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와일드캐스트 (3) >
*
완벽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선결 과제는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페르난데스에게 이것은 생존 과제와 같았다. 전생에,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적의 상황에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으니.
그러니, 그가 가진 최고의 주문을 사용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 그리고 이 주문으로 소모해야 하는 자원들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그 첫 단추가 될 법 했다.
어쨌건 그에게 목숨은 소모 자원에 가까웠고, 대악마를 상대하기 위해선 그의 모든 것이 온전히 투사되어야 할 테니까.
-후우우웅···.
모래 바람이 황야를 휘몰아친다. 페르난데스는 사방이 틀어 막힌 뼛가루의 폭풍 한 가운데에서 네페르카의 목을 쥐고 있었다.
“너희 족속들에게 궁금하던 것이 있지. 망령. 너희는 어째서 파라오에게 충성하지?”
[무어라?]
이 뜬금 없는 질문에, 네페르카는 적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페르난데스는 네페르카의 목에 걸린 사슬을 타고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파라오의 권위는 무엇으로 인정되는가? 너희의 신은 죽었고, 대악마는 봉인된 이 상황에서. 심지어 너희를 일으켜 세운 힘이 파라오의 것조차 아닌데. 어째서 너희는 파라오에게 충성하지?”
[···.]
네페르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 혼란이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상아시트의 망령들, 소위 고위 귀족들이라 불리는 이들의 행동 원리 기저엔 야망이 깔려 있다.
그들의 영혼은 생전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을 즐기고자 한다. 그러나 썩은 살점과 바싹 마른 뼈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곤 싸늘한 죽음의 냉기 뿐.
그들은 생전에 하던 것처럼 음식을 먹는 시늉을 하고, 화려한 보석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그저 허깨비처럼 실체가 없다.
따라서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만족감. 오직 야망 뿐이었다. 자신이 아직 이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닫고자 하는 허무한 야망 뿐.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네페르카의 두개골에 손을 얹었다. 그의 영혼이 움츠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군단의 패배와 이로 인한 파라오의 질책, 그리고 자신의 실패로 인해 위축된 자존감이 손에 잡혔다.
산산 조각난 자긍심과 강제적인 부활로 인한 영혼의 불안정함. 결정적으로.
공포.
한 순간에 자신의 군단을 허물어트리고, 매장 사제들과 마법사들이 저항할 틈도 없이. 상아시트 최고의 보호부들을 일소해버린 그 한 모를 주문들. 자신을 압도하는 검술의 기교까지.
네페르카는 페르난데스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페르난데스는 그런 공포의 향기를 잘 알고 있었다. 익숙하고, 짜릿한 감각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
[바라는 것이 뭔가?]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
[···널 죽이고 파라오께 사죄하는 것이다.]
“아니.”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와 눈을 맞췄다. 네페르카는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거센 악력에 그의 목이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너는 더 높은 곳을 원한다. 망령. 신 파라오? 너는 네 주인이 신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어. 너희 신은 대부분 죽었고, 아직 존재하는 신들마저 너희를 버렸으니. 불타버린 잿더미 왕국의 파라오가 굳이, 투탄 가르텝이어야 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신의 혈통이···.]
“하!”
페르난데스의 입술에 미소가 걸렸다.
“혈통이 문제라면, 지금 네 몸을 봐. 네 몸 그 어디에 핏물이 흐르나?”
[그래서 지금 날더러 파라오를 배신하라는 게냐?]
“널 배신하지 말라는 거지. 망령, 뭄토가 너희에게 지배력을 잃었는데, 너는 그보다 나약한 존재가 너에게 행사하는 지배에 복종하기 위해 일어난 건가?”
그의 음울한 푸른 눈이 네페르카의 안광 안에 틀어 박히는 것 같았다. 만일 육신이 있었다면, 네페르카는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떨었을 것이었다.
끔찍한, 두려운 유혹이었다. 그의 텅 빈 인후부 안으로 죽음과 화염의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천천히, 뼛가루들의 모래 폭풍이 걷히고 있었다.
망자의 비명과 분골이 섞인 그 열풍 너머로, 협곡 사이에 석양이 내려 앉고 있었다. 저 멀리에 짐승과 토인들이 두려움에 찬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흐리게 보였다.
