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53화 (54/388)

53. 공연 제 1막, 악령이 거니는 폐광 (4)

*

정정하자. 디모니카 같은 놈들이라고 하는 것은 멀쩡한 특무대 대원에겐 과도한 모욕이 될 수도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디모니카의 몸이 없는데, 성격만 디모니카 같다면 정말 끔찍한 모욕이지.’

-네가 네 ‘형제’들을 어떻게 여기는 지 알겠군.

페이자쉬가 비꼬는 소리를 무시하며, 페르난데스는 앙헬라를 바라보았다. 차갑고 무기질적인, 그야말로 인형 같은 외모였다. 잠입과 암습에 어울리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서 앙헬라. 제국 특무대가 여기엔 어쩐 일이지?”

데인 왕국은 제국의 우방국 중 하나였고, 제국이 벌이는 전쟁에 지속적으로 물자와 군사력을 지원하고 있었다. 하물며 이 마을은 왕국 법령에 벗어난 불법 이민촌이 아닌가.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었다.

앙헬라는 목소리를 아주 낮추고, 마치 아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혹시, 네크로폴리스라는 단체에 대해 아십니까?”

“···어?”

네크로폴리스 언더카타콤···? 활동 시기가 전생의 전성기 시점이었을텐데? 게다가 이 시대엔 페르타스가 없었다. 페르난데스는 혼란에 빠졌다.

페르타스가 언더카타콤의 봉인을 풀기 전에, 언더카타콤의 존재에 대해 제국이 알고 있었다고?

-백 년 전쟁이 그럼 제국의 의도였던 건가?

‘너무 비화하는 것 아니야? 백 년 전쟁으로 제국이 얻은 건 폐허 뿐이었어.’

-아직은 아니지.

페르난데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앙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소하실 겁니다. 본 특무대에서도 신뢰성 낮은 미신이라 여기고는 있습니다만···. 반 년 전에, 놈들의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이단 단체인가?”

“비슷하지만 보다 더 사악합니다.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도, 놈들의 근거지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본 특무대가 발견한 놈들의 유적은 적어도 천오백 년 전의 것이었습니다.”

앙헬라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품 속에서 조그마한 종이를 꺼내 들었다. 무언가 기괴한 것이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천오백 년 전, 죽음의 신을 자칭하는 흑마법사가 있었습니다.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만. ‘악몽의 뭄토’라는 존재,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적어도 너 보다는 잘 알지. 페르난데스는 살짝 침을 삼켰다. 제국에서 이 정보를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을 것인가.

고대, 네크로맨시의 정점에 섰던 한 흑마법사가 있었다. 왕족 출신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부랑자 하층민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놈은 자신의 도시를 지옥의 나락도 공포에 질릴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죽은 자들이 일어서고, 불멸의 해골과 시체들이 거니는 땅으로. 불사자들의 도시. 그리하여 모두가 두려워 부르길 ‘네크로폴리스’라. 사자(死者)의 도시라.

지금의 서부는 당시 젖과 꿀이 흐르는 번성한 낙원이었다고 한다. 전설이 으레 그렇듯 과장이겠지만. 그 네크로맨서가 만들어낸 죽음의 군단이 할퀸 전화의 흉터는 황무지가 되었다. 누구도 살 수 없는 황야로.

수 많은 정화 시도 끝에, 지금 황무지엔 더 이상 죽은 자들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저 끝 없이 펼쳐진 황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지하엔 당대 영웅들이 목숨을 희생하여 봉인한 네크로폴리스가 잠들어 있다.

놈들을 경고하던 문헌은 모두 역사 속에 사라졌고, 놈이 일으킨 참상은 황무지의 흙더미 아래로 파묻혔다. 살아서 악마가 된 자. 인간의 정점을 이루었던 대마법사. 악몽의 뭄토. 그가 바로 그 자리에 잠들어 있다.

‘네크로폴리스의 봉인이 풀렸다면 우리가 모를 리가 없어.’

-유적이 발굴되었다고 했지.

앙헬라는 고민에 빠진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역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 평범한 기사는 아닌가 봅니다.”

“꼭 그렇게 웃긴 말투를 써야겠나?”

“직업병입니다. 이해 하십시오.”

앙헬라는 군인처럼 말하고는 품 속에 그림을 갈무리했다.

“어쨌건, 이야기가 편하겠군요. 악몽의 뭄토. 그 사악한 존재가 이끄는 고대 이단 단체입니다. 본 특무대가 발견한 유적지는 서부 황야, 제국의 영토로 귀속된 황무지의 지하였습니다.”

앙헬라는 고개를 숙여 페르난데스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녀의 녹색 눈이 에메랄드처럼 빛났다.

“30년 정도 전에, 이 유적에서 빠져나간 존재가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특무대는 그 즉시 조를 편성해 놈들의 흔적을 쫓았습니다.”

“그럼 자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직 상부 보고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놈들의 흔적은 명백히 이 왕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원들은 다른 지역으로 파견되었지만. 본관은 이 지역을 의심합니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눈은 의심이 아닌 확신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경의 정체를 파악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경에겐 경의 사정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본관은 조력을 요청합니다.”

