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무너지는 도시, 프타하 (1) >
*
도시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영혼계의 부서진 틈을 타고 흘러나온 망령들이 내지르는 괴성에 도시의 하울링이 대황야의 밤하늘을 찢어 발기고 있다.
-후우···.
페르난데스는 땀에 젖어 흘러내린 머리칼 사이로 앙헬라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덜덜 떨며 발작적으로 수인을 짚고 있었다. 분노와 고양감 사이에서도, 그의 머리는 언제나처럼 냉정하게 상대의 마법을 분석했다.
‘제국식 폭파 마법.’
간단한 수인과 단순한 주문으로 최선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 재능과 상관 없이 입문할 수 있고, 입문자에게 언제나 일정 이상의 기댓값을 보장하는 마법이다.
-콰아아앙!
마법이 페르난데스의 어깨 어림에 적중했다. 정확히 예측된 수준의 타격이 페르난데스의 몸을 흔들었다.
-품위가 없다.
‘그래. 놈들의 마법엔 예절과 아름다움이 부족해.’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오로지 효율성만을 최선의 가치로 놓고 개량된 마법이다. 저들의 마법은 이미 활과 석궁의 연장이나 다름 없어, 그 사이엔 신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법이란 언제나 신비로워야 하는 법. 언제나 고결하고, 또한 언제나 품위를 지켜야 하는 법이다.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한 발자국 더 내딛었다.
“죽어, 죽어, 죽어어어!!”
-콰아아앙!
다시 한 번. 폭발의 충격이 그의 어깨에 적중한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와중에도 그녀는 빗나가는 일 없이 그에게 마법을 쏘아냈다. 발작적인 손짓, 해주하기는 여반장이었으나—
‘그래서야 쉽다.’
저 계집의 마법을 해주하거나, 주문 쐐기를 박아 백래시를 유도할 수야 있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간단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쉽고 간단하다. 녀석에겐 더 끔찍한 절망이 준비되어야 했다.
주문 실패로 인한 백래시로 죽어가는 것은 너무 편안한 죽음이다. 페르난데스는 날아드는 마법을 몸으로 받았다.
놈들의 마법은 오로지 물리적인 파괴 만을 낳을 뿐, 그 이상의 효과가 없다. 또한, 물리적 파괴로는 디모니카의 육신을 해칠 만한 수준이 아니다.
페르난데스는 이 무너져가는 저택 안에서 자신을 겨누고 있는 수많은 마법사들을 느꼈다. 그들 중 태반은 주문 시전 도중 받은 충격으로 백래시를 앓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마법사들은···.
-푸욱! 컥!
디모니카의 예민한 청각에, 놈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근방에 매복하고 있던 샥시시들은 이미 지진에 대비하고 있었다. 저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틈을 타고, 그들이 저택 내부로 스며들어 아이언사이드의 정예 요원들을 암살하고 있었다.
-저벅.
따라서, 지금 페르난데스를 막아설 수 있는 자는 단 하나 뿐이었다. 저기 저 쓰러진 앙헬라의 미력한 발악이 아니라···.
재미있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는 망령 귀족 뿐이었다.
[그만. 산 자여. 본인은 저 계집의 초대를 받고 연회를 즐기던 차였다.]
“이제 연극은 그만두기로 한 모양이지?”
산 자와 망령을 구분 짓는 저런 말투는, 결코 망령들이 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망령은 킥, 하고 웃으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흥이 깨졌다. 연극을 하려 해도, 이미 무대가 무너지고 관객이 사라졌구나. 이제 이 기만에 본인 스스로를 속이는 것 외에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망령은 푸른 안광이 일렁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저지른 짓이냐?]
“부정하지 않겠다.”
[저 계집 하나를 처치하기 위해 저지른 일 치고는 과하구나. 다른 저의가 있더냐?]
메렌레는 천천히 칼을 뽑아 들며 말했다. 그는 이 거리, 그리고 이 도시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과 폭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모습이었다.
-제법이군.
그래. 제법이다. 앙헬라는 덜덜 떨면서도 희망 섞인 눈으로 메렌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꼴이 우스웠다.
[누군가 배신자가 있구나. 우리 중에···. 어리석다. 우리가 반목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텐데···.]
