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90화 (91/388)

< 90. 죽은 신의 시련 (1) >

*

[카자크 카단]의 몰락. 뭄토의 손에 의해 죽은 첫 번째 고대 신, 카단의 마지막 사원이 있던 곳이다. 수인 호족 연합과 상 아시트 제국을 비롯해 서부 대황야 인근의 모든 국가와 부족들에 드넓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고대 신.

상 아시트 시절의 모든 신들이 죽은 것은 아니다. 페르난데스는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폭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천상 전쟁 시절에도 모든 신들이 죽지는 않았다. 시대가 변하며 부르는 명칭이 달라지거나, 관장하는 영역이 변하는 일은 있어도, 신성은 기본적으로 불멸이다.

하지만 신 또한 죽을 수 있다. 이 세상에 완전한 불멸이란 있을 수 없기에.

“은공, 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알아, 각오는 되어 있어.”

신의 죽음은 신도들의 전멸, 신앙의 상실, 또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성을 강탈당할 경우에 일어난다. 엘프 삼왕조의 고대 영웅들이 신의 세계에 직접 뛰어들어 신성을 강탈 했듯이.

-찰팍.

폭포의 아래, 굽이치는 거대한 강물 어귀로 페르난데스가 걸었다. 격렬한 와류에 벌써 몸이 흔들리는 감각이었다.

“신의 저주가 두렵지 않느냐?”

“신을 두려워하기엔 너무 멀리 와서.”

페르난데스는 머뭇거리는 아벨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벨과 키르하스가 그의 뒤를 따랐다.

*

-콰아아아아···.

폭포에 다가갈수록 저항이 거세어졌다. 사막 한 가운데의 정글과, 수원지가 없음에도 물을 뿜어대는 폭포는 지극히 비자연적이었다.

“폭포 자체가 시험이군.”

-쏴아아아아!

페르난데스는 정면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마주하며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등에 걸어둔 대검이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마법을 사용할테냐?

‘아낄 수 있는 건 아끼고 봐야지. 청동 왕좌는 사용 제한이 있잖아.’

-칼로 폭포를 베어낸다고?

‘데인 왕은 했었어.’

그리고 내 핏줄엔 그 업이 녹아 흐른다. 페르난데스의 팔뚝에 힘이 들어가며, 근육이 뱀처럼 꿈틀거렸다.

‘시험해보고 싶기도 하고.’

-스르릉.

아주 단순하고, 물리적인 시험이다. 폭포의 중압을 뚫을 수 있는 전사만 입장이 허가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묵빛 대검이 허공에 뻗는다. 정상단 자세. 깨끗하게 닦인 대검의 날에 물결이 비쳤다. 한 방울, 두 방울.

기억을 되짚는다. 거인을 가르던 그의 검을. 그 검은 궤적을. 데인 왕이 해낼 수 있었다면, 그 또한 가능했다. 그의 업을 잇고, 그 영혼의 격을 나누어 받았으니까.

-담대하라 아들아.

왕의 유언이 목소리로 들려왔다. 알트베르트에서 들었던 죽음의 기사의 음울한 목소리가 아닌, 살아 숨쉬던 시절 강인하고 억센 억양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흐르는 와중에, 그의 손가락 사이를 왕의 손이 겹쳐 잡는 감각이 느껴졌다.

-너는 길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이다.

-콰드드드득!!

대검이 공간을 갈아버리며, 폭포가 반으로 쪼개어졌다.

마치 암막이 나뉘어 올라가는 것처럼, 폭포의 사이로 길이 나타났다. 검고 긴 동굴이.

-툭.

-툭. 툭.

저 멀리, 동굴의 벽을 따라 새하얀 빛이 깜빡이며 들어왔다. 사냥의 신, 자칼의 카단이 구도자의 입장을 허가하는 빛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뻐근하게 울리는 팔을 거두어 등 뒤로 대검을 납도하며,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아벨과 키르하스를 돌아보았다.

“기다리시겠소?”

*

동글은 네모 반듯하게 닦인 긴 석조 복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복도의 모서리마다 깜빡이며 빛을 내뿜는 하얀 돌들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마력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통로였다. 페르난데스는 동굴의 벽에 가득 그려진 벽화를 따라 걸었다.

