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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55화 (56/388)

55. 악령이 허물어지는 폐광 (1)

*

카일렌과 용병들을 제외한다면, 아직 광장의 부락민들은 시체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부락민들은 여전히 목숨을 도외시하며 페르난데스에게 덤벼 들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그 수가 줄어가며, 점차 공백이 드러났다.

-서걱.

광장 안에서, 오로지 페르난데스만이 시체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끔찍한 압박감과 혐오감이 불에 탄 헛간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바닥을 적신 부락민들의 핏물이 뱀처럼 흘러 헛간으로 향하고 있었다.

흙 바닥에 기이한 문양을 아로새기며. 소용돌이 치듯이. 점점 더 거세게.

페르난데스는 이제 거의 전신을 다 써가며 부락민들을 밀치고, 베고, 후려치며 쓰러트렸다. 이들은 모두 살아있을 가치가 없었다. 식인과 인신공양의 의미가 아니다.

-한번 지옥에 타락한 존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우리를 제외하곤 말이지?’

-너를 제외하곤 말이지.

페이자쉬의 말에 짧게 웃으며, 페르난데스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헛간의 폐허를 디디고 서 있는 시체에게 닿아 있었다. 시체의 희뿌연 동공이, 페르난데스를 노려보았다.

놈의 찢어진 턱이 비틀렸다. 아마도 미소 짓고 있겠지. 페르난데스는 시체가 팔을 들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떠는 카일렌과 용병들을 한 명씩, 천천히 죽여 나가는 것을 보았다.

-콰드드득!

부락민 하나의 어깨를 베어내며, 장검의 날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장검은 지방과 핏물이 엉켜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페르난데스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축성 받은 강철일 뿐이었으니까.

[넌 누구지?]

시체의 말에, 침묵이 광장 위로 흘렀다. 그제야 부락민들은 기겁하며 헛간을 바라보았다.

“저, 저게 뭐야!!”

“오, 오오, 오오오 구원자시여!!”

부락민들은 성호를 그으며 넙죽 업드렸다. 시체는 키득거리며 자신의 발치에 엎드린 부락민의 머리 위에 발을 얹었다.

[넌 파리가 널 향해 손을 비비면 무엇을 느끼느냐?]

“···?”

[혐오감.]

-콰직!

암녹색 칼날이 부락민의 목을 쑤시고 들어갔다. 시체는 잠시 부르르 떨고는, 페르난데스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너 뿐이야. 기사. 네 이름을 듣고 싶구나.]

“거기 너. 움직일 수 있겠나?”

페르난데스는 시체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덜덜 떨며 주저 앉아 있는 용병에게 말을 걸었다. 멜메드, 용병 대장이었다. 그의 바지가 검게 물들고 있었다.

-콰득!

페르난데스는 발치의 자갈을 발로 차, 멜메드의 머리를 쳤다. 멜메드는 화들짝 놀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가장 가까운 마을로 뛰어가. 아무 교회나 찾아가. 그리고 구마를 요청해라.”

“네, 네, 네?!”

“가.”

-스르릉.

페르난데스는 손가락을 뻗어, 장검에 엉겨 붙은 핏물을 닦아냈다. 칼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며, 페르난데스는 조용히 기도했다.

[내가 순순히 보내줄 것 같아?]

“악마가 아니구나.”

[···허?]

“적어도, 이 머저리들이 믿던 악마는 아니야.”

시체가 쥐고 있는 암녹색 칼날을 바라보며 페르난데스가 말했다. 네크로폴리스의 유물이다. 전생에 수 없이 봐왔던 물건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수 없이 봐왔다는 뜻은, 결코 그것이 드문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칼을 세웠다.

“레이스 몽크.”

[흥미롭구나. 네 장단에 맞춰 주겠다.]

시체가 고개를 뒤틀며 웃었다. 놈은 도망치는 멜메드를 무시하고, 페르난데스를 향해 다가섰다.

*

앙헬라는 내심, 임무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사흘을 걸친 잠복 끝에 최고의 타이밍을 잡아 최선의 기습을 가했으나, 멍청한 기사와 종자가 일을 망쳐버렸다고 생각했다.

“···.”

생각보다 잘 싸우네. 그것이 앙헬라가 느낀 기사에 대한 감상이었다. 기사는 말 그대로 짐승 같은 감각과 힘으로 부락민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라면 저보다 효율적으로 싸울 것이다. 저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전투 방식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효과적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닭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었다.

기사의 움직임은 인간을 대상으로 펼쳐지기에 적합한 동작이 아니었다. 무언가 더 크고, 더 강대한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된 것 같은 검술이었다. 한 번 한 번의 동작이 크고 강렬했다. 저래서야 금방 힘이 빠질테지. 어리숙했다.