“날 어떻게 믿지?”

“믿지 않습니다.”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본관은 그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은 이 부락의 놈들에게 있는 그 ‘표식’을 알아보았습니다.”

“내가 쫓는 녀석들이거든.”

“역시!”

페르난데스는 그 순간, 연극의 방향성을 조금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젊고 정의로운 청년 기사에서, 정의로운 비밀 조직의 젊은 특무대원으로. 어쨌건 이쪽은 제법 사실에 근접해 있었으니까.

-가증스러움이 두 배가 되었군. 놀라워.

‘아직 놀라지 마.’

속으로 피식 웃으며, 페르난데스는 경직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노력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는지, 앙헬라는 감명 받은 표정이 되었다. 마치 동종업계 종사자를 바라보는 듯한 친근함이 보였다.

“놈들의 정체도 알고 있습니까?”

“디케이더즈. 전세계적인 대규모 악마 숭배 단체지. 여기는 이쪽 분파의 본거지는 아닌 것 같은데, 자네의 조력이 필요할지 모르겠군.”

“본관이 조사한 바로는, 필요할 겁니다.”

앙헬라는 무표정하게, 그러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디케이더즈는 연막입니다! 경의 추적을 허사로 만들어 본관은 개인적으로 유감입니다. 디케이더즈 간부에게 본관이 추적하는 ‘존재’가 씌여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재밌게 되어가는데?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앙헬라의 말을 생각해보았다. 지금 이 특무대원이 말한 정보를 취합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 이 마을은 디케이더즈 계열 악마 종파를 숭배하고 있다.

2. 이 근방을 장악한 디케이더즈 종파의 간부는 네크로폴리스의 악령에 씌여 있다.

3. 즉, 이 마을은 평범한 폐광촌인척 가장한 디케이더즈 산하 부락 ‘인척 가장한’ 네크로폴리스 영향권이다!

대단히 흥미로운 상황이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페르난데스는 앙헬라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증거가 없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디케이더즈의 증거라면 마을 사람들이 끼고 다니는 나비 매듭 모양 목걸이로 충분했다. 그 외의 증거는 차차 수집하면 될 일이고.

하지만 네크로폴리스의 증거라는 것은 ‘추적해왔다’라는 앙헬라의 진술 뿐이었다. 게다가 디케이더즈와 네크로폴리스는 서로 공통점이 너무 적었다!

“입증할 수 있겠나?”

“아, 본관은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앙헬라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관이 이 마을에 잠입한 지 이제 사흘이 다 되어 갑니다. 본관이 준비한 것을 보십시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하얀 팔뚝을 보여 주었다. 그녀의 깨끗한 피부 위로, 검은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익숙한 마력 회로가 그녀의 피부 위에 박혀 있었다.

레바인테르 제국의 마법 학파 중에서, 파괴와 폭발 따위에 치중한 광신도들의 마력 구성을 띄고 있었다.

‘필라인네일 대학?’

제국 파괴술이라 불리는 필라인네일 대학의 문양이었다! 제국 군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마법사들을 말 그대로 ‘찍어내는’ 마법사 양성 공장! 페르난데스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다.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폭탄마들 소굴 출신의 특무대원이라···. 위험한 냄새가 났다. 페르난데스는 전생에 그 폭탄마들이 저지른 파괴술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문양을 박아 넣고 있는 마법사가, 사흘을 밤새워 준비했다는 마법이 온건할 리가 없었다!

“자, 잠깐만. 그거 설마?”

“마법에 조예가 있습니까? 점점 더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앙헬라의 눈이 위험스럽게 반짝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치 기폭 장치를 누르듯 무감각하게 수인을 짚었다. 필라인네일 대학 출신다운 직설적이고 무기질적인 수인이었다.

수인을 짚는 방식을, 그리고 마력을 구성하고 마법을 구현하는 방식을 숨기려는 최소한의 트리거도 없이. 그저 기술을 발동시킨다는 것 자체에 중점을 둔 수인.

‘E형 기초 파괴술 3.’

-막지 말아봐. 궁금하군.

즐거워하는 페이자쉬의 얼굴이 눈에 그려질 듯 선했다. 페르난데스는 짧게 혀를 차곤 칼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이제 일어날 일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쿠르르릉···.

지하 저 멀리서 진동이 일어나고

-콰아아앙!!!

-콰지지지직!!

괴성이 마을의 한 구석에서 터져 나왔다. 엄청난 진동에 벽이 흔들리고, 지붕이 뜯어지며 먼지와 돌이 떨어졌다.

*

-쿠르르릉···.

카일렌은 테이블 위에 흔들리는 등잔을 바라보며 벌떡 일어섰다. 지진? 그는 거칠게 흔들리며 떨어지는 등잔을 재빨리 붙잡았다.

-쿠르르릉!!!

“으아아악!!”

