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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12화 (113/388)

< 112. 대전사 카하레페르 (1) >

*

대검이 하늘을 난다. 페르난데스는 손아귀에서 거칠게 날아가 자수정 전당의 반짝이는 천장에 틀어 박히는 것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쒜에에엑!!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리안의 창이 빗살처럼 쏘아진다. 페르난데스의 날카로운 반사신경에도 거의 잔상만 보일 정도의 일격이었다.

-콰직!

“커흑!”

다시 한 번, 거대한 충격이 그의 심장을 박살낸다. 창이 소용돌이치며 강력한 회전력을 그의 흉부에서 터트렸다. 그 기세에 갈비뼈들이 으스러지고 폐가 짓눌려 막힌 호흡이 터져 나온다.

마치 심해에 가라앉는 느낌이다. 닻에 끌려 저 아래로. 저 아래로···. 깊은 어둠 속 유일한 빛은 다리안이 만들어내는 태양창의 광휘 뿐이었다.

페르난데스는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생각했다. 이대론 안 된다. 배울 수 있는 것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와 다리안의 간극은 그 정도였다. 전성기의 다리안을 상대하기 위해선, 똑같이 전성기의 자신이 필요했다.

전성기라. 페르난데스는 그 단어에서 반사적으로 마법을 떠올리는 자신에게 실망했다. 그건 과거의 답보일 뿐이다. 그래선 안 된다. 그보다 더 뛰어나야 했다.

기왕에 과거로 회귀한 몸이다. 전생의 경지를 답보하는 것은 소모적이다. 그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조금만 더 시간을 갖출 수 있다면. 그의 마법을 전성기 시절로 되돌리는 것은 여반장이었다.

‘대강 삼천 명 정도를 제물 바치고 그 영혼을 영혼로에 녹여 정수로 빚어 낸 후에 대악마 중 하나와 계약해 마력 회로를 뚫어내면 전성기의 수준에 근접할 수 있다.’

그럴 만한 능력도, 지식도, 지혜도, 여건도 충분했다. 대황야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고, 이를 이용한다면 불가능할 일도 아니었다.

키르하스의 세력을 통해 대황야 전체에 마법진을 그리고, 황야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희생 주문으로 황무지를 불태운 뒤에, 네크로폴리스의 대봉인을 뚫고 뭄토의 약해진 영육을 취한다면.

그 자신이 신성을 획득하고 대악마로 군림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방법도 있었다.

‘아니야.’

그러나 아니다. 타락은 달콤하고 안식은 편안하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비참하고 냉혹했으며, 그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발, 그 걸음과 걸음 사이엔 피와 진물, 고통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이 현실이다. 페르난데스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타락과 쾌락의 편안한 선택지는 그에게 있어서 고려할 대상조차 아니었다.

그는 현실의 아늑함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그의 북극성은 언제나 그보다 높은 이상에 닿아 있었다. 시간과 시간 속을 표류하는 그 사이에도, 그의 해도(海圖)는 항상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포기하지 않는다.’

악마의 손에서 아들의 영을 구하기 위해 악마가 된다는 것은, 비극적이긴 하지만 자가당착적인 촌극이다. 페르난데스는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아드득.

핏물이 잇새로 흘러 넘쳤다. 살점 섞인 피거품이 입가에 끓어 올랐다. 환상을 극도로 정교하게 자아낸 탓에, 그 통각마저 절절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 모아, 어금니가 부서질 듯 씹어 삼키며. 페르난데스는 충혈된 눈으로 다리안의 멍한 표정을 노려 보았다.

“뭐야, 진짜 죽었어?”

고장난 태엽 장치처럼 다리안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래. 그것이 필요했다. 언젠가, 시간만 충분하다면 나 또한 저기에 닿을 수 있도록.

나의 전성기가, 마법이나 타락, 악마나 지옥의 힘이 아닌. 온전히 나의 힘이 되도록.

나의 이름이 나의 전성기를 상징할 수 있도록.

인류의 ‘배신자’. 그는 그런 의미로 자신의 이름을 지었다. 먼 상고 시절에 존재했던 악마 제국의 잊혀진 언어로. 배신자. 페이자쉬. 과거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그의 천형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의 이름은 그것이 아니다. 지금 그는···.

“나는 페르난데스다. 다리안.”

“뭐?”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시대의 이름에 나의 이름을 덧씌울 때까지. 나의 손으로 나의 별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그래. 설령 수천 번의 죽음을 건너더라도. 그는 결코 안주하며 살았던 적이 없었다. 그것이 그의 행동 원리였다.

“그러니. 다시 한 번 해보지.”

시야가, 암전한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페르난데스는 익숙한 망아 상태에 빠졌다. 죽고, 살고, 치고, 쳐내고, 튕겨나고, 쓰러지는 그 시간들이 오랜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점멸했다.

‘안된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어금니를 으스러트리며 페르난데스는 눈을 크게 떴다. 집중이 깨어지며 대검의 끝이 흔들렸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 그러나 다리안은 그 틈을 파고들고, 다시금 창날이 그의 심장에 틀어 박혔다.