-푸욱!

그때, 앙헬라가 노리고 있던 마을 사내의 가슴팍에 암녹색 칼날이 솟아 올랐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수인을 짚었다.

“정말 나타났군···.”

적당히 지켜보다가 빠져나갈 생각이었지만, 이래서야 계획은 텄다고 봐야 했다. 적어도 시체가 들고 있는 칼날은 회수해 가야 했다. 저건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유적에서 봤던 물건과 같은 양식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거리 탓에, 놈과 기사가 나누는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만 더 다가갈까, 고민하다가 곧 멈춰 섰다.

“어···?”

시체가 대뜸 자신의 가슴에 칼을 박아 넣었다! 앙헬라는 그 순간 대기를 휩싸는 마력에 몸을 숙였다. 저 하늘 위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쿠르르릉!!!

끔찍한 압박감이 그녀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앙헬라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광장을 바라보았다. 시체의 몸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유령···!”

시체의 몸이 점차 부풀어 오르며 껍질 벗겨지듯 허물어졌다. 그 사이에서 나타난 것은 반투명한 녹색 그림자를 두르고 있는, 거대한 유령이었다.

*

-쿠르르릉!

레이스 몽크. 페르난데스는 하늘에 소용돌이치는 마력을 느꼈다. 페르타스의 언더카타콤이 전장에 나설 때면, 으레 이런 식이었다. 전생엔 이보다 더 거대하고, 강렬했지만. 악몽의 뭄토가 봉인 속에서 내려보는 감각이.

-죽음의 대지라. 아주 오랜만이군. 다신 볼 일 없을 줄 알았어.

‘언더카타콤이 이 시기에도 활동했다는 건 의미심장한 정보야. 페이자쉬.’

-절그럭.

페르난데스가 도륙했던 부락민들의 시체가 하나씩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고 있던 육신이 천천히 녹아 바닥에 스며들며, 시체들은 이제 핏물 엉켜 붙은 뼈만 남은 채 비틀거렸다.

이 끔찍한 광경에, 그나마 살아 있던 이들도 광기와 혼란에 빠져들었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시체들을 무시했다. 그는 눈 앞에 서서, 그를 내려보고 있는 암녹색 유령을 노려 보았다.

[내 예상보다 일렀지만, 육신을 벗어나는 건 즐거운 일이야.]

유령이 하늘 위에서 노래하듯 말했다. 놈의 손이 흔들거릴 때 마다, 한 개체 씩. 시체들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어떻게 네크로폴리스의 봉인을 풀었지?”

[후후, 네가 어떻게 네크로폴리스의 봉인에 대해 알고 있는지 말해준다면, 나도 대답해줄 의사가 있다.]

우선 살아남아 내게 묻거나, 죽어서 나를 섬기며 말이야. 위대한 뭄토의 시야 아래에서, 그 누구도 온전히 죽을 수는 없으니까. 유령은 뒤틀린 장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웃었다.

-챙!

페르난데스의 칼날이 유령의 장검을 가로막았다. 놈의 공격은 반쯤 영체에 가까웠지만, 그의 무기는 풀 세인트메탈! 모든 삿된 것들에 대해 뚜렷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카드득, 챙!

마치, 비단이 바람에 너울지는 것처럼, 유령의 팔이 공중을 흐트러트리며 페르난데스를 향해 뻗어 나왔다. 칼날이 부딪치고, 검은 불똥이 튀었다. 페르난데스의 칼날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챙! 챙! 챙!

점차 속도를 높여, 놈의 칼이 허공을 그었다. 페르난데스는 단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은 채 어지러이 휘둘러 치는 놈의 칼을 막아내었다.

“키르하스! 엄호해라!”

“네, 은공!!”

페르난데스의 외침에, 해골들을 가르며 키르하스가 나타났다. 그녀는 미친듯이 칼을 휘둘러 페르난데스에게 다가오는 해골들을 쳐냈다. 그녀의 등이 페르난데스의 등에 맞닿았다.

마침 지지대가 필요하던 차였다.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칼을 더 높게 들어 올렸다.

-챙! 챙!

-콰드드득!

[짜증나는구나!]

교착이 이어지자, 유령이 비명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페르난데스가 막아내더라도, 미처 다 흘리지 못한 충격이 키르하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키르하스는 그럴 때 마다 비틀거렸다.

그녀의 몸은 디모니카의 것이 아니다. 아직 그녀가 전성기의 모습처럼 싸우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절대적인 경험의 총량이 부족했다. 페르난데스는 그녀가 놓친 해골을 한쪽 팔로 부수며, 유령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놈, 이것도 막아 보거라!]

