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84화 (85/388)

< 84. 대립과 선포 (2) >

*

[···저 높은 별의 파라오, 검은 태양의 아들, 수천 단검의 알타락이 바로 짐이다. 어린 필멸자여, 짐은 이런 수모를 결코 잊지 않는다!]

-쿠구구궁!!

알타락의 수인이 발작하듯 빨라졌다. 그는 하늘을 짚고 내려 그으며 주문을 읊었다. 상 아시트의 고대 주언이었다. 저 멀리 피라미드의 끝에서, 어쩌면 그 위에 떠 있는 오아시스에서부터 암녹색 전류가 흘렀다.

-콰지지직!!

알타락의 손짓에 따라 전류가 휘몰아치며 그대로 내려 꽂혔다. 영, 성, 혼, 백. 영체를 유지하는 네 가지 요인을 동시에 파괴시키는 벼락이 페르난데스의 정수리를 향해 기괴한 비틀림을 그리며 떨어지고—

[마흐라스의 천상 선고.]

마법의 매듭이 마침내 끝날 때까지, 페르난데스는 역주문을 시도하지 않은 채 저 홀로 수인을 짚고 있었다. 벼락이 그의 머리칼에 닿기 직전에, 검은 그림자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콰드드득!!

그림자가 닿는 공간이 갈려 나가며 알타락의 벼락을 삼켰다. 그림자 사이에서 페르난데스의 팔이 뻗어 나왔다. 손등에서 힘줄이 불거지고, 흑마법의 백래시로 뼈가 도드라졌다.

그림자 밖으로 나온 팔은 마치 노인의 것처럼 마르고 비틀려 있었다. 천천히 손이 허공을 움켜쥐며—

“알타락, 결코 잊지 않는다면. 내 이름을 기억해라.”

그림자 안에서 짙푸른 눈동자가 사자처럼 타올랐다. 연기처럼, 천천히 검은 그림자가 걷히며 그 안에서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

그 순간, 알타락은 섬칫함 속에서 주문을 멈췄다. 격렬하게 흔들리던 마력이 한 순간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화르륵!!

검은 헤일로가 불타오른다. 과도한 마력 사용의 백래시로 수명을 소모한 페르난데스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늙고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짙푸른 눈이 알타락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 발자국 더 옮기는 것조차 힘들 것 같은, 비쩍 마른 다리가 홀의 석판을 밟고, 저 앞으로.

“내 이름은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 더러운 피의 페이자쉬. 칼름부르크의 창시자, 엔소서리의 대종사! 내 이름을 기억해.”

-촤르르륵!

쇠사슬이 뱀처럼 달려든다. 알타락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아니. 대응할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와중에.

사슬이 그의 가슴과 머리를 꿰뚫고, 몸을 감싸 쥐었다. 미이라처럼 얽매인 알타락의 입에서 짓눌린 신음이 흘렀다.

이럴 수는 없다! 그는 애써 저항하려 했다. 마법은 신비의 겨룸이며, 격의 대립이었다. 그의 지난 세월이 이미 천 년을 넘거늘···. 어찌 필멸자의 마법이 그의 몸을 속박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지금 알타락의 주문을 삼킨 저 검은 그림자도,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이 시커먼 쇠사슬도. 하나의 완성된 주문이 아니었다. 그저 주문을 이어 나가는 데에 발동되는 부차적인 기능에 불과했다!

페르난데스의 마지막 수인이 허공에 맺혔다.

‘마력석 광맥이란 점이 참 편리해.’

청동 왕좌는 그에게 회로를 제공할 뿐. 마력 자체의 총량은 미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그의 감각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대마법은 꿈도 꿀 수 없었겠으나.

지금 이 공동에 박힌 마력석 광맥은 구조적으로 이 홀에 응집되고 있었다. 막대한 자연 마력이 청동 왕좌를 붉게 달구며 그의 손 위로 흘렀다.

전성기의, 지옥 마력을 다루던 당년의 그가 느꼈던 전능감이 그의 심장에서 피어 올랐다. 세상을 오시하던, 적어도 마법을, 적어도 마력의 조율에 있어서 종가를 이루었던 사내의 심장이 다시 맥박치고—

-아, 이 감각, 이 감각이 늘 그리웠다. 페르난데스. 항상, 늘, 언제나 부족했어.

‘설령 세상 전부를 불태우더라도, 항상 부족했지.’