열기 섞인 아지랑이가 페르난데스의 근처를 맴돌았다. 죽음과 화염의 냄새. 그것은 야망의 냄새였다. 네페르카의 영혼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파라오를 배신한다. 파라오가 죽는다. 그리고 그가 이 대황야의 신이 된다.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낯선 문장이었다.
‘생각한 적 없었나? 정말?’
네페르카는 침묵했다. 자신을 배신하지 말라 했던가. 그렇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엔 드높은 야망이 숨쉬고 있었다.
-탁.
네페르카는 자신의 머리를 짚고 있는 페르난데스의 손목을 쳐냈다. 그리고 그는 활활 타오르는 안광을 들어, 페르난데스를 올려 보았다.
[나는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마법사.]
“그리하라.”
[나는 네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아. 나는 누구에게도 충성하지 않는다.]
“그리하라.”
[내 이름은 네페르카다. 지배 받지 않는 자 네페르카. 지배하는 자 네페르카!! 나는 지배하기 위해 다시 일어났다. 군단학살자, 귀족살해자!]
참 고아한 말투로군. 페르난데스는 짙게 웃었다. 그는 네페르카의 타오르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하라.”
타락. 유혹. 분열. 그에겐 너무나 익숙한 계략이었다. 힘과 매력, 그리고 언변과 마법이 있다면. 그리고 그에겐 그 모든 것이 완벽할 정도로 갖추어져 있었다.
*
[파라오의 곁엔 트라이아크라 불리는 세 장수가 있다.]
“너는 그 중에 포함되지 못한 모양이지?”
[···트라이아크는 오직 파라오의 곁에만 머물지. 놈들의 본분은 파라오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다. 메렌레와 나는 공세를 위해 군단을 이양 받았지. 파라오의 진군 전에, 그가 다스릴 땅을 정지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
페르난데스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를 읽고 있었다. 마력의 흐름이 기묘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 근방 지맥을 모조리 사용해 대(大)마법 규모의 주문을 시전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영혼계의 마력을 끌어다 쓴 탓에, 천문의 수레바퀴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노랗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 사이에 아지랑이처럼 퍼져 있는 마력의 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벨은 별을 바라볼 때 그것의 아름다움과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녀는 이 더럽고 치열한 세상을 사랑했다. 진흙 속엔 진주가 있기에 가치가 있다는 듯이.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그럴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더러움을 그저 더러움으로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아벨이 별을 바라볼 때, 그는 별들 사이에 얽힌 마력의 흐름을 보았다. 투탄 가르텝의 영향력이 하늘에 점멸하는 것이 보였다. 마력의 흐름이란 인지와 공간을 초월한 개념의 것이었으니.
이렇게 시계가 깨끗한 황무지의 밤하늘엔 그런 것들이 보였다.
-후우웅···.
서늘한 바람이 그의 로브를 휘감고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
[트라이아크 중 최강은 투탄 가르텝의 제일 투사. 전사장 카하레페르다. 놈은 마법이라곤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투신의 가호를 받은 것처럼 싸우지. 놈은 결코 파라오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강한가?”
[충분히.]
*
페르난데스의 등 뒤에 수인 전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페르난데스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익숙한 공포의 냄새가 그들의 몸에서 풍기고 있었다.
오랜 전투와 도주, 그리고 방랑으로 전사들의 몰골은 끔찍했다. 페르난데스가 그들을 돌아보자, 그들은 두려움에 고개를 숙이며 꼬리를 내렸다.
“말씀하신 대로 전사들을 모두 모아 왔습니다. 노사.”
“이게 너희가 가진 전부냐?”
“몇몇 남은 전사들은 부족의 아이와 여인, 그리고 노인들을 지켜야 합니다. 부족을 벗어나 싸울 수 있는 이들은 이들이 전부입니다.”
서른 명 남짓의 초췌한 수인족 사내들이 페르난데스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저희는 죽는 겁니까?”
“무어라?”
그들의 말에 페르난데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지?
“저희를 죽이고 악마에게 인신공양을 하실 생각이라면···. 부디 저희 부족의 아이들은 살려 주십시오···.”
“그게 무슨···. 됐다. 설명하지 마라. 너희를 죽이려거든 왜 살려 두었겠느냐. 너희는 아직 쓸모가 많다.”
