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17화 (118/388)

< 117. 황야의 진주, 프타하 (2) >

*

프타하의 밤은 화려했다. 잠들 필요가 없는 망자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축제를 열고 연회를 차리며 웃고 떠들어댔다.

몇몇은 거나하게 취한 ‘척’을 하며 비틀거리곤 집으로 걸어 갔다. 또 다른 몇은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고, 몇몇 호기로운 망령들은 대뜸 곡도를 뽑아 들며 상대에게 결투를 청했다. 도전하는 이도, 응하는 이도 주정뱅이 연기를 할 뿐, 누구도 진지하지 않았다.

이 도시는 일종의 백일몽과 같다.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고 믿는, 또는 그렇게 믿어야 하는 망자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프타하는 영혼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언데드가 된 자신의 상태를 감당할 수 없는 망자들의 발악이다.

따라서 이들은 산 자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저 스스로도 살아있는 척 행동하기 때문에. 가련한 기만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탓에, 산 자들이 이 망령 도시에 잠입하는 것이 더 없이 수월할 수 있었다.

‘불쌍하군.’

-진심인가?

‘그래. 저 치들도 이 축제가 언젠간 반드시, 그리고 굉장히 추악하게 끝날 것임을 알고 있어. 다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자신들의 종말에 눈을 마주치지 않겠다는 것이지.’

그러니 가련하다. 페르난데스는 조용히 내려 앉은 눈으로 도시 첨탑 위에 앉아 이들을 내려 보았다.

-알고 있겠지? 네 사고관은 이제 더 이상 나와 같지 않다.

‘육신이 만든 차이리라 합의 보지 않았던가?’

-그건 가설일 뿐이지. 우리에겐 다른 가설도 있지 않나.

‘···그래. 인정하기 싫은 가설이지.’

페이자쉬과 과거로 돌아왔을 때. 그러니까 일년 하고도 몇 달 더 전에. 16세 생일을 맞이하던 그 차가운 침엽수림의 모닥불 앞에서.

그때 여든 먹은 노인 페이자쉬의 영혼이 그 육신에 깃들었다. 분명 그때의 그는 과거와 동일한 인물이었다. 젊은 육신을 입었어도, 그 근본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베이타서스가 그에게 성흔을 박아 넣고 영혼을 갈라낸 그 순간부터 페르난데스와 페이자쉬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는 의도한 것이기는 했다. 과거의 기록을 답습하지 않고, 이번엔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행하겠다 마음 먹었으니까.

그러나, 그 성향과 감정까지도 이젠 페이자쉬와 동일하지 않았다. 페르난데스와 페이자쉬는 이에 한가지 가설을 세웠다.

‘열여섯 살 페르난데스의 영혼.’

페이자쉬가 육신에 깃들기 전까지, 16년을 살아온 페르난데스의 영혼은 어디에 갔을까. 수평 세계를 자아냈다는 베이타서스의 말에 따른다면, 반드시 그 영혼이 이곳에 남아 있어야 했다.

페이자쉬의 강력한 영성에 짓눌려 녹아내리던 그 여린 영혼의 편린이, 페이자쉬의 기억을 가지고 독립한 것이라면? 베이타서스의 안배에 의해, 새로이 축조된 영혼이라면?

이따금씩 감정적이고, 치기 어리고, 열정적이며, 때로는 과도하게 ‘의로운’ 이 모습이. 베이타서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끔찍한 가설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영과 성, 혼과 백이 그 외의 다른 누군가에 의해 직조된 것이라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독립된 존재야. 페이자쉬.’

-그러길 바라지. 아니라면, 너무 우스운 일 아닌가. 우리의 꼭두각시 놀음 전체가 말이야.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페르난데스는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별무리가 흩어진 저 거대한 천공을 향해서. 그의 푸른 눈이 음울하게 빛났다.

그는 저 멀리 어딘가에서 그들을 내려보고 있을 존재들을 응시했다.

봉문된 천상의 선신 만신전. 그 위에서 그를 내려보고 있을 베이타서스를 향해. 선언하듯, 그는 짧게 끊어 말했다.

‘나는 독립된 존재다.’

신과 그는 상하 관계가 아니었다. 그들은 동업자였다. 그리고 페르난데스는 결코, 불평등조약에 날인을 찍지 않는다.

