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04화 (105/388)

< 104. 운명은 없다. >

*

막사 밖으로 나오니, 파르탁이 킬킬거리며 다가왔다. 페르난데스는 코를 킁킁거리는 파르탁을 보며 쓰게 웃었다.

“찻잎 냄새가 나는군요. 놈도 이젠 우리와 함께 합니까?”

“함께야 하지.”

“큭, 훌륭하십니다. 주군.”

파르탁은 검은 어금니를 드러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경외심 섞인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대체 검술은 어디서 그렇게 익히셨습니까? 혹시, 제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말해라.”

“인간이 아니십니까?”

파르탁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아주 낮게 속삭였다. 페르난데스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짐짓 근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가락을 살짝 비틀어 파르탁의 심장에 걸린 복종의 주박을 건드렸다.

“허튼 소리 하지 마라. 파르탁. 아직 때가 아니다.”

“흐흐, 물론입지요. 주군. 제 심장이 뛰고 있는 한, 주군께 충성을 맹세하지 않겠습니까. 주군, 알아봐 주십시오. 저 꼭두각시 계집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 꼬마보다 이 늙은이가 더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주군의 마법에 사로잡혀 있으니, 배신할 염려가 없지요.”

파르탁은 키득거렸다. 그는 자신이 아직 쓸모 있고, 페르난데스는 결코 쓸모 있는 패를 버리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뛰어난 마법, 그리고 저기, 적수 없을 전사와 호각을 다투는 무위. 그런 주제에 말도 안되게 어린 얼굴까지. 파르탁이 보기에 페르난데스는 인간이 아니었다.

악마, 그것도 대단히 고위의 악마가 틀림 없었다. 적어도 대공급 악마일 터였다. 파르탁이 데’카라즈 스웜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찔러온 것까지. 모든 정황이 확실했다.

페르난데스는 그런 파르탁의 심리를 손에 올려둔 듯 선명히 알 수 있었다. 그때 파르탁이 다시 속삭였다.

“바트라스가 주군을 뵙고자 합니다. 조심하십시오. 바트라스는 대단한 투사이며, 수인 호족들 사이에서 대단히 높은 인망을 지닌 부족장입니다. 그가 주군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대화할 필요가 있었지. 어딘가?”

“놈의 야영지입니다. 적지에 홀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파르탁은 표정을 굳히며 어금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아벨.”

아벨은 적개심이 흐르는 푸른 눈으로 파르탁을 벌레 보듯 바라보았다. 파르탁은 잠시 욱하며 손을 내밀려다가, 페르난데스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몸을 도사렸다.

‘주군의 애첩이다.’

그렇다면 서열상 자신보다 위에 있긴 하지. 하잘것없는 인간 계집. 파르탁은 투덜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페르난데스는 픽 하고 웃었다.

*

바트라스의 부족 야영지는 바깥의 축제 분위기와는 동떨어져 삼엄하고 흉흉했다. 그들은 페르난데스를 가로막지는 않았지만, 연신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영지의 한 가운데, 거대한 모닥불 앞에. 피엘이 화려한 무복을 입은 채 불 안에 재와 금속 가루, 그리고 짐승의 뼛조각을 던지고 있었다.

바트라스는 팔짱을 낀 채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오, 왔나.”

“불렀다고 들었소만.”

“그래. 자네에게 볼일이 있기야 하지. 일단 의식이 끝나고 잠깐 보세. 내 막사로 오게나.”

바트라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막사로 돌아섰다. 모닥불의 색이 점차 노랗게 변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춤을 추는 피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제대로 된 주술을 배웠는데?’

-전생 능력의 반절만 물려 받았어도 저 계집은 인간 세상에서 한 손에 꼽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호의적이길 바래 보자고.’

페르난데스는 대황야의 토착 주술에 깊은 조예가 없었다. 그의 전문 분야는 전투 마법과 엔소서리, 그리고 소환과 저주 등에 치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는 오랜만에, 새로운 주문을 보며 느긋하게 탐구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모닥불이 노란색, 붉은색, 그리고 보라색으로 변했다. 피엘이 불 안에 집어 던지는 가루가 불꽃과 만나 타닥이며 공중으로 형형색색의 불똥을 튀었다.

-후우우···.

바람이 내려 앉으며, 이윽고 다시 모닥불의 색이 자연스럽게 돌아왔다. 페르난데스는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피엘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곁에 서 있던 아벨이 조용히 속삭였다.

“저 아이의 눈은 시간을 바라보는구나.”

“무슨 뜻이오?”

“말 그대로의 의미다. 저 아이는 아주 드문 눈을 지녔어. 예언자의 눈이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구나.”

“좋지 않군.”