페르난데스는 사내들에게 흥미를 잃고 등을 돌려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사들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조아리고는 낮게 물었다.
“그럼 저희가 무엇을 해야 노사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지요.”
“너희가 본대로 말하라.”
“···네?”
“내가 한 일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너희가 보기에 내가 했을 법한 일들에 대해. 이제부터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퍼트려라. 이 황무지의 모든 이들이 내 이름을 알 수 있도록.”
황무지에 떠도는 수 많은 소문과 미신 중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무지한 이들의 이야깃거리가 되도록. 현명한 이들에겐 경계의 대상이 되도록. 그리고 이 황무지에 돌아다니는 망령들에겐 경고가 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들이 그를 대비하도록. 그를 경계하도록. 그 소문의 진위를 직접 파악하고 싶어 하도록.
*
[마법사와 사제들은 네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마법사. 네가 한 마법의 반의 반도 따라하지 못할 천치들 뿐이니. 그러니 네가 경계해야 할 이는 그 자. 투탄 가르텝의 전사장 카하레페르 뿐이다.]
“놈이 파라오의 그늘 아래에서 나오게 만들어야겠군.”
[그래. 가능하다면 말이지. 파라오가 몸이 달아서 자신의 가장 강력한 투사를 내보내게 만들어야지.]
“이를 테면, 힘을 잃은 뭄토가 봉인을 빠져나와 약해진 채 황무지를 홀로 거닐고 있다는 정보 같이.”
[그래.]
네페르카는 페르난데스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런 종류의 소문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투탄 가르텝은 구중궁궐 안에서 수만 명의 해골들에게 보호 받고 있었고, 카하레페르보다 믿을 수 있는 전사는 없었다.
만일 힘이 다한 뭄토가 홀로 황무지를 전전한다는 소문이 들린다면. 파라오는 반드시 그의 전사장을 파견할 것이다.
마법사들? 그들은 믿을 수 없다. 뭄토의 마법에 매혹되어 그에게 지식을 갈구할 테니까. 사제들 또한. 뭄토는 신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에게 귀의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전사장은 달랐다. 홀로 이 황무지 최강자라 자부할 무력을 지녔으며, 그 충성심은 이미 생전에 입증된 바 있었다.
그러니 파라오가 뭄토에게 암살자를 보낸다면 반드시 전사장이 될 것이다.
“네 역할도 알고 있겠지?”
[시간이 가장 문제야. 마법사.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네가 실패하거나, 제 때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우리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나는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어.”
페르난데스의 웃음을 보며 네페르카는 잠시 고민했다. 정말 이 마법사가 할 수 있을까? 전사장은 분명 뭄토에 대항하기 위해 온갖 대마법 부적을 몸에 걸고 찾아올 것이다.
[부디 네가 이기길 바라지. 전사장을 얕보지 마라, 마법사. 네가 자랑하는 마법을 쓰기도 전에 죽어 자빠질 수도 있으니까.]
네페르카의 위협에 페르난데스는 미소 지었다.
*
전사들은 페르난데스의 말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 흑마법사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어하기 마련이었다. 흑마법사를 죽이고 싶어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거기에, 이토록 위험한 시기가 아닌가. 이 황무지엔 새로운 강자를 반기지 않을 기존의 강자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전사들은 감히 페르난데스에게 달리 되묻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가 노사를 무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와일드캐스트(방랑마법사).”
한 번의 마법으로 군단 전체를 영혼계로 보내 버렸다는 소문을 듣는다면. 그리고 네페르카가 돌아가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한다면.
그가 파라오의 귓가에 제대로 속삭일 수만 있다면, 한 사람의 마법사가 이 모든 일을 저질렀고, 그가 자신을 보내며 선언했다고. 그렇다면 파라오는 반드시 즉시 행동을 취할 것이다. 자신의 몸을 더 숨기고, 자신의 군단을 모두 모아 방비에 최선을 다하며, 암살자를 파견할 것이다.
-내가 돌아왔다.
그런 말을 듣는다면. 투탄 가르텝은 반드시.
“나를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라 불러라.”
페이자쉬, 고대 멜라쿰 제국 방언으로 ‘배신자’. 그 이름이 공포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