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마흐라스의 파라오 >
*
-촤아악!!
“꺅!!”
사디아는 정수를 향해 떨어지는 도끼를 바라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발 바로 아래에 깔린 함정을 피한 직후, 무너진 자세를 노리고 떨어지는 교묘한 함정이었다. 그녀는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며—
-콰드드득!
묵빛 검날의 대검이 허공을 가른다. 오랜 세월로 낡은 도끼날이 대검의 강인함을 이기어 내지 못하고 산산이 바스라졌다. 페르난데스는 눈 깜짝할 새에 출수해 도끼를 파괴하곤 한 팔로 넘어지는 사디아를 감았다.
“앗!”
“그쪽으로 넘어지면 함정이 하나 더 있다.”
페르난데스는 사디아의 몸을 일으켜 균형을 잡아주고는 휘릭, 대검을 돌려 등 뒤로 납도했다. 그는 짧게 혀를 찼다.
세 번 와봤다고 했던가? 그가 보기에, 그녀는 적어도 이십 분 전에 지나친 곳 이후로는 초행길처럼 굴었다.
“처음 와보나?”
“···그래. 여기부턴 처음이야.”
“여기부터?”
“아까부터.”
콘클라베의 세 번째 봉인. 네크로폴리스의 문을 열기 위해선 총 다섯 개의 봉인을 풀어야 했고, 지금 이 검은 피라미드는 그 중 세 번째의 것이다. 다섯 번째 봉인은 이미 풀렸고, 그 안에 잠들었던 콘클라베 파프테트를 데인 왕국에서 처리했으니.
이제 네 개의 봉인, 여길 제외하면 세 개의 봉인이 남았다. 콘클라베를 모두 처리하면 가뜩이나 데인 왕국에서 약화된 뭄토의 권능이 더 없이 약해져, 비로소 상대할 만 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시의 적절한 임무였고, 아이언사이드 녀석들의 계획과도 절묘하게 맞물려 있었다. 아이언사이드가 말한 목적은 네크로폴리스의 파괴와 그 내부에 있는 자원 확보였으니.
-진짜 목적이 뭘까?
‘글쎄, 어떤 목적도 굳이 내가 필요하진 않을 것 같은데. 놈들은 날 콕 찍어 요청했어. 예상이 안 되는군.’
문제가 있다면 이것이었다. 단순히 자원을 확보하겠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제국과 키르자트가 벌이는 예민한 장기전의 한 복판에서 굳이 자원을 확보하겠다고 대규모 작전을 실행해? 말이 되지 않았다.
페르난데스는 마력의 흐름과 함정의 위치, 그리고 피라미드 내부의 통로 구조를 동시에 파악하며 전진하고 있었다.
“함정이다!”
“알아.”
-콰득!
건틀릿 낀 주먹을 휘둘러, 용수철이 박힌 투창 함정을 파괴하며 그는 짧게 대답했다. 마력의 흐름을 통해 삼각측량을 해보자면, 구조상 이제 곧 피라미드의 중심지에 도착한다.
“어째서 함정을 일일이 파괴하며 지나가지? 대단히 시간낭비가 아닌가?”
“일행이 오고 있거든.”
둘 다 조악한 함정에 다칠 인물들은 아니지만, 위험 요인은 최대한 줄여 놔야지. 페르난데스는 독을 분사하는 기관을 파괴하며 생각했다.
-콰직!
편집증적인 함정 배치였다. 이걸 피하면 저기에 닿고, 거기에서 살아남으면 그 위에서 떨어지는 것에 맞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봉인이 아니라 제단이라면, 대체 어째서 방문자를 이렇게 죽이고 싶어하는 것일까.
‘어쨌건, 가 보면 알겠지.’
지금 당장 모든 정황을 파악하기엔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다. 페르난데스는 칼날 함정을 파괴하며 피식 웃었다. 정답이 무엇이든, 이 끝에 있는 놈은 그의 것이다.
