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21화 (122/388)

< 121. 다섯 중 셋 >

*

네크로폴리스 콘클라베. 상아시트 시절,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숫한 제왕들 중 고르고 골라 부활시킨 뭄토의 다섯 종복들.

프타하의 정복자 투탄 가르텝. 멤히파의 여군주 라비라타. 미투르나의 살아있는 신 아포타자르. 마흐라스의 마술사왕 알타락. 대사제장 파프테트.

언더카타콤의 집법자이자 오만한 제왕들. 각 개체들의 자존감이 너무나 강인했던 탓에, 뭄토 또한 그들의 이성을 거의 봉인한 채 꼭두각시로 사용했었으나.

그들의 본 능력 대부분을 상실하고 꼭두각시로 전락한 후에도 다른 망령들과는 격이 다른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네크로폴리스는 결코 뭄토에게 충성하는 망령들의 집단이 아니다. 뭄토가 가진 강력한 힘과 권능으로 복속시킨 마리오네트들의 집합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뭄토의 영향력과 권능이 극도로 저하된 이 시기에 부활한 콘클라베들은 각자의 목적과 야망을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그들 생전의 권능 대부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손목 어림에 남아있는 상흔을 느끼며 웃었다. 다섯 콘클라베 전원이 동시에 덤볐을 때에도, 그들은 그에게 대적할 수 없었다.

페르난데스는 과거의 대마법사 페이자쉬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전에서 시간 외엔 나에게 적수가 없다.’

오로지 시간 뿐이지. 페르난데스의 푸른 눈이 일렁거렸다. 투탄 가르텝은 오만하게 서서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시선의 무게가 저릿하게 그를 내려 누르고 있었다.

이엔, 그조차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이천 년. 저 자가 네크로폴리스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보낸 그 기나긴 시간을 고려한다면. 저 정도의 이성과 자존감이 남아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하물며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영웅 중에 꼽히는 데인 왕조차도 천오백 년간 지속된 망자의 저주 속에서 광기에 휩싸였던 것을 고려할 때. 파라오들의 이성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다른 망령들은 그저 이성을 상실한 채로 그 시간을 견딘 것이지만···.’

콘클라베는 이성이 살아있는 상태로 뭄토의 저주를 받고, 하수인으로서 그 기나긴 시간을 지낸 것이다.

-아니. 저게 정말 이성인가?

‘뭐?’

-아집. 야망. 노욕. 뭐, 다른 말로는 광기의 편린일 수 있다.

너무나 드높은 자존감 때문에, 놈들은 자기 자신의 광기를 부정하고 있는 것일 뿐. 페이자쉬의 말에 페르난데스는 대전사의 말을 떠올렸다.

*

이 뒤틀린 세상에 진정코 멀쩡한 이성을 지닌 자들이 얼마나 되겠나? 다들 광기를 예의로 감추고 있을 뿐.

*

‘그렇군.’

예의가 아니라, 오만함으로 자신의 광기를 감추고 있는 것일 뿐···.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그럼에도 저 강인한 영혼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최선을 다하마.’

그러니. 수인을 짚는다. 지옥 마력의 마지막 편린을 사용해. 그가 지금 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주문으로.

*

침입자의 머리 뒤에서 검은 헤일로가 타올랐다. 투탄 가르텝에게 피부가 남아 있었다면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흑마법과 사술에 대해서라면, 그는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니까.

[허튼 수작이로다.]

-스르릉.

투탄 가르텝은 마법에 능하지 않다. 그가 익힌 제왕학에서 기초적인 수준의 마법이야 있었지만. 이를 학문으로 삼고 진지하게 파고든 적이 없는 탓이다.

그러나 왕에겐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성을 빼앗아 왕좌를 노리는 사악한 마법사들과 주술사, 사제들에게서 위대한 신의 자손을, 그리고 왕혈을 지키기 위해선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따라서 상아시트의 파라오들은 자신의 몸에 수많은 보호부들을 걸고 있었다. 온몸을 치장한 다종다양한 장신구들 중 하나하나 중 최상급 보호부가 아닌 것이 없었다.

마법이란 본디 준비하고, 제련하는 것. 저렇게 정면에서 단순하게 사용하는 마법에 어떤 신비를 담을 수 있을까. 족히 이천 년을 지낸 유서 깊은 신비를 어떻게 파훼할 수 있단 말인가?

-저벅.

파라오는 뛰지 않는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도. 투탄 가르텝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테라스에서 곡도를 뽑아 들고는 한 발자국 나아갔다.

-화르르륵!

페르난데스의 왼손이 기이하게 뒤틀린다. 간단한 만트라, 간단한 주문이다.

“쇠락.”

-콰직!

그와 동시에 파라오의 몸에 걸린 보호부 하나가 뜯겨 떨어져 나갔다. 놀라운 일이나 그 뿐이다. 고작 그것으로는 그를 막을 수 없다.

[소용 없는 짓이다. 마술사여.]

-치이익.

