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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89화 (90/388)

< 89. 황제의 눈 >

*

연회는 수인 호족 연합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화려했다. 무희들이 춤을 추고, 온갖 향신료를 바른 기름진 고기, 그리고 사막에선 흔치 않게도 과실주까지 진상 되었다.

바트라스는 이 모든 우스꽝스러운 대접이 효과적이기를 기도했다. 해골에게도 물질적인 사치품들이 효과적이기를···.

그리고 아주 효과적이었다.

[대사를 대접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군. 미개인들이여.]

해골 대사가 만족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황동 잔에 포도주를 채웠다. 그는 아주 귀족적이고 느긋한 손놀림으로 삭은 두개골 사이로 포도주를 흘렸다.

-주르륵.

포도주가 턱과 흉골, 그리고 척추를 타고 흘러내려 대사의 화려한 청동 갑옷을 적셨다. 그의 곁에서 굽실거리던 하인 해골이 재빨리 다가와 마른 아마포로 청동 갑옷의 포도주들을 닦아 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바트라스는 놈들이 더 한심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했다. 적어도 싸울 때에도 이 절반만큼은 더 한심 하기를 바랬다. 언젠간 싸워야 할 적이었으니까.

해골 대사는 보석 장신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만찬을 내려 보았다. 놈의 안저 아래에서 푸른 귀화가 번뜩였다. 탐욕과 사치, 그리고 허영의 빛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연회는 점차 방탕하고, 호화로워지고 있었다. ‘하사품’이라는 명목 하에 해골들이 가져온 온갖 사치품들이 부락의 광장에 쌓이고 있었다.

부락의 청년들은 점차 공포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이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해골 대사의 눈빛이 점점 더 짙어져 갔다.

*

해골들과 함께 도착한 사절 중에는, 놀랍게도 살아있는 인간이 있었다. 거의 해골처럼 빼빼 마른 중년 사내는 부족 청년들이 가져온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두 손 사이로 고기 기름이 흠뻑 흘러 내렸다. 부족 청년들은 며칠은 내리 굶은 듯한 사내의 모습을 보며 키득거렸다.

“아니, 어쩌다 저 괴물들 사이에 있었소?”

“말 하자면 길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둘 뿐이었소. 죽거나, 놈들의 하인이 되거나.”

“기왕지사 산 사람들끼리 말해 줍시다. 어떻게, 저 놈들이 공격을 할 것 같소?”

“파라오는 멍청하지 않소.”

중년 사내는 탁한 눈으로, 두개골 안에 음식을 넣는 해골 대사를 바라보았다. 대사의 눈이 기쁨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너무 마음 놓고 저 괴물들을 믿지는 마시오.”

“우린 아무도 믿지 않소.”

혈기왕성한 수인 청년 하나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수인 연합과 친교를 다지고, 적어도 당분간은 우호적인 불가침 조약을 맺고자 한다는 것은 확실하지.”

“그거면 되었소.”

청년들은 중년 사내의 말에 만족한 것 같았다. 그들은 저마다 시시덕거리며 고기와 술을 퍼먹다가, 문득 말했다.

“아, 우리 부족에 손님 중에도 인간이 있소. 만나 보시겠소?”

“···인간?”

“얼마 전에, 누군가를 찾고 있다며 우리 부족에 몸을 의탁한 꼬마가 있소! 시험 삼아 우리 부족 전사들과 한 판 붙었는데, 어린 녀석이 정말 대단하더군.”

중년 사내는 먹던 것을 잠시 내려놓고,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꼬마? 설마···. 청년들은 활기차게 다른 주제로 떠들어대기 시작했지만, 중년 사내는 대충 대답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럴 리가 없어. 꼬리 밟힐 일 자체가 없었다고.’

사내는 고기 기름에 범벅이 된 손을 허벅지에 문질러 닦아내고는 일어섰다.

“아, 소변이 급해서.”

“저쪽 골목으로 가서 수풀 속에 해결 하시오.”

청년은 쾌활하게 말하고는 곧 다른 부족민들과 떠들어댔다. 오랜 긴장감 속에서 찾아온 연회였고, 부족민들은 진심으로 이 평화로운 연회를 기껍게 즐기고 있었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천막들이 복잡하게 얽힌 골목을 걸었다. 밤바람이 서늘했다.

“후···.”

