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79화 (80/388)

< 79. 파견 임무 : 사막 곡예 >

*

베인 셀든버그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모사트 시는 이미 50년 전쟁 초기에 키르자트의 영토에 속했고, 분쟁 지역과 다소 먼 거리에 있는 비교적 평화로운 상업 도시였다. 그런데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위잉! 위잉! 위잉!

사방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력 경보기가 내는 소리는 마치 점점이 들어오는 봉화처럼, 점차 가까워졌다. 두꺼운 나무문 너머, 저 복도 어딘가에서 훈련된 전사들이 발작적으로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이보게! 이보게!!”

“쉿, 안에 들어가 있으쇼.”

문 밖에서 험상궂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용병들이었다. 베인은 그 무례함에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공포와 본능이 그를 억누르고 있었다. 문 밖에선 용병들이 재빨리 뛰는 소리가 들렸다.

“너, 동쪽 복도에 척후! 너, 너! 나를 따라와. 나머진 여기에서 대기해!”

“네, 대장!”

-쿵쿵쿵

용병들은 구르고 구른 사막 전사들 답게 재빨리 멀어졌다.

-콰직!

“?!”

베인의 귀에 질척한 소리가 들렸다. 물컹한 과일을 으스러트리는 듯한 소리가. 그는 그것이 그의 공포가 만들어낸 환상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콰직.

-콰직.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베인은 조심스럽게 칼자루를 쥐며 긴 호흡을 내뱉었다. 그는 오래 묵은 흡혈귀 중 하나였고, 위대한 셀든버그 가문의 일원이었다. 공포는 그에게—

“헉!”

-콰직.

이번엔 문 바로 앞 복도에서 들렸다. 작은 호흡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베인은 칼을 뽑아 천천히 문을 향해 겨눴다. 칼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툭.

“히익!!!”

문 바로 앞에 무거운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곧, 스르륵 미끄러지는 소리도. 그의 예민한 후각이 진득한 혈향을 맡았다. 핏물이 문틈 아래로 스며나와 그의 발치 바로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본디 그는 피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오히려 즐기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밤의 축복을 받은 이후 처음으로 피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항상 포식자의 입장에 서 있던 그가, 이제 피식자로 떨어지며 느껴지는 무기력함이란.

“저, 저리 꺼져라. 나는 네가 두렵, 두렵지 않아!!”

그는 혀를 깨물어가며 가까스로 단어를 내뱉고, 참 용기 있는 어휘였다고 자조했다. 어떤 멍청이도 이런 위협에 물러나지는 않으리라. 어쨌건 이 테러리스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건, 대화만 걸어준다면 뭐든 쥐어줄 생각이었다.

대화만 걸어준다면.

-콰직!!

“히, 히익!!”

나무문을 꿰뚫고, 거대한 칼날이 파고들었다. 문틈을 향해 공격할 요량으로 몸을 도사리던 베인은 혀를 깨물며 뒤로 뛰었다. 곧 칼날이 빠져나가고, 그 얇게 벌어진 틈 사이로 무언가 푸른 빛이 반짝였다.

베인은 침을 삼키며 그것이 무엇인지 살폈다. 흡혈귀다운 시야가 그 작고 어두운 틈 사이를 꿰뚫어 보았다. 그것은, 그것은 푸른 눈이었다. 무기질적이고 유리알 같은 눈.

곧 눈이 사라졌다.

“제기랄!! 제길, 제길, 제기랄! 난 그냥 상인이야!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어느 상단에서 보냈느냐! 시, 신전에서 보냈나? 이봐, 이봐 나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아!!”

-콰직!

“히익!!”

문의 다른 한 쪽이 쪼개어지며, 도끼날이 파고든 뗄감처럼 긴 균열이 일어났다. 두꺼운 나무문이 통째로 갈라지고 있었다. 베인은 위협적으로 칼을 치켜들고 외쳤다.

“이, 이름을 말해! 암살자!! 우리 가문이 널 좌시하지 않을 거다.”

“그래야 할 걸?”

“마, 말을 했어!! 그래, 그래! 바라는 게 뭐냐!”

-콰드드득!!

문이 완전히 갈라지며 힘 없이 허물어졌다. 베인은 그제야 오아시스의 무더운 열대야와, 그 사이를 흐르는 진득한 혈향을 온전히 맡을 수 있었다. 불이 꺼진 복도엔 기묘한 벽화처럼 으깨진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좋은 친구들을 뒀더군.”

“···어디서 보냈나?”

“멍청한 질문 같지 않아?”

베인은 침을 꿀꺽 삼키며 눈 앞의 도살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생각보다 어려 보였다. 큰 키와 무기질적인 분위기 탓에 배는 나이들어 보였지만, 얼굴은 아무리 많이 쳐줘도 스물 안팍으로.

검고 곱슬거리는 머리칼과 짙게 찌든 푸른 눈, 하얀 피부. 키르자트 출신 인물은 아니다. 귀족적인 발음과 중저음 목소리로, 정확하게 레바인테르 공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제국 출신?!’

