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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01화 (102/388)

< 101. 영웅 집결 >

*

그 시각, 키르하스는 호족 전사들에게 둘러싸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전사들은 그녀의 외모, 매력, 그리고 무력에 큰 호감을 표하고 있었고, 키르하스가 판단하기에, 아마도 이들의 호감을 사는 것은 페르난데스가 원하는 바일 것 같았다.

“키르하스, 손님이 온 것 같소.”

전사 하나가 술병을 들고서 거나하게 취한 표정으로 광장 방향을 가리켰다. 저 멀리에서, 천을 둘둘 감은 긴 막대기를 든 인간 사내와 호리호리한 여인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인간? 키르하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호족 연합에서 인간은, 또는 적어도 인간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벨, 그리고 페르난데스 뿐이었다.

그리고 저 낯선 사내의 보폭과 기세, 범상치 않다. 어린 나이부터 수많은 사선을 건넌 키르하스의 감각이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반갑소, 수인 호족의 영웅 여러분.”

청년은 쾌활하게 웃으며 모닥불 근처로 다가왔다. 전사들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자, 청년은 청량하게 말했다.

“나는 바트라스 부족장의 손님이오. 젊은 영웅들이 모여 있어 내 지나칠 수 없었지.”

“인간이 어떻게 이 깊은 곳까지 왔지?”

“사람을 찾아 왔소.”

청년은 껄껄 웃었다. 반면, 그의 곁에 서 있는 여인은 어딘지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청년은 전사들 한 가운데에서 그들의 술을 나눠 받고 있던 키르하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 어린 여인이, 이들의 우두머리군. 청년이 그녀에게 다가가며 생각했다.

“지금 대황야엔 뜬소문과 진실, 그리고 전설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대의 이름을 말해줄 수 있소?”

“먼저 이름을 밝히는 것이 예의 아닌가, 이방인?”

전사가 으르렁거리자, 청년은 손사래 치며 말했다.

“실례했군. 나는 다리안 쉬라이크라 하오.”

*

페르난데스는 어두운 막사 안에서 조용히 가부좌를 튼 채로 야영지를 관조하고 있었다. [카디아의 영지 선포]. 그로서도 오랜 만에 사용해보는 고위 주문이었다.

그는 회의실의 정경을, 보다 정확히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벌꿀색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혜와 진리의 피에라넬. 전생 시절 가장 끔찍한 천사 중 하나였다. 페르난데스는 녀석과의 수 싸움을 떠올렸다. 그가 준비한 함정, 그가 만들어둔 판도와 그 사이사이에 파고 들었던 심계들을 모조리 분쇄하던 녀석이다.

‘전생의 기억이 있을까?’

-아마도 없겠지. 있었다면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도 못했을 거야.

‘능력은?’

-그건 확인해 봐야겠어.

‘잠깐. 저거···?’

페르난데스는 곧 움찔 떨며 피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야에 전혀 의외의 인물이 잡혔다.

‘황제의···눈!’

다리안 쉬라이크, 황제의 눈. 떼까치의 기사. 태양창! 그가 지금 이 야영지에 들어와 있었다. 심지어는, 키르하스에게 똑바로 다가가고 있었다.

놈은 무도하거나 사특한 인물과는 거리가 먼 영웅이었다. 비틀어진 면모가 많은 인간 영웅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정갈하고 의로운 사내였다. 황제의 의사와 반하지만 않는다면.

그러나 동시에, 모든 젊은 영웅들이 으레 그렇듯 강자에 대한 호승심이 들끓는 사내이기도 했다. 페르난데스는 키르하스와 다리안이 서로를 마주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설과 전설이 마주하는군.’

전생 시절, 키르하스와 다리안이 처음 조우하는 것은 각자의 전성기 시절, 카라드스카르의 대북진(大北進) 전쟁 시기였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가부좌를 풀며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오랜 시간 주문을 지속하며 몸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키르하스와 다리안이 마주해선 안됐다. 만일 저 둘이 부딪친다면, 완성되지 않은 키르하스는 반드시 패배한다.

아직, 키르하스가 패배해선 안된다. 그녀는 아직 수인 호족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이번 계획의 핵심은 ‘불패자’ 키르하스라는 호칭이었다.

-네가 부딪치는 것은 괜찮고?

‘해보고 싶기도 해.’

과연, 전생에 수 없이 그를 패퇴시켰던 대영웅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을 수준까지 되었을까. 페르난데스는 진득하게 웃었다.

‘이게 영웅들이 보는 시선이군.’

*

피엘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라진 것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렸다. 어마어마한 압박감, 마치 신이 내려보는 것처럼, 그녀의 영혼 자체를 파헤치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그녀가 조용히 헐떡이고 있자, 바트라스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괜찮으냐? 몸이 안 좋으냐?”

“저는 괜찮습니다. 족장님. 그보다···.”

“아, 그래. 회의.”

바트라스는 자신을 바라보며 껄끄럽게 웃는 원로들을 마주했다.

“신을 겁내어 도망쳤다는 것은 좋은 핑곗거리는 되지 않을 것 같소.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해보시오.”

“어쩌겠소. 정녕코 신께서 돌아왔는데. 사냥의 신, 카단께서 우리의 곁에 돌아왔소.”

“그래서 그 ‘신’이란 분께선 지금 어디에 계시오?”

파르탁은 팔뚝 근육을 꿈틀거리는 저 호전적인 부족장을 바라보며 웃었다. 성향은 정반대였지만, 그와 바트라스는 같은 파벌에 속해 있었다. 키르자트계 매파. 그리고 바트라스의 부족은 그 중에서도 대단히 뛰어난 전투 수행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놈을 포섭하는 것은 다소 뒷일이었는데, 어쨌건 계획이야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가장 이롭지. 파르탁은 테이블을 툭 치고 일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그대도 보아야겠지. 현 원로회가 만장일치로 선출한 대족장을 말일세.”

