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75화 (76/388)

< 75. 작전 보고서 : 순회 공연 >

*

페르난데스는 팔뚝에 감은 붕대를 단단하게 조이며 차를 한 잔 마셨다. 폐허가 된 만신의 거리는 재건이 한창이었다. 이 전투에서 가장 큰 공로를 세운 베이타서스 교회의 재건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어, 이젠 어느 정도 교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 지금 잠시 시간이···.”

“아, 키르하스. 대련이나 할까?”

“은공 그···. 팔은 좀 괜찮으신지요?”

아벨이 조심스럽게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페르난데스는 벌떡 일어서서 옆에 앉아 딴청을 부리고 있던 키르하스에게 다가갔다. 키르하스는 아벨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샤일드의 사제가 절대 안정을 취하라 하지 않았나요?”

“원래 디모니카의 근육은 어느정도 운동을 해주는 편이 안정적이야.”

“그···.”

키르하스가 살짝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려니, 아벨이 성난 표정으로 다가왔다.

“페르난데스!! 언제까지 피하고 있을 참이냐!”

정점에 도달한 검사에겐 마력이 깃든다. 페르난데스는 그 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벨의 황금빛 머리칼이 조금씩 떠올라 일렁거리고 있었다!

“아, 잠시, 잠깐만. 아벨리사스···.”

“아벨!”

“···아벨.”

“그래! 대체 무슨 일이냐!”

실제로 사건이 마무리 된 이후부터, 페르난데스는 아벨을 피해 다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와 단 둘이 있을 시간을 최대한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벨은 미칠 지경이었다. 다인의 망토, 다인의 검. 그리고 다인의 검술까지! 그날 왕성에서 어디론가 사라진 이후에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분위기가 확 달라져서 나타난 페르난데스는 이상하게 그녀와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다.

아벨은 곧, 분노에 치켜 뜬 눈꼬리를 슬프게 내려 깔며 속삭였다.

“이제 내가 필요치 않느냐···?”

놀랍도록 발전한 검기, 그리고 제한적이지만 한 순간씩 보이는 그의 압도적인 마법 능력. 과연 페르난데스에게 더 이상 자신이 필요하긴 할까? 아벨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용으로 변하지 못하는 이상, 그녀는 그저 검술이 뛰어나고 조금 튼튼한 인간 아낙에 불과했다. 아벨이 자조적으로 한숨을 내어 쉬자, 페르난데스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니오!”

“그럼 대체 왜 그러느냐?”

데인 왕의 영혼이 조금 섞여, 아벨을 바라볼 때 마다 마음이 심란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었다. 페르난데스는 아벨의 푸른 눈을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정면으로 그녀를 응시할 수 없었다.

‘제기랄. 페이자쉬. 이거 진짜 미치겠군.’

-필요할 때만 찾지 마라.

‘유치하게 굴지 마. 해결책을 찾아봐.’

-감정은 육신의 부산물이고, 육신은 소모품이야. 한 번 죽어보는 게 어때? 상처도 나을 겸 말야.

‘미친소리 하지마.’

페이자쉬가 큭큭 웃으며 사라졌다. 도움 안되는 놈 같으니라고. 페르난데스는 이제 거의 울먹거리는 아벨을 바라보며 점점 더 초조해져 갔다.

데인 왕의 영혼 편린이 그에게 빨리 그녀를 위로하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환지통이야. 내게 실제하는 감정이 아니야. 나는 감정의 배출구나, 꼭두각시가 아니다.’

페르난데스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 아벨을 내려 보았다. 아벨은 물기 젖은 눈망울로 슬프게 눈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이제야 이야기할 생각이 들었느냐? 그, 그래. 좋다. 네 검과 그 검술에 대해, 그리고 거기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벨의 눈이 반가움에 크게 뜨였다. 사태가 정리되고 거의 열흘간 그녀는 페르난데스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이 시대에, 그녀에겐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를 제외하면 맘 편히 대화할 상대가 없었다.

“그래 여기 앉아 보시오. 어디부터 이야기해···.”

-끼이익.

그렇게 말하려는 찰나, 성당의 입구가 크게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끼곤 정중하게 경례를 붙였다. 파프나르메어, 알트하이스의 새 영주였다.

아벨은 거의 잡아먹을 듯 그를 노려보았다. 전설 속의 용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살짝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 파프나르메어 경. 어쩐 일이오?”

“알베트르 경, 전하께서 찾으시오.”

“나를?”

“베이타서스 교황청에서 연이 왔소. 그리고, 페이른의 사절이 찾아 왔소.”

“앞장 서시오.”

페르난데스는 아벨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벨은 파프나르메어를 한 번 노려보고는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었다.

“다녀와서 설명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을 게다.”

“그리 하겠소.”

“꼭.”

“···꼭.”

“다녀 오거라.”

페르난데스와 파프나르메어는 교회를 벗어났다. 맑은 날씨, 초봄의 햇볕 아래엔 도시를 재건하는 건설이 한창이었다.

“페이른의 사절이라, 좋지 않을 때 왔구려?”