*
검은 피라미드의 중심부는 거대한 해골 석상들이 원형으로 늘어선 석실에서 끝을 맺었다. 부장품이 보관된 유골함과 거미줄 얽힌 해골들이 누워 있는 석관들이 가득 들어 있던 다른 수많은 석실과는 달리, 이곳엔 단 하나의 청동 관이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날카롭게 주위를 살폈다. 물리적, 영적, 그리고 마법적인 어떤 함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더 이상 막아 보아야 의미가 없다는 뜻일까.
홀의 높은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청동 거울들이 어디선가 들어온 달빛을 어지러이 반사해 허공에 복잡한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로, 거인의 해골을 본뜬 석상들이 홀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청동 관을 굽어보고 있었다.
“안젤로, 저 석상들. 알아 보겠나?”
“···음?”
“세상에···. 저건 단순히 해골 석상이 아니야. 위압감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아니야.”
사디아는 떨리는 눈으로 그녀의 정면에 있는 거대한 해골을 가리켰다.
“저 해골을 보게. 황금 헤카(Heka)와 청동 네카카(Nekhakha). 저건 태양신을 상징한다네. 저 시절 샤일드를 의미하지. 저 뒤의 악어 비늘과 네메스(Nemes), 종말의 아포피스로군. 저건 따오기, 지혜의 신, 저건 대지의 신.”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여긴 상 아시트 제국의 만신전일세···. 대단히, 대단히 모욕적인 만신전이군. 자신들이 섬기던 신의 형상에 죽음을 덧칠해 만든 신전일세.”
페르난데스의 곁에서, 사디아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석주에 그려진 상형 문자들을 더듬었다.
“바라는 자여, 즐거이 경외하라. 해와 달이 떠오르며 다시 삭아가고, 꽃이 피우고, 지고, 잎이 돋고, 다시 저물 듯이.”
상 아시트 특유의 수수께끼인가? 페르난데스는 그 다음 이어진 문장을 바라보았다.
-만생(萬生)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니. 바라는 자여 즐거이.
그가 읽어감에 따라 상형문자가 암녹색 불빛을 띄며 일렁거렸다. 마력석을 박아 새긴 글씨들이군. 마력의 흐름이 점차,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사디아가 석주를 더듬거리며 상형문자를 해석해 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자세가 점점 더 아래로 굽어졌다.
‘왜 저렇게 아래에 새겼지?’
평범한 신전, 또는 유적이라면 저런 선언문, 또는 진언문을 반드시 읽기 편한 위치에 새기기 마련이었다. 또는 우러러 볼 수 있도록 저 높은 위에 크게 박아 넣었겠지. 하지만 이 석실의 상형문자는 거의 바닥에 붙어 있다시피 아래에 음각되어 있었다.
“···경배하라. 위대한 마흐라스의 왕, 사자의 연인, 창공의 매와 지상의 바람 사이의 아들. 수백 전갈의 독침을 품은 자, 지옥의 대리인, 천칭의 지배자, 오천 군단의 사령관···.”
사디아가 문장의 마지막을 더듬으며 읽어 내렸다. 그녀는 이제 거의 무릎 꿇고 절을 올리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제단···!’
-얕은 수를!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튀어나가 사디아의 어깨를 잡아 이끌었다. 그때, 그녀가 마지막 문장을 건드렸다.
“검은 태양의 도시의 파라오, 제 3 왕조의 아버지, 위대한 알타락을···. 앗!”
-달칵.
마지막 상형문자 안에 교묘히 감춰져 있던 작은, 아주 작은 청동 바늘이 사디아의 검지 손가락 끝을 찔렀다.
피가 한 방울,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끼이익.
-끼익.
-끼릭.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청동 거울들이 하나씩, 하나씩 지상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홀을 가득 채우고 있던 달빛이 점점이 끊겨 어둠이 내려앉고.
-콰드드득···.
홀의 중심을 감싸고 서 있던 거석상들이 일제히 자세를 바꿨다. 석실엔 뽀얀 먼지가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거석상들의 기괴한 움직임에 맞춰, 관절부에서 흙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이게···무슨···.”
“봉인이 아니라 제단이었군. 뒤로 물러나 있어.”
페르난데스는 한손에 대검을 뽑아 감싸 쥐며, 청동 왕좌의 기능을 천천히 활성화시켰다. 마력이 꿈틀거리며 청동 왕좌에 빛을 더했다. 세 번? 잘 아껴 쓰면 네 번까진 시전이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쿠구구구궁.
