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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16화 (117/388)

< 116. 황야의 진주, 프타하 (1) >

*

프타하. 투탄 가르텝의 피라미드가 위치한 상 아시트 시절의 고대 도시 중 하나다. 삼 왕조의 봉화 사건 이후 대황야에 나타난 세 망령 도시 중 하나이며, 술탄국과 제국의 가장 격렬한 전장 근방에 나타난 도시이기도 하다.

페르난데스는 이 거대한 무덤 도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상 아시트 시절의 문화 유적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듯한 화려한 도시다.

모래색 거벽과 거대한 건축물, 그리고 푸른색, 노란색, 녹색 등 원색으로 이루어진 벽돌과 천막으로 장식을 달아놓은 부유한 도시였다.

-다그닥. 다그닥.

낙타의 등허리에 앉아, 페르난데스는 느긋하게 움직였다. 그의 곁엔 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관광, 또는 망명이 목적인 사람들이었다.

망령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삼 왕조의 파라오들은 물질 세계의 산 자들에게 관대한 지도자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자신 또한 살아있는 존재처럼 행동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먹거리를 씹고, 술을 턱뼈 아래로 흘리며 웃고 떠들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잠을 자고, 식사를 했다. 마치 그들이 살아있을 당시를 재현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들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 인간의 정신은 생각보다 유연하지 않다. 갑작스레 바뀌는 육신은 필연적으로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장 생체적 반응 기제와 생리적 욕구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영혼을 거의 새롭게 벼려낸다.

따라서 언데드가 된 인간들은 반드시 광기를 내포하게 된다. 그러나 자존감 높은 이 망령 왕국의 시체들은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유지하는 방법으로 산 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택했다.

아주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가장 무도회다. 페르난데스는 관문의 경비병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들은 관문을 지나는 인간들과 해골들을 마치 살아있는 주민들인 것처럼 취급하며 세금을 걷고 있었다.

-다각, 다각.

[정지.]

화려한 갑옷을 입은 경비병이 페르난데스를 올려보며 안광을 빛냈다. 놈은 턱을 한 번 딱, 치고 위협적으로 말했다.

[방문 목적. 그리고 정체를 밝혀라.]

“알베르트. 귀화. 제국 출신이다.”

[오. 최근 그쪽 나라에서 온 촌놈들이 많지. 하하. 더 나은 군주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본능 아니던가. 가람 거리로 가보게.]

놈은 그렇게 말하며 바싹 마른 뼈 손을 들이 밀었다. 노골적인 뇌물 요청이었다. 적당히 부패한 관리 같은 모습에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절그럭.

페르난데스는 오래된 아시트 주화를 꺼내 놈의 손 위에 올렸다. 놈은 주위를 살짝 살피며 눈치를 보는 체 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짐짓 소리 높였다.

[통과, 다음!]

*

도시의 정경이 기묘했다. 페르난데스는 해골과 넉살 좋게 웃고 떠드는 용병, 그리고 그들에게 값을 흥정하는 미이라 상인을 보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부서진 땅이었다.

-재밌군.

‘그러게. 재밌는 기만이야. 저들 모두가 이 도시를 무도회장처럼 여기고 있어.’

현실을 교묘하게 외면한 가장 무도회나 다름 없었다. 산 자들은 살기 위해 죽은 이들을 살아있는 것처럼 여기고, 죽은 자들은 산 자와 자신을 동일하게 대하며 자기 자신을 살아있는 것처럼 여긴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을 향해 꾸벅 인사하는 어린 아이의 해골에 마주 인사하며 낙타를 몰았다.

-조르륵.

맑은 수로가 도시의 구획을 나누며 흐르고 있었다. 죽은 자들은 생활 하수를 배출하지 않기에 가능했던 구조일 것이다. 수로의 맑은 물에서 아이들의 해골이 뛰놀고 여인이 길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잘 닦인 도로를 거닐며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파리 지구. 도시의 향락가였다.

페르난데스의 예리한 후각은 거리의 입구부터 느껴지는 지독한 마약의 냄새를 잡아냈다. 그는 거리 도처에서 널려 있는 살아있는 부랑자들과, 그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해골 좀도둑들을 볼 수 있었다.

해골 고양이가 안광을 빛내며 어슬렁거리고, 마약으로 노랗게 뜬 얼굴을 한 부랑자들이 기괴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자존심 높은 망령 귀족들은 결코 이 거리에 출입하지 않는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낙타에서 내렸다. 가벼운 행장을 등에 걸치고, 그는 망토 자락을 바싹 조였다.