페르난데스의 왼손이 순식간에 모양을 바꾸어 뒤틀린다. 새롭게 자아진 만트라에서 검은 번개가 내달려 파라오의 몸에 직격했다.

“혼란.”

[고작, 고작 이런 허튼 노력에 네 충절을 반했느냐. 대전사야?]

파라오는 자신의 몸에서 벗겨지는 보호부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고작 이 수준의 저주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맞아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의 손은 멈춤 없이 다음 주문을 짚었다.

“추방.”

-콰직.

보호부가 벗겨진다. 파라오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페르난데스의 만트라 또한.

“마력 강탈.”

-콰직.

“무력화.”

-콰지직.

“약화.”

-콰직.

“악의 시선.”

“배교의 파편.”

“부패.”

“생명 착취.”

“고통.”

-콰드드득!

보호부가 벗겨진다. 점점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강인하게. 파라오의 한 걸음, 그 한 걸음이 마치 허물을 벗는 것처럼 비산하는 장신구들의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러나 부족하다. 페르난데스의 수인, 그가 내뿜는 저주는 파라오의 보호부를 완전히 무력화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다섯 걸음 남았다. 그의 칼이 페르난데스에게 닿기 까지는!

“결박.”

“격노.”

두 걸음. 파라오는 자신할 수 있었다. 저 대검을 든 흑마법사가 가진 본신의 무력 수준이 대전사의 수준이라면, 지금 이 공격으로 저 자를 무력화할 수 있었다.

신왕의 무위를 보여주마. 파라오의 눈에 오만함이 깃들었다. 생전이라면 모르되, 지금. 영혼의 격이 그 능력을 대신하는 망자들 사이에서, 그보다 격이 높은 영혼 따윈 없었다.

그러니. 놈의 발악은 무의미했다. 파라오의 검이 높게 치솟았다.

[마술사여. 살아서 섬기지 못하겠다면. 죽어서 신왕을 섬겨라.]

-콰직.

보호부가 떨어져 나가니 오히려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파라오의 안광이 일렁거렸다. 생전이라면 펼칠 수 없었을 참격이 그의 손목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푸쉬이이익.

[헛짓거리를 끝까지!]

검은 안개가 페르난데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몸이 안개에 덮여 완전히 가려졌다. 지옥 마력을 품은 안개는 분명 닿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인 저주일 테지만. 고작 이정도로는 부족—

“가속.”

-촤악!

안개를 뚫고 손이 뻗어 나온다. 희끄무레한 뒤틀린 오른손이. 파라오는 칼을 내려 찍으려다가, 잠시 멈췄다.

‘놈의 수인은, 왼손이 아니었나?’

-촤아악!

다시 안개를 뚫고 손이 나온다. 하나, 둘, 셋. 그 수가 총 여섯!

[무슨 짓을···?]

아주 잠시의 당혹. 아주 잠시간의 머뭇거림이 파라오의 공격을 멈췄고.

안개를 뚫고 나온 여섯 개의 하얀 손이 제각기 다른 만트라를 취하며, 그 뒤로 검은 헤일로가 떠올랐다.

-촤아악!

그리고, 흉터 덮인 왼손이 안개 안에서 뻗어 나와 파라오의 가슴팍을 톡, 가볍게 찍었다.

“페이자쉬의, 악의의 고리.”

[···이, 놈.]

찰나의 순간, 안개 한 가운데에서 일렁이는 페르난데스의 푸르른 눈이 파라오의 안광과 시선을 맞추고—

-콰지지지직!!

파라오의 몸에 두르고 있던 모든 보호부들이 깨어져 나갔다.

*

지옥 마력이 만들어낸 검은 안개 속에서, 페르난데스는 삼두육비를 거두며 숨을 골랐다. 지옥 마력을 사용한 마법은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었다. 디모니카의 육신이 끊임없이 거부하는 통에, 온몸의 혈류가 거꾸로 치솟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허물어지는 파라오를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파라오가 가진 보호부들은 당년 그라도 단 하나의 주문으로 벗겨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악의의 고리]. 중첩해서 쌓은 미약한 저주들을 쌓아 올려, 대상의 육신에서 끊임 없이 격발시키는 주문. 한 번의 강한 공격으로 벗겨낼 수 없다면, 수 차례에 걸친 작은 주문으로 무력화 시키는 것이 최선이니.

안개가 걷혀간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파라오는 형형한 안광을 내뿜으며 바닥에 허물어져 달그락거렸다. 그의 몸에서 마치 날개가 펼쳐지는 것처럼 부장품과 보호부들이 흩어져 떨어졌다.

-콰직.

그 파편들을 밟으며 파라오에게 다가갔다. 페르난데스의 움직임을 보며, 투탄 가르텝의 눈이 거칠게 타올랐다.

[마술사여. 그래. 훌륭하구나. 하지만 넌 성공할 수 없으리라. 신왕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네 계획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파라오는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수백 가지의 저주가 온몸에서 터져나간 탓에 그조차도 힘에 부쳤다. 그러나 그는 손을 뻗어 저 멀리, 어전의 끝자락을 가리켰다.

