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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20화 (121/388)

< 120. 무너지는 도시, 프타하 (3) >

*

도시의 절반 이상이 잿더미가 되고 있었다. 아군의 군세가 우세하건만, 도시 외곽에 설치된 마력포가 쏘아내는 탄환이 그 이점을 모두 앗아가고 있었다.

탐프티스, 궁중 대신관. 그녀의 주문이 마력탄을 막아내는 것이 보였다. 놀라운 이적이다. 한 사람의 주문으로 저 거대한 대포를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은.

그러나 그것 뿐. 전장은 드넓었고, 그의 수중엔 그녀 정도의 술법을 부릴 수 있는 마법사가 없었다. 투탄 가르텝은 인상을 찌푸리며 칼자루를 쥐고, 놓았다.

[아직이냐? 아직이더냐, 이 무능한 것들!]

[신왕이시여. 고정 하소서. 저들의 발악은 하찮고, 우군이 곧 당도할 것입니다.]

[카라트라의 군단은 어디까지 당도했다 하더냐?]

[전서에 따르면, 동녘이 밝아오기 전에 공성을 착수하겠다 합니다.]

[으음···!!]

투탄 가르텝은 발코니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미 하늘이 푸르게 밝아지고 있었다. 앞으로 두어 시간. 그 정도의 시간만 있다면 그의 군단이 성벽을 허물고 도시를 수복할 것이다.

-피리리릭···.

그리고 그 때, 포환이 허공을 찢어 발기는 기묘한 파공음이 들렸다. 투탄 가르텝은 멍하니, 정확히 왕궁을 향해 날아드는 포환을 바라 보았다.

-피리리릭···.

회백색 궤적. 정교하게 직조된 주문들이 대기와 마찰하며 마력 잔향을 그리는 그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리게 보였다. 오로지 파괴와 학살 만을 위해 자아올린 고중량 마력 탄환이 그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탄환은 이윽고, 파라오의 눈 바로 앞. 그 어딘가에 부딪쳐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바람도, 충격파도 파라오를 덮치진 못했다.

상아시트 최고의 방어 주문. 고대의 용의 입김, 드워프의 화염포, 또는 대악마의 저주로만 해주할 수 있는 강고한 보호 주문이 이 궁중 외부에 걸려 있다.

파라오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성벽 너머, 저 어딘가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을 네페르카를 찾았다. 놈 또한 고작 이 정도의 공격으로 파라오의 거처를 해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콰지지직.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타고, 푸른 실금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드워프의 기술을 저급하게나마 따라 만든 마력포는, 그 화력에 있어서 감히 그들에게 비할 수는 없었으나. 그럼에도 충분히 유효한 충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곧, 성벽 위에서 마력포의 궤적이 잇따랐다. 놈들은 지치지도 않고 궁중을 향해 대포를 쏘아 댔다. 탄환을 도심으로 향해 파라오의 근위병들을 막아내는 것보다, 직접 궁중을 타격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어리석은 것들···!]

-투콰아아앙!!

궁중 외곽의 장벽에 폭음이 이어진다. 반투명하게 실체화된 보호 주문을 따라 둥글게 마력탄이 만들어낸 파괴의 마력이 흐른다.

-쩌저저적.

다시 실금이 그 위로 달렸다. 궁중의 보호 주문과 이를 뒷바침하는 마력은 무한하지 않다. 그러니, 시간 싸움이었다.

점점, 동녘이 터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지평선 끝자락에 모래 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다.

[서둘러라!!]

투탄 가르텝은 테라스의 난간을 꽉 붙잡으며 으르렁거렸다. 마력포의 탄환이 만들어내는 눈부신 빛무리가 연신 궁중의 외곽을 두드리고 있었다. 주문이 버티는 시간과, 파라오의 군단이 도심에 진입하는 시간.

그 사이의 시간 싸움이었다.

변수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

[놈을 막아라!!]

그렇게 말한 근위병은 두개골이 갈라지며 스러졌다. 페르난데스는 다인 왕의 대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전진했다. 유골이 날고, 분골이 흩어졌다. 파라오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한 근위병들은 자신의 영혼이 스러질 때 까지 덤벼 들었다.

‘귀찮군.’

페르난데스는 넓게 칼을 휘둘러 치며 생각했다. 어전으로 향하는 궁중의 복도는 근위병과 근위병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그는 점점 밝아지는 하늘을 힐끗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마력이 허용될 시간을 말하는 게냐. 네페르카에게 남은 시간을 말하는 게냐.

‘둘 다.’

-마력은··· 한 시간 안에 꺼질 것이다.

‘계산상 파라오의 군단도 그 안엔 도착할거야.’

지옥 마력의 오염이 점점 몸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애써 그 끈을 잡아 놓으려 노력했지만, 신성이 타오르는 혈액이 끊임 없이 저주를 풀어내고 있었다.

하여간, 너무 성능 좋은 육신이었다. 그는 어느새 거의 온전한 형상을 찾아가는 왼팔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네크로폴리스와 지옥에 의해 팔뚝까지 오염되었던 그의 왼팔은 이제 손목 어림까지 저주의 흔적이 내려가 있었다.