“죽은 자들이 산 자의 시간에 무슨 다른 의미를 찾겠느냐?”
[맞는 말이군. 하하.]
메렌레는 껄껄 웃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곧, 그는 곡도를 허릿춤에 다시 납도하고는 천천히 거리 밖으로 향했다.
“와, 왕자님!!”
앙헬라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메렌레 왕자는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근위병들을 모두 도륙낸 암살자를 눈 앞에 두고 떠나다니!
[은원은 저 스스로 해결하라. 어리석은 계집. 우리는 네 대리인이 아니다.]
“왕자님!!”
[그리고. 너. 정체 모를 필멸자여.]
메렌레가 고개를 돌려 불타는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잠시 노려보았다.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누가 감히 이 위대한 도시에서 반역을 저질렀든, 그 자는 응보를 받게 되리라. 그리고 너 또한. 살아남진 못하리라.]
페르난데스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메렌레는 턱을 딱, 하고 부딪치고는 그대로 자릴 떠났다. 이제, 이 저택의 마당엔 오직 앙헬라와 그 뿐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다시 앙헬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머리에 든 게 있는 놈이군.
‘네페르카의 반란이 쉽지는 않겠어.’
-그래. 우리가 없다면 말이지.
그 말은 그에게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페르난데스는 픽 웃으며 떨고 있는 앙헬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연신 욕지기를 내뱉으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다시 한 번. 진동이 도시를 덮쳤다. 건물이 허물어지는 소리였다. 페르난데스는 칼을 천천히 겨누며 앙헬라에게 다가갔다.
‘언제 우리에게 시간이 넉넉했던 적이 있었나.’
누군가에게 쫓겨 달아나던 때에도, 악마와 손을 잡고 세계에 지옥을 현현시킬 때에도, 그에겐 늘 시간이 부족했다.
-퍼억!
앙헬라의 마법이 그의 어깨에 부딪치고는 사그라들었다. 마력을 단순히 말아 던지는 식의 간단한 주문이었다. 어떤 신비도 없는, 물리적인 공격.
그리고 물리적인 타격으로도, 디모니카를 멈출 수준은 아니었다.
“제기랄. 제길! 너, 넌 비참하게 죽을 거야. 네 계획은 실패할 거고! 네가 저지른 짓을 봐라! 모든 망자들이 널 쫓고, 네 목숨을 노릴 거야!”
앙헬라는 발작적으로 외치며 흐느꼈다. 페르난데스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이제 그들 사이에 거리는 고작 열 발자국 정도.
“그래! 제국을 배신한 것? 잘못 했다 해. 망자들에게 망명했다고? 그래 맞아! 하지만 그게 왜? 살아 남기 위해 했던 일이었어. 사, 살기 위해 한 거였다고!”
“셀리나 카셀호프.”
앙헬라는 벌벌 떨며 자세를 다잡았다. 공격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젠 숫제 그에게 애원하는 투였다. 어떤 공격에도 묵묵하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단순히 살기 위해 저지른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야망과 아욕 탓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또는 망령을 부활시켜 전쟁을 야기했던 것은 종교법상의 대죄라고, 혹은 그녀의 행동으로 일어난 수많은 피해자들이 지금도 이 대황야에서 고통받고 있노라고 말해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대신.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칼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게 남은 항변의 기회는 더 이상 없다.”
-콰지직!
그러니, 기도하지 말라. 신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눈 앞에 대검을 휘둘러 박아 넣었다.
앙헬라는 히익, 하는 단말마를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그녀는 곧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연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 보았다. 희망과 당혹이 섞인 표정으로.
‘너무 쉽다.’
대검을 휘둘러 그녀의 목을 취하는 것은 너무 쉽다. 페르난데스는 빈 손을 품 안에 넣어, 단검을 뽑아 들었다. 암녹색 저주가 흐르는 네크로폴리스의 단검이었다.
“네게 내려지는 선고는 사형 뿐이나. 나는 이단심문관으로서 가진 나의 개인적인 권한으로 네 선고를 유보하겠다.”
“뭐, 뭐?”
-척.