어전의 테라스. 그 너머로 맑은 하늘이 보였다. 볕이 파괴된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성벽에 올라간 마력포대들이 점차 도시 밖을 향해 포신을 돌리고 있었다.

그 위로 파라오의 군기가 흩날렸다. 도시 외곽에 주둔중이던 그의 군단이 마침내 성벽을 점령했다. 그가 죽는다 하더라도, 저들은 결코 복수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신왕의 군단이 도착했다. 너는, 너무 늦었다. 너의 작은 반란도, 너의 작은 마법도!]

“기도 하겠나?”

페르난데스는 파라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의 곁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바스락, 부서진 보호부들이 그의 무릎에 으깨지며 흩어졌다.

“그대의 영혼에 기꺼이 경의를 표하지. 그러니, 왕이여. 고결함을 지킬 기회를 주겠다. 기도하겠나?”

[무어라···?]

파라오의 눈에 혼란이 내려 앉았다. 이 자의 목적은 신왕의 옥좌가 아니었단 말인가?

“너와, 너의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마. 뭄토의 영혼계에 영구히 결속된 그 고리를 끊어 주겠다. 살아 숨쉬던 그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네 야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널 자유롭게, 네 신의 전당으로 보내 줄 수 있다.”

[네가 그 사령술사보다 강인하다는 뜻이냐?]

“아니. 그 녀석이 너무 약해졌다는 뜻이지.”

영혼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차 헐떡이고 있다는 뜻이다. 페르난데스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파라오를 바라보았다. 파라오는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곧 턱을 딱, 하고 닫았다.

[투탄 가르텝은 부탁하지 않는다.]

“하하···.”

[하지만···. 투탄 가르텝은 위대한 태양신의 후예다. 사후의 전당은 그분의 곁에서···.]

“그래. 그래 알겠다.”

페르난데스는 웃음 지으며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건 일종의 상부상조였다. 단숨에 그의 영혼을 취하고 그 힘을 받아낼 수는 있었지만, 페르난데스는 그러지 않았다.

-쓸데 없는 짓을.

‘어차피 결과는 같아.’

파라오의 몸에 깃든 뭄토의 권능. 그 편린을 흡수한다는 결론은 같았다. 페이자쉬라면 더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를 취했겠지.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그저 파라오를 무력화 시키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투탄 가르텝의 이마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았다.

“만신전이여, 가호하소서. 여기에 당신의 종이 당신의 전당으로 향합니다.”

[투탄 가르텝은 복종하지 않는···.]

“쉿. 신도여.”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으며 그의 이마를 두드렸다. 곧, 파라오의 눈에서 안광이 천천히 꺼졌다. 안식을 찾게. 이번에는 진정한 안식을. 페르난데스는 조용히 기도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하레페르가 그에게 다가왔다.

[신왕께선 편안히 가셨나?]

“보다시피.”

[하지만 저들은 어쩔텐가? 그대의 무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군단을 어찌 상대하겠나?]

성벽을 점거한 파라오의 군단이 왕성을 향해 진군하며 남은 잔당을 소탕하고 있었다. 샥시시는···. 알아서 몸을 피했겠지. 전황 파악과 도주에 능한 이들이니까.

그러니. 이 도시는 이제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가야 했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영혼을 살피며 속삭였다. 페이자쉬의 편린. 데인 왕의 편린. 그리고 데인 왕국에서 섞인 파프테트의 영혼도 있었다.

모사트 시에서 흡수한 알타락의 영혼도 느껴졌다. 이제 막 안식을 되찾은 투탄 가르텝이 품고 있던 뭄토의 권능도.

“콘클라베 다섯 중 셋을 흡수했다.”

-언더카타콤 대의회의 과반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지.

페이자쉬가 킬킬거렸다. 그래. 페르난데스는 마주 웃으며 테라스로 향했다.

“네크로폴리스의 입구를 열겠다.”

왕궁을 향해 쏟아진 마력탄의 영향으로 영혼계와 물질 세계의 경계가 대단히 엷었다. 페르난데스는 정면에서 흔들거리는 아지랑이를 수 없이 볼 수 있었다.

영혼계의 장막이다. 물질 세계에 덧씌워진. 뭄토의 흔적이다. 그 사슬이 저 먼 지하로 이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그 고리를 끊을 때가 되었다. 대악마를 처단할 때가.

-내 생전에도 이룩하지 못했던 일을···.

‘놈이 약해진 것은, 솔직히 운이 좋았지.’

-그러니 말이야. 내 생전에 운이 좋았던 적이 없었거늘.

‘무슨 소리야?’

페르난데스는 픽 웃었다. 그는 언제나 운이 강한 편에 속했다. 살아남은 것도. 평생의 인연을 얻고, 자식을 낳은 것까지.

마지막 후회를 되돌릴 기회를 얻은 이 순간에도. 그는 운이 대단히 좋은 편에 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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