어쩌다 자신이 이런 꼴이 되었는지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제국 명문가 출신, 한 때는 모두가 두려움에 떠는 제국 최정예 요원 중 하나가 어쩌다 해골 망령들의 주구가 되었는지···.

-스르릉.

그의 뒷목에 차가운 강철이 닿았다. 사내는 움찔 떨며 몸을 굳혔다. 아무런 기척도 없었는데, 어떻게?

“B-11-CQ2. 코드네임 브랜든. 제국 군법 제 37조 2항 1절에 의거하여 형을 집행한다.”

“···하.”

곧이어 젊은 청년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긴장한 어깨에 힘을 빼내며 탄식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어떻게 찾았지?”

“다섯 번 잘못 짚었으니, 이젠 제대로 짚을 때가 되었지.”

“나, 날 죽이면 이 부락 짐승 놈들이 때로 죽을 거야. 무고한 피가 흐를 것이고···. 나는 투탄 가르텝 왕의 비호를 받는다!”

“유언은 끝인가?”

“큭!”

-후우웅!

브랜든은 허리를 틀어 몸을 돌리며 뒤로 뛰었다. 청년의 창이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번쩍였다. 한 순간, 양 어깨와 두 허벅지를 동시에 찔렸다!

-푸화악!

“끄으아악!!”

“널 바로 죽이지 않는 이유는 알겠지? 아이언사이드의 명예를 되찾을 기회를 주마.”

“사표···낸지··· 좀 됐는데···?”

“그쪽 사표는 반려 되었거든. 아직 너는 아이언사이드야.”

청년은 유쾌하게 웃으며 창을 돌려 어깨에 걸쳤다. 브랜든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허벅지를 꽉 움켜쥐며 헐떡였다. 파라오의 대사가 있는 곳이 멀지 않았다. 비명을 지를 수만 있다면···.

“나라면 순순히 협조 하겠어요.”

-탁.

골목의 끝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여인의 손에 푸른 마력이 얽혀,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이 반경 3m 안에서 일어난 일은 누구도 알 수 없을 겁니다. 소리도, 빛도, 냄새도.”

해골들에게 후각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인은 쿡, 하고 웃었다. 브랜든의 눈에 절망이 천천히 내려 앉았다. 그는 발악하듯 외쳤다.

“황제의 개! 날 죽이고 네가 여기서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혼자야!!”

“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군.”

청년은 맑게 웃었다. 그는 휙, 하고 장난스럽게 창을 고쳐 잡으며 사내의 배를 향해 살짝 뻗었다. 쓰러진 사내의 위로, 날카롭게 벼려진 창날이 바싹 다가왔다.

창날에 음각된 문양이 달빛에 비쳐 보였다. 커다란 눈이 그려진 태양의 문양이었다. 통칭 황제의 눈. 그 자체로 이 청년의 신분을 증명하는 창이었으며, 동시에 황제의 적들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판결문이기도 했다.

황제의 사냥개···. 사내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니 내 걱정은 여기까지 하고, 네 상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실까?”

“···자비를 베풀어 줄 수 있나?”

“거짓말이 네게 위안이 된다면.”

그 차가운 말에, 사내는 마지막 희망을 놓았다. 제국민들에게 있어서, 이 창날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의미했다. 황제의 권위 앞에 희망을 포기하고 복종하라는 것.

“그 마녀는 투탄 가르텝의 궁궐에 있어. 파라오에게 몸을 의탁했지. 나처럼.”

“그럼 넌 왜 그 안에 숨어있지 않았지?”

“투탄 가르텝은 유능한 왕이거든, 하인을 쉬게 하지 않지.”

“좋아. 앙헬라, 그 반역자도 편히 쉬고 있지는 않겠군.”

“이, 이제 나에게 볼일이 없을 텐데? 부탁하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살겠어. 죽은 듯이 살겠네.”

청년은 덜덜 떨면서 그의 바짓단을 붙잡는 브랜든을 내려 보았다. 달빛이 그의 머리 아래로 쏟아지고 있었다.

창날이 천천히 바닥을 향했다.

“제국의 명령을 어기고 상업 도시를 폭격하려 한 죄, 이는 항명과 군율 위반, 그리고 비허가 선제 공격과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

“부탁, 부탁하네!”

