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25화 (126/388)

< 125. 나비의 꿈 (3) >

*

페르난데스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달려드는 이단심문관들을 천천히 훑었다. 전투 직전의 고양된 감각. 양 팔뚝의 마력 회로를 타고 흐르는 끈적한 지옥 마력의 흐름. 그리고 육신 안에서 구동을 시작하는 주문들.

그 모든 것들이 뒤섞이며 피어 오르는 전능감. 마법사 특유의 오만함이 섞인, 그런 전능감이 피어 오른다. 지옥 마력의 오염으로 호르몬이 날뛰며, 무적의 힘을 얻은 듯한 착각이 전두엽을 마비시켰다.

-으득.

페르난데스는 혀 끝을 깨물어 피를 내며 정신을 집중했다. 수많은 흑마법사들과 이단 주술사들, 그리고 배교자들은 지옥 마력을 사용할 때 육신이 뿜어내는 쾌감과 전능감 속에서 죽어갔다.

그런 우를 범하기엔, 그는 이미 충분히 많은 실패를 거쳐 왔다.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는 없었다.

-후우웅!

칼날이 그의 목젖을 노리고 다가왔다. 처음 시작은 가벼운 견제. 물론 그 칼을 전문적인 검술을 익히며 사선을 건너온 베테랑 헤레티카 요원들이 쥐고 있다면 결코 가벼운 일격은 아니다.

-채앵!

양 팔에 심어져 있는 기초적인 보호 주문이 칼날을 가볍게 튕겨냈다. 처음 출수한 이단심문관은 당연히 막힐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허리를 숙이며 물 흐르듯 두 번의 일격을 더 내리 그었다.

-챙, 챙, 챙!

그리고 동시에, 그의 전신에 쏟아지는 참격들. 대검, 장검, 메이스, 해머. 인간의 가냘픈 육신은 우습게 육편으로 만들어버릴 강격이 그의 몸 위로 쏟아졌다. 그러나, 다행히 보호 주문은 충분했다.

-콰드드득!

수인을 짚던 그의 오른손이 허공을 비틀어 쥔다. 그리고 천천히 공간을 뽑아내 듯 끌어 당기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번갯불이 튀며 긴 칼날을 만들어 냈다. 기초적인 창조 주문. 소환 학파의 기초 주문이다.

-스르릉.

마력이 만들어낸 대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리며, 다른 한 손이 하늘 향해 움직였다. 한 수, 수인이 맺히고 허공에 주문 매듭이 이어졌다.

반응속도도, 반사신경도, 시야도. 디모니카였던 자신의 육신에 비할 바 아니다. 그러니 첫 수는—

[비전 시야.]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안저 아래에서 암녹색 불똥이 튀며 안광이 타올랐다. 이로서 그는 육안의 시력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제 그의 눈은 일정 반경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바라본다. 예언자들이 그렇듯, 그는 일종의 정보 반사 독립체가 되었다. 사건과 사건이 발생하며 생겨나는 정보들을 직접 관측하는 시야를 손에 넣었다.

-후우웅!

칼이 날아들었다. 극도로 단련된 헤레티카 요원의, 고도로 집중된 일격. 지금 페르난데스의 육신으로는 보는 것도, 막는 것도 불가능해 그저 보호 주문을 몸에 둘러야 했지만—

-콰드드드득!

칼이 내려 꽂히는 정보를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응해 육신을 기동했다. 보는 것은 마법이오, 행동하는 것은 순전히 그의 감각의 영역. 칼날과 칼날이 얽혀 긴 불똥을 사방에 튀어 냈다.

지옥 마력으로 축조된 그의 대검은 세인트메탈 장검과 상성에 있다. 대검의 날이 바스라지며 장검이 그의 칼날을 씹어 삼키듯 밀어 붙였다.

“흐···.”

“뭐가 우습지? 마법사?”

