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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54화 (55/388)

54. 공연 제 1막, 악령이 거니는 폐광 (5)

*

카일렌의 용병들은 트롤과의 접전에서 입은 부상을 추스를 틈도 없이 부락민들의 습격을 받았다. 카일렌이 그들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늦어, 그들은 사이 좋게 마을 사람들 앞에 끌려 나갔다.

불은 헛간을 비롯해 다섯 채의 초가를 더 불사른 후 잠잠해졌다. 카일렌은 화마에 허물어진 잿더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제각기 쟁기나 쇠스랑, 손도끼 따위를 손에 쥔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덩치 큰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는 핏물이 떨어지는 정육도를 들고 있었다.

“마을에 손님이 들어온 날에, 불이 났다라···.”

“서, 설명할 수 있소! 우린 모두 그대들이 준 숙소에 얌전히 있지 않았소!”

“그럼 저 불을 우리 손으로 내었다는 말이야?”

“그, 그렇지 않더라도···. 그래! 지진! 지진 때문에 불이 났을 수도 있지 않겠소? 내, 내가 머물던 방에 등잔이 있었소! 등잔이 바닥에 떨어지면 그대로 불이 나지 않겠소!”

“아니, 아니아니, 아니야.”

사내는 정육도를 천천히 들어 올려, 칼등으로 이마를 긁었다.

“저 안에는 불 낼 물건이 아예 없어. 우리 마을 사람들 집엔 등잔 같은 비싼 물건 따윈 없다고. 그리고 불은 헛간에서 났지.”

“제발! 우, 우린 체피아 상단 소속이오! 우리가 이 근방에서 사라지면 반드시 수색이 시작될 거요!”

“그건 걱정하지 마. 너희들 그 부서진 마차가 증거가 될 테니까.”

사내는 비죽 웃었다. 트롤이 부수고 간 마차까지 수습해올 수 없었던 탓에, 마차는 가도 인근에 대충 정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마차엔 명백한 괴수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트롤의 손톱과 팔에 의해 부서진 흔적이. 카일렌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사내는 입맛을 다시며 카일렌의 살찐 배를, 그리고 노동의 흔적이 없는 팔뚝을 바라보았다.

“너희가 우리 배를 불려줄 수 있겠지.”

“그, 그렇소! 그렇소! 식량! 날 풀어준다면 식량을 내 반드시···.”

“아니, ‘너희가’ 우리 배를 불려줄 수 있다고.”

사내의 말에, 카일렌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는 핏물이 떨어지는 정육도를 바라보았다. 이쪽으로 끌려올 때, 그의 하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 시종들은 어디에 있소···?”

“아, 몇몇은 우리와 하나가 될 준비 중이고, 다른 몇몇은 더 좋은 곳에 갈 예정이야.”

사내는 피식 웃으며 뒤로 슬쩍 물러섰다. 마을 사람들이 갈라지며, 그 뒤로 광장이 나타났다. 그 안으로, 장대가 보였다.

“저게 무슨!!!”

장대엔, 그의 하인들이 매달려 있었다. 소란 중에 얻어 맞았는지, 하인들은 턱이 빠져 있었다. 그들은 뒤틀린 신음을 흘리며 장대에 걸려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이마엔 기이한 나비 모양 낙인이 박혀 있었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대충 그은 듯, 삐뚤고 엉성했다. 낙인에서 흐르는 피가 그들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그들이 힘에 겨운 숨을 내쉴 때 마다 핏물이 거품을 냈다.

“무슨 짓을···. 만신전이여, 가호하소서···.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고기들에게 더 나은 역할을 배정해 준 거야. 이제 너희도 그렇게 되겠지. 하하. 억울해 하지 마. 너흰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거니까!”

사내는 광기에 젖은 눈을 번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천천히 정육도를 들어 올렸다. 카일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키르하스는 지붕 위에 몸을 도사린 채로, 귀를 꼿꼿하게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호리호리한 몸은 단단하게 긴장해서,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은공···.”

