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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02화 (103/388)

< 102. 정점에 도달한 이들의 시야 >

*

칼이 달린다. 황무지의 타오르는 석양을 반사하며, 아름다운 궤적으로 적수의 목젖을 향해서. 곧, 창이 쏘아져 온다. 힘과 힘의 흐름, 그 사이를 정확히 파고들며.

-콰드득!!

창날이 검신을 치고, 비틀어 튕겨 올렸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당연하게도, 첫 공격부터 유효타가 나올 수 있으리란 기대 따윈 하지 않았다.

‘다리안 쉬라이크니까.’

태양창 다리안 쉬라이크. 그 고명한 떼까치의 기사. 지금은 황제의 사냥개에 불과하지만, 훗날 그는 문명 사회 최강자의 반열에 오르는 인물이다.

이 시기에 황무지를 전전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이 만남은 그에게 있어서도 제법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사건의 전말이야 어찌 되었건. 페르난데스는 숨쉴 틈 없이 그의 급소를 찔러 들어오는 창날을 빗겨 치며 생각했다.

‘일단, 이긴, 후에!’

검으로 놈을 꺾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콰직!

다인 왕의 대검이 묵빛 섬광이 되어 그에게 내려 찍힌다. 창날이 튕겨낸 검신을 그대로 돌려 깨끗하게 휘둘러 쳤다. 손목의 부하 따윈 고려조차 않는 거친 검격이다.

인대가 파열되는 느낌이 시시각각 느껴지고 있었다. 마법사로서, 그는 손목 부상을 언제나 주의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디모니카가 아닌가!

-두근, 두근, 두근.

거친 격검으로 한껏 달아오른 그의 심장이 핏줄로 신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손목이 다친다고? 아니, 설령 이 심장이 꿰뚫려 터져 나간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는 그를 멈출 수 없었다!

‘이길 수 있다!’

희열, 그 쾌감이 그의 뇌리에서 엔돌핀을 터트리고 있었다. 마법전으로 마법사들을 꺾는 것은 그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전성기에 마법전에 패배한 일이 없었으므로.

적어도 전투 마법사, 또는 와일드캐스트(방랑 마법사)들 사이에서 그는 정점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검술은, 그러나 이런 식의 격검은 전혀 달랐다.

“대단한 힘이군!”

다리안이 땀을 흘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그 또한, 황제의 눈으로서 응당 보여야 할 견제, 또는 분석 따윈 저 멀리 해치운 후였다. 그는 지금 전사 대 전사 된 입장에서 온전히 이 싸움을 즐기고 있었다.

-퓻!

“후!”

순간 가속한 창이 페르난데스의 머리를 노리고 쏘아져 날아왔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는, 오히려 창날이 그의 뺨을 얕게 가르고 난 뒤에야 찾아왔다. 소리보다 빠른 창! 인간의 몸으로 만들어낸 기예라 하기엔 적이 놀라운 기교다!

“윽!”

창날에 담긴 힘에 머리가 짜르르 울렸다. 순간 흐려진 시야 사이로, 다리안의 공격이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창술이 너울지듯이 공중을 날고 있었다.

-파르르···.

시야가 일그러지는 와중에도, 디모니카의 청력은 바람에 나부끼는 창술의 소리를 잡아냈다. 소리가 가까워지고, 어느새 그의 명치를 향해!

-콰득!

“이걸 막다니!”

“못 막았으면, 죽이려 했나?”

“하하!”

다리안은 곧장 창을 빼어 뒤로 우아하게 한 바퀴 돌리며 물러섰다. 바람에 창술이 흩날려, 녀석의 모습은 그야말로 영웅 서사시의 한 장면 같았다.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일부러 컨디션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군. 역시 정정당당한 영웅님 다운 모습이었다.

물론 생사결이 아닌 바에야, 서로 실력을 사 할 가량 숨기고 임하고 있을 테지만. 아직까지 승부는 백중세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기꺼웠다.

“훌륭하군. 정말. 손대중이 필요 없겠어. 내 또래 같은데, 자네 이름이 뭐지?”

“이기면 가르쳐주지.”

“그건 반칙 아닌가. 자네는 이미 날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다리안 후, 하고 웃더니 창을 휙 돌려 자세를 잡았다. 그의 입꼬리가 맑은 웃음을 만들었다.

“이제 진지하게 해보지.”

-화르륵.

