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50화 (51/388)

50. 공연 제 1막, 악령이 거니는 폐광 (1)

*

소년은 덜덜 떠는 손을 애써 억누르며, 바위 뒤에 숨어 있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져 눈이 감겼다. 한 번, 눈을 깜빡여 시야가 암전할 때 마다 소년은 기겁하며 애써 눈꺼풀을 치켜 떴다.

‘이런 데에 오는 게 아니었어!!’

목이 타고 혀가 갈라졌다.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깨물어, 입 안에선 피 맛이 감돌았다. 소년은 바위 뒤에 숨어 몸을 옹송그렸다.

‘엄마, 아빠. 살려줘. 미안해. 살려줘···.’

-후우우웅···.

싸늘한 바람이 소년의 뒷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초봄의 따사로운 기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 깊은 계곡에선 어떤 온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소년의 마을엔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온 전설이 있었다. [그 숲에는 신이 없다.] 만신전의 그 누구도 가호하지 않는 땅. 대낮에도 어둠이 짙게 깔린 숲. 바람결을 타고 비명과 신음이 맴도는 마녀의 숲.

인적이 드물다는 것은 곧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야생이 널려 있다는 뜻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숲 속엔 생명이 넘쳐났다. 아니, 넘쳐나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 소년의 눈엔 그야말로, 보물이 지천에 흩어져 있는 곳과 같았다.

뗄감도, 열매도, 심지어는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작은 동물들까지. 소년의 마을은 가난했고, 가난한 산촌은 으레 이 계절엔 나무 껍질로 죽을 쑤어 먹기 일쑤였다.

‘엄마, 아빠···.’

그러니, 소년이 평소보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이 깊은 숲 안으로 들어선 것은, 비단 살 오른 토끼의 뒤를 쫓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굶주린 가족과 죽어가는 어린 동생의 끼니 탓이었다.

-후우우웅···.

-킥킥킥···.

-어디에···있니이이···?

바람 속에 섞인 끔찍한 신음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킥킥킥.

-따듯해, 따듯해, 따듯해.

처음엔 어린 아이들을 겁주려는 노인들의 우스개소리인 줄 알았다. 숲이 어두워지고, 바람 소리에 이상한 말소리가 섞이기 시작했을 때쯤엔, 낯선 환경에 대한 공포라고 생각했다.

-추워, 추워, 추워, 추워, 추워어···.

숲의 그림자 안에서 녹푸른 섬광이 번쩍일 때, 오싹한 기분과 함께 오히려 미지에 대한 호기심마저 불타올랐다. 전설 속의 금기를 직접 밟고, 그 안에 감추어진 비밀을 알아낸다는 건, 어쩐지 영웅담의 도입부와 같지 않은가.

소년은 자신이 영웅은 아니었다는 것을, 나무 뒤에서 나타난 거대한 형체를 마주하며 깨달았다.

-기긱, 그긱, 기에엑?

“···!!!!!”

거대한 형체의 뒤틀린 얼굴이 소년을 내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은, 일견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소년은 순간 말을 잃고, 그 괴물을 바라보았다. 괴물은 시퍼렇게 죽은 피부를 비틀며 얇은 입술을 살짝 벌렸다.

-기극긱, 킥.

듬성하지만, 송곳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괴물의 얼굴엔 눈이 없었다. 눈이 있을 자리엔 시커먼 구멍이 뚫려 있었다. 괴물은 돌연, 눈구멍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얼굴을 바싹 들이 밀었다.

-킁, 킁킁, 긱?

“···히익···.”

괴물의 얼굴이 소년의 코 앞에 멈춰 섰다. 거의 소년의 상체만한 그 거대한 얼굴이 공중에 멈춘 채 연신 고개를 비틀었다. 소년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바삭.

“!!!!!”

겨울 동안 바싹 말라 있던 나뭇가지가 소년의 발치에 밟혀 부스러졌다. 괴물의 고개가 멈추고, 놈이 미소 지었다. 벌어진 입 안에서, 말라붙은 목구멍이 보였다. 차가운 한기가 소년에게 쏟아졌다.

“히이이이익!!!”

-기으익. 긱. 킥. 키키킥.

-타다닷.

소년은 정신없이 숲의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달려 나갔다. 얼마나 뛰었을까. 긴장에 단단하게 굳은 소년의 두 다리가 멈춰 섰다.

-후우우웅.

바람 소리에, 웃음소리와 비명소리가 섞여 들렸다. 어두운 숲은 녹색 섬광을 내뿜는 ‘무언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놈들이 이 숲을 배회하고 있었다. 바싹 마른 유령들이 겨울을 몰고 다니고 있었다. 숲의 공기는 살을 에는 듯이 차가웠다.

