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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68화 (69/388)

< 68. 보아라, 용이 다시 평원 위로 날아 오르고. (무료 마지막 화입니다!) >

*

대개의 경우, 영지와 영지 간의 경계선은 강이나 언덕, 산맥과 같은 자연지형에 의존하며. 그조차도 그 구분이 애매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알트베르트는 언덕과 드넓은 곡창 지대, 그리고 그 밖을 감싸고 있는 숲과 산맥을 포함하는 대영지임에도, 확고한 영지 한계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워어어···.

숲의 끝자락에서, 시체 한 구가 바닥을 뚫고 몸을 일으켰다. 시체는 비척거리는 몸을 가누며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곧장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콰직.

시체가 숲의 경계선에 있는 부서진 비석을 타고 넘었다. 숲의 경계를 타고 드문드문 늘어서 있는 비석들은 하나같이, 세월 앞에 풍화되었고, 파괴되어 밑둥만을 남기고 있었다.

베르트 언덕의 수호석. 먼 옛날, 언데드와 사악한 마물들을 막아내기 위해 데인 왕의 하이 마구스 트리스티아가 도시의 경계에 박아 넣었던 수호석들은, 전설의 영역에서 끌어 내려진 사물이 으레 그렇듯 이제 희미한 자취만을 남기고 있었다.

알트베르트의 탄생은 언덕 거인의 죽음이었지만, 알트베르트가 진정코 완성되었다고 여겨지는 시점은 기사왕 데인이 죽음의 기사들을 무찌르고 매장 교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시체 한 구가 땅을 뚫고 다시 솟아 올랐다. 놈들은 베르트의 수호석들을 비웃듯 시쳐 지나갔다. 전설이 낡은 동화로 취급 받는 이 시대에, 그 누구도 주의를 기울여 관리하지 않은. 그저 풍경의 정물에 불과한 수호석들을 넘어서.

기사들의 도시로.

시체들이 일어나고 있다. 숲의 경계를 타고, 점점 더. 무장한 이도 있었고, 그저 썩은 살점과 삭은 뼈를 일으킨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열을 맞추어 숲을 향해, 그리고 그 너머의 평야와, 그 안의 언덕을 향해.

기사들의 도시로.

네크로폴리스의 영향을 받은 시체 군단 도합 오천 구. 도시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

‘몸이 가벼워!’

키르하스는 지붕을 타고 넘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기묘한 이질감, 그리고 엄청난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다. 머리 위를 뒤덮고 있던 압박감과 존재감이 희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그녀는 경쾌하게 웃었다.

-타닷!

그녀의 청록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매가 하늘 위를 날 듯, 주위의 풍광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키르하스는 지붕 끄트머리를 밟고 달리며 웃었다.

짙푸른 길이 그녀의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검은 하늘과, 빗물로 미끄러운 디딤 따위는 그녀에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녀는 빗물 속을 질주하며 단 한 번도 균형을 잃지 않았다.

-탓!

내성의 성벽이 어느새 바로 앞에 있었다. 왕성으로 향하는 대문이 가까이에 보였다. 이 큰 도시의 절반 이상을 그 짧은 순간에 주파한 것이었다.

‘은공이 평소에 보던 광경이 이랬을까.’

페르난데스는 디모니카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비상한 머리와 별개로, 그의 육신은 이미 인간을 거의 초월한 출력을 낼 수 있었다. 동체 시력부터 근지구력, 순간 근력에 이르기까지.

지금, 키르하스가 바라보는 이 짙푸른 길은 페르난데스가 이미 밟았던 경로를 의미할 것이다. 근거는 없었고, 대단히 미신적인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애당초, 그녀가 생각하는 페르난데스는 반쯤 미신의 경지에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바라보는 길은 단순히 물리적인 경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페르난데스의 발자취를 뜻했다. 키르하스는 그의 발길을 따라 걷는다고 생각하며 점점 더 뜨겁게 맥동하는 심장을 느꼈다.

‘사람?’

사람들이 모여서, 왕성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키르하스는 재빨리 공중에서 허리를 틀어 경로를 수정하고는, 사람들의 앞에 내려 앉았다.

“다들 집에 들어가 숨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밤하늘 너머에서 암녹색 영혼들이 둥둥 떠다니고,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와중이었고, 아무리 멍청하고 둔하더라도 지금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느꼈을텐데. 키르하스는 멍하니 왕궁을 바라보는 노인을 건드렸다.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에요?”

노인은 거칠게 키르하스의 손을 쳐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성을 향해 깊게 절을 올렸다. 퍽 정갈하고 신실한 기도였다. 키르하스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왕성을 향해 몸을 돌렸다. 미치광이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

그녀는 곧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잘 닦인 성하대로를 파괴해 놓았다. 그 전투 흔적 한 복판에는,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가 누워 있었다.

“···바이에미어 경.”