하지만 이 지역은 제국 출신에게 극도로 적대적인 땅이었다. 대체 어떻게? 제국 출신 이방인이 이 도시로 굴러 들어왔다면 도처에 깔린 그의 부하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 이봐. 제국인. 방향을 잘못 잡았어. 나는 정말 그냥 상인이야! 기껏 해야 여기에 식량이나 비단을 좀 사고 팔러 왔을 뿐이라고.”

“그냥 상인이라···. 나이츠필론을 유통하는 마약 카르텔도 물론 그냥 상인 집단이긴 하지.”

“···제기랄. 그건 술탄의 지명이었어!”

사내는 거대한 대검을 어깨 너머로 돌렸다. 그 큰 검날이 등 뒤의 칼집에 수납되는 데에도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그보다 세 단계는 위에 있을 검사란 의미였다.

곧 사내는 품 속을 더듬고는, 편지를 한 통 꺼내 들었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베인 ‘피프스’ 셀든버그. 남부 정글 출신. 포목 상인으로 위장한 채 키르자트와 동부 왕국 연합의 중간 무역으로 왕래. 최근 목격 장소는 케일라스 시의 항구. 최근 케일라스에서 페이른으로 밀수된 나이츠필론을 운송한 것으로 추정.”

“제기랄, 내가 판 마약이 다른 나라에 돌아다닌 것이 내 잘못인가? 그걸 몰래 숨겨 들어간 놈들 탓을 하거나, 페이른 시 가드를 욕해! 나는 그냥 그 도시에서 돈이나 좀 만지려 했어! 합법적인 사업이었다고!”

“불법과 합법은 내 관심사가 아니야. 흡혈귀.”

-탁.

사내는 품 안에 종이를 접어 넣고는 베인을 바라보았다. 무기질적인 푸른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키르자트 샥시시와 접촉해 일을 벌였다는 것이 문제지.”

“···너, 아이언사이드구나.”

“아니라 하면 믿어줄텐가?”

“빌어먹을, 정보가 샜군!!”

-촤악!

베인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서 재빨리 수인을 짚으려 했으나, 곧 단검 한 자루가 그의 손목을 꿰뚫고 있었다. 뽑는 것도, 던지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베인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목을 꽉 틀어쥐며 뒤로 물러섰다.

-탁.

돌벽이 등에 닿았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암살 위협 탓에 창 하나 없는 창고에 숨어든 것이 잘못이었다. 당장 저 문 밖으로 나가기만 한다면 안개화를 사용해 도망을—

“살려주마.”

“···뭐?”

“살려주마 흡혈귀. 샥시시에게 전해. 게임은 공정하게 하자고.”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진 모르겠지만···.”

베인이 노려보자 사내는 어깨를 으쓱이며 옆으로 물러섰다. 복도가 가까웠다. 그는 재빨리 뛰어나가 문틈을 박찼다. 오아시스의 바람이 그의 귓전을 때렸다.

안개로 변하며 이지가 흐려지고,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베인은 낄낄 웃으며 소리쳤다.

“이젠 다신 날 잡을 수 없을 게다!!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어휴.”

사내는 달빛 사이로 멀어지는 베인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

-탓.

지붕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키르하스가 날렵하게 몸을 튕겨 바닥에 착지했다. 그녀는 페르난데스의 곁에 내려앉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근방의 안전은 모두 확보했습니다. 은공. 아벨 님은 랑데부 포인트에서 대기 중이고요. 저 녀석을 그냥 보내줘도 되겠습니까?”

“아이언사이드 흉내를 내고 싶지는 않지만···. 어차피 놈은 내 손 안에 있어.”

페르난데스는 벽에 박혀 피를 흘리는 단검을 뽑았다. 그는 품에서 지도를 꺼내, 그 위에 피를 한 방울 떨어트렸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복잡한 수인을 긋고, 청동 왕좌가 번뜩였다.

-화르륵.

페르난데스의 머리 뒤에서 검은 헤일로가 타올랐다. 키르하스는 그 끈적하고 위협적인 감각에 귀를 내려 깔며 몸을 움츠렸다.

-스르륵···.

지도에 맺힌 핏방울이 저 홀로 움직여 지도 위를 미끄러졌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드넓게 펼쳐진 모사트 시의 정교한 전술 지도에, 붉은 점이 움직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손목을 풀며 지도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시 서부 대로 인근이군.”

“추적할까요?”

“한 시간 뒤에. 샥시시 한 명은 잡아야 일이 좀 편해져. 놈들 거점을 하나라도 더 찾아야지.”

“네, 은공.”

페르난데스는 조용히 눈을 빛내는 키르하스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들은 전장에서 한창 벗어난 상업 도시에 잠입해 뜻밖의 아이언사이드 흉내를 내고 있었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뭄토는 불쾌해 하겠지.’

이 시기에 네크로폴리스 계열 이단 종파들은 황야 곳곳에 세력을 불리고 있었고, 셀든버그가 고용한 용병들 또한 그쪽 계열 전사 집단이었다. 목적도 달성할 겸, 그 과정 중 하나라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은 노동이었다.