“아마도 보고 싶겠지. 수도가 반파되었다는 소문은 이미 듣지 않았겠소.”

“전쟁을 염두하고 계시오?”

“내가 페이른 왕실이라면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게요.”

파프나르메어는 젊은 기사답지 않은 진중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이 나이 또래의 기사들은 으레 명예에 취해 전장으로 목숨을 내던지기 마련이었지만, 그는 그의 조부를 더 많이 닮은 것 같았다.

강철의 기사 바이에미어. 페르난데스는 함께 걷는 이 젊은 기사에게서 바이에미어의 마지막 모습을 비쳐 보았다.

“하지만 이제 원탁 의회가 재건되었고, 새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전국의 기사들이 모이고 있소. 이런 시기에 전쟁을 벌인다면.”

바이에미어는 왕성으로 향하는 대로변에 놓인, 거인의 두개골을 바라보며 웃었다. 햇볕에 갈색 곱슬머리가 찬란하게 빛났다.

“글쎄, 그땐 원탁 기사와 페이른의 그리핀 나이츠 중 누가 더 강한지 알 수 있지 않겠소?”

*

비센테는 아직 자신의 머리 위에 놓인 금속 악세서리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연신 머리칼을 짓누르는 왕관을 고쳐 썼다.

“처신이 좀 떨어집니다. 폐하.”

“하하, 팔리아메인 경. 체면은 몸가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오.”

“말은 청산유수십니다.”

팔리아메인은 껄껄 웃으며 비센테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어전으로 향하는 긴 회랑은 잔뜩 긴장한 기사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비센테의 발걸음에 맞춰 한 명씩 부복했다. 비센테는 그들의 사이를 걸으며 말했다.

“페이른 사절이 무슨 생각일 것 같소?”

“지금 공격해도 뭇 나라들의 지탄을 받지 않을까. 그리고 데인 왕국은 잡아먹을 만큼 약해졌는가. 대충 이런 계산을 하고 있겠죠.”

“그렇겠지. 하하.”

팔리아메인은 그의 곁에서 웃으며 걷는 젊은 왕을 바라보았다. 회랑의 석주 사이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초봄의 햇살에, 왕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자를 닮은 그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한때 전대, 헬르가 왕 또한 젊은 시절 저런 모습이었다.

용의 얼굴을 정교하게 세긴 석문 앞에 다다르자, 근위병들이 정중하게 절하고는 급히 문을 열었다.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어전의 모습이 보였다.

-끼이익.

“위대한 데인 왕의 후계자이시며, 원탁 의회의 수장이시며, 또한 수천 기수의 주인이신 분, 뿔나팔의 지배자. 비센테 왕 만세!”

“왕가의 영광을!!”

어전에 가득한 기사들이 일제히 일어서며 크게 소리쳤다. 페이른 왕실에서 보낸 사절들이 어전의 한 구석에 겁에 질린 채 서 있었다. 비센테는 그들의 곁을 당당하게 걸으며 융단을 밟아 금지를 넘었다.

팔리아메인이 그의 곁에서 멀어져 군중 속에 섞였다. 비센테는 홀로 옥좌가 있는 단 위로 올랐다. 붉은 융단이 부드럽게 밟혔다. 그는 그 감촉에 만족스레 웃으며 옥좌에 기대어 앉았다.

“영원한 영광을, 명예로운 가신들이여. 시작하지.”

-스르릉. 콰직!

어전의 금지(禁地)가 무장한 채 밟은 수 없는 선이라는 뜻은, 어전 자체엔 무장이 허가된다는 뜻이었다.

어전에 모인 기사들 중 그 명성이 부족한 이가 없었다. 그러한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그대로 바닥에 박았다. 어전의 중심을 둥그렇게 서서, 원을 이루며.

원탁 의회가 부활하고 있었다.

비센테는 사납게 웃으며 그들을 내려보았다. 기사들의 검이 햇살을 받으며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어전엔 천장이 없었다. 아, 우리 시대에 돌아온 전설이 천장을 뜯어 갔지.

“자, 제군들. 왕가의 기수들. 원탁 의회를 개회하겠소. 발언하시오.”

왕의 말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기사들이 감격으로 눈을 감고 잠시 떨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열리지 않던 의회였던가. 만검(萬劍) 의회, 원탁 의회. 열세 명의 원탁 기사와 그 가신들로 이루어진 데인 왕실 최고 의회가 이제 시작되었다.

*

[특수 작전 보고서 : 순회 공연]

작전 지역 : 데인 왕국, 알트베르트.

작전 개요 : 데인 왕국 전역에 암약 중인 사교도 조사, 페이른 왕실의 전쟁 위험 억제, 데인 왕실 조사.

작전 경과 :

1) 제스트 백작령 인근에서 사교도의 준동을 감지.

2) 지역 조사 도중 식인 행위를 벌이는 불법 난민촌 발견, 조사 실행.

3) 난민촌에서 레바인테르 제국의 아이언사이드 현지 요원과 접촉.