유령의 칼이 하늘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놈의 몸이 펄럭거리며 페르난데스의 시야를 교란했다. 단 한 순간, 디모니카의 예민한 시력이 오히려 독이 된 순간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오로지 본능에 의지하며 등 뒤로 발을 찼다.

-퍼억!

“커흑?!”

갑작스런 충격에 키르하스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으, 은공?!”

그의 배 한 가운데에 암녹색 칼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짧은 순간 페르난데스는 키르하스를 감싸며 공격을 받았다. 유령의 칼날이 짙푸르게 빛나며 페르난데스의 몸에 틀어 박힌 영성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칼날이 비명을 질렀다. 성자의 혈액과 영성이 유령의 칼날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배에 튀어 나온 칼날을 바라보며—

-뭄토의 권역에서도 불사가 기능할까?

‘그것보다 먼저 실험할 게 있어.’

혈액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페르난데스는 웃었다. 죽음이 코 앞에 닥쳐오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뭄토의 시선이 그 어느 순간보다 강렬하게 느껴졌다. 세상이 음울한 녹색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절반 정도 뭄토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사자(死者)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썩은 시체와 해묵은 먼지, 그리고 말라 붙은 눈물의 냄새였다.

네크로폴리스의 칼날에 얽힌 저주는 영혼을 파괴하고 흡수한다. 이런 흔한 유물에 조차 그처럼 강대한 저주가 걸려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그를 노려보는 뭄토의 시선을 느끼며 웃었다.

성자의 영혼은 흑마법을 거부한다.

디모니카의 혈액은 마력회로를 거부한다.

따라서 그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방법은 우회 뿐. 청동 왕좌를 통한 간접적인 마력 조성이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에 불과했다.

하지만 네크로폴리스의 칼날이 영혼을 파괴해 나간다면? 혈액이 충분할 정도로 부족해진다면? 그래서, 그의 몸에 마법을 구현할 공간이 확보된다면?

-마법은 흔적이 남는다 하지 않았나?

‘몸 밖에 사용할 때야 그렇지.’

-치지지직···.

마력 회로를 짜 몸 안에 새겨 넣는 그 모든 과정은, 그에게 있어서 그 어떤 작업보다 간단했다. 자신의 육신 그 깊은 내부를 관조하며,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여든일곱 인생 동안, 그는 매일 그 자신의 회로를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마법사였다. 마력 회로를 따라 몸에 마력을 새겨 넣는 작업은, 무의식 속에서도 충분히 가능했다.

-치지지직!!!

그의 몸 안에 남아있는 디모니카의 혈액이 끓어 올랐다. 차갑게 식던 몸에 열기가 돌았다. 죽음의 문턱에 한 발을 걸친 채로, 그의 시야가 천천히 밝아졌다.

사자의 세계가 갈라지며, 유령의 얼굴이 보였다. 놈의 표정 없는 로브 안에서도, 놈이 당황하고 있는 것이 선히 보였다.

“네 신에게 기도해라. 몽크. 뭄토에게 빌어봐.”

[네 놈···. 기사가 아니었구나.]

디모니카의 혈액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회로를 잡아먹으며 끓어 올랐다. 그러나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 마력 전체를 불사르기엔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그의 핏줄이 검게 달아 올랐다.

열이 올라 머리가 아찔했다. 페르난데스는 칼자루를 쥐고 유령에게 겨누었다. 그의 마력 회로는 매 순간 재구축과 파괴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의 내부는 이미 곤죽이 되어 찢겨 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페르난데스는 웃을 수 있었다. 이제, 그는 마법을 되찾았다. 아주 제한적인 방법이지만.

[네놈은 마법사였어!]

‘그래.’

페르난데스는 찢어질 듯 비명 지르는 유령의 목소리를 들으며 빈 손을 들어 올렸다. 열이 올라 아찔한 시야, 마력을 거부하는 핏물이 거세게 맥박 치며, 그의 손가락은 비틀렸고, 잘게 떨렸다.

한 손가락이 접혔다. 이윽고 두 번째, 다시 세 번째.

수인이 한 수, 천천히 맺혔다.

‘가시왕관의 페르타스가 전성기일 때에도, 그리고 놈이 언더카타콤의 콘클라베를 모두 끌고 합공할 때에도.’

-나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페이자쉬의 손이 페르난데스의 떨리는 손 안으로 스며 들어갔다.

영혼이 반 정도 흩어져, 놈의 칼날에 빨려 들어갔지만.

페이자쉬가, 페르난데스의 얼굴로 웃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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