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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67화 (68/388)

< 67. 죽은 자들이 돌아오나, 이에 굴하지 않으며. >

*

-멍청한 것. 어째서 그렇게 감상적으로 행동하느냐? 어째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느냐? 너는 대체···.

‘아, 좀. 제발 닥쳐. 페이자쉬. 머리 울린다.’

페르난데스는 연신 투덜거리는 페이자쉬에게 추방 주문을 걸어 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청동 왕좌의 기능이 온전히 돌아오면 가장 먼저 페이자쉬를 추방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추방할 수 있을까? 어쨌건 그들은 하나의 영혼에서 갈라진 존재인데.

왕성은 횃불 하나 없이 음산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페르난데스는 비전 시야가 보여주는 마력의 흐름을 따라 걸었다.

-쿵, 쿵.

그의 심장이 무겁게 맥동하고 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동시에 끔찍한 기분이었다.

왕성을 가로지르며, 페르난데스는 이 성을 중심으로 도시 전역에 펼쳐진 마력과, 그 마력을 조형해 만들어내고 있는 주문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광기의 파프테트. 네크로폴리스 콘클라베들은 모두 뛰어난 사령술사들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전생의 기억을 뒤적이며 놈들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수월한 일이었다. 뛰어난 녀석이라는 뜻은, 그와 적대했거나 그와 협동했던 순간이 많았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는 이야기는, 녀석들의 마력 조형과 술식의 특징이 이미 익숙하다는 뜻이었다.

‘힘을 모으고 있어.’

-···그래. 대규모 사령술이야. 심지어 대단히 오랫동안 준비했군.

‘그렇게 오래 준비한 음모를, 우연히 내가 이 도시에 찾아온 순간에 실행했다는 뜻인가?’

-그럴 리가. 모리아가 죽은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

비전 시야가 가리키는 방향의 끝, 암녹색 마력이 줄기줄기 흐르는 회랑의 끝이 멀리에 보였다. 페르난데스는 웃음을 머금으며 단검을 쥐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어설퍼. 오래 준비한 것 치고는.’

-원래 놈들이 계획한 순간보다 이르게 촉발된 탓이겠지. 주문이 완성되지 않아 이렇게 시간을 끄는 구나.

-그워어어···.

회랑의 끝, 석주들의 사이에서 시체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빠르게 몸상태를 점검하며 가볍게 손목을 풀었다. 오른손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건 출혈은 멎은 상태였다.

샤일드가 그에게 내려준 가호를 이제 시험해 볼 때가 되었다. 어째서 샤일드가 직접 움직였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았다.

죽어가는 육신에, 신성이 흐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전신에 오히려 힘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

“전하! 몸을 보전하소서!”

“쉿! 그만! 살 수 있다. 경은 여기서 죽지 않을 것이다.”

비센테는 입술을 꽉 깨물며 거칠게 칼을 휘둘러, 다가오는 시체를 쳐냈다. 비센테의 검 끝에 묵직한 무게감이 얹었다. 목이 허공에 잠시 떠오르고는, 곧장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치이이익.

그리고, 시체의 머리가 순식간에 암녹색 연기를 뿜어내며 녹아 내렸다. 연기에서 마력이 뿜어져 다시 옥좌 위의 노왕에게 스며들었다. 노왕은 옥좌에 앉아 수인을 짚으며 그들을 비웃었다.

-채앵!

-카드드득!

어전의 한 가운데에 떠 있는 거대한 구체에서, 시체들이 하나씩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전의 기사들과 왕자는 시체를 상대로 칼을 휘두르며 분전했지만, 놈들은 끝이 없었다. 게다가.

‘검술을 쓴다.’

단순히 이성이 없는 워커나 구울 같은 적들이 아니었다. 놈들은 오래된 갑옷을 입고 비척거리며, 어설프지만 체계가 확실히 잡혀 있는 검술을 사용했다. 기사들은 거의 시체들을 도륙하고 있었지만, 놈들의 머릿수가 너무 많았다.

