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악령이 허물어지는 폐광 (2)
*
-아, 빌어먹을 몸뚱아리.
페이자쉬는 비틀리는 손가락을 억지로 접으며, 키득거렸다. 디모니카의 혈액이 끓어오르며, 시시각각 페이자쉬의 영혼을 밀어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배를 꿰뚫고 있는 칼날을 잡았다.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콰드득.
“끄윽···.”
고통에 순간 머리가 백열되며 울컥, 피가 입술 사이로 흘렀다. 그의 내장은 충격으로 산산이 부서졌고, 칼날을 뽑아낼 때 마다 머리칼이 쭈뼛 서며, 살조각이 검신에 묻어 나왔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흐으···.”
-콰드드득.
생존본능과 공포, 고통과 절망. 네크로폴리스의 칼날에 영혼이 찢겨나가는 그 끔찍한 감각에도. 뭄토의 권역에 한 발을 딛고, 그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그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평생, 평생을 그렇게 살아 왔으니.
-콰드드득!!
“크···으···하!!”
마침내, 그의 몸을 파고들어 영혼을 조각 내던 칼날이 몸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왔다. 페르난데스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네크로폴리스의 칼날로 바닥을 짚은 채 거친 숨을 헐떡였다. 장기가 뜯어지며 숨을 쉴 때마다 살점 섞인 피가 역류했다.
[네놈!! 네 이놈!! 나는 네크로폴리스 고위 승려, 시알란크리스다! 네 놈의 이름을 밝혀라!]
페르난데스가 몸 안에서 칼날을 뽑아낼 때, 페이자쉬는 덜덜 떨리는 그의 왼팔을 움직여 놈의 움직임을 막아내고 있었다. 검은 쇠사슬이 놈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카사드의 검은 포승]. 스승의 전매특허 절기 중 하나였다.
-콰지지직!!
[이---노오오옴!!!]
망령이 울부짖었다. 마력의 길항이 잠시 평행을 유지하다가, 곧 깨어져 나갔다. 한 줌의 마력으로, 오로지 한 팔만을 이용하며, 캐스팅에 필요한 성대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는 페이자쉬로서도, 이것이 최선이었겠지.
-시간을 벌어라.
‘뭘 하게?’
-페르난데스. 너는 상상력이 부족해.
페이자쉬는 낄낄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감각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망령의 몸이 자유를 되찾으며, 천천히 그의 손에 푸른 낫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구축]. 페이자쉬가 왼팔을 들어올려 완만한 곡선을 허공에 그렸다. 섬세하고, 매끄럽게. 떨리는 손으로 짚었다고 여기기엔 가히 아름다운 수인을.
-풀려난 게 아니라. 놓아준 거야.
[네 목을 취하고, 주인님의 권역에서 네 놈의 정체를 묻겠노라. 필멸자여!]
페르난데스는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일어섰다. 힘이 풀린 다리가 몇 번이나 바닥을 헛짚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천천히 바닥에 놓인 네크로폴리스의 검을 들어 올렸다. 칼끝이 흔들렸다.
격렬한 고통과 탈력감 속에서, 왼팔의 마력이 휘몰아치는 감각을 느꼈다. 심장이 거세게 맥동했다.
-쿵, 쿵, 쿵.
마력을 몰아내기 위해, 심장이 펌프 치며 디모니카의 혈액을 전신에 흩뿌렸다. 쿨럭 하고, 그의 배에서 피가 한 움큼 더 튀어 나갔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그의 왼팔은 멈춤 없이 수인을 짚는다. [여력].
“네크로폴리스의 레이스 몽크. 몇 번째 기둥을 지키나?”
[···박학다식하군. 네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 지는구나. 네 영혼을 수확하면, 주인님께서 크게 즐거워 하시겠어.]
-후우우웅!!
-카드드득!!
망령은 낫을 들어 크게 휘둘렀다. 페르난데스의 칼이 힘겹게 놈의 낫을 얽었다. 다행히 칼 자체가 가진 힘이 강력해, 힘의 길항을 유지할 수 있었다.