페르난데스는 왼손으로 앙헬라의 머리를 움켜 쥐었다. 그녀의 몸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단검을 그 위에 얹고는—
-촤악.
그의 손등을 저몄다. 곧 핏물이 그의 손등을 타고 흘러 앙헬라의 머리를 적시기 시작했다. 마치 세례를 하는 것처럼, 그는 무릎 꿇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그녀를 내려 보았다.
“무슨 짓을···.”
“네게 준비된 미래엔 심판이 없을 것이다. 만신전의 전당에 닿아 신들의 심판을 받는 것조차 네겐 허용되지 않는다.”
상처 입은 손등을 타고 저주가 스며들어 그의 영혼을 조각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부서진 영혼의 빈틈을 타고 페이자쉬의 영혼이 자리 잡았다. 이미 이 한 달간 수 없이 합을 맞췄던 방식이었다.
청동 왕좌의 마력 회로가 정렬되며 기동하고, 그의 머리 뒤로 검은 헤일로가 불타 올랐다. 앙헬라는 자신의 얼굴을 덮으며 흘러내리는 페르난데스의 핏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그 모습을 올려 보았다.
“대황야의 죽음은 모두 뭄토의 영혼계에 속한다. 따라서 널 이 자리에서 죽이지 않겠다. 네가 뭄토의 영혼계에서 그의 힘에 일조하는 것 또한. 네겐 허용되지 않는다.”
“사, 살려 준다는 말이야? 그래, 그래! 나, 나는···.”
“그만.”
-콰득!
앙헬라의 머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맨손으로 나무 등걸을 으스러트리는 악력이다. 페르난데스의 힘에 앙헬라는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 사이에서, 페르난데스는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여 네 처형을 유보하겠다. 그러나 물질 세계에서 더 이상 네가 숨을 쉬고, 행동 하고, 웃거나 우는··· 그러한 모든 행위 또한 네겐 허용되지 않으리라. 따라서 너를 추방한다.”
“뭐···?”
-척.
페르난데스의 오른손이 수인을 짚는다. [축조].
앙헬라의 겁에 질린 시선을 느끼며.
-오랜 만이군.
페이자쉬는 끈적하게 웃었다. 기초적인 주문 중 하나였다.
[작성], [제물], [추방], [금고].
-화르르륵!
페르난데스의 눈 앞에 붉은 마법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헤일로가 더욱 거세게 불타며, 대기에 기묘한 어그러짐을 일으켰다.
-후우웅···.
끈적한 바람이 그들의 몸을 타고 흘렀다. 마지막 수인이 그의 손 끝에서 맺혔다.
[지옥.]
-쿠르르릉···!!
허공에 균열이 일어난다. 그 틈으로, 노란 눈들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보라색 지옥 마력이 그 사이에서 스며 나와 대기를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대지가 뒤틀리고, 식물이 변형된다. 지독한 유독성 증기가 공기를 대체하며 이 물질 세계를 살라먹기 시작했다.
지옥의 틈이 열렸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을 느꼈다. 의문, 증오, 분노, 쾌감. 시선에 담긴 감정들이 그들을 스쳐 지난다.
그리고, 검은 손이 나타나 그들에게 뻗어 나왔다.
“서, 성자가 이런 짓을···.”
“네 형벌을 위임하겠다.”
“제발···.”
앙헬라는 눈물 섞인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올려 보았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가볍게 손을 털어 앙헬라를 밀쳤다.
-촤르르륵!
“꺄아아아악!!”
지옥의 틈 사이로 뻗어 나온 팔이, 앙헬라의 몸을 휘감고 그 안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앙헬라의 손이 허공을 할퀴고 몸부림쳤다.
그리고 곧, 침묵이 도래했다. 지옥의 틈이 다시 닫혔다. 페르난데스는 그 짧은 사이에 그의 몸 안을 파고든 지옥 마력의 오염에 저릿한 감각을 느끼며 손을 털었다.
-간단히 죽여줄 수는 없지.
페이자쉬가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걸로 재판을 마친다. 페르난데스는 피로에 찌든 눈으로 바닥에 박힌 대검을 바라 보았다.
지옥의 마력이 이 근방을 불사르고 있었다. 이 도시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 불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