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81화 (82/388)

< 81. 죽음을 기억하라. >

*

수십 명의 사내들이 제각기 복잡한 마법진에 마력을 흘려 넣는 것을 바라보며, 앙헬라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제국 파괴술 학파, 필라인네일 대학 출신 마법사들의 오랜 작업이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앙헬라는 담뱃대에 연초를 채워 넣으며 키득거렸다. 이제 곧 완성된다. 빌어먹을 키르자트 자식들이 감히 대마법 전력을 준비할 수도 없도록. 확실하고 깔끔하게.

“우리 위대한 기사 나으리는?”

“샥시시의 정보원과 접촉했다는 전언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모사트에서 시선을 떼지 마라. 봉화가 올라오면 곧장 시작해.”

“준비는 완벽합니다. 대장님. 걱정 마십시오.”

“아, 아아. 브랜든 브랜든. 그런 말 하지마.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완벽이야.”

앙헬라는 연초를 꾹 누르곤, 손끝을 비볐다. 타닥, 불꽃이 피어 올랐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담뱃대를 빨아들였다. 짙은 담배 연기가 그녀의 숨결에 따라 흘렀다.

“후, 완벽한 것 따윈 없어. 항상 변수는 있었지.”

“어느 누가 이 정도의 마법을 준비 없이 해주할 수 있겠습니까. 대장님. 키르자트의 대마법 반경 바깥에서요.”

“그건 그렇지.”

마흔 명의 숙련된 마법사들이 준비하는 대규모 마법. 사전에 대비하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그 대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역을 향한다면.

이미 발동하기 시작한 마법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의 마법사는 적어도 이 물질 세계엔 없다. 앙헬라는 천천히 다리를 꼬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짙은 연기가 공중에 흩어지며, 기묘한 문양을 그려냈다. 파괴의 잔향, 그 위를 감도는 폭연처럼.

“그나저나, 교회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어쩌겠어? 빌려준 쪽은 저쪽이고, 우린 사전에 그 성자 나리가 갈 곳을 미리 교회에 공시까지 했어. 그리고 베이타서스야, 전쟁의 성자가 전장에서 스러지는 것이 놈들에게 얼마나 명예롭겠나?”

앙헬라는 짙게 웃었다.

*

사디아는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온 얼굴로 표현하며 천천히 지하수로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술탄의 샥시시라면 온갖 종류의 훈련을 딛고 탄생하는 인간병기들이 아닌가? 페르난데스는 생각보다 사디아가 인간적이라 생각했다.

‘연기일까?’

-모지리일 가능성도 있지.

페이자쉬의 말에,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사디아는 어두운 지하수로에서 용케도 오물들을 피해 걸으며 말했다.

“자네 동료들은 언제쯤 온다던가?”

“그리 먼 곳에 있지는 않아. 키르하스가 갔으니 곧 올 거다.”

“쓸모 있는 전력이길 바라네. 콘클라베···. 그 봉인을 내 손으로 직접 풀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군.”

집결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벨을 떠올리며···. 페르난데스는 애써 함께 피어 오르는 수많은 감상들을 죽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눈매, 따듯한 목소리, 하얀 웃음.

지극히 감상적인,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이다. 이런 감정을 내보이는 것은 오히려, 아벨에게 실례가 될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덧씌워 그녀를 대하는 것에 대해, 페르난데스는 일종의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충분할 정도의 강자야.”

“무력의 높고 낮음이 의미 있기를 바라지. 자, 여기부턴 조심하게.

사디아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깊은 지하 수로의 틈새에 손을 짚었다.

-쿠르르릉···.

벽돌이 어긋나며 뽀얀 먼지가 일었다. 곧, 그 사이로 긴 계단이 나타났다. 빛이 닿지 않는 깊은 지하로 향하는.

사디아는 잠시 침을 한 모금 삼키고는 유등을 들어 올렸다.

“지하 세계에 온 걸 환영하네. 젊은 제국인. 우리 함께 살아 나갈 수 있다면 좋겠군.”