키르하스는 앙헬라의 말에, 이를 아득 깨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앙헬라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보다 확실한 증거가 모일 때까지. 본관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잠입한 게 아닙니다. 네크로폴리스의 존재를 확보하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절도 있고 단순한 동작이었다. 오로지 파괴를 위한 단순한 수인. 그러나 그녀의 수인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턱.

순식간에 나타난 페르난데스의 손이 그녀의 수인의 맥을 끊으며 그녀의 손가락을 얽었다. 단단한 악력에, 앙헬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페르난데스가 그녀를 만나고 난 이후부터, 그녀에게 처음 나타난 표정이었다.

“무슨 짓입니까?”

“마법은 안 돼. 앙헬라, 마법은 흔적이 남아.”

“···? 흔적을 남기면 안 될 이유가 뭡니까? 이미 전 한 번 썼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말이다. 아직 감출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유가 뭔지 물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마법사가 아니거든. 내가 널 돕고 있듯, 너도 날 도와야지.”

“···역할?”

“아주 신실한 기사지. 세르너드의 알베르트는. 마법에 문외한이고.”

페르난데스의 푸른 눈이 광장을 내려 보았다. 부락민들 대부분은 별 볼일 없는 이교도에 불과했지만, 저 사내는 달랐다. 저 사내는 제대로 된 제의 방식을 익혔다. 이 마을을 대표하는 교구장 정도가 되겠지.

저 사내가 광장에 하인들을 내거는 순간부터, 페르난데스는 사내의 의도를 파악했다. 이미 마을의 식량 사정은 더 이상 마을을 유지할 수 없는 수준까지 내려갔다. 그 상황에서 사내는 즉시 결단을 내린 듯 했다.

악마 소환이었다. 악마를 불러내 어떻게든 힘을 얻고, 상황을 타개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마 이 근처 마을을 습격하겠지. 단순한 농노들을 이끌고는 무리겠지만, 악마의 힘이 있다면 충분히 도모할 법 했다.

장대에 하인들이 걸리고, 그들이 흘린 피로 바닥에 기괴한 마법진을 그려 넣을 때, 키르하스의 분노는 점점 더 커져 감당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키르하스의 눈이 거의 불타오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앙헬라의 시선에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뒷목을 쓰다듬었다.

“키르하스. 네 맹세를 기억해?”

글로리데인의 노예시장, 그 지하에서. 새벽 하늘을 바라보던 때의 맹세를.

페르난데스는 키르하스를 내려보았다.

그녀는 페르난데스의 눈을 응시하며, 천천히 귀를 늘어트렸다.

“···저는 오로지 은공에게 충성합니다.”

신과 교단, 그리고 대의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께. 그 말을 들으며,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머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앙헬라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이 점차 다채로워지고 있었다.

“참으로 신실한 기사가 할 말 같습니다. 알베르트 경?”

"암."

저 멀리 아래에서, 사내가 마침내 정육도를 들어 올렸다. 무릎 꿇은 카일렌의 얼굴에 절망이 뒤얽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앙헬라. 증거는 시체에서 찾아주지.”

“잠깐. 조금만 더···.”

키르하스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그제야 안심한 듯 웃었다. 잘 참았어. 페르난데스는 그녀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암막을 들추고 쏟아지는 섬광처럼. 막 쏘아낸 시위의 화살처럼. 키르하스와 페르난데스가 지붕을 박차고 뛰었다. 아직 아무도 그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은공!”

“광장으로 가!”

“네!!”

키르하스는 장검을 꽉 틀어쥐고, 지붕을 밟았다. 광장을 향해 곧은 직선을 그리며, 그녀의 몸이 탄력 있게 튀어 올랐다. 지붕을, 그리고 다음 지붕을. 처마와 처마를. 그녀는 짐승처럼 기민하게 달려 나갔다!

-쒜에에엑!!

그런 그녀의 옆으로, 그녀보다 먼저 날아가는 것이 있었다. 페르난데스가 공중에서 쏘아낸 비수가 그녀의 속도를 추월하며—

-콰직!

“끄아아악!!!”

정육도를 든 사내의 손목에 틀어 박혔다!

“누구, 누구냐!!”

“기, 기사님!!”

“기사?!”