이 여정의 끝이 한바탕 놀음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이 모든 사태들이 네 손바닥 위의 계략이었다 하더라도.

‘내 몫이 없다면, 네 몫 또한 없다. 베이타서스.’

아들의 목숨을 저당잡힌 신세? 물론 그렇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그럼에도 베이타서스에게 복속한 것이 아니었다.

놈 또한, 그 딸과 이 세계를 저당 잡힌 셈이니까.

-피리리릭···. 펑!

밤하늘을 미끄러지듯 날아 오른 폭죽이 그의 머리 위에서 화려하게 터져 올랐다. 축제를 벌이던 망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공허한 뱃속에 술과 음식을 흘려 넣었다.

페르난데스는 시선을 돌려, 저 멀리 가람 지구 한켠에 있는 건물을 바라 보았다.

‘봉화가 올랐군.’

이제 일을 시작할 때였다. 그는 대검을 등에 비껴 차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그의 그림자가 지붕 위를 타고 스쳐 지났다.

*

셀리나 카셀호프. 임페리얼 아이언사이드, 그 중 그레이서클의 서부 전략3팀, 통칭 ‘무덤의 들개들’의 팀장.

그녀는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는 상한 포도주를 내려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다.

망자들에겐 후각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럴 듯’한 수준이면 대개의 식자재들을 용인하는 편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가진 수많은 ‘술’들 중 정말 술의 범주 안에 포함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자자, 어서들 들게나! 하하하!]

“···예, 예.”

셀리나는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화려한 금세공 장신구들을 연신 흔들어대는 망령들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저 허영심 가득찬 망자들은 생전에 가졌던 과도한 사치품들, 그리고 부장품들을 온몸에 둘둘 두른 채 여전히 살아있는 귀족인 척 하고 있었다.

“하아···.”

어쩌다 자신이 이렇게 되었을까. 셀리나는 망자들의 눈을 피해 대강 술을 따라 버리고는 놈들의 비위를 맞추어 웃어 주었다.

애써 한숨을 숨기며 담뱃대를 잡아 쥐는데, 그녀의 등 뒤로 그녀의 부하가 다가와 귓가에 고개를 숙였다.

“팀장님. 제국측 첩보입니다.”

“말해봐.”

“샥시시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뭐? 철수했다고?”

“정황상···. 서문 인근으로 산 자들이 대규모로 빠져나갔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소스는?”

“경비대 측에 뇌물을 찔러 둔 놈이 있습니다. 거진 확실합니다.”

“준비해.”

셀리나는 담뱃잎을 꾹 눌러 으깨고는 물부리를 물었다. 파이프의 끝에 그녀의 손가락에서 지펴 오른 불똥이 튀었다.

스읍.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며, 마른 잎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하얀 연기가 그녀의 입에서 스며 나왔다.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놈들의 기습을 준비해 두라고. 그건 함정이니까.”

“···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왕자가 있는 곳을 치겠습니까?”

부하는 곁눈질로 웃고 떠들고 있는 귀족을 바라 보았다. 왕자 메렌레. 제국 방면으로 도주한 수인 호족들을 추격전 끝에 격퇴했으며, 그의 정적이었던 네페르카가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자 정치적 입지가 수직 상승한 인물이었다.

파라오 투탄 가르텝의 궁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물이다. 본신의 실력 또한 출중하여, 백병전에 있어서는 대전사 아랫줄의 전사들 중에선 항상 한 손에 꼽힌다고 전해졌다.

그냥 보기엔 멍청하고 허영심에 가득찬 무능한 망자에 불과했지만. 어쨌건 그런 그를 도심 한복판에서 기습하는 것은 이 도시에서 살아나갈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셀리나는 이 며칠간 샥시시들이 숨어들었다는 것을 파악하고도 먼저 손을 쓰지 않았다. 섣불리 공격하면 흩어져 귀찮아질 뿐.

전략팀의 수장으로서, 그녀는 판도를 보다 넓게 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기왕 넓게 보는 것이라면, 상황을 최악의 양극으로 몰고 가는 것이 언제나 더 합리적인 전략이다.

‘적도, 아군도 전황을 파악할 수 없게 하라.’

