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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13화 (114/388)

< 113. 대전사 카하레페르 (2) >

*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곡도를 들어 올리는 카하레페르를 바라보았다. 놈은 그를 경계해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방비엔 빈틈이 없었다.

-뭔가 얻은 것이 있었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한 것?’

-웃기는 군. 그런 게 있었나?

페르난데스의 농담에 페이자쉬가 낄낄거렸다. 아무렴,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지. 페르난데스는 다인 왕의 대검을 양손에 쥐고 자세를 다잡았다.

죽음이 아니라, 실패가 두려울 뿐이다. 그리고 카하레페르는 그를 죽일 수 있을 뿐, 실패하게 만들 수는 없는 존재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존재. 페르난데스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그는 대검을 도사려 파라오의 대전사를 노려 보았다.

[이 땅을 보아라. 뭄토.]

“···?”

카하레페르는 자세를 잡고 있는 페르난데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대화를 시도할 줄은 몰랐는데?’

-일단 들어는 보지.

[이 땅을. 이 황폐한 대지를 보아라. 한때 들판이 펼쳐진 이 생명의 젖줄이 네 사술로 파괴되고, 우리는 영원히 노예가 되어 네게 속박되었다.]

“···뭄토가 들으면 퍽이나 반성할 말이겠어?”

[반성이 아니다.]

-후우웅···.

카하레페르는 곡도를 크게 휘둘러 바람을 일으켰다. 놈의 암녹색 안광이 흉험하게 번들거렸다. 놈의 안저 아래에서 거대한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반성으로는 부족하지.]

-파직, 파지직.

카하레페르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보호부와 장신구들이 일제히 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페이자쉬의 마법에 부서지던 보호부들이 하나 둘 바닥에 흩어졌다.

-보호 주술을 포기했어?

‘아니. 놈은 봉인구를 해제하고 있는거야.’

-후우우웅···.

그의 마른 골격을 따라 옥색 주술 문자들이 명멸한다. 뼈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낡고 헤진 옷감을 두르고 있는 비루한 몸에도 불구하고, 놈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분다. 그의 골격과 골격, 그 관절들을 타고. 뼈대를 따라 주술적인 문자들이 빛을 내뿜으며 타올랐다.

[반성. 아니. 그걸로는 부족하다. 뭄토. 너는 네가 처형당할 이유를 듣고 있는 것이다.]

“해봐. 재밌겠네.”

-파직!

놈의 발치에 실금이 이어진다. 그와 동시에—

-콰드드득!

순식간에 육박한 놈의 곡도가 페르난데스의 목젖을 노리고 달려 들었다. 순간 시야에서 놓칠 정도로 엄청난 속도!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대검을 들어 막아내었다.

-콰득!

곡도의 완만한 검면을 타고 대검이 미끄러진다. 그리고 그 사이를 물 흐르는 듯한 기묘한 움직임으로 곡도가 거슬러 올라왔다.

“칫!”

-챙!

크로스가드에서 곡도의 상승을 막고, 검신을 위로 쳐 올린다. 카하레페르는 마치 예측이라도 한 양 훌쩍 뛰어 공세를 흘렸다. 동시에 놈의 팔에서 주술 문자가 번뜩인다!

-콰아아앙!

팔꿈치에서 옥색 불꽃이 터져 나오더니, 이를 연료 삼아 놈의 팔뚝이 쏘아지듯 내질러졌다. 거의 투창과 같은 속도로! 페르난데스는 엉겁결에 일격을 허용하고, 그대로 다섯 바퀴 굴러 바닥에 미끄러졌다.

-치이이익!

“이건 반칙인데.”

바닥에 대검을 박아 충격을 흘리며 그는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핏물을 닦았다. 검은 머리칼이 치렁하게 내려온다. 충격이 그의 뱃속을 진탕시켜 핏물과 함께 시큼한 위산이 역류했다.

좋아. 한 수 배웠군. 그는 그 끔찍한 고통에도, 순간 다리가 풀릴 정도의 충격에도 오히려 미소 지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보호부가 없어. 주문을 써야 한다.

‘아니. 그러진 않을 거야.’

-···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발전이야. 페이자쉬. 마법으로 이기는 것은 너무 간단하고, 무의미해. 놈을 우리의 발판으로 삼는다.’