-끼이이익···.

순간, 구체의 안에서 기이한 비명이 들려왔다. 왕자는 부상 입은 기사를 뒤로 감싸고, 구체를 향해 칼을 겨눴다. 구체 안에서 붉은 안광이 어른거렸다. 곧, 거대한 손이 뻗어 나와 구체를 찢으며 주위의 시체들을 짓눌렀다.

“···무슨!?”

검은 갑옷을 입은 거한이 구체를 거칠게 찢으며 걸어 나왔다. 절그럭, 놈이 입고 있는 검은 갑옷이 시끄럽게 울렸다. 주위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싸늘한 위기감이 왕자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전하. 저 갑옷. 본 적이 있습니다.”

“나도 알 것 같구나.”

왕자의 곁에서 묵묵히 검을 휘두르던 기사가 잠시 소강 상태로 진입한 틈을 타 속삭였다. 왕자는 검은 갑옷에 그려진 문양들을 보며 침을 삼켰다. 또렷한 가문 인장이 박혀 있는 예스러운 갑옷이었다.

“매장 교단이로구나.”

[경의를 표해라. 어린 필멸자들아. 너희는 그런 족속이 아니더냐? 너희의 조상을 바라보며 마땅한 경의를 보여라.]

기사가 사슬 얽힌 팔을 움직여, 거대한 대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기사의 투구 사이에서 붉은 안광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비센테의 본능이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처형인 페드로···.”

[그래. 너희의 영웅이시다. 하하!]

역사서에, 또는 영웅담과 서사시에 기록된 수 많은 영웅들 중, 온전히 자신의 침상 위에서 최후를 맞이한 기사가 얼마나 될까? 비센테의 머릿속에 암울한 가정이 스쳤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전장에 나아가 명예롭게 죽었다. 그것이 그 시절의 미덕이었다.

그런 그들의 시체가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었다면? 처형인 페드로는 개척왕 유리코 시대의 원탁 기사였다. 그의 이야기는 데인 왕국의 어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사시 중 하나였다. 그의 이야기는 알현실 회랑에도 벽화로 남아 있었다.

기사들이 황급히 페드로와 비센테 사이를 가로 막으며 섰다. 그들의 눈엔 결사의 각오가 비쳤다. 기사들은 칼을 치켜들며 비센테를 향해 속삭였다.

“전하, 부디 몸을 보중하소서. 팔리아메인 경과 합류해 수도를 탈환해야 합니다. 이반 경, 길을 뚫어라.”

“예, 루이스 경.”

“전하를 부탁하···.”

-쿠우웅!

기사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빠르게 위치를 다잡을 때. 알현실의 문이 크게 흔들렸다.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누가 이곳을?

-쿠우우웅!!!

어전의 대문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거의 공성병기를 때려 박는 듯한 충격이 일었다. 노왕은 인상을 찌푸리며 문을 노려보았다. 노왕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놈이 왔군.]

-콰아아앙!!!

곧, 어전의 문이 박살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충격에 시체 병사들이 쓸려 나갔다. 자욱하게 먼지가 일고, 곧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 근처에 있던 워커 하나가, 먼지 안에서 뻗어 나온 팔에 목이 붙들려 끌려들었다.

-우드드득!

-콰직!

먼지가 가라앉았다. 그 자리에, 비센테가 아는 얼굴이 있었다. 피로에 찌든 눈, 덥수룩한 검은 머리칼. 호리호리지만, 다부진 몸. 한쪽 팔을 잃은 것인가? 하지만 출혈은 없었다.

“알베르트 경!”

“소꿉놀이가 한창이었군. 파프테트.”

페르난데스는 반갑게 소리치는 비센테를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노왕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뭘 할 수 있다고, 도망치지도 않고 여기까지 왔느냐?]

“종교 재판 사법권.”