그것이 전략3팀의 모토였다. 셀리나는 일부러 빈틈을 보였다. 샥시시들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도록, 키르자트를 압박하여. 그리하여 놈들이 자신과 파라오를 직접 공격하도록.

그 날이 놈들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흩어진 암살자들은 귀찮고 성가시지만, 한 군데에 모여 달려드는 군대는 오히려 상대하기 수월했다.

-피리리릭··· 펑!!

장내가 순간 화려하게 물들며, 그들의 머리 위에서 폭죽이 터졌다. 어떤 멍청한 놈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폭죽을 쏘았나. 셀리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이에서 번뜩이는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놈들이 온다!!”

그녀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걸렸다. 함정을 파고 기습을 한다? 기습이란 상대방이 예상할 수 없을 때 찌르는 것을 의미하는 법.

술탄의 개들에게 진짜 기습이 뭔지 보여주지.

*

가람 지구는 부촌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도로와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수로가 늘어서 있었고, 마법적인 조치가 취해진 유등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문명 도시였다. 페르난데스는 가람 지구의 지붕 위를 밟으며 발 아래를 지나는 경비병에게서 몸을 숨겼다.

잘 무장한 훈련된 경비대가 순찰을 돌고 있었다. 놈들을 쓰러트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건 자신의 역할이 아니었다. 놈들의 순찰 패턴을 파악해 교란시키는 것은 샥시시의 일이었다.

이번 작전에서, 그의 임무는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조심스럽게 처마를 밟고 나아갔다. 앙헬라가 숨어든 곳은 그녀의 거대한 저택이었다. 마당이 딸린 아름다운 건물이다.

멀지 않은 곳에, 앙헬라가 화려한 의상의 망자들과 떠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담장으로 둘러 싸인 마당엔 연회가 한창이었다.

‘찾았다.’

드디어. 페르난데스는 칼자루에 손을 얹고, 담장 아래로 뛰어 내렸다. 그의 보라색 로브가 바람에 펄럭였다.

-처억.

로브가 넓게 펼쳐지며 바닥에 내려 앉는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이 저택은 이미 샥시시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다소간의 소란이 일어나더라도, 경비대가 이들에게 도움을 주긴 요원할 터였다. 샥시시들은 방해 공작의 전문가들이니까.

[누구냐? 버릇 없는 녀석. 어느 안전이라고 부랑자가 여길···. 경비들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게야!!]

귀족으로 보이는 망자의 곁에서, 호위 무관이 곡도를 뽑아들고는 호통쳤다. 페르난데스는 놈의 외침을 무시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앙헬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는···. 하, 하하. 샥시시와 손을 잡았었군? 그 빌어먹을 개자식들이 이렇게 과감하게 나온 것이 너 때문이었어.”

“굳이 따지자면 너 때문이지.”

페르난데스는 후드를 걷어 올리며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순간, 호위 무관이 곡도를 휘두르며 그에게 달려 들었다.

[이노옴!!]

-챙!!

그는 앙헬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검을 뽑아 휘둘렀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발도와 검격. 무관은 허리가 끊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망자의 육신이 가루가 되어 바스라졌다.

[···미친 놈!!]

그 광경을 바라보던 메렌레 왕자가 벌떡 일어서 외쳤다. 그의 곁에 있던 미이라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고 페르난데스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여전히, 페르난데스는 앙헬라를 향해 걸어 가고 있었다.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모사트 시에선 운이 좋았지. 성자 어르신.”

페르난데스는 비아냥거리는 앙헬라를 바라보며 한 발자국 더 앞으로 걸어갔다. 무관들이 그에게 곡도를 휘두르며 괴성을 질렀다.

-콰득!

대검이 공중을 가른다. 그와 함께, 망령의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가 허공에 비산했다. 양떼 사이를 걷는 사자처럼. 페르난데스는 멈춤 없이 나아갔다. 그는 우묵한 눈으로 앙헬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기도···. 아니. 기도하지 마라. 앙헬라.”

“···뭐?”

“기도는 회개할 신도를 향해 내려지는 최후의 변론이다.”

-콰직!

다시 한 번. 대검이 허공을 그어냈다. 망자들의 유해가 그와 함께 휩쓸려 바닥에 구른다. 페르난데스는 바스라지는 놈들의 육신을 밟으며 그대로 앞으로, 앞으로 한 걸음 씩 발을 옮겼다.