페르난데스는 다가오는 카하레페르의 호리호리한 몸을 보며 다시 자세를 다잡았다. 속이 울렁거리며 시야가 살짝 흐려졌다. 놈의 몸에서 펄럭이는 낡은 아마포 붕대들 탓에, 놈의 몸집이 점점 더 커 보인다.

[왜 마법을 사용하지 않지?]

한때 대황야를 호령했던 위대한 전사의 모습이, 페르난데스의 흐려진 시야 위로 덮어진다. 단단하게 발달한 근육과 큰 체구. 날카롭고 호쾌하게 빛나는 눈매. 갈색 피부까지.

그는 페르난데스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일그러지며 어금니가 드러난다.

[내가 우스워 보이나. 뭄토? 네 꼭두각시가 발악하는 모습이?]

“아니. 결코.”

[네 오만이, 네 묘비명이 되게 하리라.]

“좋군.”

한때 내 묘비명이 될 뻔한 문장이지. 배신과 오만. 페르난데스는 사납게 웃으며 대검을 잡았다. 놈의 무기는 곡도, 그 공격 방향과 궤도가 예측하지 못할 위치에서 이어지고, 격검 직후의 이어지는 연격을 상식 안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짧은 격돌에서 그는 마치 바람, 마치 물결과 대항하는 느낌이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대검이, 거대한 흐름 속에 저항하는 얇은 가지처럼 느껴졌다.

아니다. 페르난데스는 칼자루를 잡은 손에서 천천히 힘을 풀며 생각했다. 대검 검술은 그런 것이 아니다.

본디 대검 검술이란 힘이 아니라 흐름. 회전력과 반탄력, 그리고 원심력.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이를 돌려 치는 것에 특화된 기술이었다.

그러니 상대가 바람이라면, 상대가 물결과 같다면. 오히려 좋다.

[마법사 치고는, 자세가 좋군.]

대전사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흡사 고양잇과 맹수가 사냥 직전에 지을 법한 날카로운 표정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그를 마주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최선을 다해라. 대전사여. 오만이 네 묘비명이 될 수도 있으니.”

[감히···!]

그의 몸이 잠시 분노에 움찔거렸다. 그리고 곧, 그의 몸이 쏘아지듯 날아 들었다. 곡도가 기괴한 궤도를 그리며 그의 몸을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좋다. 대검 검술의 기본 묘리는 반격에 있으니. 페르난데스는 양 손목을 교차로 잡고 대검을 크게 휘둘러 반 바퀴 돌렸다.

-채앵!

그리고 한 번 더! 놈의 검이 그의 대검을 거칠게 긁으며 타고 오를 때, 다시 한 번 손목을 교차해 좌에서 우로. 크게!

-카드득!

녀석의 낡은 곡도가 대검의 날에 갈려 나가는 것이 보였다. 대단히 뛰어난 야금 기술로 만들어진 무구였으나, 다인 왕의 대검은 공간을 갈아내는 검. 결코 물리적 충격에 파손되지 않는다!

-카아앙!

반탄력을 능숙하게 휘감아 돌리며, 놈이 몸을 아래로 숙였다. 페르난데스 또한 자세를 바꾸어 든다. 상단, 매의 자세. 강력한 힘으로 내려 그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검세!

-후우웅···!!

카하레페르의 아마포 붕대가 공중에 떠오른다. 마력이 그의 뼈를 타고 흐르며 명멸하고 옥색 주언들이 번뜩이는 빛을 흘렸다. 이 순간, 카하레페르의 싸늘하게 식은 몸뚱이는 생전의 육신에 육박한다.

-콰드드드득!

페르난데스의 손이 떨어져 내렸다. 그가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다인 왕의 검술. 공간을 갈아내는 그의 대검을 따라한 저열한 사본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그 파괴력만큼은 그에 못지 않은 그 일격을—

-화르륵!

바람이 휘몰아친다. 밤의 황야를 떠도는 겨울철 칼바람이. 한 번, 두 번. 수 없이!

-콰득! 콰득!

공간을 검게 갈아내던 대검이 점점 느리게 떨어졌다. 힘도, 속도도, 그리고 그 기술과 묘리도 잃어버린 대검이 천천히 공간의 저항에 막혔다.

[이게 끝이냐?]

대전사의 눈이 사자처럼 빛난다. 그는 사납게 일렁이는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노려 보았다. 페르난데스의 대검이 속도를 잃기 시작하는 것과 반대로, 그의 검은 점차, 점차 더 가속하기 시작했다.