“위대한 태양이시어 저를 굽어 살피시고, 삿된 것들의 차가운 손아귀에서 제 영혼이 방랑하지 않게 구원하시여···.’

순회 목사가 가르쳐준 기도문을 연신 속삭이며, 소년은 바위 뒤에 몸을 바싹 붙이고 덜덜 떨었다. 기도 덕분인지, 어쩐지 바람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소년은 그가 알고 있는 기도문을 연신 읊으며,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위대한 태양이시어 저를 굽어 살피시고, 삿된 것들의 차가운 손아귀에서···.”

-세귀소눈가챠희르들것된삿···.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의 머리 위에서.

-서에귀아손운가차의들것된삿.

무슨 소리지? 소년은 기도를 멈추지 않으며 애써 굳은 머리를 움직였다. 무슨 소리지?

-고싯피사러굽를즈어어어···.

-투둑.

소년의 손등 위로 붉은 액체가 툭, 하고 떨어졌다. 소년은 흠칫 떨었다. 도저히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제야 소년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었다. 놈이, 그가 지금까지 하고 있던 기도를, 거꾸로 읊고 있었다.

-킥킥킥. 킥. 어시이양태에에에. 한대위이이이. 킥킥.

소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숨어 있던 바위 위에, 녹색 빛을 내뿜는 반투명한 괴물이 비틀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괴물은 붉은 피를 연신 소년의 얼굴 위로 떨어트리며 미친듯이 웃었다.

“아···.”

괴물의 손이 천천히 뻗어나와, 소년의 눈물 젖은 뺨을 잡았다.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섬뜩함에 소년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다리가 풀려, 이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죽음. 그의 시야엔 오로지 죽음 만이 보였다.

-따듯해따듯해따듯해. 산, 살아, 산, 살아있어.

괴물은 더듬거리며 천천히 소년의 볼을 움켜쥐었다. 엄청난 고통에 소년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소년의 입 안으로, 괴물의 비틀린 손가락이 기어 들어갔다.

“컥, 커흑. 끄어걱. 그, 그마안···.”

-따듯해따듯해.

소년의 눈이 감겼다. 이게 죽음일까? 이렇게 죽어야 할까? 죽으면, 편해질까? 엄마, 아빠, 동생아. 살려줘. 미안해. 소년의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갔다. 점점 숨이 막혀왔다. 차가운 것이 그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려 할 때—

그 때. 소년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어둠 속을 사르는 빛처럼,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야. 일어나거라.”

자애롭고, 따스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의 목을 파고들던 놈의 손이 멈췄다.

“두 발로 딛고, 스스로 걷거라. 할 수 있단다.”

소년이 그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뜨고, 눈물 젖은 흐린 시야로 악령의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에서도 느껴지는 따듯한 존재감이 소년의 눈을 점점 더 맑게 만들고 있었다.

한 여인이, 이 두렵고 어두운 숲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여인은 소년을 향해 미소 지으며, 한 발자국씩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악령은 소년의 입에서 손을 빼고, 재빨리 바위 위로 올라섰다. 그 덕에, 소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져 헐떡였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찾은 것 같구나.”

여인이 작게 웃자, 저 멀리 숲의 어딘가에서 낭랑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은공! 찾았어요! 그 꼬마애 여기 있었어요!!”

“내가 먼저 찾았느니라.”

여인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 때쯤, 숲의 다른 방향에서 수인족 여인이 달려 나왔다. 그녀는 장검을 뽑아 들어 주위를 맴도는 악령들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청록색 눈동자가 맑게 빛나고 있었다.

-저벅.

피 흐르는 장검을 두 손에 쥔 청년이, 두 여인의 사이에서 나타났다. 귀족적인 외모와 치렁한 검은 머리칼, 그리고 그 사이로 음울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청년은 장검을 뻗어 올려, 바위 위에 있는 악령을 가리켰다.

“날 보고 있나?”

-그기긱?

청년은 품 속에서 물통을 꺼내, 장검의 검신에 천천히 물을 흘렸다. 맑은 액체가 검신을 타고 흘러내리며 칼에 엉겨 붙은 핏물을 닦아냈다. 검은 핏물이 깨끗한 물에 씻겨 나가며, 타들어갔다. 그의 검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났다.

-저벅.

청년은 천천히 악령에게 다가갔다. 악령은 청년의 기세에 위압되어 뒤로 조금 물러섰다가, 곧 녹푸른 빛을 명멸하며 큰 소리를 질렀다.

-샤아아악!!!

“끄아아악!”