-갈라진 발굽 여관···. 아, 저기로군.

상아시트 시절의 문자들이 적힌 다른 가게들 사이에서, 키르자트 언어로 적힌 간판은 확연하게 눈에 띄는 편이었다.

‘어떻게 고작 한달 사이에 가게까지 차린 거지? 이 망령 도시에서?’

-놈들이 유능하다는 뜻이겠지.

‘마음에 들어.’

그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는 마약 중독자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천천히 여관의 입구로 들어섰다.

-끼이익.

“어서옵··· 쇼?”

여관의 1층은 주점과 마약굴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산한 여관의 한 구석에선 물담배를 물고 있는 노인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킬킬거렸다.

여관의 내부는 보라색 유리알을 끼운 전등으로 밝혀져 몽환적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바텐더에게 곧장 다가갔다.

-드르륵.

바 테이블 앞에 앉아서. 그는 자신을 향해 떨떠름한 미소를 짓는 바텐더를 올려 보았다.

“왜 그러지? 술 없나?”

“있소만. 밤에 올 줄 알았지. 도시 상황이라도 파악하고 올 줄 알았거든.”

“상황 파악과 전략 수립은 그쪽 역할이었을 텐데.”

“제기랄. 대낮에 이방인이 마약굴로 직행하면 누가 봐도 의심스럽지 않겠소?”

바텐더는 투덜거리며 술병을 들었다. 그는 페르난데스에게 잔을 건네고 그 안에 노란 액체를 따랐다.

“오셨으니 목이나 축이쇼.”

“여기 점장은 어디 갔나?”

“지금 아마 회의 중이긴 할 텐데, 아, 잠시만.”

-짤랑.

여관의 깊은 곳에서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페르난데스는 예민한 청각으로 그 소리가 2층에서 들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올라 오시라는 군.”

“좋군.”

내가 여기에 왔다는 사실을 온 순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잔에 따른 술을 단숨에 들이켜곤 일어섰다. 씁쓸한 알코올의 향취가 목젖을 타고 끈적하게 흘러 내렸다.

“2층 가장 끝에 있는 방이오.”

“알아.”

아무리 작은 소리라 하더라도, 이렇게 조용한 건물 안에서 난 소리라면 방향과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신성이 흐르는 디모니카의 강화된 육신은 그 기능성에 있어서 인간의 인지력을 초월하니까.

*

“오, 어서 들어오시오. 어서.”

페르난데스가 노크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가면을 쓴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활기차게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방의 내부 구조가 보였다. 두꺼운 암막 커튼이 쳐진 방은 작은 유등으로 밝혀져 있었다. 타고 버린 담뱃잎들이 널린 재털이와 수많은 노트, 그리고 거대한 지도가 있는 곳이었다.

“다른 요원들은 아직이오만. 예상보단 너무 이른 시간에 오셨소. 잠시 눈이라도 붙이시겠소?”

“아직 그럴 필요는 없어.”

“물론 그렇겠지.”

사내는 낄낄 웃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페르난데스는 낡은 천이 깔린 나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사내는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테이블을 대충 정리하고는 노트 위에 찻잔을 얹었다.

“정말 반갑소. 알베르트 경. 아니면··· 세르너드 남작이라 부르는 편이 낫겠소?”

“나에게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군?”

“우리 정보부의 뜨거운 감자시니까. 연락을 받고 정말 기뻤다오. 그리고, 이 빌어먹을 유적지를 파괴할 거란 이야기엔 축배까지 들었지. 위대한 기사 알베르트가 실패할 리가 있겠소? 우리야 그저 구경만 하면 잔칫상이 굴러 들어올 일인데!”

사내는 픽 웃으며 비꼬는 말투로 떠들었다. 페르난데스의 표정이 전혀 바뀌지 않자, 사내는 탁상을 톡, 톡 두드렸다.

“우리를 무슨 시종 정도로 여기시오?”

“괜찮은 거래 상대지.”

“그런 것 치고는 거래할 건덕지 없이 부려먹기만 하던데?”

“그럼 왜 내 말을 듣고 일을 벌이고 있는 거지?”

얻을 것이 없다면 무시하면 그만 아닌가? 페르난데스의 물음에 사내는 천천히 찻잔을 쓰다듬었다.

“그쪽과 연이 닿으면 여러모로 편하거든. 아무래도 동부 왕국 연합 쪽은 우리 정보력에 크게 효과적이지 않아서.”