“죽은 이들을 되살리고, 미발견 고대 유적의 유물을 탈취했으며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죄. 이는 횡령과 배임, 그리고 내란 획책에 해당한다.”

“자비를···!”

청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브랜든은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모았다. 그는 눈물 젖은 시선으로 청년에게 간청했다.

“나도 시켜서 한 것이었네. 나도 원치 않았어! 화,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살려주게!”

“다리안 쉬라이크, 황제의 세 번째 단죄자이자, 황제의 눈으로서, 폐하의 적에게 죽음을, 폐하의 양에게 비호를.”

청년은 짧게 성호를 긋고는 창을 틀어 쥐었다.

-콰직!

창날이 달빛을 바스라트리며 내려 꽂혔다. 브랜든의 심장을 파괴하고, 그 뒤로 길게 이어져, 바닥까지. 브랜든은 가슴을 꿰뚫은 창날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굳었다.

뜨거운 핏물이 창날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 내렸다.

-으드득.

창날이 다시 뽑혀 나와 허공을 한 바퀴 크게 돌았다. 창에 엉켜 붙어 있던 핏방울들이 사방에 비산했다. 청년은 깨끗하게 피를 털어낸 창을 한번 돌려 등 뒤로 돌렸다.

스르륵, 하고 브랜든의 시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그는 피로 젖은 흙바닥에 쓰러졌다. 흐려지는 눈이 멍하니, 청년의 발치에 닿았다.

“네 직위를 해제한다. B-11-CQ2. 이로서 황제 폐하의 정의가 바로 서기를.”

“이제 한 명 남았네요?”

“마법을 거둬, 세이리. 축제를 끝내러 가자.”

“진심이에요? 도망 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저 밖에 해골 놈들 병사가 오천 명이 넘어요!”

“우리는 혼자고?”

“네!”

청년은 그 말에 짙은 웃음을 지었다.

“딱 셋만 더 죽이자, 세이리. 그 뒤엔 나도 몸을 뺄게.”

“누구요?”

“장군, 대사, 마법사.”

오천 명의 잡졸을 상대하는 것보다, 세 명의 강자를 상대하는 편이 더 쉬우니까. 청년은 어깨에 빗댄 창대를 잡으며 웃었다.

*

페르난데스는 정글을 헤치며 나아가는 키르하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방향을 잡으며 연신 귀를 쫑긋거렸다. 옛 기억을 뒤적이며 길을 더듬거리는 모습이었다.

‘다리안 쉬라이크. 그 개자식 기억 나?’

-아, 제기랄.

페이자쉬는 놈의 이름을 듣자마자 투덜거렸다.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그의 긴 삶에서, 가장 끔찍한 영웅 중 한 명이었다. 황제의 검 다리안 쉬라이크. 제국 최강자. 황제의 눈. 불패자.

간밤의 악몽을 떠올리며, 페르난데스는 칼자루를 톡톡 두드렸다. 최근 마법보다 검이 더 익숙해서 그런지, 꿈 속 놈의 몸놀림이 더욱 눈에 선했다.

‘지금 무력으로 놈과 대적할 수 있을까?’

-지금 시기라면 가능하겠지. 놈은 아직 여물기 전이니까.

‘다리안이 패배하는 모습 자체가 연상되지 않기는 한데.’

-왜 그런 걱정을 하지? 놈이 우리의 적이 될 일이 없을 텐데. 이번 생에선 말이야.

‘그러길 바래야지.’

전성기 시절 그와 대적했던 대영웅들은 대부분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고, 지금 시기의 영웅들은 각자의 복잡한 정치 상황에 얽매여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정치적, 외교적 상황과 상관 없이 자유롭게 날뛸 수 있는 놈이 있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바로 다리안 쉬라이크였다. 황제의 눈, 떼까치의 다리안.

-왜, 싸워 보고 싶나?

‘그래. 놀랍게도.’

페이자쉬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그건 마법사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기사나 전사에 가까웠다.

페르난데스는 다리안에게서 호승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동시대 최강자라 불린 위대한 전사를 상대로.

데인 왕의 기억 탓인가? 페이자쉬는 침잠하는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 보았다.

“은공, 찾은 것 같아요!”

“고생했어.”

정글을 헤치고, 저 멀리. 폭포가 보였다. 전승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막 한 가운데에 솟아 있는 정글. [카자크 카단의 몰락]. 칼라니 씨족의 비밀 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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