헤레티카의 눈에서 분노가 타올랐다. 감히, 마법사가 육박전을 시도한다고? 오만함이 도를 넘어, 이젠 가소롭지도 않았다. 그저 분노할 뿐이다.

확실히 힘에서 밀렸다. 마흔 줄을 넘긴 늙은, 심지어 오랜 도주와 방랑으로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육신은 디모니카는 물론이고, 헤레티카의 육체 능력에도 닿지 못했다.

헤레티카 요원들은 극도로 단련한, 재능이 뛰어난 ‘일반인’ 수준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그의 육신은 일반인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계 위에서 줄을 타면 그만이니.

오른손, 대검을 쥐고 크게 휘둘러 거리를 잡는다. 단 한 수가 마치 정교한 체스 기물의 움직임처럼 세 명의 공세를 튕겨내고, 그 짧은 시간을 벌어 왼손이 허공을 짚었다. 한쪽 무릎을 꿇어 충격의 여력을 뒤로 흘리며, 왼손이 하늘을 향했다.

[광란]

-쿵, 쿵, 쿵!

주문이 만들어지자, 붉은 마력이 그의 손끝에서 튀어 그대로 화살처럼 그 자신의 심장에 틀어 박혔다. 순식간에 혈류를 타고 주문이 내달렸다. 심장이 미친듯이 맥박치고, 혈관을 찢어 발길 듯이 피가 터져 나갔다.

-쿵! 쿵! 쿵!!

“쿨럭!”

너무 강해진 혈압으로 안구와 손끝의 모세혈관들이 두두둑 터져 나가 얼굴이 온통 붉어졌다. 목젖을 타고 걸쭉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체온이 극도로 높아져 머리가 멍해지고, 폐가 타는 것처럼 뜨거운 바람을 뿜어냈다.

“후우···.”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에겐 익숙했다. 신성을 다스리는 과정에서 디모니카의 혈액을 강제로 폭주시킨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페르난데스는 픽 웃으며 달려드는 헤레티카의 칼을 쳐냈다.

-카앙!

“큭?!”

저들의 눈이 크게 뜨이며 경악하는 것이 느껴졌다. 뜨거운 체열, 그리고 혈기로 이성이 마비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실낱 같은 이성을 붙잡아 곡예하며 전투에 임하는 것은 오히려 익숙하다!

-카앙! 캉!

연신 달려드는 칼날들을 한결 편안해진 손짓으로 쳐냈다. 강화된 육신과 비전 시야. 이것으로 육체의 기능 자체는 디모니카에 한없이 근접했다.

‘웃기는 일이야. 반대로 말하자면, 디모니카의 육신과 성능을 비견이라도 하려면 수명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니.’

비전 시야는 육신에 과도한 정보 축적을 낳는다. 너무 오래 사용할 경우 백래시가 과도하게 찾아올 것이다. 광란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직 복합 심혈관 질환을 얻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만 자기 자신에게 사용할 그런 주문이다.

어쨌건, 해보고 싶었다. 지금의 페르난데스에겐 자신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것 이상의 욕망이 있었다.

-카아앙!

대검을 휘둘러 헤레티카 요원 하나의 검을 분질렀다. 힘의 배분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 적수의 공세에 틈을 노려 치는 극한의 기교다.

“큭!! 무슨 짓을···!”

“이런 짓을.”

-콰지지직!

칼을 잃고 순간 당황해 멈칫한 헤레티카의 머리에 주문이 타오르는 손을 얹었다. 한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던 헤레티카 요원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허물어졌다.

[무력화의 저주.]

간단한 즉발성 저주지만, 밀착 상태에서 직접 머리에 때려 박은 이상 하루는 족히 기절해 있을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그 즉시 허리를 비틀어 자신을 향해 내달리는 해머를 피했다.

“데메테르 형제!! 제기랄, 주문을 막아!”

“파비아노···.”

“닥쳐라, 이단!!”

-후우우웅!!

