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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72화 (73/388)

< 72. 왕이여, 왕이여. (2) >

*

-쏴아아···.

빗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데인 왕의 안광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위압감이 몰아치고 있었다.

[벨라윈?]

‘···뭐?’

데인 왕이 갑작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는 차가운, 영혼을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페르난데스를 내려 보았다.

[벨라윈. 어째서 짐을 공격했느냐?]

‘말이 통한다고?’

-이성이 없진 않아. 제정신은 아니겠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만들어진 죽음의 기사군.

데인 왕이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조금만 더 가까워진다면 그의 검에 닿을 거리였다. 페르난데스는 자세를 도사리며 조심스럽게 사태를 관망했다. 빗방울이 쏟아지는 영역으로 데인 왕이 걸어 왔다.

-절그럭.

[어둡구나.]

-화르륵.

그 말과 동시에, 동공의 벽을 따라 횃불이 푸른 빛을 내뿜으며 타올랐다. 페르난데스는 그제야 데인 왕의 모습을 올곧게 볼 수 있었다. 거대한 골격, 두꺼운 갑주와 왕관. 그리고 거대한 양손대검까지.

데인 왕은 건틀릿을 쥐었다 펴며 잠시 멈춰서 있었다. 그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무언가 고민하는 듯 했다.

[벨라윈. 네가 짐을 배신했구나. 너에게서 기척이 느껴진다.]

-화륵!

데인 왕의 안광이 거칠게 불타올랐다. 리치 특유의 생명 감지, 그리고 정점에 도달했던 기사 특유의 본능일까? 아니면, 매장 교단과 오랜 세월 싸워온 경험이 만들어낸 소산일까.

놈은 정확히 페이자쉬가 떠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게 죽은 자가 씌여 있구나. 벨라윈. 짐의 오랜 전우. 짐의 가신.]

-스르릉.

데인 왕이 바닥을 짚고 있던 대검을 뽑아 올렸다. 그는 천천히 검을 겨누며 말했다.

[네게 명예로울 기회를 주마. 사자의 기사 벨라윈. 자결해라.]

데인 왕의 말에 페르난데스는 혀를 찼다. 말로 해결하거나, 그 외의 다른 방법을 써볼 시간이 없었다. 놈을 되살린 주문의 연료가 다 될 때까지, 혹은 놈의 머리의 파괴할 때까지. 데인 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검으로 저 놈을 죽일 수 있겠나?

‘다이란 쉬라이크보다 결코 아랫줄은 아니겠지?’

-그 개자식보다 약해 보이지는 않는군.

페르난데스는 입술을 깨물며 데인 왕을 노려 보았다. 데인 왕은 고개를 가볍게 한 번 흔들고는 대검을 들고—

한 순간 빗방울이 멈췄다. 정적에 휩싸인 장내에서, 검이 내려 그이며.

[짐이 도와주마.]

공간이 갈렸다.

-콰아아앙!!

그 일격을 피해낸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대검은 있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여 페르난데스가 서 있던 공간을 치고 지나갔다. 엄청난 힘? 아니, 힘의 영역이 아니었다.

검으로 공간을 갈랐다고?

페르난데스는 그 여파에 흔들리는 몸을 간신히 다잡으며, 데인 왕의 빈 허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쨌건 공격하지 않는다면 이길 수 없다!

-콰아앙!

[저열한 수로다. 벨라윈. 사자의 기사라는 이름이 울겠구나.]

데인 왕은 허리를 비틀어 검을 피하며 페르난데스의 얼굴을 두꺼운 건틀릿으로 후려쳤다. 순간 세상이 어둠에 휩싸이나 싶더니, 어느새 그는 다섯 바퀴 굴러 바닥에 누워 있었다.

-페르난데스, 정신 차려!

‘어?’

페르난데스는 황급히 몸을 튕겨 일어나며 맞은 자리를 만졌다. 그만한 공격이었는데, 충격도 고통도 없었다. 잠시 인식이 점멸한 것 같았다. 상처가 없었다!

-방금 한 번 죽었다.

‘···제기랄.’

성흔이 깜빡이는 것이 느껴졌다. 불사는 완전하지 않다. 완벽한 불멸이란 있을 수 없다. 저 만신전의 신들조차 언젠간 죽는다.

불사에 의존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페르난데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권능에 기댈 순 없었다.

[사술이 너를 되살렸구나. 일이 그러하니, 자결하지 못함을 짐이 이제야 이해했다. 샤일드여 가호하소서. 짐이 네게 안식을 되찾아 주리라.]

데인 왕이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검을 들어 올렸다. 잠시 그의 부츠가 바닥을 딛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의 바로 앞까지 달려 들었다. 놈은 맨몸으로 숙련된 기사의 기창돌격을 재현해냈다!

-콰아아앙!