키르하스는 잠시 움찔거리고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기사의 목엔 굵은 상처가 파고들어 있었다. 상처의 깊이와 형태를 보면 단검, 그리고 엄청난 힘. 이런 무기로 이런 짓을 저지를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

바이에미어의 젊어진 얼굴과, 끔찍한 형상이 그려져 있는 갑옷까지. 키르하스는 그에게 일어난 일을 유추할 수 있었다. 편안히 잠들지 못했구나. 그녀는 미소 짓고 있는 바이에미어의 얼굴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곳에선 부디 평화롭기를.”

그곳이 어디든, 그가 믿는 샤일드의 전당이나. 혹은 지금 그 누구에게도 대답하지 않는 만신전의 회랑 그 어디에서라도. 이 명예로운 기사가 정녕코 평화롭기를 바랐다. 키르하스는 그의 곁에 떨어져 있는 검을 들어 올렸다.

페르난데스의 자취가 가깝다. 키르하스는 잠시 마음을 다잡고 성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까지 긴 길을, 오랜 시간을 그의 뒤를 쫓아 왔지만. 이제 더 이상 뒤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푸른 길이 어두운 성을 가로질렀다.

이것이 그녀가 보는 환상이나, 그녀의 망상이라 하더라도. 이 길의 끝에 페르난데스가 있을 것임을 확신하며. 키르하스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청록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페르난데스는 이제 더 이상 혼자 걷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만들리라. 바이에미어의 검은 그의 의지와 명예처럼 무거웠다. 키르하스는 칼자루를 꽉 틀어쥐고 속삭였다.

“나는 키르하스. 칼라니 씨족의 말예. 키르하스 하트테이커다. 키르하스 칼라니. 칼라니 하트테이커.”

페르난데스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그가 그리는 거대한 그림이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지만. 함께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걸어갈 수 있기를.

“더 이상 짐으로 남지 않아.”

*

-콰드드득.

페르난데스는 갑옷을 찢으며 파고드는 검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훌륭한 검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그는 검술에 썩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다.

힘과 반사신경, 그리고 온갖 가호로 무장한 채 밀고 들어가는 편이었다. 그런 자신의 움직임을 버텨낼 수 있는 정도의 검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녀석이었다.

-우드득.

결국, 검의 자루가 뜯어져 나갔다. 페르난데스는 잠시 아쉬는 눈길로 자루를 바라보곤, 바닥에 던졌다. 등 뒤로, 비센테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피고의 변론은 기각한다.”

[그 놈이 나의 마지막 졸개는 아니다. 이 어리석은 필멸자야. 나는 네가 생각할 수도 없는 시간을 거슬러 바로 여기에 왔다. 내가 삼킨 죽음이 비단 저 자 하나 뿐이었겠느냐?]

노왕은 거칠게 소리치며 팔을 휘둘렀다. 그렇지 않아도, 페르난데스는 놈의 손짓, 만트라, 그리고 이 어전을 휘몰아치는 마력을 읽고 있었다. 네크로폴리스의 마법은 익숙했다.

“수립, 기상, 회귀, 원형, 증오, 밤. 그리고 제 3 독립어절의 중추 마력 순환계통 강화.”

[···!!]

페르난데스는 어전의 한 가운데에 떠 있는 구체를 향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익숙한 마법이었다. 소환과 공간 계열 학파의 주문이다.

단거리 공간 도약 기술이었다. 끔찍하게 불안정한 영체 유지 기능 탓에 생명체를 이동시킬 수는 없었지만, 시체는 영자가 다소 손실되더라도 괜찮으니, 네크로맨서들도 종종 애용하곤 했다.

-쿠르르릉.

페르난데스는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기척들을 느끼며 이 도약 주문의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법진의 구성을 읽어냈다.

“나였다면 제 2 어절에서 삼등변 보완구를 추가했을 것 같군. 그 편이 마력 순환에 안정적인 구조가 아닌가?”

[···너, 마학자였군.]

현대 마학의 관점에서, 라고 말하려다가.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그가 생각하는 현대 마학은 적어도 칠십 년 후의 학계 흐름을 의미했다. 지금은 그의 기준에선 근대 마학이었고, 네크로폴리스의 마력 구성은 심지어 고대 마학의 영역에 있었다.

마법사는 신비와 비전을 다루는 이들이다. 널리 알려질수록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제국의 마법대학들처럼 마법사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산할 생각이 아니라면, 비전이 누설되더라도 물량으로 압도하겠다는 계획이 아니라면.

“네 말은 이젠 지겨울 정도야. 파프테트. 그렇게 말한 놈들이 너 하나가 아니었고, 그 말 이후에도 살아있는 녀석은 손에 꼽지.”

-없지 않던가?

‘없었나?’

설마 그 많은 놈들을 다 죽이진 않았을거야. 페이자쉬의 말에 페르난데스는 잠시 신음했다. 노왕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페르난데스를 가리키며 외쳤다.

[네가 마학자라면 지금 이 주문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겠지! 네 놈과 네 놈의 신들은 이번에도 늦었다!]