4) 난민촌 조사 도중 네크로폴리스의 망령을 발견, 처치함.

5) 네크로폴리스의 잔당 처치를 위해 제스트 백작령 탐사, 추적 후 처치함.

6) 제스트 백작령에서 비센테 왕(접촉 시점 당시 헬르가 왕자)과 접촉.

7) 왕과 동행, 알트베르트의 조사 실시.

8) 알트베르트 시장 지역에서 사교도 정확 포착, 마녀 재판 시행.

9) 네크로폴리스의 망령 포착, 헬르가 왕을 가장하고 있었던 정황 파악.

10) 비센테 왕과 동행, 네크로폴리스의 망령 처치 (붙임 1 : 왕가 서한)

11) 도시 내, 언데드 거인의 난동으로 도시 기능이 정지됨.

12) 도시 외부에서 발발한 대규모 언데드 사태 발생 (붙임 2 : 알트카이른 전투 보고서)

13) 언데드 거인과 교전 후 처치.

14) 왕실 기능 복구 및 대관식 진행.

15) 알트베르트 내 추가적인 이단 정확 포착 실패. 완전 정화 상태 추정.

16) 만신전 교회의 재난 지원 성명 발표를 요청 (붙임 3 : 성명 요청서)

17) 비센테 왕의 친선 및 지원 밀약을 확보 (붙임 4 : 베이타서스 교황청 비공식 서한)

작전 테스크포스 팀.

1)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 복귀

2) 토치맨, 키르하스 하트테이커 – 복귀

3) 토치맨, 아벨 – 복귀

4) 헤레티카, 바레인 – 사망

악마, 이단, 마녀를 불태우리라.

작전 책임자 :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

-탁.

베오른은 거의 내던지듯 보고서를 내려놓고는 외눈 안경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는 피로에 검게 물든 눈으로 제피스를 마주 보았다. 베오른의 이런 행동은 벌써 열 번째였고, 제피스는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떻게 생각하나?”

“훌륭하군요.”

“훌륭해?”

베오른은 잠시 눈을 감았다. 페이른 왕실과 데인 왕국의 전쟁 위험 억제를, 사제 신분임을 들키지 않고 해결해봐라. 이것이 그가 내렸던 명령이었다. 최선의 결과라면 외교적 승리일 것이고, 최악의 결과라면 전쟁의 촉발이었겠지.

그런데, 갑자기 왕위 계승에 관여했다고? 그리고 수도에 거인? 네크로폴리스? 레바인테르 제국의 아이언사이드 현지 요원? 대규모 언데드 군사 준동? 갑자기 새로 즉위한 왕이 샤일드 교회보다 베이타서스 교회에 먼저 밀사를 보내?

베오른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가득해지고 있었다. 그는 무겁게 머리를 털어 그것들을 떨쳐내곤 한숨을 내쉬었다. 제피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확실한 것은, 이 보고서가 온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보고서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베오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보고서를 상신 받은 시점에서, 그 즉시 현지 조사원으로 헤레티카들을 파견한 이후였다.

“그래. 용에 대한 언급이 없더군.”

“그런 실수를 할 녀석은 아닙니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숨기려 했을 겁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우리에게 샤일드의 성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숨긴 이유와 같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데인 왕의 재림이란 소문도?”

“그럴 겁니다.”

베오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신음했다. 현지 헤레티카 요원들이 조사를 실시했을 때 데인 왕의 재림이자 샤일드의 성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알트베르트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게 페르난데스를 의미하는 것이란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가호를 받았든 아니든, 시민들은 그를 샤일드의 성자이자 기사왕의 지상 대리인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영리하게도, 페르난데스는 고대의 위험이 도래하자 기사왕이 임재하여 백성을 지켜 내었으니, 이것이 데인 왕가의 정통성을 의미한다며 대뜸 비센테 왕을 지지해 버렸다.

대단히 정치적이게도, 샤일드의 성자가 데인 왕실을 지지함으로서 페이른 왕실의 전쟁 계획에 억지력을 확보했고, 동시에 베이타서스 교회는 이 외교전에서 방관자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교황청에선 샤일드 교단에서 보낸 항의 서한이 산처럼 쌓여 있겠지.

“···샤일드의 시성 자문단은?”

“도착하려면 한 달은 더 걸릴 겁니다. 그 사이에···.”

“위대한 기사 알베르트는 거품처럼 사라지겠군. 아주 깔끔해.”

“진짜 샤일드의 가호를 받았을지 궁금하군요.”

“그게 어떻든 상관 없네.”

베오른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샤일드의 성흔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페르난데스는 샤일드의 성자로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을 모두 얻어내고 정치적 부담을 받기 전에 몸을 뺐으니까.

베오른은 로사리오의 표면을 쓰다듬으며 깊게 한 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이단심문관이 아니었다면, 대체 뭐가 되었을까.’

이단심문관은 악마를 추적하고, 이단은 악마를 추종한다. 그건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이단심문관의 재능은 동시에, 이단과 사교도들의 재능과 같았다. 베오른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보고서를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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