*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깊게 들어갈수록, 점점 더 넓어져. 이젠 한 계단에 열 사람이 걸어도 충분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벽에서 음울한 녹색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대지에 녹아 있는 마력석의 흔적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농밀한 마력의 향기에 머리가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내 혹시해서 말하건데, 함부로 공격 주문을 사용하진 말게. 마법사.”

“폭발 위험 때문인가?”

“그래. 정제되지 않은 마력석 광맥 근처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고지. 그렇게 죽고 싶진 않거든.”

그로서는 퍽 쓸모 있는 조언은 아니었다.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사디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역시, 그가 상상한 샥시시의 모습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인간적이라 놀랐군.”

“이단심문청은 그렇다 치고, 아이언사이드 놈들이 과하게 비인간적인 걸세. 다 사람 사는 곳이 아닌가.”

“불멸 대대는?”

“하하, 벌써 우리 전력을 파악하려 드는군. 훌륭한 첩자의 자세일세. 뭐, 불멸 대대 놈들은 인간이라기보단 전투 인형 같은 느낌이지.”

사디아는 긴장을 풀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유등의 불꽃이 벽에 번쩍이는 암녹색 빛과 섞이며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붉은 표시가 되어 있는 계단참 앞에 멈춰 섰다.

“자, 여기 아래부턴 확실하게 네크로폴리스의 영역일세. 저기 저거 보이나?”

“음. 저건 봉인이 아닌데?”

“봉인이 아니라 시험이지. 자격 시험. 우리 요원 셋이 저 문을 넘어가려 시도하다 죽었네.”

약 5m 정도 전방에, 계단을 가로막고 있는 문이 보였다. 굳게 닫힌 석문엔 화려한 갑옷을 차려 입은 해골, 그리고 고대 사제의 법의를 입고 있는 해골 그림이 양각되어 있었다.

법의를 입고 있는 해골이, 무릎 꿇은 해골들을 축복하고 있는 듯한 그림이었다. 그 주위로 상 아시트 시절의 상형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네 죽음을 기억하라. 잊혀질 자들아.”

“···아시트 상형 문자를 읽을 수 있나?”

“기초 소양이지.”

“이단심문청이 확실히 요원 교육은 잘 하는군.”

사디아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작게 감탄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닳고 닳은 요원처럼 보이던 그녀가, 이 유적지 안에서는 어린 아이처럼 느껴졌다.

-우리에 비하면 어린 아이는 맞지. 끽 해야 서른은 되었겠나?

‘아, 그건 그렇지.’

세계를 뒤로 돌리고 이제 일 년쯤 되었으니, 올 해로 그의 영혼은 여든여덟 노마법사의 것이었다.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이 안으로 들어서는 데 필요한 자격이 뭐지?”

“생사의 기로에 섰던 경험. 죽을 위험을 겪은 경험일세.”

“직관적이군.”

영체의 기억과 경험을 분석하는 마법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라···. 확실히 복잡하지만, 오랜 시간 보존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모든 경우에 반드시 작동하는 기관 장치와는 달리, 까다로운 발동 조건이 붙은 주문은 쉽게 증발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이 근방엔 주문에 마력을 공급하는 천연적인 마력 회로들이 매설되어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문을 향해 이어진 마력석 광맥의 흔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거 내 예상과는 다른데?’

-그래. 봉인 당한 게 아닐 것 같군.

전설에 따르면, 네크로폴리스의 몰락은 당대 영웅들의 목숨을 건 분전의 성과였다. 당대 내로라하는 영웅들이 한 뜻으로 뭄토에 대항해 군대를 일으켰다고 했다.

역사학자들이 평가하기를 인류 문명 최초의 세계 대전. 너무 많은 기록들이 전세계 적으로 남아 있어, 사실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전설이다.

최초의 사령술사. 역사상 가장 강력한 네크로맨서. 아니, 네크로맨시라는 학파 자체를 최초로 만든 입지전적 인물. 악몽의 뭄토. 검은 파라오 뭄토.

하지만 이 유적은, 오랜 기간 준비된 무덤 같았다. 내부의 존재를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외부의 침입자들을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단과 같았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페르타스가 당년 네크로폴리스의 봉인을 푼 것이 아니라, 네크로폴리스를 그저 깨웠던 것일 뿐이라면?