페르난데스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예언자는 반드시 단명한다. 그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피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곧 피엘이 헉,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녀는 그제야 페르난데스를 인식한 듯 시선을 미묘하게 늘어트리며 고개를 숙였다.

“부족 주술사. 나를 본 적 있지 않소?”

“···카라쉬.”

카라쉬, 혼령술사라는 뜻이었다. 페르난데스가 눈썹을 꿈틀거리자 피엘은 더욱 겁을 먹은 모습으로 목을 움츠러들었다.

“당신은 복잡한 사람이에요. 저는 당신이 두렵습니다.”

“내가 그대를 해코지하는 미래라도 보았소?”

피엘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예언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도 아오.”

피엘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벌꿀색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보았다. 재능? 영성? 신성? 아니,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대천사가 맞나···?’

-이 시기는 모르되, 대황야에 저 정도의 실력을 가진 예언자가 나타난 적이 없어.

‘생김새도 똑 닮았어. 맞긴 할텐데···. 봉인되어 있나?’

-그럴 가능성이 높지.

그는 천천히 피엘과 시선을 맞췄다. 향후 봉인이 풀리던, 그렇지 않던. 베이타서스가 말하기를 그의 네 딸들은 페르난데스에게 내리는 그의 지원이었다.

무능할 리가 없었다.

“예언자, 선각자, 선지자, 대주술사, 무당, 대사제···. 알고 계시오? 미래를 본다는 이들의 종류가 이토록 다양한데도, 미래를 엿보는 방식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네···?”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예언자의 눈이라. 그런 눈을 본 적은 없었다. 모든 예언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머지 않아 죽으니까.

마학적 관점에서, 미래를 엿보는 힘들은 한 가지 종류의 능력으로 가정한다.

“역인과 정보 반사 독립체. 우리는 그렇게 보고 있소.”

“그게 무슨···.”

현대 마학에 따르면, 모든 사건과 상태는 ‘정보’라는 것을 반사하며 나타난다. 이 ‘정보’는 인과에 상관 없이. 즉 미래나 과거와 같은 시간선의 개념에 상관 없이 반사되나, 일반적으로 동시간선에서 인지된다.

이런 정보 반사 이론에서 독립된 이들이 있다. 인과를 무시하고 이러한 정보를 관측하는 이들. 미래나 과거에서 반사되는 정보를 인지할 수 있는 이들.

현대 마학의 관점에서, 이런 능력을 지닌 이들을 ‘예언자’라 부른다. 그리고 피엘은 진짜 예언자였다. 자신의 능력을 아직 온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

다행이었다. 예언의 능력을 온전히 깨워낸 예언자들은 모두 자살하게 되니까.

“그대는 미래를 보고자 하는 대상을 특정할 수 있소?”

“어···네.”

“그대는 특정한 대상의 특정한 미래를 볼 수 있소?”

“그건 아뇨. 정말 아주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래요.”

피엘은 사무적으로 말하는 페르난데스에게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그녀는 페르난데스의 마법 실력을, 그리고 그의 과거의 편린을 보았다.

마치 자신을 가지고 실험하는 듯한 그의 눈빛과 말투는, 어린 피엘을 겁에 질리게 하고 있었다.

“그대는 2급 역인과 정보 반사 독립체요. 특정 대상의 난수 발생적 미래를 인지할 수 있지. 즉, 원하는 대상의 미래, 또는 과거를 의사와 상관 없이 볼 수 있다는 뜻이오. 맞소?”

“···네.”

“1급 독립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소.”

대상과 시점에 상관 없이 갑작스러운 정보를 감지할 수 있는 예언자. 3급. 특정 대상에 대하여, 시점에 상관 없는 정보를 감지할 수 있는 예언자. 2급.

그리고 특정 대상의 특정한 시점을 관측할 수 있는, 이른바. 진정한 예언자를 1급이라 할 때.

1급 예언자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미치거나 자살했다.

‘베이타서스가 자신의 딸을 구원하라 했던 이유 중에, 이게 있었을까? 지혜와 진리의 피에라넬을 자살 위험에서 구해 달라고?’

-아마도.

“그러니 가능하면 예언을 시도하지 마시오. 그대의 능력을 갈고 닦을수록 그대에게 파멸이 다가올 테니까. 살아갈 날을 바라보는 것은 곧, 그 대상의 죽어갈 나날들을 엿보는 것과 동일하오.”

“제 능력을 막고 싶어한다는 것은 알겠어요. 하지만 카라쉬. 저는 당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현명한 자세요.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오. 하지만 편견은 좋지 않소. 주술사.”

-슥.