페르난데스는 반 박자 빠르게 바닥을 굴러 피하며 허리를 튕겼다. 페르난데스의 검이 데인 왕의 등허리를 치고, 멈춰 섰다.

-콰드드득!

“큭!!”

거의 돌덩어리를 때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그의 머리 위로 기둥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데인 왕은 거칠게 공간을 갈아버리며, 연신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콰앙!

멈춰 설 시간이 없었다. 페르난데스는 연신 바닥을 굴렀다. 다행히, 죽음의 기사들이 으레 그렇듯 놈 또한 행동과 행동 사이에 빈틈이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빈틈을 정확히 찔러도 공격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점 뿐!

-머리를 노려야 해!

‘나도 알아. 니가 해봐!’

-나였으면 이미 죽였지. 어리석은 놈.

‘···.’

페르난데스는 언젠가 페이자쉬가 실체화 할 날이 온다면, 반드시 한 방 후려쳐 주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어쨌건 우선 저 놈을 처리해야 한다!

-콰아아앙!

다시, 공간이 갈려 나갔다. 데인 왕의 검이 거친 궤적을 그려내며 간격을 점해가고 있었다. 그 충격에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데인 왕의 다음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었···.

-촤르륵.

‘어?’

한 순간, 그의 왼팔에 걸린, 부서져가는 사슬이 보였다. 한눈 팔 시간이 없었지만, 극도로 고양된 페르난데스의 정신은 그 순간에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사슬을 인식했다!

‘페이자쉬, 널 본게 아니었어!’

-뭐?

‘데인 왕이 본건, 네가 아니었다고! 제기랄. 파프테트의 파편이 뒤섞였군!!’

공간 도약 당시, 그의 육신이 도약 과정에서 으스러지며 뒤섞일 때, 지배의 주문을 이어 두었던 파프테트의 영체가 그의 영혼에 일부 섞였다!

그의 영육엔 신성이 흐른다. 그 탓에 파프테트는 이제 거의 소멸하기 직전이었지만, 데인 왕을 되살린 주문은 놈과 네크로폴리스의 것이었다. 왕이 본 사술의 흔적은 그것이었겠지.

-그래서 뭐. 달라지는 게 있나?

‘이젠 도박이야. 열 번 이하로 죽는다.’

페르난데스는 검을 왼팔에 쥐고, 지배의 사슬을 조작했다. 부서져가는 사슬이 검신을 타고 엉켰다.

-콰아아앙!

공간을 가르며, 데인 왕의 대검이 내리 꽂혔다. 페르난데스의 검이 갈라지는 공간 사이를 파고들고—

-콰드드득!!!

검의 혈조를 타고 놈의 대검이 거칠게 페르난데스의 검을 갈아냈다. 불똥이 어지러이 튀었다. 그는 간신히 데인 왕의 검을 흘려내며, 그의 건틀릿에 사슬을 이었다.

아직 부족하다!

-콰직!

왕의 대검이 그의 허리를 치고 지나갔다. 한 번 죽었다! 페르난데스는 죽음과 부활, 수육과 회복 사이에서 명멸하는 시야로 데인 왕의 푸른 안광을 바라보았다.

*

그 순간, 불타오르는 마을이 보였다. 타오르는 마을을 배경으로 괴물에게 쫓겨 도망치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

지배의 사슬이 데인 왕의 건틀릿에 감겨 끊어질 듯 비틀렸다. 페르난데스는 데인 왕의 영혼을 느꼈다. 거대한, 압도적인, 동시에 거칠게 불타오르는 영혼을.

-···방금?

‘그래. 영혼의 계수가 맞춰지고 있어.’

-위험한 방법이야.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어?

‘다른 수가 없다.’

육신이 죽는 순간에도 지배의 사슬이 이어진다는 것을 파프테트의 경우로 증명했다. 그 과정에서 영혼이 섞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억지로 데인 왕의 몸에 사슬을 걸고, 매 순간 죽어가며 놈과 영혼을 섞는다! 영혼의 계수를 억지로 맞추고, 놈에게 걸린 타락을 나누어 받는다.

천오백 년, 그 기나긴 세월 데인 왕의 영혼에 쌓인 타락의 묵은 때를. 나누어 받겠다!

-콰아아앙!

다시 놈의 검이 빗물을 으스러트리며 거리를 좁혀왔다. 페르난데스는 오히려 그 안으로 몸을 집어 넣으며, 사슬이 걸린 검으로 데인 왕의 가슴을 찍었다.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

-콰드드득!

데인 왕의 흉갑을 거칠게 긁으며, 사슬이 한 가닥. 데인 왕의 갑옷에 파고 들었다.

*

호수에 누워 잠든 거대한 붉은 용과, 그 앞에서 검술을 단련하는 어린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맑고 깨끗한 하늘, 숲, 호수.

*

“크으···으아아!!”