진동이 석실을 뒤흔들고는, 이윽고 지하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들이 딛고 있는 바닥 저 아래에서 암녹색 마력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바람이 휘몰아쳤다. 마력이 이 석실을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저, 저기. 저거···.”
“진정해. 콘클라베가 부활 하는군.”
바닥에서 스며 나오는 빛을 받으며, 청동 관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손을 교차해 누워 있는 파라오의 모양이 조각된 관이 공중에서 멈췄다.
-끼익.
관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엔 낡은, 화려한 수의에 감싸인 유골이 누워 있었다. 유골은 온갖 종류의 부장품들 사이에 몸을 묻고 있었다. 사디아는 눈을 크게 뜨더니, 덜덜 떨기 시작했다.
‘사자(死者)의 존재감.’
저릿한 기운이 관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진득하고 끈적한 죽음의 기운이 이 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디아는 다리가 풀려 쓰러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하얗게 말아 쥐고 주저 앉았다.
-턱.
“···!!”
“숨 쉬어. 진정해. 공포는 환상이야.”
페르난데스의 등허리에 박힌 성흔이 미친듯이 번쩍거렸다. 사악한 존재를 감지하고, 이에 대항하듯이. 화상을 입은 듯 쓰라렸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성자의 영성이 심장 박동에 따라 맥박 치며 전신에 활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르륵.
그의 머리 뒤로 희미한 빛이 비쳤다. 헤일로, 사디아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페르난데스의 몸이 더 없이 커 보였다. 페르난데스는 사디아의 이마를 엄지 손가락으로 찍으며 속삭였다.
“가로되, 담대하라. 주께서 세상을 이기시었으니. 믿는 신이 있나, 사디아?”
“···하. 이단심문관···. 여기서 살아 나가면 개종 하겠어.”
-성자 짓도 할만 하군.
‘남 좋은 일만 한다는 걸 빼면 말이지.’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석관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유골을 바라보았다. 자못 신성한 모습이었다. 지하에서부터 솟아 오르는 마력이 유골의 몸을 감싸며 불타고 있었다.
유골의 부장품들이 공중에서 기이한 도형을 그렸다. 그 사이에서 정좌한 자세로, 유골의 한 손이 지하를, 다른 한 손이 하늘을 가리켰다.
-쿠구구구궁!!!
암녹색 마력이 천장에 달린 거울에 반사되며, 그대로 천장 너머로 솟아 올랐다. 마치 봉화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폭포처럼!
유골의 눈에 푸른 귀화가 떠올랐다.
[···청원자여, 그대의 이름은?]
*
“대장님!! 대장님! 봉화가 올라왔습니다! 모사트 시에서 봉화가 올라옵니다! 기록상 30년 전과 동일한 수준의 마력이 측정 되고 있습니다.”
“우리 성자 나리가 성공했군! 정말 혼자 해냈어!”
황급히 뛰어와 외치는 브랜든의 말에, 앙헬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저 아래, 지상에선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고치고, 마력을 다스리며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대 도심급 E형 파괴 마법. 필라인네일의 석학들이 열흘 넘게 밤을 지새워가며 만든 정교한, 오로지 화염과 폭발 만을 위한 예술품이었다!
-짝!
앙헬라가 난간 위에서 박수를 치자, 마법사들이 일제히 앙헬라를 바라보았다. 앙헬라는 그들의 시선에서 기묘한 짜릿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한 수로 전쟁의 판도를 뒤집고, 제국을 승리로 이끄는 공신이 된다면. 그 빌어먹을 꼰대들도 다음 청장 후보에 누굴 올려야 할지 확신할 수 있겠지.
앙헬라는 사납게 웃었다.
“제군들!”
그녀의 손가락이 밤하늘을 향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작고 가는 녹색 불꽃을 향해.
전장의 후방,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중소규모 상업 도시. 파괴한다 하더라도 외교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할 뿐인 민간 지역.
따라서 그 누구도 대마법 전력을 배치하지 않은 저 여린 도시를 향해. 네크로폴리스의 대사제가 오랜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난 저 도시를 향해!
“불을 지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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