악령의 바로 아래에 있던 소년이 귀를 막으며 비명 질렀다. 영혼을 찢어 발기는 듯한 고통에 소년은 헐떡였다. 청년은 안색을 바꾸지도 않은 채로, 다시 한 발자국 걸어 왔다.

“내 말을 듣고 있겠지? 네크로맨서. 만날 날이 기대 되는군. 궁금한 게 아주 많아.”

-샤아아아악!!

악령이 괴성을 지르며 청년에게 날아 들었다. 소년은 고통과 혼란에 눈물을 흘리며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잔혹한 비현실 속에서, 소년의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악령의 몸이 새파랗게 빛났다. 청년은 악령에게 가려져 소년에게 보이지 않았다. 곧, 시릴 듯 날카로운 곡선이 허공을 그었다. 마치 종이가 찢어져 흩날리는 것처럼, 악령의 몸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스르릉, 철컹.

흩어지는 악령의 몸 사이로, 청년이 칼을 납도하는 것이 보였다. 악령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더니,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소년은 그제야 숨을 들이키며 주저 앉았다.

어쩐지, 이 어두운 숲이 한결 밝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다신 이 숲에 들어오지 않을 거야. 소년은 공포 속에서도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다신 오지 말아야지.

청년이 다가와 소년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름이 뭐니?”

“에, 에반이에요. 기사님.”

영주님을 제외한다면, 기사님이 소년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정중한 호칭이었다. 청년은 피식 웃었다.

“이 숲에 혼자 들어오다니. 아주 용감해. 하지만 혼자 돌아가긴 힘들 것 같구나.”

청년은 조심스럽게 소년의 몸을 들어 올렸다. 호리호리한 몸에선 믿을 수 없는 힘이었다. 청년은 소년의 몸을 한 손으로 들어 어깨에 앉혔다.

*

청년, 페르난데스는 소년의 몸이 예상보다 가벼워 다행이라 여기며 걸었다. 여기서 삐끗할 순 없었다. 애써 쌓아 올린 분위기와 설정이 무너지고 말 터였다. 페르난데스는 마치 소년이 놀라지 않게 걷는다는 듯이 천천히 걸으며 균형을 잡았다.

-정말, 가식적이야. 눈 뜨고 보기 어렵군.

‘지금 이 꼬마애가 날 뭐라 생각할 것 같아?’

-···.

‘맞춰봐. 영웅, 구원자, 기사님. 셋 중에서. 복수정답이야.’

페르난데스는 속으로 키득거렸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민심과 소문이었고, 그는 가장 고결한 구원자이자 영웅, 그리고 완벽한 기사도의 기사여야만 했다. 백성을 아끼고, 용맹하며 신념에 순수한. 그래, 마치 데인 왕의 로망스처럼.

그 와중에 기사왕 데인의 전설과 관련 있는 곳에, 대충 기사왕의 시절이 떠오를 만한 외형을 가진 적들을 도살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그보다 어려운 것은 이 모든 일들을 우연을 가장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페르난데스에게 있어 다행인 점은, ‘우연’은 지금 이 순간 그의 편이었다는 점이었다.

[검은 숲의 악령]

환각과 공포를 이용해 근처 산촌을 착취하는 녀석이었다. 분명 10여년 전 이단심문청에 접수된 보고서에선 ‘특이사항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어째서인지 놈이 때마침 활동을 시작했고, 형편 좋게도 산촌의 불쌍한 어린 아이가 희생양이 될 뻔 했다.

기사왕 데인이 처음 무찔렀던 적은 매장 교단의 언데드였다. 그 순간부터 그의 임종까지, 매장 교단과 그의 기나긴 악연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첫 단추는 언데드여야만 했다. 위대한 기사왕의 대서사시에 대한 헌사, 기사왕의 재림이라는 명성을 위해서라면. 페르난데스는 숲의 그림자 아래에서 미소 지었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아, 저기 사제가 기다리고 있구나.”

숲의 끝자락에 모여 서서, 그를 기다리는 마을 주민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 샤일드의 사제복을 입은 사내가 그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소년을 업은 채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나이트 알베르트!”

젊은 사제는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와 성호를 그었다. 그의 등에 업혀 있는 소년을 살피며,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인상깊습니다! 정말로! 이 저주 받은 숲에서 소년을 구해 내다니!”

“신께서 가호하셨습니다.”

페르난데스는 신실한 미소를 지으며 성호를 그었다. 그 모습에 사제는 이 청년을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리며 샤일드에게 기도했다. 이 신실한 기사를 만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는 오로지 정의와 기사도, 그리고 굳은 신념으로 악령들을 퇴치하고 괴물을 참살했다.

그들의 만남은 폐광촌에서 상단이 실종되고, 한 생존자가 그의 교구에 달려와 구마를 요청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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