력, 반사신경, 근력, 지구력에 이르기까지. 인간보다 강한 존재는 약한 존재보다 많다.”

아벨의 말에 디모니카 형제들이 움찔거렸다. 곰, 트롤, 오우거까진 정리 가능한데···? 디모니카 형제 하나가 거대한 덤벨을 살짝 들며 생각에 잠겼다.

“기술의 발달은 한계에 대한 필요에 의한 것. 페르난데스. 네 육신은 인간의 한계를 어느정도 벗어났고, 앞으로도 더욱 벗어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명심 하거라.”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목검을 다시 페르난데스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네 가능성에 매몰되지 말거라. 항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거라. 언제나 멈춤 없이, 그게 너희 인간들 아니더냐.”

인간을 사랑하는 용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부드럽게 손을 뻗어, 페르난데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신장은 페르난데스보다 한 뼘 가량 작아, 손을 높게 뻗어야 했다.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반짝이는 파란 눈을 내려보았다. 어쩐지, 16살 애송이가 된 느낌이었다. 입술이 말랐다. 페르난데스는 애써 말을 꺼냈다.

“식사, 마저 하러 가시겠소?”

아벨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짙게 빛났다. 그녀는 페르난데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용은 육식 동물이다.”

*

결국 아벨은 말린 육포로 만족하기로 했다. 임무에 나서는 이단심문관들에게 지급되는 육포는 끔찍하게 딱딱하고, 소금이 말라붙어 짰다. 그녀는 육포를 불에 굽지도 않은 채 우물거렸다.

“그래서, 다인의 나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구나?”

“그렇소. 그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오.”

애당초 아벨의 조력을 전재하고 수립한 계획이었다. 시조왕의 스승이자 대모였던 아벨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받으시오.”

“음··· 이 시대 글자는 내가 아는 것과 다소··· 다르다. 어휘가 다소 경박하다.”

아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페르난데스에게 보고서를 받아 읽었다.

*

[조사 보고서 : 카르두스 남작령 폐쇄 은광]

조사 지역 : 데인 왕국 카르두스 남작령 동서부, 폐쇄 은광.

조사 개요 : 지역 인근에서 발생한 연쇄 실종사건과, 실종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소문에 대한 조사.

조사 경과 :

1) 폐쇄 은광 근방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암녹색 환영과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 등에 대한 목격 제보.

2) 목격 제보가 있었던 장소 총 5개 체크포인트를 조사. 유의미한 발견은 없었음.

3) 실종 지역을 조사함. 유의미한 발견은 없었음.

4) 폐쇄 은광 근처에서 산적과 조우함. 짧은 교전 이후 퇴각.

5) 카르두스 남작에게 토벌 요청 (붙임 1)

6) 산적 토벌 정황 확인 후 아지트 수색. 유의미한 발견 없었음.

7) 해당 지역에서 이단 정황은 발견되지 않음.

조사 팀 :

1) 헤레티카, 마르스 안티도스 – 복귀

2) 토치맨, 그레인 하우저 – 복귀

악마, 이단, 마녀를 불태우리라.

선발 조사원 : 헤레티카 마르스 안티도스.

*

아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육포를 한 입 더 물었다.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냐?”

“그대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심사 판정을 받지 않았소?”

“이런, 한 방 맞았구나.”

아벨이 씩 웃자 페르난데스는 따라 웃으며 차를 한 잔 마셨다. 그는 보고서에 첨부된 지도를 펼쳤다. 지도엔 조사 위치와 체크포인트, 실종 지역과 산적 조우 지역 등이 적혀 있었다.

“이 지방이 어딘지 기억 하시겠소?”

“음. 나는 지도를 볼 줄 모르는데···. 음. 아무래도 인간 지도는 다 똑같이 생겨서 말이다.”

“이 지방의 옛 이름은 ‘검은 계곡’이었소.”

“···아.”

아벨은 그제야 눈을 크게 뜨며 지도를 훑어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사 지역을 짚었다.

“그래. 그래. 여기가 원래 강이었다고 생각하고, 이 위로 산이 있다고 보고···. 여기 마을이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구나?”

아벨은 추억에 젖은 목소리로 흥얼거렸다.

“그래···. 검은 계곡이라. 참 기분 나쁜 곳이었지. 그럼 너는 이게 그 놈들의 짓이라고 생각했느냐?”

“어찌 그러겠소? 이천 년 가까이 지났는데. 하지만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소.”

기사왕 데인의 편력 여행 시절, 그가 참살했던 수 많은 괴물 중 하나에 대한 전설이 이 검은 계곡에 잠들어 있다. 페르난데스의 머릿속에 기사왕 데인의 일대기가 펼쳐지는 듯 했다.

언데드, 늪지 괴물, 언덕 거인, 매장 교단까지. 왕의 영웅담은 데인 왕국의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였으며, 데인 왕실의 자랑이었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인 탓에, 지금까지도 이 근방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런 소문이 난다면 어떨까. 용의 가호를 받고, 신의 축복을 받은 소년이 언데드와 늪지 괴물, 언덕의 거인을 참살하고 백성들을 구했다는 소문이.

데인 왕의 재림.

그게 이번 여정의 첫 번째 목적이었다.

-정말 뻔뻔하구나. 페르난데스. 영웅을 연기하다니.

페이자쉬는 가증스럽다는 듯이, 그러나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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