지옥 마력에 중독된 심장은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자극에 대한 역치가 한 없이 높아진 심장이 게걸스럽게 마력을 탐했다. 그 반대 급부로 그의 생명력이 갈려 나가며 불타올랐지만.

-화르르륵!

생명을 화폐로 소모하며, 검은 헤일로가 가지처럼 뻗어 나갔다. 청동 왕좌의 마력 회로가 한계까지 달아 올랐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페르난데스는 그 마지막 한 수를 짚어 나갔다.

“디아르의 검은 보호, 바티온의 영혼 포박, 그리고···.”

-페이자쉬의 지배.

주문이 완성되는 순간, 폭풍처럼 홀을 휘몰아치던 마력의 흐름이 멎었다. 고요함이 장내에 내려 앉았다. 알타락도, 그의 수인도, 주문과 주언, 진언과 발악도.

침묵이 감돈다. 마력석의 빛마저도 천천히 식어가듯 꺼졌다. 오로지, 페르난데스의 머리 뒤에 떠오른 헤일로만이 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고오오···.

페르난데스가 비틀거리며 잠시 휘청이고는, 대검을 바닥에 박아 몸을 지탱했다. 하얗게 탈색된 머리칼이 그의 얼굴을 가렸다. 그의 생명이 지금 이 주문에 완전히 타올라 꺼져가고 있었다.

마지막 숨결이 그의 코 끝에 맺혔다. 한 호흡 내뱉는 것이 그의 한계였다. 페르난데스는 주름진 입술을 비틀어 열었다.

“나의 것이다.”

*

-콰아아앙!!

피라미드의 한 귀퉁이가 오려낸 것처럼 깔끔하게 뜯어져 나갔다. 아벨과 키르하스는 죽음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피라미드의 내부를 달리다가, 큰 진동에 급히 멈춰 섰다.

“은공께서 싸우고 계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서둘러 가자꾸나.”

지진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페르난데스가 있음이 확실한 저 먼 복도의 끝에서부터, 피라미드 전체를 울리고 마침내 이 지하 공동을 뒤흔들며. 아벨은 이 격한 파괴음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인퍼머르···.’

인퍼머르의 항만에서, 그녀의 등 뒤에 올라타 마력을 부리던 페르난데스가 아직도 선연히 떠올랐다. 천 년을 훌쩍 넘긴 고룡인 그녀에게 있어서도 그 날의 기억은 이따금 소름이 돋곤 했다.

압도적인,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마법이. 마치 보석공의 조각칼처럼 섬세하게, 그리고 공성퇴의 일격처럼 강렬하게. 그녀가 거닐던 신화 시대에도 흔치 않은 마법이었다.

-쿠우우웅!!

한편 그 순간, 키르하스는 기묘한 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페르난데스가 이 세상 어디에 있든, 이제 본능적으로 그가 있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영적 교감에 가까웠다.

짙푸른 길이 마치 비단처럼 그녀의 눈 앞에 깔려 있었다. 그녀는 그 길을 밟는 것이 좋았다. 그저 걷고 있을 때면 가슴 한켠이 뿌듯해지고, 행여 달리기라도 할 양이면 심장이 요동쳤다.

지금 그 길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실체 없는 푸른 화염이 그녀의 눈에 선연히 비쳤다. 영혼의 이끌림이 더욱 강렬해지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지진이 거세어 질수록, 그녀가 바라보는 길의 색체가 점점 더 깊어졌다.

보다 더 짙게, 보다 더 깊게.

보다 더 검게.

“키르하스···!”

-타닷!

그녀는 섬광처럼 내달렸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일반인 수준이 되었다지만, 아벨은 그 몸의 구성이 인간보다 용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키르하스는 그런 그녀가 보기에도 잔상이 스칠 듯 빠르게 뛰어 나갔다.

아벨은 혀를 차며 박차를 가했다. 처음 이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섰을 땐 혹시 모를 함정의 존재를 경계했지만, 다행히 모두 파괴되어 있었다. 페르난데스가 해두었겠지. 이젠 그저 그를 믿고—

-고오오오···.

“멈춰!”

아벨은 황급히 키르하스의 옷깃을 잡고 뒤로 잡아 끌었다. 키르하스는 컥, 하는 소리를 내며 공중에 멈췄다. 그녀는 거칠게 키르하스를 뒤로 빼내고는, 정면을 노려보았다.

공기가 멈췄다. 아니, 공기의 질이 바뀌었다. 무언가 더 끈적하고 무거운 것으로.