사내는 놓친 정육도를 잡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곧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푸른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지옥의 경계를 막 찢고 뛰어 나온 악마처럼, 사내의 심령은 한순간 페르난데스의 눈동자에 완전히 제압되었다.

페르난데스는 공포에 질려 물러난 인파 사이로, 장검을 늘어트린 채 걸어 오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를 막아 세우지 못했다.

페르난데스의 시선이 폐허가 되어 있는 헛간에 닿았다. 헛간의 귀퉁이에, 불에 타 까맣게 변한 손이, 부스러진 기둥 사이로 튀어나와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짧게 성호를 그었다. 신실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기도는 그저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성이 흐르는 핏줄이 그의 기도에 맞추어 맥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성자의 기도는 분명, 기적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만신전이 봉문된 시대의 성자라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분명, 저 폐허에 갇혀 죽은 희생자들은 만신전의 전당으로 향했을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스스로도 이것이 자기위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기만족에 불과한, 역겨운 위선이라 하더라도.

“기, 기사가 별거야?! 놈은 혼자야!!”

덤벼드는 부락민을 바라보며, 페르난데스는 칼자루를 움켜 쥐었다. 우스웠다.

전생에, 자신도 저런 말을 내뱉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컬트를 향해 달려드는 영웅을 향해서.

놈의 이름이 뭐였더라? 다이란이었나?

이젠 내가 이런 말도 다 들어 보는군. 역설적인 상황에,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서걱.

칼날이 튕기듯 올라와, 부락민의 목젖을 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핏물이 그의 얼굴에 튀었다. 페르난데스는 물 흐르듯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의 뒷머리를 스치고, 몽둥이가 허공을 때렸다.

-서걱!

자세를 낮춘 상태로, 페르난데스는 칼을 그어, 눈 앞의 부락민을 가로로 베었다. 잘 벼려진 풀 세인트메탈 롱소드가 부락민의 비쩍 마른 다리를 통과해, 공중에서 빛났다.

교훈을 알려주지. 페르난데스의 눈이 머리칼 사이에서 빛났다. 저런 말을 하고 나면, 꼭 그 혼자 온 놈한테 다 죽어 나가더라고.

*

사내는 피 흐르는 손목을 지혈하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왕국 기사들의 영웅담은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어 왔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그 박력이 남달랐다.

한 번에 한 명씩. 기사는 놀랍도록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자식인 이상, 피륙에 금속이 박히면 죽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그는 그런 단순한 사실도 믿을 수 없었다.

부락민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포위? 동시에 네 방향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단 한번에 부수는 저 완력 앞에 의미가 퇴색되었다. 아무리 잘 벼린 장검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사람의 몸은 기름과 뼈로 이루어져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을 해체해본 사내로서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완벽하게 관리된 날붙이도 사람을 해체하고 난 다음이면 적절한 조치 없인 그 날을 죽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저 젊은 기사는 힘과 기교로, 그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부락민을 도륙했다. 설령 저 기사의 손에 몽둥이가 들려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이럴, 이럴 수는 없어.”

사내는 빠르게 중얼거리며 정육도를 들었다. 그는 광기에 젖어 번들거리는 눈으로 자신에게 뛰어 오는 부락민을 노려 보았다.

“도, 도망쳐야 합니다!”

“그래? 정말?”

사내의 칼이 빠르게 부락민의 목을 쳤다. 부락민은 컥, 하는 소리를 내며 목을 감싸 쥐고 뒤로 주춤 물러섰다.

“끅! 끄윽!”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제 빌어먹을, 이제 그만 튀어 나오십시오!!”

광장에서 죽어가는 부락민들이 흘린 피가, 바닥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소환진은 완성되지 못했다. 사내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기사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그의 귓가에 누군가가 속삭였다.

[이미 와 있었다.]

-푸욱!

사내는 자신의 가슴을 관통해 튀어나온 암녹색 칼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싸늘한 칼날의 냉기가 그의 핏줄을 타고 오르며 그의 몸을 얼리기 시작했다.

“끄으으어어···.”

[재미있군.]

사내의 뒤에서, 키득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억지로 고개를 틀어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불에 탄 헛간 기둥 사이로 바스라진 몸을 일으킨 시체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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