‘아벨과 키르하스가 오기 전에 파악해 놔야겠어. 위험할 수도 있겠군.’

페르난데스는 머뭇거리는 사디아의 곁을 지나쳐, 석문의 틈에 손을 얹었다.

-우우우웅···.

석문의 오래된 마력 회로를 타고 거친 마력이 흘렀다. 손끝에 정전기가 이는 듯 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곧, 문이 암녹색 마력에 휩싸이며 타오르는 듯 번쩍였다.

“이게 무슨···?”

사디아가 숨막힌 신음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문이 열리는 광경을 수 차례 봐왔지만, 이런 반응을 본 적이 없었다.

석문에 음각된 해골 그림들이 불길에 따라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구슬프게 흐느끼는 해골, 신랄하게 웃음 짓는 해골. 그들 모두가 페르난데스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의 문턱을 밟아온 경험. 살면서 그런 경험을 얼마나 하겠는가. 수 많은 전선을 건넌 베테랑 군인이라 하더라도 두어 차례 이상 사선을 경험한 뒤엔 은퇴하기 마련이었다. 지독한 PTSD를 겪으며.

그런 베테랑 군인이 이 문을 열 때에도, 잠시 반짝이는 불꽃을 보이던 문이. 지금 이 순간 화려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게냐···?”

한 번? 두 번? 아니 열 번? 저 젊은 기사가 건넌 ‘죽음’이 대체 몇 차례였을까.

‘원탁 기사, 이단심문관, 노련한 마법사.’

전혀 다른 그 세 경력을 동시에 쌓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사디아는 홀린 듯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페르난데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저 푸른 눈으로 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쿠르르릉···.

석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밀렸다. 천천히.

-후우우웅.

녹슨 쇠의 비린내, 늙은 먼지 냄새가 나는 해묵은 바람이 그의 귀밑 머리칼을 헝클이며 지나쳤다. 어둠 속으로, 페르난데스가 한 발자국 내딛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길잡이는 여기서 끝인가?”

“그럴 리가. 가, 가세.”

불가해한 것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사디아가 그의 뒤를 쫓았다.

*

사디아는 이 장소에 도달한 것이 벌써 세 번째였지만, 올 때마다 이 장엄한 유적의 구조에 감탄하곤 했다. 고대 상 아시트 시절 유적들이 으레 그렇듯, 이 유적 또한 규모로 방문객을 압도하는 형태를 취했다.

지하에 파놓은 거대한 공동을 중심으로 성채 만한 크기의 검은 피라미드가 서 있었다. 공동의 천장에 맞닿을 크기의 석주, 오벨리스크가 피라미드로 향하는 돌길을 지키고 있었다.

“오아시스군.”

페르난데스가 천장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천장에선 밝은 달빛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돌이나 흙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 위 저 높은 곳의 천장은 일렁거리는 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사트 시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거대한 오아시스가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밝게 빛나는 달과 그 근방을 떠다니는 구름까지 비쳐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었다. 저 위 지상에서 바라보면 그저 검은 심연 뿐이겠지.

“모사트 시의 오아시스는 물을 긷는 것, 그리고 얕은 물가에 입수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깊은 곳으로 들어서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 들어간 이들은 모두 실종되기 때문이네.”

“대단히 끔찍한 오아시스군.”

“어쩌겠나. 이 도시 인근 수원이라곤 저 오아시스가 유일한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나? 저 오아시스 안으로 들어선 이들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

“국가 차원에선 이미 정답을 알고 있고, 민간 차원에선 시도하는 족족 어김없이 죽게 되니까.”

저 먼 창공에서 내려 앉는 달빛과, 이 공동의 석주를 따라 이어지는 마력석 광맥 덕에 광원 자체는 충분할 정도로 밝았다.

페르난데스는 암녹색 불꽃을 피워 올리는 검은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오벨리스크엔 무릎 꿇은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는 너희의 미래다.”

페르난데스는 그 아래에 적힌 상형문자를 읽으며 감탄했다. 정말, 분위기 하나는 끔찍하게 잘 잡는군. 실제로, 사디아는 다소 겁에 질린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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