노왕은 오만하게 소리쳤다.

[이미 나의 군세가 당도했다. 너희는 늦었어! 이 도시는 주인님의 손에 봉헌될 것이다!]

“군대? 워커와 누더기들, 부랑자들이 모인 시체 민병대들이 네 군대라는 거냐?”

대규모 네크로맨시 주문이 발동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시간을 벌기 위해 놈이 지금 이런 소꿉놀이를 벌이고 있다는 것 또한. 페르난데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무장하지 않은 언데드는 죽이기 까다로운 민병대와 다를 바 없었다.

[죽음이 도래했다. 이단심문관. 사자의 군단이 이제 곧 이 도시의 경계를 넘어 오겠지. 아니! 그 전에,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죽음조차 너희는 상대할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비센테가 당황하며 외쳤다.

“이 도시의 지하엔 시체를 매장하지 않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시체들이 없어!”

[하하하, 없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냐?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알트베르트의 평원엔 매장 시설이 없었다. 언데드를 극도로 혐오하는 도시의 특성상, 알트베르트의 장례 풍습은 언제나 화장이었다. 그러나, 그 유해를 온전히 보존한 망자가 이 도시의 지하엔 있었다.

비센테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굳어졌다.

-쿠르르릉!!

곧, 굉음과 함께 거센 진동이 왕성을 덮쳤다. 페르난데스는 흔들리는 바닥을 짚으며 알현실 한 가운데에 떠 있는 구체를 노려보았다. 공간 도약 술식. 기능이 보장되는 거리는 아무리 멀어도 300m 내외.

이 주문과, 네크로폴리스의 마력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 마법진이 저 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네크로맨서들이 지금 이 자리에 시체를 공급하고 있는 놈들의 심장부가 저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마도···.

[자, 너희 시대의 전설이 돌아오고 있노라!]

노왕이 음산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페르난데스는 혀를 찼다. 저 놈은 너무 오래된 영혼이라 말하는 투가 너무 진부했다.

-쿠르르릉!!

알현실의 창 너머로, 도시의 한켠에서 흙먼지가 솟구치는 광경이 보였다. 비센테와 기사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게 신음했다.

흙먼지가 비산하고, 그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어른거리며 거대한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건물 크기의 손이었다. 하늘을 향해 오만하게 치솟은 창백한 손이, 잠시 구름을 흩어 놓듯이 흔들렸다. 마치 하늘을 떠받히고 있다는 전설 속 기둥처럼.

-콰아아아앙!!!

곧, 엄청난 지진이 도시를 휩쓸었다. 파괴된 건물의 잔해들이 선연하게 보였다. 단 한 번의, 공격조차 아닌 단순한 움직임에 도시의 한 구획이 완전히 파괴되는 광경을 바라보며, 비센테가 신음했다.

“언덕···거인···.”

[그래. 신의 사생아가 다시 돌아왔다. 필멸자들아. 다인 왕이 죽은 이후, 그 누가 저런 존재를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느냐?]

노왕이 비웃듯이 말했다. 페르난데스는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을 가득 채운 화려한 색조의 낡은 벽화들을.

용과 기사의 조각상을.

-콰지지직!!

거인이 만들어낸 지진 때문일까, 천장에 거대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고 허물어질 듯이. 페르난데스는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깊게— 미소 지었다.

-콰르르릉!!

검붉은 비늘 덮인 짐승의 발이 지붕을 뜯어내고, 빗물이 폭포처럼 어전 위로 쏟아져 내렸다.

[뭐?!!!]

노왕은 당황하며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붕이 뜯어져 나가며, 그 사이로 거대한 발이 보였다. 굵고 단단한 발톱과 그 위로 뻗어 있는 대리석 기둥 같은 근육,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검붉은 비늘.

[뭐···? 뭐? 아니야. 아니야! 이건 말도 안된다!! 저, 저걸 되살린 기억은 없는데!!]

“···어, 어?!”

비센테와 노왕이 비명을 내질렀다. 페르난데스는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빗물을 온몸으로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안개에 휩싸인 저 위에서, 푸른 눈동자가 타오르듯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 있었구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아주 적절하게 찾아 왔소.”

-촤르르륵.

아벨레사스의 목에서, 검은 사슬이 내려와 페르난데스의 왼팔에 감겼다. 지배의 술식을 타고, 그녀의 마력이 그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샤일드의 축복과 디모니카의 혈액은 마법을 거부하지만.

그 탓에, 이런 방식의 마력 확보는 오히려 그의 목숨을 살라먹겠지만. 페르난데스는 아벨레사스의 몸짓을 따라 흔들리는 사슬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차피 이 육신의 수명은 이제 십 분도 남지 않았다.

“하나씩 해결해보지.”

그는 붉은 용이 평원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벽화를 바라보았다. 어전의 석주 사이로, 묘사화와 벽화들 사이로. 아벨레사스의 발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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