“어떤 신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네게 언도될 선고가 남아 있으며, 네게 주어진 항변의 기회는 더 이상 없다. 그러니 금언하라. 또한, 아직 자결하지 말라.”

“···웃기는 군. 이제와서 사제 노릇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기도는 네가 해야겠지! 여긴 네 사지가 될 테니까. 알베르트! 아니,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이 빌어먹을 꼬마야!”

앙헬라는 거칠게 웃었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지막 망자의 목을 치며 그녀를 바라 보았다. 그녀의 주위에서 강대한 마법이 느껴졌다. 이 저택을 아우르는 마력이었다.

그리고 이 저택의 곳곳엔 그를 향해 공격을 준비하는 마법사들이 숨어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마력의 자취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준비성 좋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전략의 기본은 준비에 있다. 전쟁이란 결전의 순간 얼마나 많은 팻감을 준비했는지 겨루는 것. 이는 마법사에게도 마찬가지이며—

심계와 암투, 모략의 영역에서. 그리고 마법전의 영역에서. 페이자쉬는 패배한 적이 없었다.

-피리리리릭···. 펑!

폭죽이 그들의 머리 위로 터져 올라왔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제국 요원들의 폭파 마법이 장전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종교재판 사법권. 이단즉결 처형권. 구마용 군이양지권. 교단성사 대리지권. 만신전이 보장하는 위 권한으로 이단 재판을 시행하겠다. 셀리나 카셀호프.”

“네가 미쳤구나!! 뭐해? 다들! 저 꼬마를 죽—“

“만신전이여 가호하소서.”

-피리리릭···

폭죽이 쏘아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콰아아아앙!!!!

“꺄아아악!!”

폭음과 함께 거대한 진동이 지반에서부터 울려 이 건물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건물? 아니, 이 도시 전체에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연회상이 바닥에 구르고, 망자들과 인간들 할 것 없이 균형을 잃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담장 너머에서 물건이 깨어지는 소리, 지반이 무너지는 소리, 벽돌에 금이 가며 처마가 부서지는 소리가 잇따랐다.

-콰아아아앙!!

저 멀리, 화염이 솟구쳤다. 검은 매연이 도시 곳곳에서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저벅.

페르난데스는 지진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한 발자국 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제 시해를 획책한 죄. 무고한 상업 도시를 폭격한 전쟁 범죄. 망자를 일깨우고 인명 피해를 야기한 죄. 감히 신의 권위를 탐하고, 망자에게 몸을 의탁해 삶의 가치에 배덕한 죄.”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거야! 미친 꼬마가! 죽여, 놈을 죽여!!”

-콰아아앙!

혼란 속에서도 훈련된 제국 요원들의 마법이 일제히 그의 몸을 향해 터져 나왔다. 간결하지만 강력한 효과, 제국 특유의 폭파 마법 전문가들이었다.

-휘리릭.

페르난데스는 대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빠르게 수인을 짚었다. 곧, 그의 곁에서 거친 폭음이 터져 나오며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쿠르르릉···.

여전히 도시는 거칠게 진동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앙헬라는 흔들리는 바닥을 짚으며 간신히 일어섰다.

곧, 먼지가 천천히 내려 앉으며 보라색 로브자락이 보였다. 폭파의 흔적으로 군데군데 떨어진 로브, 그리고 낡은 흉터로 가득 덮인 거친 손이!

앙헬라는 까득, 이를 깨물며 모래 먼지 사이에서 빛나는 페르난데스의 음울한 눈을 바라 보았다.

“만신전이여 가호하소서. 피고의 죗값은 사형이다.”

지진으로 부서진 담장 너머로, 불길에 타오르는 도시의 정경이 비쳤다. 페르난데스는 불길을 등지고 서서 앙헬라에게 걸어 갔다.

한 걸음씩. 서두르지 않고.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경비병들이 사방으로 뛰어가는 소리. 그리고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망자들의 고함과 비명이 그 사이로 섞여 터져 나왔다.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피고는 금언하라.”

페르난데스는 대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묵빛 검신이 달빛에 불길하게 빛났다. 네페르카가 잘 해 주었군. 그는 발작하듯 수인을 짚는 앙헬라를 바라보았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돌아가야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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