사냥의 신, 카단. 상 아시드 제국 시절의 고대 신. 자칼의 머리를 하고, 황동 창과 활을 들고 서 있는 벽화가 늘어서 있었다.

깜빡이는 불빛, 끝 없이 이어진 복도,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폭포 소리가 길을 따라 메아리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이상하구나, 카단의 영역은 사냥이 아니었는데.”

“사냥이 아니었다고?”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그렇다. 내가 거닐던 시기의 카단은 사냥이라기보단, 규율의 신이었다.”

아벨의 말에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냥과 규율?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였다. 실제로 벽화에서, 자칼 머리를 한 신이 짐승을 사냥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사람의 심장을 찌르고, 그 피와 깃털을 저울에 올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때론 해골을, 또는 장기를.

-깜빡.

눈을 잠시 감았던지, 혹은 천장의 불빛이 깜빡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 시야가 잠시 어두워졌다. 그리고 복도를 밝히는 빛이 조금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칼자루를 쥐며 자세를 잡았다.

-쏴아아아···.

저 멀리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가 메아리 쳤다. 청각 전체가 방향을 잃고 노니는 느낌이 들었다. 때론 그의 앞에서, 때론 그의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바로 곁에는 무덤에서 나온 해골의 머리에 황동 창을 박아 넣으며, 자칼 신이 웃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네 영혼이 네 살점보다 무겁구나.

“···흠.”

페르난데스는 자리에 멈춰 섰다. 폭포 소리 사이로, 사람의 비명과 나무가 불타는 소리가 섞여 들리고 있었다.

‘정신 오염이군.’

-그보단 최면에 가깝지. 소리, 빛, 반복되는 패턴.

‘정교하게 만들어졌어. 첫 시련인가?’

페르난데스는 자칼 신의 벽화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자칼 신의 벽화가 해골에서 눈을 떼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뒤를 살폈다. 아벨도, 키르하스도 사라져 있었다. 디모니카의 감각을 속이고 공간을 뒤틀었다니, 페르난데스는 짧게 혀를 찼다.

과연 고대 신의 저주라고 할만 했다. 그는 천천히 칼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시련이라면 돌파하면 그만이다. 페르난데스는 오히려 즐거움을 느꼈다. 이런 제대로 된 무덤을 돌파한 것이 오랜만이었다.

-걸어라.

또 다시,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자칼 신의 그림이 복도의 끝을 향해 창을 뻗었다.

킬킬거리는 웃음 소리를 뒤로하며, 페르난데스는 칼을 뽑아 들고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

복도를 걸어나갈수록, 페르난데스는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다. 복도의 벽에 그려진 벽화가 점차 복잡하고 기괴한 도형을 이루고 있었다.

벽화에선 더 이상 자칼 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 사내의 일대기가 그의 걸음을 따라 천천히 펼쳐지고 있었다.

벽화 속에선, 한 아이가 아비의 부고를 받고 있었다. 이윽고 삼촌이 섭정으로 등극하고, 그의 아들이 아이를 매일 밤마다 모질게 학대했다.

아이는 자신이 성인이 되던 날에 영지를 버리고 도망쳤다. 성인이 되어 계승권을 갖게 된다면, 그 날로 사촌이 자신에게 결투를 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목숨을 담보로 건 결투를.

왜소한 체구의 소년이 숲속을 달렸다. 추격자들을 뿌리치고 간신히.

“귀여운 짓을 하는군.”

페르난데스는 벽화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벽화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었다.

그것은, 그의 일대기였다. 전생에서의 삶을 늘어 놓은 그의 일대기.

-죄인이어, 형틀로 향해라.

그의 걸음이 늦춰질 때 마다 귓속에 자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노예 시장에 끌려간 청년, 리치의 제자가 되는 청년. 가까스로 탈출하고 와일드캐스트(방랑 마법사)로 경력을 시작한 청년.

처음 악마를 소환한 날. 이단심문관에게 쫓기던 나날. 자신을 추적하던 영웅을 독살한 날. 유물을 탈취하기 위해 현자의 손목을 자르던 날.

점점 페르난데스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착각이나 죄책감 따위가 아니라, 실체화된 무게가 그의 양 어깨에서 느껴졌다.