“그래. 어디까지 알아보셨나?”

“모사트, 알트베르트, 인퍼머르, 세르너드. 그리고 인퀴지션 킵.”

“···흠.”

생각보다 치밀한 조사였다. 페르난데스가 잠시 말을 멈추자 사내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경의 행보를 본국 기준에서 확보할 수 있는 만큼은 충분히 확보했소. 아, 그런데도 우리 정보 분석관들이 한참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 있더군. 대답해 줄 수 있소?”

본인한테 듣는 것이 가장 확실하니까.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조용하게 말했다. 누가 듣기라도 한다는 듯이. 마치 신성모독을 저지르는 신도처럼.

“경께선 인간이 맞소?”

“다행히 아직은 인간이 맞는 것 같군.”

“그럼···. 우리가 파악하기로, 세르너드 남작공의 나이는 지금 17세로 알고 있소만. 정말 그 나이가 맞소?”

“보이는 것보단 다소 많은 편이지. 호기심 만큼 해야 할 일도 확실히 처리해 두었기를 바라네만.”

“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경의 성격은 내 잘 파악해 두었지. 그래. 이제 일 이야기로 넘어갈까.”

사내는 탁상 한 구석에 접힌 지도를 크게 펼쳤다. 도시 전역이 상세하게 그려진 작전 지도였다. 대단히 수준 높은 전술 정보에 해당할 것이다.

고작 한 달이었다. 이 도시가 들어선 것이. 그 직후부터 첩보망을 구축했다 하더라도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철저하고 빈틈 없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이들에 대한 가치를 상향 조정하며 차를 한 잔 마셨다.

“독을 전혀 염려하지 않는군?”

“독이 통할 몸도 아니고. 날 중독시켜서 자네들이 얻는 것도 없지 않나.”

“대단한 자신감이오?”

사내는 낄낄 웃었다.

“세르너드 공이 전달한 내용은 잘 수행해 두었소. 이 도시의 지배층은 지금 세르너드 공의 소문에 겁을 집어 먹은 상태지. 방랑마법사 페이자쉬라는 미지의 인물에 대한 공포 말이오.”

“그리고?”

그가 주문한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 자신의 소문을 크게 부풀려 도시에 살포할 것.

“아, 네페르카 왕자와도 충분히 접촉해 두었소. 언제든 신호만 보내면 거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더군. 솔직히 나는 그 망령이 마음에 들진 않소만.”

“그리고?”

둘. 네파르카의 세력과 접촉해 커넥션을 만들어 둘 것. 그리하여 페르난데스가 이 도시에 도착해 거사를 준비할 때 그와 유기적으로 협동할 수 있도록.

네페르카는 지금 궁중에 머물며 만전의 상태를 갖추고 있었다.

“조만간 접촉해 보시겠소? 왕자가 축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오.”

“수인족 하나 이기지 못한 패장이 무슨 축연을?”

“정치란 그런 것 아니겠소? 지난 패전 이후에 네페르카 왕자의 궁중 내부 입지가 너무 좁아졌소.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정적들에게 과시해야 할 때긴 하지.”

아, 하고 사내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페르난데스가 가장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는 지도의 한 구석을 톡 쳤다. 가람 지구. 부유한 평민과 하급 귀족들이 머무는 거주 지역이었다. 파리 지구와 거리가 제법 있는 깨끗한 거리였다.

“아직 그 계집이 이 도시에 있소. 여기에, 제법 질 좋은 경비 병력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그 말을 듣자, 페르난데스의 눈이 푸르게 타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사내가 킬킬 거렸다.

“우리 키르자트 샥시시도 아주, 아주 흥미롭소. 아이언사이드의 배신자가 찢겨 죽는 모습이 말이오! 사실 내가 경을 돕겠다 생각한 이유도 그 탓이지. 그 계집은 너무 설쳤거든.”

사내는 손을 뻗어 페르난데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페르난데스가 천천히 그의 손을 마주 잡자, 사내는 가면 아래에서 웃었다.

“우리가 이번 작전에 경을 무어라 부르면 좋겠소? 원탁 기사 알베르트? 세르너드 남작? 아니면, 방랑마법사 페이자쉬?”

“아니. 이번엔 아니야.”

페르난데스는 사내의 손을 꽉 쥐며 천천히 끊어 말했다.

“이단심문관 안젤로.”

앙헬라. 그 계집에게 필요한 것은 단죄나 복수, 혹은 저주가 아니라.

이단 재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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