[뭐?]

“이단 즉결 처형권.”

-콰직!

페르난데스는 주먹을 휘둘러 다가오는 시체의 머리를 후려쳤다. 놈은 순식간에 곤죽이 되어 나가 떨어졌다. 엄청난 힘이었다. 비센테는 페르난데스의 기세에 움찔 뒤로 물러섰다.

마치 야수가 움직이는 것처럼. 페르난데스는 한 발자국씩 걸으며 주위의 시체들을 하나씩 으스러트렸다.

“구마용 군이양지권. 교단성사 대리지권. 이상 만신전이 보장하는 위 권한으로 이단재판을 시행하겠다. 네크로폴리스 콘클라베, 광란의 파프테트.”

[···베이타서스의 개였더냐?]

“궁금해 했지.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말야.”

페르난데스는 바이에미어를 떠올렸다. 그는 명예를 아는 기사였다. 그의 죽음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애통한 일은 아니었다. 분노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었다. 그는 왕이나 구원자, 영웅이 아니었으니까.

의인의 죽음에 슬퍼하기엔 너무 많은 의인을 장대에 걸었다. 그리고 페르난데스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그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그 승리를 위해서라면, 영웅 행세와 위선에 기꺼이 어울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필요한 일이라면.

단순히 미래의 영웅왕을 낳을 왕자를 구하는 것은 쉽다. 단순히 매장 교단의 계획을 어그러트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수에 착수하지 않는다.

‘우리 계획은 영웅이 되는 것. 그리고 페이른과 데인 왕실의 전쟁을 막는 것이었어.’

-뭐, 그래. 지금 이제 그게 무슨 소용이냐 싶긴 하지만.

그는 비센테가 쥐고 있는 검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며, 당황한 기사들 사이로 걸었다. 처형인 페드로,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페르난데스를 막아 섰다.

-신이 났군. 페르난데스.

‘필요한 일이야.’

페르난데스는 페이자쉬의 말에 대꾸하며 칼의 무게를 가늠했다. 샤일드가 내려준 가호는 단순히 반짝이는 후광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가호는 ‘무력’. 생명력이 불타며 그 동력이 그의 근육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상관 없었다. 육신의 수명이 갈려 나가고, 그 사이에서 타오르는 힘이 그의 몸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지만.

“피고는 변호하라.”

[저 놈을 죽여라!!]

-절그럭.

처형인이 검을 치켜 들었다. 페르난데스는 따라 자세를 잡으며 몸을 도사렸다.

-쿵,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맥동하고 있었다. 이미 생명이 다해가는 그의 육신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을까? 삼십 분 정도는 그럭저럭 움직일 것 같았다.

상관 없었다. 육신은 소모품이었으니.

*

어전의 벽화가 일렁거리며,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늪지의 괴물을 죽이는 젊은 기사의 모습. 언데드를 무찔러 공주를 구하는 젊은 기사의 모습. 샤일드의 가호 아래에 성인으로 추앙 받는 기사의 모습.

-콰아앙!

거대한 대검이 내리 꽂힐 때 마다, 불꽃이 튀며 칼날이 갈려 나갔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검을 받아 넘기고 있었다.

비센테 왕자는 홀로 처형인에게 맞서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신음했다. 처형인의 검격이 산을 가르는 것 같았지만, 페르난데스는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그 공세를 받아냈다.

-콰아아앙!!

그가 딛고 있는 바닥이 거칠게 떨렸다. 비센테의 검은 당대의 명검 중 하나였지만, 거의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후려치는 페르난데스의 검술에 점차 날이 나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의 등 뒤에서 달빛이 비산하며 더 밝은 헤일로를 그리고 있었다.

서사시로 전해지는 데인 왕의 모습이 이랬을까. 비센테는 어전의 벽화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어둠을 가르며, 어전을 밝히고 있었다.

-콰드드득.

기사의 가슴에, 페르난데스의 검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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