-챙! 챙!
[네놈의 죽음은 네 삶의 마침표가 되지 못한다. 인간! 네 영혼은 이제, 네크로폴리스에 영원히 귀속되었도다!]
-카드드득!!
페르난데스의 손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날아드는 낫을 간신히 받아 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찢어진 배에선 피가 멎지 않았다. 그는 헐떡이며 외쳤다.
‘아직이야?’
-이제 됐다.
페르난데스가 낫을 비껴 치고, 잠시 숨을 돌릴 때. 그의 왼팔이 곡선을 허공에 그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세 번, 두 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리고 강하게, 허공을 움켜쥐며—
-[육신]
페르난데스는 그제야 페이자쉬의 마법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 지 알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는 짧게 웃었다. 내가 상상력이 부족했군. 마력이 돌아오기만 했다면, 이걸 시도해 볼 수도 있었어.
-보조 술식, 삼두육비.
페이자쉬는 등 뒤로 떠오르는 영체를 느꼈다. 이걸로, 전성기의 마법에 근접했군.
*
앙헬라는 숨이 멎을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저 멀리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상처 입은 기사가 망령에 대항해 칼을 휘두르는 광경을.
-챙! 챙!
기사, 알베르트가 놈에게 대적하는 모습을 기적과 같았다. 끔찍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쓰러진 자신의 종자를 지키며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그는 그야말로 서사시의 영웅처럼 칼을 휘둘렀다.
강한 힘과 큰 움직임. 자신보다 더 큰 상대를 가정한 듯한 공격이라고? 바로 그것이다. 알베르트가 어느 조직, 어떤 집단의 요원이든지, 그 집단은 저런 존재들을 대적하길 업으로 삼은 자들일 것이다.
-카드드득!!
이 먼 거리에서도, 망령과 알베르트의 칼날이 얽히는 금속성이 여실히 들려 왔다. 그런 강력한 일격을 일개 인간의 육신으로 받아내면서도, 알베르트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
앙헬라는 그 모습에서, 희망을 느끼며 떨었다. 죽음과 공포가 짓누르는 이 하늘 아래에서, 오로지 알베르트 홀로 승리와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듯 했다.
그녀의 시야에 눈물이 섞이며 뿌옇게 흐려졌다. 시계가 어그러지며, 알베르트의 등 뒤로 마치 날개가 돋아나는 것처럼 빛이 번져 보였다.
*
마치 날개가 한 장씩 돋아나는 것처럼, 페르난데스의 등 뒤로 팔이 솟아 올랐다. 희미한 영체가 천천히 구현되고 있었다. 마르고, 비틀린 노인의 손이. 허공에 날개처럼 펼쳐졌다.
수인을 짚을 팔이 부족하다면, 주문을 읊을 입이 부족하다면. 그리고 동시에 하나 이상의 몸을 조작하면서, 섬세한 마력 조율에 실수하지 않을 실력만 충분하다면.
그런 발상 아래에서, 페이자쉬가 창안한 마법이 있었다. 전성기의 그는 애당초 마력이 부족해 허덕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호흡이, 그러나 체력이, 육신이 가진 한계가 노년에 접어든 그의 마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전성기 당시, 베이타서스의 네 대천사들을 봉인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여섯 개의 팔이 동시에 짚어내는 수인과, 세 개의 머리가 동시에 읊는 주문. 그 때를 완전히 모사하는 것은 지금으로써는 어렵겠으나.
보조 술식, 삼두육비
마침내, 세 개의 팔이 그의 등 뒤에서 그를 감싸듯 앞으로 나섰다. 반투명한 영체가 흐릿한 형체를 유지하며 제각기 다른 수인을 짚었다.
그 끝에, 완성되는 것은 제각기 다른 네 가지 주문. 그 어떤 주문 시전자들도 감히 시도하지 못할 난이도일 것이다. 쿼드 캐스팅이라는 것은, 그 모든 주문을 동시에 조율하면서도 전혀 다른 마력 흐름에도, 천려에 일실조차 없다는 뜻이니까!
