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무너지는 도시, 프타하 (2) >
*
[감히 신을 배신하다니!!]
고대 상아시트 제국 시절의 가장 화려한 유물과 부장품으로 치장한 해골, 투탄 가르텝은 안광을 터트리며 궁중 발코니에서 자신의 도시를 내려보고 있었다.
도시의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병사들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눴다. 도시 외부를 향해야 마땅한 마력 포대들이 도시 내부를 향해 돌아가 있었고, 빈민가, 번화가, 상점가, 그리고 거주지를 할 것 없이 폭격이 쏟아졌다.
-투콰아아앙!!
마력탄이 회백색 궤적을 그리며 건물에 들이 박힌다. 그리고 곧,
-쿠르르르릉!!
지진과 함께 건물과 그 인근 모든 지역이 산산조각나며 내려 앉는다. 상아시트 최고의 마법공학 장인들이 만들어낸 마력 포대는 저 먼 고대의 드워프들의 기술력을 본 딴 것. 파괴의 화신과 같은 위용에 투탄 가르텝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신의 자손을 배반하다니!!]
감히 반란이라니. 상아시트 시절, 감히 파라오의 혈통을 잇지 않은 이들은 파라오에게 반역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 아무리 왕권이 약화된 왕조에도!
파라오란 단순히 다른 인간 문명 사회의 왕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의 자손이자 대리인, 그리고 신의 화신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칼자루를 겨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같은 신의 자손 뿐.
따라서 파라오들은 전통적으로 자신의 혈족들만을 경계했다. 투탄 가르텝 또한, 이 대황야에 자신을 향해 칼을 돌릴 수 있는 아시트 제국의 동포들은 오로지 다른 두 파라오 뿐이리라 믿었다.
그러나 자신의 부하가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다니. 감히? 투탄 가르텝의 손이 분노로 덜덜 떨렸다. 그의 온몸에 치장된 장신구들이 음울한 빛을 번뜩이며 절그럭거렸다.
[신왕이시여. 고정하소서.]
[카하레페르···! 이게 진정할 일이냐!]
[반란은 네페르카 왕자의 손으로 일어난 것. 그의 병력은 하잘 것 없으니, 지금의 위세가 대단하지만, 오히려 가소롭나이다.]
[네가 가거라!]
투탄 가르텝은 어전에 부복한 카하레페르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글거리는 안광으로, 그는 저주를 내뱉 듯 한자 한자 끊어 외쳤다.
[놈에게 지옥을 보여주거라. 감히 신왕의 도시를 범한 죄를 단단히 물어라. 아니, 죽이지 마라. 놈을 산채로 신왕에게 보여라!]
[그럴 수는 없나이다.]
[···무어라?]
카하레페르는 천천히 일어나며 공손하게 말했다.
[신왕이시여. 네페르카 왕자는 어전의 출입을 신께 허가 받은 궁중 대신입니다. 소신이 부재할 때에, 놈이 신왕을 감히 해하려 들거든 막아설 병졸이 필요할 겁니다.]
[메렌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방금 전 궁내에 도착하여, 곧장 전장으로 나섰나이다. 메렌레 왕자가 직접 군을 이끌고 반역도당을 참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좋다. 탐프티스와 셉세스를 보내라.]
[트라이아크를 모두 내보내어도 괜찮겠습니까?]
[탐프티스에게 첨탑의 포대를 정지하라 명하라. 셉세스는 메렌레를 도와 네페르카를 생포하라 전하라. 설령 네페르카가 직접 어전에 온다 한들, 놈은 너 하나로도 족하고 남음이 있도다.]
투탄 가르텝의 말에 카하레페르는 깊게 절을 하며 읍했다.
[신왕의 뜻대로.]
투탄 가르텝은 어전을 떠나는 카하레페르를 응시하고는, 시선을 돌려 난장판이 되어가는 도시를 내려 보았다.
*
-삐이이익···.
해골로 이루어진 독수리가 푸른 궤적을 그리며 아름답게 유영했다. 마법을 통해 공중으로 날린 하수인이었다. 독수리는 크게 원을 그리며 거주지를 향해 다가가고, 곧 쏜 살같이 하강했다.
-착.