전투 망치가 엄청난 힘으로 내려 꽂혔다. 디모니카에 근접했다고? 아니, 페르난데스가 디모니카의 육신을 입고 있었을 때에도, 진짜 디모니카들에 비해선 호리호리하고 연약한 편에 속했었다.

그런 ‘진짜’ 디모니카들이 내보이는 일격이다. 그의 수준에서 물리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저 피해야 할 뿐.

-콰아아앙!

망치가 바닥을 찍었는데, 폭약이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은 지진이 나는 것처럼 지축이 흔들리고, 망치 머리가 거의 흙바닥에 틀어 박힐 정도로 깊은 상흔을 만들어 냈다.

-채앵!

상대는 하나가 아니다. 적어도 셋이 더 남았다. 페르난데스는 파비아노의 공격을 피하며 달려드는 헤레티카 요원들을 하나씩 무력화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이노오오옴!!!”

“오, 감정을 통제하게. 형제.”

“형제···? 이, 이, 이—!!!”

-콰아아아앙!!

망치가 공기를 찢어 발기며 내려 꽂혔다. 파비아노는 마치 파괴의 현신인 것처럼, 그저 힘만으로 마력과 주문마저 으스러트리며 공세를 이어 나갔다.

단 한 번이라도 저 망치에 적중한다면 그대로 모든 상황이 끝날 터. 페르난데스는 연신 뒤로 물러서며 수인을 짚었다.

-콰지지지직!

“오, 그렇지. 엔마기카가 있지.”

“개짓거리는 거기까지다. 이단.”

“그것도 익숙한 말인데?”

큰 덩치에 흉흉한 흉터가 새겨져 있는 젊은 신관 하나가, 수인을 짚고 있었다. 그의 손 아래에서 로사리오가 찰랑거렸다. 베이타서스의 신관들이 사용하는 주문 속박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동수를 이루는 상대에게나 통하는 주문. 마력의 매듭, 페르난데스의 오른손에 얽힌 주문을 옥죄고 있는 그 마력의 사슬을 타고, 페르난데스의 마력이 내달렸다!

-콰지직!

“끄으으악!!”

“카를 형제!! 제길, 베일! 형제들을 수습해서 퇴각해!! 제 8 체크포인트, 집결지로 가라!”

“형제님!!”

“나는 이 자를 막겠다!”

-콰아아앙!

다시 손을 짚으려는 페르난데스에게 파비아노가 망치를 휘둘러 떨쳐냈다. 그 틈을 타서, 젊은 헤레티카가 쓰러진 이단심문관들을 들쳐 업고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갔다.

페르난데스는 뒤로 멀찍이 물러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분노와 충격으로 씩씩거리는 파비아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자, 파비아노 형제. 이제 알 때가 되지 않았나?”

“네놈의 죽음을!!”

-콰아아앙!

대뜸 망치가 날아 들었다. 페르난데스는 혀를 차며 칼날을 휘둘러 망치의 자루를 튕겼다. 대검 검술의 기본은 힘의 역이용을 통한 회전력에 있다. 그는 숱한 사선을 건너며 적어도 대검 검술에 대해 거의 통달한 수준에 이르렀다.

-콰드드드득!

비전 시야를 통한 완벽한 타이밍과, 광란을 통한 완벽한 힘. 그리고 그의 감각을 이용한 완벽한 통제. 이 세 요소의 이상적인 결과로, 파비아노의 망치 자루 끝에 깔끔하게 검을 밀어 넣고 위로 튕겨냈다.

-카드득!

“큭?!”

하지만 예상 외의 상황이 있다면, 파비아노의 힘이 과도했다는 점. 그리하여 칼날이 예상보다 더 멀리 튕겨져 올라갔다는 점과—

“끝이다, 이단 사교도 배교자 쓰레기여!!”

“정말 끝까지!!”

-콰아아앙!