“···페르난데스. 무슨 짓을···.”

아벨은 탄식하며 회랑의 끝을 노려 보았다. 폭음의 진앙지가 이제 코앞에 있었다. 활짝 열린 홀의 문 안으로, 검은 그림자에 휩싸인 페르난데스의 모습이 보였다.

“···은공···?”

키르하스는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떨었다. 아벨은 그녀의 몸을 감싸 안으며 다독였다. 그럴 만 했다. 그녀조차도 물러서고 싶었으니.

“침착해라. 키르하스. 침착해.”

그녀 조차도 믿지 못할 목소리로 아벨은 조용히 속삭였다. 압도적인 존재감이 홀 안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하얗게 탈색된 머리칼로 힘겹게 바닥을 짚으며, 페르난데스의 고개가 떨어졌다.

-화르르륵!!

불길한 형상의 검은 헤일로가 어지러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벨은 본능적인 두려움 속에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존재감이 커져갈수록, 그녀가 알고 있던 페르난데스가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팔과 굽은 등이 애처롭게 보였다.

당장 그를 부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본능이 격렬하게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귀가 아니라 영혼에.

“나의 것이다.”

그 순간, 콘클라베의 망령도. 비틀거리던 키르하스도, 저 멀리서 그녀들을 따라 뛰어오던 사디아도, 심지어 아벨 마저도.

그의 말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 앉았다.

*

레바인테르 제국의 전초 기지, 그리고 그 거대한 군영의 외곽에 위치한 기밀 지역. 아이언사이드의 제 3 사령부엔 침묵이 감돌았다.

브랜든은 망루에 서서 벌써 다섯 번째, 모사트 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초조하게 회중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십오 분이 지났다.

제국 파괴술 학파가 준비한, 그들이 준비한 대마법이 이미 발동 되었어야 했다. 그는 결코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대장님,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확실히.”

앙헬라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 들어갔다. 실패할 구석이 있었나?

콘클라베가 봉인된 묘실의 문을 연다. 이는 30년 전, 아이언사이드가 콘클라베의 봉인지를 발견했을 때에도 성공했던 일이다. 봉인 해주의 증거인 암녹색 마력 봉화까지 관측되지 않았던가.

30년 전, 레바인테르 제국이 점령한 한 도시 지하에서 거대한 유적지가 발견 되었을 때, 아이언사이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유적지의 봉인을 풀었다. 유적은 봉인이라기 보단 제단에 가까웠다. 고대의 존재를 깨우는 제단.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고, 봉화가 하늘을 찢고, 죽은 자들이 일어섰다. 아이언사이드는 그 당시 일어섰던 존재를 저 멀리, 대륙 동부로 밀어내고 그 자리의 마력석들을 취했다.

30년이 지난 후, 그 당시 사라졌던 콘클라베의 망령이 데인 왕국을 점령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혜성처럼 등장한 ‘위대한 원탁 기사 알베르트’가 그 망령을 구마했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앙헬라는 그 즉시 새로운 계획을 수립했다. 모사트 시 지하에 있는 제단의 봉인을 풀고, 콘클라베의 망령을 부활시키자.

모사트 시를 폭격으로 날려버리고, 네크로폴리스의 군단을 대대적으로 소환해 이 지지부진한 전쟁에 변수를 만들자.

후방이 교란된 키르자트를 물리치고, 술탄에게서 막대한 전쟁 보상금을 뜯어내고, 황무지 지하에 매장된 유적과 마력석을 채굴한다면. 대륙 중부와 북부를 넘어, 이 세계 전체에 호령하는 대제국으로 비로소 발돋움 할 수 있으리라.

모든 계획은 완벽했다. 제국 대학의 석학들이 만들어낸 장엄한 폭죽이 그 신호탄이 될 터였다.

“이제 어쩌지요, 대장님?”

대마법이 발동된 정황은 키르자트의 마법 전력 또한 파악했을 것이다. 동시에 이쪽 진영의 마법 전력이 한동안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마법 전력을 다시 확보하기 전까지, 전황이 어떻게 흐를지 선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모든 책임을 누가 지게 될지도.

앙헬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직접 나서야겠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않다면? 어쩔 방법이 있나?”

이미 제국 아이언사이드는 네크로폴리스 콘클라베들이 봉인된 유적지들의 위치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

전황이 예측된다면, 판도 자체를 혼돈으로 뒤엎으리라. 그것이 지금 그녀가 수립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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