그 끝에, 지붕 위에 앉아 도시를 관조하는 페르난데스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팔뚝을 잡아 챈 독수리를 바라보았다. 녹색 안광이 독수리의 두개골 아래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독수리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쓰다듬고는 갈비뼈 사이에 들어 있는 두루마리를 꺼내었다.
그 작은 쪽지에는 고대 상아시트 상형문자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카하레페르 다운 무뚝뚝한 필치였다.
‘궁중이 비었다. 하여간.’
어쨌건 성공했다는 뜻이겠지. 페르난데스는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 마력탄환을 바라보았다. 놀라운 기술력이다. 도시의 핵심 구획들이 순식간에 파괴되어, 네페르카 왕자의 적은 병력으로도 파라오의 군단을 혼란에 밀어 넣고 있었다.
샥시시와 네페르카는 작전이 시작하자마자 도시 외곽의 마력 포대들을 점거했다. 메렌레 왕자가 흩어져 있는 근위대들을 모아 반격을 준비할 그 시간 동안, 도시는 이미 재기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파괴되고 있었다.
그러나 투탄 가르텝의 진정한 군단은 도시 시내에 주둔하지 않는다. 이런 소란이라면 이미 시외에 주둔중인 군단에 소식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전서구들이 어지러이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다.’
샥시시가 아무리 유능해도, 그리고 네페르카가 아무리 분전한다 하더라도. 투탄 가르텝의 본대가 도시를 공략하기 시작한다면 견디어 낼 수가 없다. 페르난데스는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파라오의 궁궐을 바라 보았다.
거대한 내성과 삼엄한 경계. 달을 가릴 듯 높게 치솟은 인공 언덕과 그 정상에 얹어진 화려한 궁중이 보였다. 수많은 병력들이 저 성 아래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궐을 수호하는 최소한의 기능은 충실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니, 이것은 시간 싸움이었다. 투탄 가르텝의 본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가 파라오를 꺾을 수 있느냐. 그리고—
‘네크로폴리스의 문을 열 수 있느냐의 싸움.’
마흐라스의 알타락. 모사트 시의 파라오는 그 힘을 충분히 도사리기 전에 그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생명은 네크로폴리스의 영혼계로 향하는 문을 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전히 자신의 제국을 구축한 지금의 세 왕조 파라오들은 달랐다. 놈들의 영혼은 네크로폴리스로 향하는 열쇠가 되어줄 수 있었다.
봉인을 온전히 해제하고 뭄토의 힘을 온전히 수급하기 위해선 세 왕의 목숨이 모두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뭄토를 지상에 풀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단 한 사람. 그 자신만을 통과시킬 작은 틈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치이이익···.
네크로폴리스의 단검이 그의 영혼에 저주를 박아 넣고, 그 틈을 타 지옥 마력이 스며들며 손목이 기괴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성자의 핏물이 저주를 상쇄하고 있긴 했지만, 지옥 마력 중독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해주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다면 디모니카의 육신은 다시 원래 기능을 수복할 것이다. 그건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시간 싸움이다.’
투탄 가르텝의 군단이 도시에 도착하는 것. 그리고 네크로폴리스의 저주와 지옥 마력의 오염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이 둘 모두, 시간 싸움이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간다.’
-언젠 우리가 여유로웠던가.
‘하, 그랬던 적 없지.’
오히려 이런 종류의 싸움엔 익숙했다. 부족한 팻감, 부족한 시간, 넘치는 적과 패배 요인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승리를 따내고 생존하는 것.
스무 살. 이단심문관들에게 추적 대상이 된 해. 서른 살. 제국의 정보기관이 쫓던 해. 마흔 살. 세계의 공적으로 몰렸던 해.
그리고 여든 살. 세계를 멸망시켰던 해에 이르기까지.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까닭은, 부족한 상황과 치열한 시간을 등에 진 싸움에 누구보다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톡.
그는 두루마리 끝을 찢었다. 궁중 / 텅 빔. 상아시트 상형문자가 두 글자로 나뉘었다. 페르난데스는 남은 한 쪽을 독수리의 갈비뼈 사이에 묶고는 놈의 두개골을 툭 쳤다.
-퍼드득.