그의 머리칼이 공중으로 살짝 떠올랐다. 바람의 방향과 상관 없이, 옷깃과 머리칼이 흔들리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정점에 도달한 전사의 몸엔 마력이 깃든다. 체내에 쌓인 마력을 투지와 함께 불태울 수 있는 수준이 되면, 그 수준에 도달한 전사들의 싸움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지평에서 이루어진다.

비록 페르난데스는 저런 기술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마력을 다루는 것에 있어 그 누구보다 능숙한 마법사로서, 다리안과 같은 전사들이 보는 전장의 시선을 공유할 수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초를 나누어, 그 찰나의 순간에도 울고, 웃고, 떠들 수 있을 정도로.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시간을 다시 열 번 나누어.

이어진 시간을 점 단위로 끊어 사고하고, 행동하며. 일견, 물리법칙에 어긋난 것 같은 그 기묘한 시간감각과 고양감 속에서, 다리안과 페르난데스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리고.

-콰드드득!!!

창과 검이 벼락처럼 부딪친다. 그 둘의 사이에서 불똥이 튀었다. 페르난데스는 손목과 팔에 걸리는 부하를 가볍게 흘리며 대검을 반시계 방향으로 크게 돌렸다.

대검 검술의 기본은 힘이 아니라 회전력에 있다. 그 회전 반경 사이에서 적의 공격을 얼마나 유려하게 흘려내는지, 그것이 대검 검술의 정수였다.

그리고, 대검은 본디 창을 끊기 위해 사용되는 전쟁 병기!

-콰지지직!

거대한 반원을 그리는 검신에 창대가 얽히며, 불똥이 비산했다. 다리안의 눈에 즐거움이 얽힌다. 페르난데스는 창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그의 눈을 바라보며 검을 돌렸다.

폭포를 타고 오르는 연어처럼, 창날이 그 대하 같은 힘을 비틀며 솟구친다. 창대가 탄력있게 튀며 창날이 송곳처럼 그의 심장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다시 한 번!

-콰득! 챙!

다시, 한 번 더!

-챙! 챙! 챙!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들 사이의 시간은 점선이 되었다. 격검과 격검, 두 행동의 사이와 사이. 그것을 구분하는 행동과 자세가 생략된 것 같은, 벼락 같은 움직임이었다.

칼이 한 순간 점멸하 듯 나타나고, 그 사이를 창날이 비집어 틀어 막는다. 잠시 정적, 그리고 다시 다른 방향에서 같은 일이 일어난다.

시간 감각이 의미를 잃는 순간이었다. 페르난데스의 고양된 정신이, 이성을 치우고 그 자리에 본능을 밀어 붙이고 있었다. 전사의, 또는 기사의 본능을!

한 자루의 검에 의지해 생사의 기로를 헤쳐 나가는, 그런 전사들의 본능을!

-콰드드득!

‘다인, 다인!’

이따금 이성이 돌아올 때면, 어느새 그는 그가 전혀 모르는 동작을 취하며 공격을 막아내고, 공세를 전환하고 있었다. 그의 영혼에 섞인 다인 왕의 업이 검술 사이에서 맥박 치고 있었다.

다인 왕과의 전투 당시, 그는 그의 타락을 나누어 받기 위해 업을 이었다. 그럼으로써 죽은 왕에게 이성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때 섞인 영과 성, 혼과 백이 이제 그의 몸 속에서 온전히 하나 되고 있었다.

‘그대는 이런 심정이었던가!’

-쿵, 쿵, 쿵, 쿵!

심장이 맥박친다. 미친듯이! 차가운 날붙이가 눈 앞에서 번뜩이며, 생존 본능이 극한에 치달아 타올랐다. 근육의 피로가, 뜨겁게 달아오른 혈관의 맥동이. 그리고 이,

호승심이!

즐겁다. 너무 즐거웠다. 마법전은 이성과 합리, 그리고 지식과 센스에 입각한 논리적인 퍼즐과 같았다. 그러나 검술은, 한계에 도달해 그 너머를 바라보는 검술의 격돌은 오로지 본능 뿐이다!

-콰아앙!

“후!”

“하, 하하하!”

두 영웅이 웃는다. 그들이 흘린 땀과 피가 격한 움직임에 흩어지며 비산했다. 그들은 잠시 거리를 벌리고 서서 깊은 숨을 몰아 쉬었다.

다리안은 창을 살짝 내리고 짙게 미소 지었다.

“정말, 훌륭하군.”

“아직.”

“뭐?”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있지 않나?”

“피차 마찬가지지. 하지만 그만 하세. 서로 목숨을 취할 필욘 없지 않겠나?”

“아니, 부탁하네.”

-페르난데스!