그 전에 해결해야 했다. 페르난데스는 걸음에 속도를 높였다. 근위병들이 거세게 밀려 들었다.

“길을 터라!”

[놈을 막아!! 놈을 막아라, 아시트의 전사들이여!]

상반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페르난데스는 짧게 혀를 차며 자세를 낮췄다. 대퇴근이 긴장하며 뭉치고, 근섬유와 힘줄 사이로 디모니카의 혈액이 펌프질 쳤다.

-쿵, 쿵, 쿵!

탠션이 정점에 달했을 때, 페르난데스가 뛰어 나갔다. 달려드는 사자처럼 뛰어 오르며 대검을 교차로 쥐고 허공을 긋는다.

-촤아아악!

묵빛 대검이 푸른 유리알 박힌 유등에 번뜩인다. 빛을 삼키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

-카드드드득!!

그 궤적에 있는 근위병들이 충격에 바스라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 무슨 힘이!!]

[노, 놈!! 인간이 아니구나!]

“망령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섭섭하긴 한데.”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으며 착지하고, 자세를 도사렸다. 그 틈에 망자들이 그에게 달려 들었다. 대검을 길게 모로 빼고, 팔뚝의 틈 사이에서 그의 푸른 눈이 빛났다.

-카드드득!

다시 한 번. 검이 날뛴다.

*

얼마나 베었을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페르난데스는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피로에 찌든 눈으로 정면을 바라 보았다.

궁중의 긴 회랑은 부서진 뼛조각으로 가득했다. 전신에 입은 타박상, 자상, 찰과상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카드드득.

마지막으로, 꿈틀거리는 해골의 두개골에 대검을 꽂아 넣으며 페르난데스는 잠시 검에 몸을 맡기고 헐떡였다. 땀과 핏물이 손끝에서 흘러 바닥에 방울 졌다.

‘평소라면 허세라도 부려 보았을텐데.’

-누구에게? 그 용이나 수인족 계집에게?

‘그래. 내 피가 아니라는 둥 하면서 말야.’

-하하. 웃기는 군.

페르난데스는 페이자쉬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따라 웃었다. 잠시간의 휴식으로도 충분할 정도의 힘이 근육 사이로 돌기 시작했다. 생명을 불살라 체력으로 치환하는 듯,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맥박쳤다.

-치이이익···.

지옥 마력의 기운이 손목 어림에서 손등까지 밀려나고 있었다. 이 기운이 다 하기 전에—

“도달 해야지.”

그는 정면, 어전의 거대한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신과 파라오, 태양과 달, 그리고 거대한 천칭이 부조된 어마어마한 크기의 석문이 그의 눈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후, 페르난데스는 한숨을 내쉬며 대검을 빙글 돌려 등에 이었다. 기사의 시간은 이제 끝났다. 이제부터는 조금 더 섬세한 시간이다.

-치지직···.

살짝 뻗은 손이 석문에 닿기 무섭게, 불똥이 튀며 그를 밀쳐냈다. 저릿한 손끝을 주무르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사자의 저주로군.”

-억지로 열려면 가능이야 하겠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게다.

“그래선 안 되지. 우리에겐 시간보다 중요한 자원이 없어.”

설령 생명이라도, 시간보다 귀하진 않다. 그 ‘시간’을 얻기 위해 과거로 돌아왔으니.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수인을 짚었다.

“그러니, 빠른 길로 가보자고.”

품 안의 비수란 응당, 필요할 때 뽑아 써야 하는 법.

*

[신왕이시여.]

마지막으로 도달한 파발은 피신을 할 것을 당부하고는 사라졌다. 그가 궁내의 소식을 전한 다섯 번째 시종이었으며, 그에게 앞선 네 번의 소식은 오히려 지금의 것보단 희망적이었다.

처음.

-침입자가 감히 잠입했으나, 신왕의 영광스러운 전사들이 요격했습니다.

그로부터 삼십 분이 지나기 전에.

-침입자의 신위가 가히 위협적이나, 전사들의 무위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그 후, 한 시간 가량이 흐른 뒤에.

-놈이 따오기의 관문을 넘었나이다. 하지만 사자의 관문에서 기다리는 전사는 가히 일당백의 투사이오며, 놈의 무력은 하잘 것 없나이다.

그 다음 도달한 시종은 불안한 안광을 숨기지 못한 채 부복하며 읍했다.

-···신왕이시여. 놈은 결코 어전에 당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방금 뛰어 들어온 시종은, 읍소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다급하게 외치고는 곧장 다시 어전의 대문을 벗어났다. 잠시 열린 문틈 사이로 병장기의 파열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전의 입구를 봉하겠나이다. 신왕이시여, 부디 옥체를 보전하소서.

카하레페르는 묵묵히, 어전의 외곽 테라스에서 도심을 내려보는 파라오를 바라 보았다. 파라오는 어깨를 늘어트리고 멍하니 파괴흔이 가득한 그의 상처 입은 도시를 내려보고 있었다.

-콰아아앙!