짧은 순간 일어난 영혼의 공명이 페르난데스의 정신을 파괴할 듯 뒤흔들었다. 데인 왕의 기억이 그에게 흘러 넘치고 있었다. 일반인이었으면 수십 번은 더 붕괴되었을 자아가, 그리고 육신의 고통이!

하지만 한번 더. 여기에서 멈춰 설 수는 없었다. 한번 더!

-콰아아앙!!

*

세상은 언제나 적대적이고, 타락이 만연해 있다. 청년은 눈을 뒤집은 채 달려드는 광인의 목을 베어내고 생각했다. 그의 주위엔 시체가 가득했다. 백 명의 악인을 베어 한 사람의 선인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맹세했던 날이 있었다.

*

너무 심한 일체감에, 짧은 순간이지만 페르난데스는 그의 감정까지 공유했다. 데인 왕의 싸늘한 푸른 눈을 바라보며, 그는 감기는 눈을 억지로 치켜 떴다.

여기서 정신을 놓을 순 없다. 지배의 사슬이 다시 데인 왕의 몸을 파고 들었다. 동시에, 데인 왕의 대검이 그의 몸을 세로로 쪼개며 들어갔다.

*

그 날은 형제가 죽었다. 어제와 같이. 내일도 아마. 타락한 민중, 악에 물든 기사. 적국의 병사. 음식에 독을 타는 시종. 그 누구에게라도.

청년은 식은 형제의 몸을 끌어 안고 눈을 감겨 주었다. 네 업은 내가 잇겠다. 편히 쉬거라.

그는 다시 검을 쥐고, 전장으로 나섰다.

*

-정신 차려라 페르난데스!!

‘···내가 몇 번 죽었지?’

-다섯 번.

‘아직 괜찮아.’

공간 도약 당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횟수가 열 번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멍한 머리로 검을 휘둘렀다.

-채앵!

-막았, 막았어?!

데인 왕의 검을, 페르난데스의 검이 허공에서 막아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의 검을 타고 사슬이 데인 왕의 검에 이어졌다.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뒤섞인 영혼으로. 데인 왕의 기억과 감정 뿐만 아니라 경험까지. 페르난데스의 영육에 섞여 들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검술은 데인 왕의 것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막고, 흘리고, 튕기며.

-챙! 챙! 카드드득!

데인 왕의 검이, 사자가 몸부림치듯이 비틀리며 페르난데스의 검을 튕겨냈다. 그 사이로 파고들어, 그의 가슴을 찔러 들어왔다.

사슬이 한번 더 이어졌다.

*

늪지의 괴물은 너무 강대한 상대였다. 죽은 그의 부하들과, 쓰러져 헐떡이는 기사들이 보였다. 청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다가오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놈은 오만하게 웃으며, 마치 조롱하듯이. 늪지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져 있던 한 병사를 들어 올렸다.

놈의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였다. 병사의 투구가 바닥에 떨어졌다. 앳된 얼굴. 소년병이었다. 놈의 이빨이 소년병의 머리를 향해 다가갔다.

불쌍한 것. 미안하구나. 내가 너희를 지켜주겠다 맹세했건만. 그의 몸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여정의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청년의 머릿속에 어머니, 붉은 용의 자애로운 눈동자가 떠올랐다.

[너는 죽은 너의 동족들을 볼 때 무엇을 느끼느냐?]

‘제 능력이 닿지 않아 그들을 구하지 못했으니, 분노하겠습니다.’

[틀렸다. 아이야.]

용의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용은 두꺼운 발톱으로 그의 머리칼을 흐트렸다.

[다인. 내 아이야. 네 이름의 뜻은 우리 말로 ‘연민’이니. 너는 그저 그들을 가엾게 여기거라.]

청년, 다인의 팔이 바닥에 떨어진 강철 대검을 쥐었다. 검의 표면엔 그의 이름이 삐뚜름하게 적혀 있었다. 다인, 연민.

그는 천천히 일어서 늪지 괴물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괴물은 소년병의 시체를 내려놓고 비죽 웃었다.

*

-챙! 챙! 챙!

엄청난 속도의 검격이 공방을 이어 나갔다. 페르난데스의 검이 이제 거의 데인 왕의 검에 근접해 있었다.

칼날과 칼날이 서로 뒤엉키며 거친 불똥이 비산했다.

‘놈의 검이 무뎌졌어.’

-···네가 빨라진 게다. 페르난데스.

‘내가 몇 번 죽었지?’

-일곱 번.

-챙!

데인 왕의 영혼에 얽힌 업과 타락의 무게가 여실했다. 페르난데스는 뒤엉키는 정신, 그리고 기억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멍한 머리로, 둔해진 감각으로. 그는 연신 검을 휘둘러 쳤다.

-챙!

‘앞으로 두 번 안에 끝낸다.’

그의 등허리에 박힌 성흔이 작은 빛을 내고 있었다. 불굴의 축복. 지옥 마력의 타락조차 이겨내는 축복이, 그의 영혼을 지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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