-콰드드드득!!!!

아니, 박힐 뻔 했다. 페르난데스는 대검의 크로스가드로 창날을 빗겨내 흘렸다. 불똥이 비산하며 대검 끝에 긴 실금이 그어진다. 다인 왕의 검이었다면 결코 부서지지 않았을 테지만, 이건 그 모조품에 불과했다.

“막았어?!”

다리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가 판단한 페르난데스의 검술은 잘 해야 일류, 고작 그 정도의 수준이다. 탈각한 영웅의 세계에 발을 딛기엔 아직 적이 모자란, 가능성이 있는 수준.

놀라운 일이다.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 그 정도의 마법사가 검술에도 이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니. 다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놈이 무예에 재능을 깨치기 전에 끝을 봐야 했다. 놈에게 무예까지 갖춰진다면, 막을 수 있을 자가 없다!

-후우웅!

다리안은 창을 길게 흩뿌리며 뒤로 물러섰다. 고아하고 깔끔한 움직임. 페르난데스는 다리안의 눈에 얽힌 다급함을 읽었다. 그의 창을 막은 손목이 저렸다. 흘렸음에도 그 충격에 인대가 파열되었다.

‘대단한 힘이다.’

단순히 힘이라면 디모니카의 근력을 따라갈 순 없다. 디모니카의 근육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은 것이니. 그러나 정점에 도달한 전사의 몸엔 마력이 깃든다. 다리안의 반사신경과 반응속도, 민활함과 근력은 그 마력이 만들어낸 일종의 초월이다.

‘신성이 흐르는 몸은 마력을 거부한다.’

디모니카들이 공연히 근육만 줄창 키워대는 것이 아니었다. 헤레티카나 엔마기카의 이단심문관들이 마법과 무예의 극에 도달하면 마력을 쌓을 수 있지만, 디모니카에겐 그것이 불가능했다.

디모니카의 몸 속엔 베이타서스의 신성이 흐른다. 디모니카들은 그 힘을 받아들이며 육신을 개조하고, 그 결과 혈관 속에 신성을 품을 수 있었다.

그 탓에 그들은 무예의 정점에 도달할 수 없다. 그들의 몸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생체적 대마력을 손에 넣은 대신, 그들은 마력을 품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따라서 페르난데스 또한, 검술의 극의에 도달할 수 없다. 마력 회로 한 줄 그의 몸에 박아 넣을 수 없다. 디모니카가 되고 난 뒤 며칠 밤을 지새우며 연구한 끝에, 그는 차라리 청동 왕좌를 손에 넣기로 계획을 수정한 바 있었다.

‘그러니 기교를.’

그러니 기술을. 마력으로 인한 근력 증강. 그것은 근육으로. 마력으로 인한 반사신경. 그것은 시력으로. 무예의 정점을 가름하는 척도는 비단 마력 뿐만이 아니라 믿으며—

깨달음과 탈각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그에 준하는 기술을 기계적으로 연마하더라도. 천단천련. 천 번을 두드려 접쇠한 세인트메탈 장검과 같이!

-콰드드드득!!

다시 한 번. 창날이 그의 대검을 친다. 대검이 크게 흔들리며 빈틈을 만들어낸다. 그의 심장으로 향하는 길이 크게 열렸다. 다리안의 눈은 결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창이 다시 한 번 쏘아지며—

-으드득!

어금니가 부서졌다. 페르난데스는 균형을 잃고 흐트러진 몸, 그 상태 그대로 대퇴에 힘을 쏟아 부으며 몸의 정중선을 맞추고,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끄으아아아!!”

-콰아앙!

묵빛 검신, 그의 칼날이 검은 궤적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안의 새하얗게 빛나는 창날이 그에 마주하며 달려든다.

-으득! 우득! 까드득!

전신의 근육, 인대, 뼈와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흐트러진 자세에선 불가능한, 디모니카의 한계마저 초월한 일격이다. 근육이 파열하고 관절이 탈골하며 끔찍한 고통을 전신에 퍼부었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백열하는 창과 묵빛 대검이 격돌한다. 불똥이 비산하고 서로의 궤적이 서로를 향해 뒤얽혔다. 하얀, 그리고 검은. 서로를 향해 소용돌이치는 힘의 와류.

‘태극이라. 아세아스 고위 의회 녀석들이 생각나는군.’

극도로 고양된 정신 속에서, 느리게 흐르는 시간 감각을 느끼며 페르난데스는 실없이 웃었다. 그와 검을 맞대고 있는 다리안의 인상이 구겨지는 것이 보였다. 놈은 초조해 하고 있었다.

‘아무렴. 심지어 페이자쉬가 검술마저 능했다면 초조해야 마땅하지.’

동시대 마법의 정점이라 불린 존재가 아무런 마법적 도움 없이 무예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면 초조할 법 했다. 물론 아직, 그의 발치에도 닿지 못할 미력한 기교뿐이지만.

-콰아아앙!