아이언사이드 그레이서클 녀석들과의 합작은 열흘 전부터 시작되었다. 페르난데스가 수도원을 벗어나 앙헬라와 접선한 그 곳에서부터.

*

-때는 보름 전.

베오른은 아무 말 없이 명령서를 읽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왜, 마음에 안 드나? 선택은 형제의 몫이야. 이제 임무를 선택할 수 있는 직급까지 올라오지 않았나.”

“제 의견이 반영될 수 있습니까?”

“만일 자네가 원한다면 자네는 이단심문청에서 교황청으로 직렬을 옮길 수도 있네. 교황 성하께서도 그걸 바라고 계실 거고. 자네는 성자가 아닌가.”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어찌 되었건···. ‘파견 임무’라.”

“아이언사이드는 이단심문청과 제법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조직일세. 그쪽에서 정식 공문을 내렸으니, 우리도 진지하게 검토하긴 해야지.”

베오른은 내심 페르난데스가 거절하길 바랬다. 베이타서스 교회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지역에 성자를 파견하는 것은, 대륙 동부에서 활동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 부분을 교황청에 보고하는 입장에서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제국과 키르자트의 전쟁은 전면전이 아닐세. 한때야 그랬겠지만, 지금은 느슨한 국지전과 소모전의 양상을 띄고 있지.”

“전면전보다 오히려 짜증나는 상황이죠.”

“그래. 이단들이 파고들기 더없이 좋은 상황이지. 외부 용병들이 끊임없이 투입되고, 이방인들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둔감해지는 그 시점이.”

“그러니 수도원장님께선, 제가 단순히 아이언사이드의 수발을 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군요.”

“정보 조직에 파견되면 뭐라도 얻어 와야하지 않겠나.”

베오른은 피식 웃었다.

“이단 사교도들이 준동하는 시대일세. 페르난데스 형제. 내가 원하는 것은 제국측의 승리나 전쟁의 종식이 아니야. 누가 이기든 어차피 속세의 일이니.”

“아이언사이드를 이용해라?”

“적어도 그 실체를 파악하고 돌아오게.”

“이 명령서나, 아이언사이드 측에서 제게 보낸 편지는 이야기가 다르던데요?”

“하, 네크로폴리스?”

베오른은 피식 웃었다. 그는 의자를 바싹 당기며 조용히 속삭였다.

“네크로폴리스는 연막일걸세. 놈들이 자네를 콕 집어 요청한 이유는 네크로폴리스가 아닐 거야. 성자를 빌려달라는 요청을 하며, 전쟁터 한복판에 있는.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히 파악되지 않은 고대 유적지를 발굴 하겠다니? 놈들의 노림수는 그게 아니야.”

“저를 밖으로 유인하고 싶어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까?”

“인퍼머르 사태는 동부 왕국 전체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지. 아이언사이드는 이미 자네가 인퍼머르 사태의 배후에 있었다는 걸 파악하고 있을 걸세.”

“수도원장님 뜻은···.”

베오른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웃었다.

“아이언사이드가 자네를 노리는 이유를 알아내게. 이단 사건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 없이 좋겠지. 제국을 압박할 카드 하나를 쥐게 될 테니. 일단 놈들의 뜻대로 키르자트에 파병을 나서게. 그 과정에서 샥시시와 접촉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키르자트와 제국 두 정보기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란 뜻입니까?”

“우리는 속세의 정치에 무조건적인 중립을 선언 했다네. 키르자트의 술탄은 선신 만신전의 권위에 복종했지. 굳이 아이언사이드의 협조 공문에 무조건적으로 응할 필요도, 그럴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어. 페르난데스 형제. 우리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였네.”

“···재밌군요.”

“마음에 들어할 줄 알았지.”

“내일 출발하겠습니다. 수도원장님.”

“무운을 비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베오른의 명령서를 접어 품에 품고는 피식 웃었다. 두 강대국의 정보조직 사이에서 줄을 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는 이런 복잡한 상황이 좋았다.

‘네크로폴리스가 연막이라. 재밌는 의견이야.’

-정말 연막일 가능성이 높지. 페르타스 이전까지 네크로폴리스의 봉인이 풀린 적이 없었으니.

‘우리 손엔 많은 것들이 들어와 있어, 페이자쉬.’

페르난데스는 수도원장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었다. 달빛이 그의 몸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그는 창 밖의, 무성한 침엽수가 하늘거리는 드래곤스파인 산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린 한가지 수에 착수하지 않지.’

-그래. 이 기회에, 네크로폴리스까지 도모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목적이 한결 수월해질 거야.’

가이메른 왕이 말하길, 서부의 대전쟁 사이에 베이타서스의 네 딸 중 한 명이 있다고 했다. 네크로폴리스를 도모하고, 베이타서스의 딸을 찾으며, 아이언사이드의 노림수를 파악하고—

‘50년 전쟁을 끝낸다.’

키르하스 하트테이커를 이용해 수인 호족을 규합하기까지 성공한다면, 불가능한 계획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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