독수리가 하늘을 유영하며 솟구친다. 놈이 품고 있는 전서는, ‘궁중’.
곧, 그가 도착한다는 답신이다.
*
폭격이 빗발친다. 끊임 없이 도시의 일부분을 허물어트리며. 고대의 석벽, 왕조의 묘실. 수 세기 간 토사 속에 묻혀 있던 상고 시대의 유적들이 다시금 모래와 먼지로 바뀌어 붕괴되고 있다.
-쿠르르르릉!!
마력탄들은 당대 상아시트 제국이 가진 마도학 기술력의 정수였다. 세외의 야만인들을 억압하고,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이다. 그러한 유물들이 이젠, 그들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쿠르르릉!!
탄착 지점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긴다. 그 균열 사이를 타고 넘으며, 허물어지는 건물을 밟고, 지붕을 가로 뛰며 페르난데스는 정면으로, 그저 정면으로 나아갔다.
그의 발 밑에서 해골과 미이라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다.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고 방패를 치켜들며 묵묵하게. 놈들은 정신파를 터트리며 대화를 나눈다. 놈들의 메마른 성대에선 어떤 음성도 세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 전장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 폭격이 쏟아지는 소리. 그 외에 응당 들려야 할 비명과 괴성이 없다. 저들이 내지르는 단말마는 오로지 파열음 뿐이다.
-타다닥!
무너지는 건물을 밟고 뛰어 오르며, 그 균형을 잃지 않는다. 디모니카의 감각은 인간보다 야수의 것과 닮았다. 걸음과 걸음 사이에 이미 본능에 가까운 수많은 계산과 예측이 섞여 있다. 그는 붕괴되는 거주지의 지붕을 차고 하늘 위로 뛰어 올랐다.
푸른 눈이 최선의 길을 찾아 빠르게 움직인다. 그의 머리 위로 가깝게, 회백색 마력탄의 궤적이 이어진다.
-쿠우우웅!!
충격파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마력에 의한 파괴는 단지 물리적인 피해만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 거대한 마법적 충격에 영혼계와 물질계가 섞이고 있었다. 그 사이로—
-고오오오···.
뭄토의 시선이 느껴진다. 놈의 사슬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을 노려보는 놈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대악마의 위협 섞인 시선은 필멸자의 몸으로 견딜 수 없다. 놈들은 단지 보는 것 만으로 생명을 죽일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놈에게는 애석하게도, 그는 단순한 필멸자가 아니다.
분노와 공포, 고통과 증오. 그러한 감정과 감각을 뒤섞어 육신과 영혼에 박아 넣는 영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키이이잉.
그의 등허리에 박힌 성흔이 반짝인다. 어둠 속을 밝히는 횃불처럼. [불굴]. 그는 결코 외부의 요인에 의해 꺾이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삶을 대변하는 지침과 같았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결코 안주하지 않는다. 평생에 쫓기고, 실패하고, 무너지는 과정에서도 그가 끝내 정점에 이를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그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우우우웅!!
다시 한 번. 충격파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는 대로, 충격에 몸을 맡기며 오히려 방향을 틀어 정면으로. 그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파라오의 궁중이 눈 앞까지 닥쳤다.
이제 곧이다. 시간 싸움은 그에게 익숙한 영역이었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뭄토!”
-쿠우우웅!
마력탄환의 충격에 무너지는 현실의 틈새를 노려보며 페르난데스가 외쳤다. 놈은 반드시 그의 말을 듣고 있을 것이다. 마트라스의 파라오를 죽인 이후부터, 아니. 데인 왕국의 콘클라베를 죽였을 때부터.
놈은 그를 언제나 주시하고 있었을 테니. 지금 이 순간도, 몸이 달아 있겠지. 당장이라도 그를 막아서고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기다려라.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저, 기다리고 있어라, 뭄토!”
내가 갈 테니. 너는 그저 기다리고 있어라. 그 자리에서 무력하게! 페르난데스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걸렸다. 그는 빗발치는 폭격과, 그 아래에 짓눌려 바스라지는 망령들의 머리 위를 뛰어 오르며 내달렸다.
파라오의 궁중을 향해. 그리고 그 끝에 있을 대악마의 봉인을 향해.
그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