거대한 진동이 이어졌다. 카일렌은 금이 간 창문에서 떨어지며 황급히 몸을 웅크렸다. 그는 바닥을 기어 테이블 아래로 들어갔다. 지진이다!

더럽게 운수 나쁜 날이었다. 행상 도중 트롤을 만나질 않나, 폐광촌에 들러 거의 떨이에 가깝게 상품들을 치워야 했고, 더군다나 이젠 지진까지?!

그때, 거대한 폭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콰아아아앙!!!

-콰지지직!

“이게 뭐야아아!!!”

순식간이었다.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허물어지며 뜨거운 바람이 그의 뺨을 때렸다. 그는 덜덜 떨며 흙먼지 자욱한 거리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불타오르는 헛간이 보였다!

헛간에서 일어난 불이 마을 이곳저곳으로 옮겨 붙고 있었다. 마을에 얼마 남지 않은 식량들이 불타고 있었다. 카일렌은 상인 다운 감각으로 이 마을에 남은 재산을 파악하고 있었다.

지진과 폭발은 그저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했다. 이 짓을 저지른 사람은 노련하게도, 이 마을에 있는 유일한 식량 창고에 불을 질렀다.

다가오는 긴 봄과 여름. 식량이 말라 붙은 폐광촌 주민들은 결코 그 시기를 견뎌낼 수 없을 것이었다. 카일렌은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굶주려 죽거나, 폭도가 되어 토벌 당하는 운명이 이들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선택지일 것이다.

“부, 불을 꺼! 빨리!!!”

“으아아악! 불 꺼! 불 꺼!!”

재빨리 달려 나온 사내들이 모포나 물 따위를 헛간에 끼얹고 있었다. 건조한 초봄에 옮겨 붙은 불은 고작 그 정도로 사그라지지 않았다.

카일렌은 조용히 방 밖을 빠져 나갔다. 하인과 용병들을 추스려야 했다. 이 마을에 더 남아있는 것은 위험했다. 이제 여기는 난민촌이 아니라, 산적 소굴로 변할 테니까.

*

페르난데스는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앙헬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장에서야 하층민, 그것도 외국의 하층민에 불과한 사람들일 것이다. 죽어도 어떤 가책도 느껴지지 않겠지. 그녀는 특무대원이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조금씩 타올랐다. 이 마을 전원이 악마 교단에 회유되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었다. 그저 마을 부락민 몇몇이 목에 악마 교단의 상징물을 걸고 있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어쩌면 식량 때문에, 또 어쩌면 희망 때문에. 무거운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살기 위해 도주한 이 불쌍한 농노들에게, 악마 교단이 접근할 방식은 뻔했다. 식량을 조달하거나 달콤한 말로 꾀어 냈겠지.

이들 모두가 순결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죽어 마땅하다고 판단할 수도 없었다.

-나약해졌어.

라고 페이자쉬가 투덜거리는 한이 있더라도. 페르난데스는 앙헬라를 바라보았다.

“이게 그대가 말한 방법인가? 이들이 가진 유일한 식량 창고에 불을 지르는 것이?”

“경께서 화를 내는 것은 정당합니다. 경은 생각보다 의로운 사람인가 봅니다.”

“그럼 내가 그대에게 협조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예측할 수 있나?”

“아닙니다. 경. 이게 뭔지 아십니까? 이게 무슨 고기 같습니까?”

앙헬라는 테이블 위에, 지붕에서 떨어진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묽은 죽을 뒤적였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 작은 고기 조각이 걸려 나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기를 찢었다. 고기는 퍽퍽한 결을 드러내며 잘게 갈라졌다.

“부위를 보면, 글쎄. 아마도 팔뚝 같습니다.”

“···뭐?”

“인육입니다.”

앙헬라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손가락을 문질러 닦고 일어섰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는 식량 창고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본관이 이 마을에 숨어 들고, 작업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가장 큰 이유가 저겁니다. 보십시오 경. 저 불길 안으로, 보이는 것이 없습니까?”

불타오르는 헛간, 불길로 허술해진 그 틈 사이로, 짧은 순간이었지만.

디모니카의 시야에서 결코 잘못 볼 수 없는 흔적이 보였다.

페르난데스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죽음의 냄새가 났다. 살이 타오르는 지독한 냄새가. 불길에 비명이 섞이며, 으레 그런 순간이면 맡을 수 있는 지독한 냄새가.

사람이 불타는 냄새가.

앙헬라는 선고하듯 말했다.

“여기 이 부락은, 사람을 사냥하고 고기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페르난데스에게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지금보다 더 오랜 과거에. 지금 시대로부터 더 먼 미래에. 흔히 일어날 법한.

사람이 사람을 사냥해 잡아먹는, 그런 광경이었다.

"키르하스."

"은공!"

기다렸다는 듯이, 잠복해 있던 키르하스가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앙헬라를 노려보았다. 페르난데스는 메마른 입술을 비틀어 열었다.

"토치맨. 일을 하자."

"네, 은공."

계획에 있던 일은 아니었으나, 이단심문관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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