페르난데스는 피엘의 겁에 질린 얼굴 위로 손을 드리웠다. 피엘은 움찔거렸지만, 페르난데스는 그저 그녀의 정수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아주 작은 소녀였다. 여리고 작은. 아리아를 처음 만났을 때 딱 이 정도의 나이였는데. 페르난데스는 잠시 감상적인 눈이 되어 그녀를 내려 보았다.

“항상 명심하시오. 아무리 확실한 정보라 하더라도, 그대가 보는 미래는 가장 가능성 높은 미래에 불과하단 것을. 모든 정보가 정해진 길로 가는, 이른바 운명이라는 것은 없소.”

“대단히 낭만적이네요···?”

“대단히 객관적이지. 직접 실험했었으니.”

이것은 자신의 손에 의해 죽인 적 없던 이들을 직접 살해해본 뒤에 교차 검증한 가설이다. 페르난데스는 굳이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의 등 뒤에서, 아벨이 퍽 감명받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운명이 없다 했느냐?”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벨은 후, 하고 웃었다.

*

바트라스는 무두질된 호랑이 가죽으로 덮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근육이 알알이 박힌 팔뚝을 꿈틀거리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차 한잔 마실 분위기는 아닌 듯 하오만?”

“자네를 부른 이유가 선전포고였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그렇게 단순한 문제였다면 내 이리 고민하지 않았을 것일세.”

바트라스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내 파르탁에게 들었네. 그 묘인족 계집이 신의 사도라고.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파르탁은 자네를 두려워하네. 그 계집보다 더. 그리고 그 계집은 오히려 자네를 공경하는 것처럼 보였네.”

바트라스가 이 야영지에 도착한 것이 고작 반나절이라는 것을 볼 때,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기민한 추리였다.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수인 호족 연맹은 반쪽이 났고, 이제 내전이 임박했네. 오늘 막 도착한 나도 그건 알겠더군. 그런 와중에, 왜 나를 숙청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네. 나는 좋은 먹잇감이 아닌가.”

“당신을 살해하면 뛰어난 전사들을 다수 거느리고 있는 부족을 통째로 삼킬 수 있겠지. 물론 그렇소.”

“그래. 이유가 뭔가? 내 눈은 옹이 구멍이 아닐세. 명백히, 자네가 이 부족의 우두머리야. 그러니 날 설득해 보게. 나와 차를 마시겠나, 술을 나누겠나?”

전쟁인가, 협의인가. 바트라스는 위압적으로 말했다. 전쟁을 선택할 경우 자신의 목이 달아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호족 연맹을 향한 그의 애착과 애향심은 진짜였다.

페르난데스는 막사 한 구석에 있는 술통을 뜯고는, 한 모금 들이키고 바트라스에게 던졌다. 바트라스는 조용히 술병을 받아 들었다.

“나는 떠날거요.”

“뭐?”

“호족 연합은 남쪽, 그리고 동쪽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오. 이 위치는 안전하지 않으니까. 북부에서 투탄 가르텝의 군단이 남하하고 있잖소.”

“그대는 어디로 가려 하는가?”

“북부로. 투탄 가르텝의 군영과 우리 사이에 있는 매파 호족들에게 찾아갈 것이오.”

페르난데스는 막사의 한 귀퉁이에 있는 지도를 꺼내어 바트라스의 눈 앞에 펼쳤다. 투탄 가르텝이 위치한 북부에서 그들이 위치한 서부까지 선으로 쭉 그으며.

“호족 연합은 지금 당장 파라오와 격돌할 수 없소. 세력을 키우고, 호족 연합을 하나로 규합해야 하지. 그러니 그대는 대족장을 보필해 주시오.”

“그 시간동안 그대는···?”

“당장 위기에 직면한 부족들을 수습하고 파라오를 칠 것이오. 시간 정도는 벌겠지.”

바트라스는 혼란에 휩싸였다. 대체 왜? 호족 연맹의 심장부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이 어째서 죽을 것이 뻔한 소모품으로 자원한단 말인가?

“왜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사냥의 시간이거든.”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이 판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대족장이 되어야 하니까.”

대황야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영웅을 만들어야 했다. 이 황무지의 아이콘이 되어줄 인물을. 비단 훗날 그의 지지 세력이 되어줄 영웅을 키우겠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가장 화려한 인물이 필요했다. 대황야 모든 세력가들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을 정도로 활활 타오르는, 역전의, 불패의 용사가.

‘심지어 대악마 조차도 집중하게 되는 영웅이.’

-그 사이에, 우리는 어둠 속의 비수가 된다.

대악마를 처치하거나, 최소한 100년 이상 재기할 수 없도록 봉인하기 위해서.

황무지의 시곗바늘이 돌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멈춰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도 이 황무지엔 그가 이용할 수 있는 팻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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