모험가들을 속여 그들 사이로 숨어들고, 유적을 탐험하던 도중 그들 모두를 암살하고는 보물을 독차지하던 그의 모습이 보였다.

의기양양하게 웃는 중년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그림자 아래에서 악마들이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학회를 세우고 도제들을 모아 마법을 연구하던 나날들이 펼쳐졌다. 실험 대상은 언제나 시체, 또는 사람들이었다.

학회가 불타오르고, 도망치던 중년 사내가 보였다. 창을 들고 뒤쫓는 태양의 모습이 보였다.

‘추억을 복기시켜 주겠다는 건가?’

페르난데스는 지난밤의 꿈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한 발자국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추적을 피해 헛간에 숨어든 그에게, 한 소녀가 덥힌 우유를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중년 사내는 그 어린 소녀에게 마법을 맺어 화관을 만들어주었다. 간단한 눈속임 마법이었지만, 그 아이는 참 해맑게도 좋아했다.

“이걸, 보여주는 건, 반칙인데.”

페르난데스는 간신히 턱을 움직여 말을 내뱉었다. 그는 잠시 발을 멈추고, 그림 속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보다는 어리게 묘사되었지만, 그는 또렷하게 그때 당시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여인이 그를 바라보며 뻐끔거렸다. 형틀을 향해 걸어라, 죄인이여.

‘그래, 아리아. 내 기꺼이.’

페르난데스는 힘겹게 발을 들어 다음 걸음을 걸었다. 이젠 걷는 것 자체에 현실감이 없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가 이젠 그의 몸 전체를 내려 누르고 있었다.

그림이 점점 검붉게 물들고 있었다. 핏빛이라기보단, 저무는 석양의 빛이었다. 그 날의 빛이었다. 마을이 불타던 날의 저녁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를 뒤쫓던 영웅들에 의해 그가 숨어든 마을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여인을 만나 잠시 정착한 그는 선량한 약사로 위장해 살아가고 있었다. 마법 실험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그는 친절한 이웃이었다.

마침내 꼬리가 밟히고, 영웅과 이단심문관들이 들이닥쳤다. 마을이 불타고, 마을 주민들이 그들의 손에 쓰러졌다.

중년 사내는 어느새 어엿한 처녀가 된 여인을 향해 말했다. 불타는 마을을 배경으로, 이제 그 당시의 소리와 냄새가 페르난데스에게 절절히 느껴졌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리아. 후회하진 않겠느냐? 네가 나를 숨겨준 그 날을? 저들이 너희 부모를 죽이고, 네 이웃들을 학살한 원인이 바로 나였다.”

“후회하고 있어요.”

그 시절, 석양은 그 마을의 종탑처럼 타올랐다. 여인은 페이자쉬를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프레지아. 그녀의 숨결에선 그 꽃의 향기가 났다. 그가 처음 화관을 엮어 소녀였던 그녀의 머리에 쓰여준 꽃이다.

“저들이 선생님을 증오하는 까닭이, 선생님의 악행 탓이었다면. 선생님은 후회 하시나요?”

“아니. 천 번을 되산다 한들 내 어찌 감히 후회 하겠느냐.”

그건 위선이니까. 페이자쉬는 여인을 내려 보았다. 살기 위해 저지른 악행이라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지옥 마력에 오염된 심장은 점점 더 높은 자극을 원했다. 더 강한 힘에 대한 탐욕, 갈증, 갈망.

설령 세계를 불태워도 멈추지 않을 욕망. 페이자쉬는 그런 자신을 잠시간 멈춰 세운 여인에게 감히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가 회개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말아야 했다. 자신의 악업을 피하기 위한 위선일 뿐이니까.

악의는 독과 같아 그의 영혼을 더럽히고, 병들게 하고 있었지만. 그는 멈춰 서지 않을 것이었다. 평생 안주하며 살지 않겠다고, 자신의 영지를 등돌린 날에 맹세 했으니.

“외로운 분.”

여인은 페이자쉬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페이자쉬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뺨을 문지르며 울었다.

“제가 선생님의 후회를 대신 안겠습니다.”

그러니, 페이자쉬는 그저 그녀의 등을 감싸 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형틀을 향해 걸어라, 죄인이여.

자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꺼이. 페르난데스는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음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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