파비아노의, 거의 투포환 같은 주먹이 그의 머리를 향해 내려 꽂혔다는 점이다!

-퍼어엉!!

파비아노의 주먹이 숫한 보호 주문을 으스러트리며 페르난데스의 머리를 향해 내달렸다. 거침 없이,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죽음처럼!

“큭!!”

“죽어라!!”

-퍼어억!!

페르난데스는 위로 튕겨져 나간 칼을 놓고, 양손을 겹쳐 수인을 짚었다. 의기양양한 파비아노의 얼굴이 코 앞에서 보였다. 그의 머리 바로 앞까지 내달려온 흉터 덮인 까지도. 주먹의 마디마디에 박힌 굳은살이 흉악했다.

“파비아노, 이 멍청이.”

페르난데스는 픽 웃으며 거칠게 밀어 붙이는 팔뚝에 손을 얹었다.

“마법사가 칼싸움까지 잘하면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뭐···?”

손이 닿기, 그 마지막 순간. 모든 사건이 끝났다고 느껴지던 그 순간에, 파비아노는 미소 짓는 페르난데스의 얼굴을 보았다.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이런—.

“깨어날 시간이야.”

-콰지지직!

*

“···허.”

파비아노는 헐떡이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피도, 살점도, 타액도. 그 무엇도 묻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살아있는 것을 때렸다는 감각마저도.

그는 멍한 얼굴로 골목 어귀에 기대어 서 있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언제부터? 전투의 흔적이 주위에 여실히 남아있었고, 다른 이단심문관들이 없었다. 그러니까, 싸움 자체는 현실이었다는 소린데.

“어떻게 디모니카에게 환술을 걸었지?”

정작 그와 페르난데스 사이의 싸움만이 허깨비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는 멍하니 담벼락을 허물고 바닥에 틀어박혀 있는 그의 망치를 바라보았다. 저걸 던진 것도 현실이었다는 건데···.

“준비된 마법사의 공방에 찾아왔는데, 이정도는 기대했잖아?”

“기대 이상이지.”

“이제 이야기할 생각이 드나?”

“글쎄. 이단.”

그는 가볍게 손을 털며 생각을 정리했다. 귀신처럼 칼을 다루고, 가볍게 펼친 마법으로 보호 주문을 잔뜩 걸고 투입된 이단심문관들을 무력화시키고, 엔마기카를 쓰러트렸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 홀로 남겨 농락했다···.

이길 방법이 있을까? 그가 저 마법사를 이기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꺾일 수는 없었다. 그는 이단심문관이며, 용기와 희생만이 그의 묘비명이 될 터였다.

각오를 다진 그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자세를 잡았다.

“알텐데? 내가 죽이고자 했다면 자네는 이미 죽었어.”

“그래.”

“살려준다니까?”

“그렇겠지.”

“그런데 왜 싸우려 들지?”

“그게 우리의 사명이니.”

페르난데스는 쓴웃음을 짓고는 골목 어귀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파비아노의 자세에 맞춰 맨손으로.

“방금 다른 형제들과의 싸움, 그리고 자네와의 싸움이 완전히 환상이었던 것은 아니야. 내가 말하긴 좀 웃기지만, 난 싸움에도, 마법에도 자신이 있는 편일세.”

“그래 보이더군.”

“자네의 의지를 꺾고 부수는 것은 내 목적이 아니야. 애당초, 우리의 목적이 상충하지 않네. 왜 싸우려 하지? 자네도 느끼고 있을텐데. 난 자네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네.”

“그게 우리 사명이니까.”

파비아노는 묵묵하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답답하군.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세를 잡았다.

애당초 그 자신과의 대화에 응한 것도, 전략을 짜고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려는 것이겠지. 저 꽉 막힌 이단심문관의 머릿속엔 이단을 불태우겠다는 의지 뿐일 테니.

정말로, 페르난데스는 그를 꺾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면···. 응해 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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