페르난데스의 말에, 페이자쉬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장차 적수가 될 지도 모르는 제국의 전사에게 밑천을 털어내자고?

-이성을 되찾아라! 어리석은 녀석!

‘이성?’

-그래, 이건 어리석은 짓이야. 굳이 왜 저 놈과? 시험을 해보고 싶다지 않았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놈의 호감을 사고 싶어 전사인 양 싸웠던 것이라면, 그것 또한 충분해!

‘페이자쉬. 우리가 왜 마법을 배웠지?’

-뭐?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그 시선에 다리안은 호탕하게 웃으며 창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좋다. 젊은 영웅이여! 한번, 받아내 봐. 그리고 절대 죽지 말게!”

“자네도.”

“끝나면 꼭! 한 잔 하세!”

-후우웅.

마력이 몸을 타고 흐르며 투지에 섞여 뿜어져 나왔다. 정점에 도달한 전사의 몸엔 마력이 흐른다. 다리안의 창대를 타고 마력이 타오르며, 태양처럼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태양창 다리안 쉬라이크. 그의 성명절기가 그의 손 아래에서 온전히 장전을 마쳤다. 이 기술을 받아내고 살아남은 이는 한 손에 꼽는다. 그러나 이 순간, 다리안은 페르난데스가 이것에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기대에 응해 주어야겠지. 페르난데스의 묵빛 검이 저녁 노을을 가르고 우뚝 섰다. 화려하게 빛나는 다리안의 공격과는 전혀 다르게, 그의 검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완벽한 정지. 시선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얼려 버린 것 같은 완벽한 정지 상태에서, 페르난데스의 손 아래에서 온전히 준비 되었다.

‘우리가 마법을 배운 이유, 살아남기 위해서? 재능이 있어서? 운이 좋아서? 아니, 아니야. 죽기 전까지 마법을 연구하고, 끊임 없이 학습한 이유. 우리가 적어도 마법에 대해서 그다지도 탐욕스러웠던 이유는 그런 게 아니야.’

-···.

‘그건, 마학의 정수를 보고 싶었던 욕망이었어. 페이자쉬. 지금은 내 말대로 하겠다.’

정수를 보고 싶다. 페르난데스의 심장이 흥분에 떨렸다. 저 사내와 함께라면 가능할 것만 같았다. 디모니카의 근육, 신성이 흐르는 성자의 핏물, 그런 물리적인 부분을 초월해 그 너머로!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어차피 쭉 그래 왔지 않나.

‘미안하군.’

감겼던 페르난데스의 눈이 뜨였다. 땀에 젖어 흘러내린 검은 곱슬머리 사이에서, 그의 푸른 눈이 맹렬히 불타 올랐다.

그것이 신호였다. 정지 상태의 검 끝이 살짝 떨리고.

-콰지지지직!

그의 검이 하늘을 가른다. 대기가 찢어지고 난폭하게 으스러졌다. 그 궤도가 어떤 종류의 정점에 달했을 때. 공간이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묵빛 대검이 다리안의 머리 위로 긴 궤적을 그었다. 검을 쥐고 있는 페르난데스의 손목이 시시각각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 멈춤 없이!

-쒜에에엑!

그 틈을, 태양이 삼킨다. 찬란하게, 새하얗게. 묵빛 대검이 공간을 갈아내며 만들어낸 그 어둠 속으로, 마치 일출처럼. 마치 유성처럼!

-콰아아앙!

두 색이 섞이며,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

“저 자가 신의 사도요?”

“···어?”

바트라스의 감탄을 무시하며, 파르탁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군은 분명··· 마법사가 아니었던가···?

*

“은공···.”

키르하스의 시야의 한 가운데엔 언제나 페르난데스가 있다. 그녀의 세상, 그 중심은 페르난데스를 심장으로 삼고 맥박 쳤다.

알트베르트에서, 그녀는 페르난데스의 뒤를 따라 걷는 것이 아닌, 그의 곁을 함께 걸어가고자 맹세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의 검술을 바라보며 키르하스는 그저 조용히 서서 한숨을 내어 쉬었다.

너무 멀다. 너무나. 키르하스는 그녀 자신과 페르난데스 사이의 간극에 놓인 푸르른 길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닿을 수 있을까? 저 거리까지. 저 높이까지.

“아니.”

닿아야만 했다. 키르하스는 아무 말 없이 칼자루에 손을 얹고, 꾹 쥐었다.

*

“훌륭하구나. 페르난데스.”

그리고 언덕 위에서, 아벨이 떨리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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