-스겅!

방어에 한계가 있는 법이다. 페르난데스는 크게 대검을 휘둘러 대전사의 검을 막아 내었지만, 끝내 옆구리를 길게 베이고 말았다. 피가 울컥거리며 쏟아진다. 곡검이 살을 짓누르고 찢어내어 내장까지 닿았다!

“큭!”

고통이 전류처럼 척추를 타고 흘렀다. 페르난데스는 입술을 깨물며 대검을 틀어 대전사의 공격을 막아내고는 뒤로 튕겨 나갔다. 자세를 다잡기도 전에, 대전사의 양발에서 옥색 주술 문자들이 명멸한다!

-콰아아앙!

바닥을 차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코 앞에! 페르난데스의 검격이 사나운 바람처럼 몰아치는 카하레페르의 검을 막아 흘렸다.

거대한 힘이다. 디모니카의 근육과 인대마저 떨릴 정도로! 페르난데스는 검을 비틀어 곡도를 튕기며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카아앙!

검격의 끝이 흔들린다. 카하레페르의 검이, 그의 검이. 서로의 목젖을 향해 내질러지고—

‘뼈를 주고—‘

-콰드드득!!

전혀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한 것일까? 카하레페르의 눈이 크게 뜨인다. 그의 검은 이미 페르난데스의 목젖을 깊게 베어내고 있었다. 날카로운 통증과 격렬한 생존 본능이 페르난데스의 후두부를 강타한다!

-스겅!

그러나 교차한 팔을 풀지 않는다. 페르난데스는 순식간에 멀어지는 시야, 싸늘하게 식어가는 손끝의 익숙한 감각을 느끼며 대검을 그대로, 그대로 내질러 카하레페르의 몸을 향해 뻗었다.

-우드득!

마지막의 마지막, 그 순간에 카하레페르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페르난데스의 대검이 허공을 치고, 목에서 빗겨가 간신히 그의 어깨를 내리 찍는 데에 그친다. 서로의 자세가 크게 무너지고, 균형을 잃은 두 전사가 비틀거리지만.

카하레페르는 어깨를 잃었을 뿐, 페르난데스는 목을 잃었다. 대전사는 의아함이 맺힌 눈으로 그를 내려 보았다. 천천히, 비틀거리며 허물어져가는 그의 몸을.

[이게 무슨···?]

“뼈를 취한다.”

-키이잉!

어느새, 페르난데스는 한 손으로 대검을 쥐고 있었다. 그의 다른 한 손은 자연스럽게 떨어지듯 내려가며, 그의 허릿춤에 매달린 칼자루에 얹혔다.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칼자루. 다인 왕의 검과는 전혀 다른 양식의 대검이다. 새하얀 진은 대검이 그의 손아귀에 잡히고, 동시에 그의 전신에 퍼진 신성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쿵, 쿵, 쿵, 쿵!

멎어가던 심장이 다시 기능을 되찾고, 흐름을 잃던 핏물이 신성으로 들끓어 오른다. 격렬한 고양감.

그 사이에서 페르난데스의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흘렀다. 거친 움직임 탓에 솟아 올랐던 황무지의 모래 먼지마저 한 올 한 올 시야에 잡힐 정도의, 격렬한 고양감!

명상 속에서 다리안이 펼쳤던 검술은 실제 다리안의 검술이 아니다. 그의 기억을 바탕으로 머릿속 ‘물질 세계 최강자’가 펼칠 법한 기술의 구현일 뿐.

즉, 그가 보인 움직임은 곧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무예의 정수나 다름 없다. 실제하는 것이 아닌, 그가 그려낸 그 자신만의 탈각!

따라서 명상 속의 다리안은 그가 걷고자 하는 길에 대한 해답이자, 그의 정신이 내린 무예의 정점이었다.

그 길을 따라, 한 발 더 걷는다. 그 찬란한 섬광, 그 궤적을 따라 칼을 뽑고, 휘두른다.

-스르르륵···.

카하레페르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한 손에 들고 있는 대검이 그의 어깨를 박살낸 채로 더욱 깊게 틀어 박히고—

소리 없이 뽑혀 나온 다른 대검. 베이타서스의 성검이 다른 한 손에 잡힌 채로, 그대로 섬광이 되어,

-스겅.

소리는 오히려, 행위보다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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