[그게···무엇이냐···?]
네크로폴리스의 승려. 뭄토의 사제라면 마법에도 조예가 있기 마련이었다. 망령은 공격하는 것도 잊은 채 눈 앞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놈의 왼손이 움직일 때 마다, 그의 등 뒤에 있는 세 손이 동시에 수인을 짚어 나갔다!
-마력 정화.
첫 번째 손이 수인을 짚자, 뭄토의 권역에서 흘러 나오는 압박감이 크게 흐려졌다. 마력 정화. 이질적인 속성을 띈 마력을, 보다 마법에 적합하게 정화하는 작업이. 대악마의 마력조차 흩어 자신의 것으로 삼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단 말이냐!!]
-영체 강탈.
두 번째 손이 수인을 짚어 나갔다. 망령은 자신의 존재가 빠르게 옅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대항할 수조차 없었다. 네크로폴리스와 그의 연결이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의 사슬이 뻗어 나왔다.
-촤르르륵!
[네···이···놈!!!]
망령은 떨리는 눈으로 기사를 바라보았다. 놈을, 아니. 놈의 몸에 깃든 누군가를. 새파랗게 어린 필멸자의 육신이 아니라, 그 본질을! 망령의 몸에 걸린 사슬의 끝에, 놈의 시선이 닿아 있었다.
한 시대를 열고, 자신의 이름을 그 시대를 끝맺은. 마법의 극의에 도달한 대마법사의 눈을 바라보며, 망령은 점점 더 작아져 갔다.
-추방.
마침내 세 번째 손이 마지막 수인을 짚자. 마치 하늘을 도려내는 듯. 그 순간 이 마을을 휘감고 있던 뭄토의 시선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이 세 가지 주문이 조합될 때 만들어지는 대마법. [페르타스의 강탈].
소환체의 소유권을 강제로 이전해오는 마법이 완성되었다. 페이자쉬의 등 뒤에 떠 있던 팔이 점차 희미하게 명멸하며 사라져갔다. 망령은 비명 섞인 신음을 내지르며 허물어졌다.
[대악마를···추방했다고···?]
-촤르르르륵!
페르난데스의 왼손이, 암녹색으로 빛나는 쇠사슬을 거칠게 잡아 당겼다. 왜소하게 줄어든 망령이 힘 없이 손짓에 따라 끌려갔다. 놈은 바닥을 기며 헐떡거렸다.
-턱.
페르난데스는 놈의 머리를 밟으며 웃었다.
“이제 대답할 차례야.”
[···네크로폴리스의 봉인이 풀린 이유···?]
“아니, 네가 여기서 꾸미고 있는 일.”
[말해 준다면, 날 보내 주겠나?]
“편하게 해줄 수는 있지.”
페르난데스는 피가 멎어가는 배를 바라보며 웃었다. 디모니카의 육신은 과연, 짐승 같았다. 네크로폴리스의 칼날로 찢어진 상처마저 시시각각 회복되고 있었다.
[네 놈은··· 어느 악마의 하수인이냐? 해충왕? 일곱 왕관? 뱀의 여제?]
“군신.”
[하···. 베이타서스.]
망령이 흐느꼈다. 어쩌다 이런 악마 같은 자식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망령은 자신의 가슴에 얽힌 사슬을 바라보며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원탁 의회가 코 앞이었거늘···.]
망령은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의 봉인을 풀어낸 녀석들은, 너희 인간들이 ‘매장 교단’이라 부르는 놈들이었다. 놈들은 나의 주군을 봉인에서 꺼내어 이 빌어먹을 동방 촌구석으로 끌고 나왔지.]
“주군? 뭄토가 봉인에서 풀렸다고?”
[아니, 나의 주군은 그 분의 다섯 번째 주교시다.]
“콘클라베! 네크로폴리스 콘클라베가 이 시대에 풀려났다고?”
[···정말 아는 것이 많군. 필멸자.]