그의 눈 앞에 마력탄이 부딪치며 거대한 화염을 흩어 놓았다. 궁중을 수호하는 보호 주문이 이제 실낱 같은 기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새파란 실금이 거미줄처럼 공중에 걸려 있었다.

파라오는 턱을 탁, 하고 닫으며 정신파를 터트렸다. 슬픔, 노여움, 고통, 증오. 신의 자손이 보이기엔 가히 부적절한 감정이었다.

[보아라. 대전사야.]

그는 손가락을 들어 시가지를 가리켰다. 성벽의 포격에 바스라지는 근위병들이 그 아래에 놓였다. 천여 년을 지나도, 천 번의 여름을 견디더라도. 그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전사들이었다.

[내 생전, 우리의 생전. 이 제국이 아직 제국이었을 시절. 이 황무지가 푸르른 초원이었으며, 강가와 냇가에 우리의 아이들이 뛰놀던 그 시절에도. 이 도시를 외적이 범한 적 없었다.]

[···.]

투탄 가르텝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 사이한 사령술사가 우리를 복속시켰을 때에. 우리 모두가 저 사토 아래에 갇혀 한낱 망령이 된 이후에도 이 도시는. 이 도시는 외적이 범한 적 없었다.]

[신왕이시여···.]

[내 선조께 맹세했었다.]

투탄 가르텝은 테라스를 강하게 움켜쥐며 으르렁거렸다.

[반드시 백성들의 모습을, 마땅히 그러해야 했을 시절로 돌려 놓겠다고. 사령술사의 주박에서 벗어난 것은 기적이었고, 기적은 언제나 사명을 가져오는 법. 짐은. 대전사여. 그대의 신왕은 이 대황야를 통일하고, 이 세계를 모두 복속시켜. 이 세계 어딘가엔 있을 마법과 주문, 기적과 신앙. 그 무엇이든 모아서···.]

파라오의 말이 점차 격해졌다. 카하레페르는 고개를 조아리며 그의 말을 들었다. 죽은 왕의 야망을. 그가 품고 있었던 것은 진심일까, 개인적인 야망을 치장하려는 변명일까.

[그리하여 우리가 응당 그래야 할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랬다.]

[신왕이시여. 하오면, 지금의 위난을 피하겠사옵니까?]

어전엔 비밀 통로가 있었다. 오직 왕혈에게만 이어지는 비밀스러운 통로가. 카하레페르는 그것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파라오는 고개를 저었다.

[투탄 가르텝은 결코 도주하지 않는다.]

-콰아아앙!!

마력탄이 궁궐에 직격했다. 거친 파열음과 함께 궁중을 지키던 보호 주문이 마침내 깨어졌다. 파라오는 몸을 돌려 어전을, 그 긴 회랑 너머로 보이는 어전의 석문을 노려 보았다.

[들라 하라. 투탄 가르텝은 결코 도주하지 않는다.]

[한 가지만 대답해 주소서.]

카하레페르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신왕이시여. 이 황무지를 정복하려 함은, 분명 대의를 위함이었나이까?]

[짐이 곧 대의니라.]

그의 말에 카하레페르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집과 광기가 파라오의 정신파 안에 섞여 터져 나오고 있었다. 분명, 그의 결심과 맹세는 의로운 것이었을 것이나···.

잠시간의 망설임 후에, 카하레페르는 일어서서 몸을 돌렸다. 그의 등 뒤로 파라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고 있었느니라.]

[그리하셨습니까?]

[대전사는 마땅히 외적의 침입에 가장 먼저 나아가야 하는 법. 그러나 그대가 짐의 곁을 지키고자 고집하며 짐의 수족을 외부로 돌린 것은 결코 충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저를 곁에 두셨는지요?]

[투탄 가르텝은 결코 피하지 않으니.]

그러니, 네가 짐을 배신하도록 종용한 그 대단한 침입자를···.

들라 하라.

파라오의 정신파를 등 뒤로 느끼며, 카하레페르가 문을 밀었다. 석문이 거친 마찰음을 내며 밀려났다. 그 사이로, 피와 땀에 푹 젖은 한 사내가 천천히 들어왔다.

사내의 눈이 어전의 끝, 테라스를 등지고 서 있는 파라오에게 닿았다. 잠시,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투탄 가르텝. 네 대전사가 크게 혼란스러워 하는군. 후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네 말이 진심이라면. 널 묶고 있는 그 주박을 풀고, 그 빌어먹을 대악마의 시선에서 진정코 자유롭고 싶을 뿐이라면. 내가 널 도와주마.”

[투탄 가르텝은 거래하지 않는다.]

“나의 가신이 되어라.”

[투탄 가르텝은 복종하지 않는다.]

파라오의 오만한 눈이 불타올랐다. 페르난데스는 이를 마주보며 웃었다.

“데일 페르타스가 당년에, 네크로폴리스의 콘클라베 전원과 함께 동시에 덤벼 들 때에도. 놈은 내 적수가 되지 못했었다.”

그러니, 오거라. 복종하는 법을 가르쳐주마.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수인을 짚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투탄 가르텝의 안광이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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