격돌이 끝났다. 창날이 결국 대검을 튕겨냈다. 그러나 다리안 또한 창날을 가누지 못하고 힘을 뒤로 흘려야 했다. 서로의 자세가 무너졌다.

페르난데스에게 있어선 피해가 막심한 일격이었다. 전신의 기능이 온전하지 않았다. 반면 다리안은—

“어···?”

놈이 어느새 창을 한 손에 잡고 있었다. 힘을 흘리기 위해 크게 횡으로 쳐낸 창이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놈의 오른손이 그의 허리춤에, 소드밸트에 닿았다.

“설마?”

-철컥.

한 손으로 창에 얽힌 힘을 풀어내며, 다른 한 손으로 소드벨트 위에, 얇은 장검에 검지 손끝을 살짝 얹고는—

“후우···.”

-스르륵.

자세가 살짝 내려앉는다. 페르난데스는 거의 멈추다시피 한 시간 속에서 그 익숙한 자세를 깨닫고는 경악했다.

‘저런 기술도 쓸 수 있었어?!’

놈은 방금 그 격돌의 힘을 한 손으로 흘리며, 다른 한 손으로 장검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저 자세, 저건 엘븐 와일드프린스의 거합 검술···!

경악한 페르난데스가 황급히 자세를 다잡아 보지만, 물질 세계 최강자가 펼치는 검격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다리안의 칼자루 끝에 걸린 검지 손가락이 살짝 굽어지고, 이윽고—

-스겅.

“크헉!”

섬광이 그의 심장을 가르며 쏟아졌다.

*

황야의 밤, 작은 모닥불 앞에 정좌하고 앉은 보라색 로브의 사내가 보였다. 카하레페르는 칼자루를 움켜쥐며 소리 없이 나아갔다.

-척, 척.

사내는 정좌한 자세로 한쪽 팔만 움직여 연신 만트라를 짚고 있었다. 마치 그 팔만이 따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에, 카하레페르는 껄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척.

-파지직!

[흠.]

카하레페르의 몸에 걸린 수많은 보호부 중 하나가 깨져 나갔다. 그의 몸이 잠시 멈춘다. 바람이 그를 밀어내며, 무언가 끈적한 시선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악의와 적의가 진득하게 스며 나오는 시선이었다. 카하레페르는 고개를 비틀어 돌리며 다시 한 발자국 걸었다.

-멈춰라.

-파지직!

다시, 그의 목에 걸린 보호부 하나가 깨졌다. 잠시 발걸음이 무거워졌을 뿐. 그는 멈춤 없이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는 여전히 그에게서 등을 돌려 앉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을 뿐이었다.

움직이는 것은 그의 한 팔 뿐이었다. 그 팔이 기이하게 뒤틀리며 허공에 수인을 짚는다.

-화르륵.

사내의 머리 뒤에 검은 헤일로가 타올랐다. 그 사이한 모습에 카하르페르는 확신할 수 있었다.

[뭄토···.]

놈이 확실했다. 이 황야 어디에도 이런 존재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힘이 약해진 채로 육신을 입고 나타났군. 카하레페르의 손에 힘이 들어가 칼자루가 덜그럭거렸다.

-멈춰라.

-콰지지직!

카하레페르의 몸이 뒤로 살짝 밀렸다. 순식간에 보호부들이 으깨지며 흩어졌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칼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화려하게 장식된 곡도가 달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카하레페르는 손을 치켜들며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우린 더 이상 네게 지배당하지 않는다.]

카하레페르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치켜든 팔을 내리 그었다. 무방비 상태의 등. 그 사이에 파고드는 검날이 똑똑히 보였다. 놈의 미약한 마법은 그의 몸에 걸린 수많은 보호 주문들을 끝내 뚫어내지 못했다!

-펄럭!

그러나. 보랏빛 망토가 허공을 난다. 카하레페르는 칼날이 망토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챙!

묵빛 대검이 나타나 그를 가로막았다.

“그래야 할걸. 망령.”

-카드드득!

대검과 곡도가 허공에 얽혔다. 카하레페르는 자신보다 두 뼘은 작을 청년을 내려보며 당황했다. 분명 마법사였을텐데. 그랬을텐데. 뭄토의 화신이거나, 생육이었을 텐데?

[···너는?]

망토가 펄럭이며 내려 앉는다. 그 사이로, 음울한 푸른 눈이 번뜩였다. 페르난데스는 반쯤 뽑은 대검을 튕겨 뒤로 물러서며 자세를 도사렸다.

-치이익.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

[와일드캐스트···. 마법사가 검을 들고 대적하려 하는가?]

“내가 원래 다재다능해서.”

페르난데스는 저릿한 손목을 살짝 풀었다.

‘얼마나 지났지?’

-다섯 시간.

‘놈을 끌어들였군.’

-시간은 금이니까. 그래서. 이길 순 있겠어? 여긴 마력석 광맥이 없어. 마법 지원은 크게 바랄 수 없다.

‘괜찮아. 나도 준비한 게 있으니.’

고생했다. 페이자쉬.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대검을 뽑으며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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