망령은 잠시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지배의 사슬이 얽혀있는 이상, 놈은 페르난데스의 질문에 거짓으로 답할 수 없었다.
-맹신하지 마. 대답을 회피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니까.
영체로 돌아간 페이자쉬가 그의 옆에서 속삭였다. 그 말에,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내가 네크로폴리스의 망령을 맹신할 리가. 그는 사슬을 당겼다.
“그래. 놈들이 무슨 제안을 했을 지는 뻔하군. 네크로폴리스의 대봉인을 풀어준다는 것이었나?”
[···그래. 그리고 그 대가는···.]
“원탁 의회의 해산인가?”
[아니.]
망령이 음산하게 웃었다.
[건국왕의 부활이다.]
대답을 듣고, 칼을 내리치려 했던 페르난데스가 멈춰 섰다. 그는 칼날을 들어올린 자세로 잠시 굳었다.
“뭐?”
나보다 그 역할을 먼저 선수친 놈이 있었다고?
*
키르하스는 바닥에 쓰러져 헐떡이며, 페르난데스가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압박감과 존재감으로 그녀는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경이에 찬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올려 보았다. 감히 대적하는 것조차 힘든 거대한 망령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그의 모습은···. 그녀의 부족 설화에 나오는 전설 속 영웅과 같았다!
페르난데스는 손쉽게 망령을 제압하고는, 잠시 멈춰 서서 놈과 대화를 나는 듯 했다. 무슨 말이 오가는 것 같았는데, 대화의 맥락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곧, 페르난데스가 칼을 휘둘러 망령의 몸을 찢었다.
-콰직.
[사,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나!]
“언데드를 무슨 수로 살려주나?”
페르난데스가 농담을 하듯 웃으며 말했다.
[네 노오옴!!! 주군께서, 널 벌할 것이다!]
-콰지직!
망령의 마지막 조각을 칼로 저며 으스러트리며,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너무나 전형적인 유언이었다. 그는 칼을 짚으며, 허물어져 내렸다.
“은공!!”
키르하스는 압박감을 떨치고 일어서 페르난데스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페르난데스의 몸을 품에 안고 깜짝 놀랐다. 몸이 너무 뜨거웠다!
“여, 열이 심합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은공! 정신 차리세요! 아아, 아아, 어떻게 하지??”
“호들갑 떨지 마. 키르하스. 별거 아니야.”
페르난데스는 마른 입술을 비틀어 대답하며 몸에 힘을 주려 했다. 그는 이미 그의 몸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다. 과다출혈과 영체 손실, 장기 파열과 복합 골절, 외부로는 열상과 찰상 등을 치유하기 위해 디모니카의 육신이 한계를 넘어 기능하고 있었다.
고열은 그 부작용에 불과해. 나는 이 정도로 쓰러지지 않는다. 페르난데스는 열이 오른 머리로 멍하니 생각했다. 키르하스의 손가락은 차가웠다. 기분이 좋아졌다. 이마를 조금만 더 짚어 주었으면.
-두두두두···.
아릿한 머릿속으로,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기마의 마보 소리가 들렸다. 페르난데스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쉴 틈이 없었다. 쉰 적도 없었고. 그는 천천히 몸에 힘을 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으, 은공?! 안정을 취해야 해요!!”
“쉿, 키르하스. 부축만 해.”
“···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전투의 흔적 앞에 칼을 내려 역수로 짚었다. 망령이 불러온 구름이 걷히며, 찬란한 여명이 내리 쬐고 있었다. 절묘하게도, 빛이 페르난데스의 머리 위로 기둥을 이루며 앉았다.
“주변에 생존자는 얼마나 되지?”
페르난데스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속삭였다. 키르하스는 당황한 상태에서도 더듬거리며 말했다.
“부락민들 약 일곱, 용병 생존자 둘, 상인 하나, 그리고 저 이상한 여자 한 명입니다.”
“좋아. 증인은 충분하군.”
-두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페르난데스는 자세를 다잡았다. 왕을 만나기 위한 조건을 얼추 맞추기 위해선, 기사로 남아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