“···의회 의석수를 봐라, 파르탁 블랙팽. 이런 식으로 대족장을 처리한다고? 당장 내전이 일어날 거야.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줄은 몰랐는데?”

“우리에게 칼끝을 돌린다? 이 시기에? 죽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하지.”

파르탁의 등 뒤에 걸린 지도가 횃불의 빛을 받아 음울하게 일렁거렸다. 극도로 위축된 키르자트의 국경선과, 세 파라오의 국경. 저 멀리 제국과 동부 왕국 연합의 전선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 점점이 박혀 있는 수인 부족들의 문장들도. 바트라스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미친 짓거리 하지 마라. 파르탁 블랙팽. 지금 우리가 분열하면, 그 끝엔 파멸 뿐이야.”

“솔직히 너무 많지 않나?”

“뭐라고?”

파르탁은 대황야의 지도를 가리키며 음산하게 웃었다.

“호족 연합의 부족이 물경 스물에 달한다네. 황제와 술탄이 사이 좋게 황야를 나눠 가졌을 때야 모르겠지만, 지금 황야는 다섯, 여섯, 아니. 수십 조각으로 쪼개어졌지. 이 상황에서 다른 마음을 가지는 부족장이 아무도 없을 것 같나? 이 시기를 기회로 바라보는 야망 넘치는 부족장이 단 한 사람도?”

“···.”

바트라스가 침묵하자 파르탁이 킬킬거렸다.

“어차피 나갈 놈들은 나갔을 걸세. 바트라스 골든클록. 놈들은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든 떠났을 거야. 오히려 잘 됐지. 이제 적이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놈들을 부채질한 것은 너와 이 빌어먹을 얼치기 의회야.”

“우리에겐 신의 사자와 고대의 신이 함께하네. 신의 권위 말일세. 원로회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나? 차라리 우리를 사제라 부르게. 바트라스. 사냥의 신의 사제들 말일세.”

파르탁은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을 탁, 쳤다.

“이 시간부로 원로회는 더 이상 없네. 바트라스 골든클록. 우리는 사냥의 신을 따르는 사제단일세!”

“미친놈들.”

“따라오게. 신의 사도를 영접하게 해주지.”

파르탁과 원로들은 막사 밖으로 벗어났다. 바트라스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엘에게 다가가 말했다.

“무언가 보이느냐?”

“저들의 말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 하더라도, 신성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대족장님. 그리고 저희가 제국이나, 비둘기파에 의탁할 것이 아니라면 이곳이 우리의 유일한 대안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군. 광신도 주술사들이 무슨 짓거리를 벌일지 모른다는 것이 말야. 호족 연합은 끝이야. 우리끼리 어금니를 드러내게 생겼군.”

“저들의 말대로, 언젠간 일어났을 일일 뿐입니다. 부족장님. 현명하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숙여야 할 때입니다.”

바트라스는 끙, 하는 소리를 내고는 막사를 벗어났다.

*

“세이리, 아까부터 왜 그래?”

“엄청난 마법사가 있어요. 대장님.”

세이리는 다리안의 뒤에서 연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렇게 긴장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사선 한 가운데로 돌진하는 다리안의 보조를 맞췄던 그녀는, 자주 투덜거리기는 했어도 대단히 담대한 마법사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주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야영지에 들어오고 싶지도 않았어요. 모든 준비가 완료된 대마법사의 공방에 비무장인 채로 입성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요.”

“비무장?”

다리안이 자신의 창을 슬쩍 흔들자, 세이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물리적인 무장 말고요. 대장, 조심하셔야 해요.”

“우리가 죽을 자리는 여기가 아니야. 세이리. 그렇게 걱정이 되거든 내 뒤에 꼭 붙어 있어라.”

다리안은 호쾌하게 웃고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곧 키르하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에게 도전하고 싶군. 어떻소. 그대도 그렇지 않나?””

키르하스는 다리안의 창, 그리고 그의 몸을 훑어보며 잠시 멈췄다. 이길 수 있을까? 부족 전사들과는 달리, 저 사내에게선 강자의 냄새가 났다.

그녀의 주군이 그녀에게 했던 명령은 단 하나 뿐이었다. 결코 패배하지 말 것. 그것이 그녀를 얽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의 피가 호승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저런 수준의 강자와 칼을 맞대어 보고 싶었다.

“물론! 나야 좋지!”

“그 전에.”

그때, 낮은 목소리가 다리안의 등 뒤에서 울렸다. 세이리가 작게 흑, 하고 딸꾹질했다. 그녀는 재빨리 다리안의 소매를 잡았다.

다리안은 천천히 그의 등 뒤에서 다가오는 청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와 먼저 해보지. 황제의 눈.”

-저벅.

멀지 않은 거리, 페르난데스가 그를 향해 곧장 다가오고 있었다. 인간 청년. 검은 곱슬 머리, 푸른 눈. 어디서 들어본 인상착의인데···. 다리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강자다. 다리안은 본능적으로 페르난데스의 보폭과 기세를 가늠했다. 어쩌면 키르하스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겠군. 그리고 내 정체를 파악하고 있군.

“대장, 저 사람이에요.”

“···응?”

“대마법사.”

세이리는 겁에 질린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그 말에 다리안은 혼란에 휩싸였다.

‘대검 두 자루를 빗겨 차고 있는, 저런 몸을 지닌 전사가 세이리를 겁에 질리게 만들 정도의 마법사라고?’

그게 가능한가? 다리안이 천천히 창에 묶은 천을 풀어내며 말했다.

“인간이오?”

“다행히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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