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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33화 (134/388)

< 133. 너는 안온함을 바라지 말라, 네가 아니라 (2) >

*

공동의 천정 저 높은 위에서 흘러내린 빛이, 마력으로 이루어진 농밀한 안개에 어지러이 난반사 되고 있었다.

바람이 불 턱이 없건만, 그는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이로 일렁이듯 안개 안에 잠든 것의 윤곽이 흔들렸다.

-저벅.

그 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순간. 안개가 소용돌이쳤다. 마력이 일그러지며 허공에 글자를 수놓았다. 상아시트의 상형 문자였다.

-돌아라, 달려라. 너의 미명을 위해서.

“개소리 하지 마.”

페르난데스는 글자를 뚫고 한 걸음 걸었다. 안개의 밀도가 높아지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어 졌다. 단순히 물리적인 실체 뿐만이 아니라, 마력의 밀도가 극도로 높아지고 있었다.

그의 눈은 단순히 빛 뿐만 아니라,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안개 속에서 그의 푸른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달려라. 너의 삶을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라면, 이미 달리고 있다.”

다시 한 발자국 내딛었다. 마력이 출렁거렸다. 이제는 그의 온몸을 옥죌 듯 단단하게. 극도로 조밀해진 마력의 밀도가 마치 심해를 걷는 듯 그의 몸을 억누르고 있었다.

-뿌득.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이제 노쇠해진 그의 몸은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포기하겠느냐? 네가 꿈꾸던 나날을 보여주마.

화르륵, 안개가 불길에 휩싸이며 타오르고, 그의 눈 앞에 석양과 언덕이 보였다. 재와 화염, 피와 쇠의 냄새가 짙게 깔린 언덕. 시끄럽게 귀청을 찢던 종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 앞에, 아리아가 서 있었다. 석양을 등진 채, 핏물 머금은 하늘 아래에서. 아련하게.

그 시절이다. 페르난데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과거와 미래, 꿈과 현실이 뒤얽히고 섞여. 무엇이 진실인지 아득하기만 했다.

지금 보이는 이 순간이 현실이라면, 오히려 자신이 딛고 나아가던 지난 삼 년이 꿈결이 아니겠는가? 페르난데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리아의 눈을 응시했다.

“후회하시나요. 선생님.”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다. 아리아.”

페르난데스는 아리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 넘친 눈물이 그의 손을 가득 적셨다.

“내가 널 버린다면, 너는 어떠하겠느냐?”

“그것이 선생님께 필요한 일인가요?”

“그런 것 같구나.”

“후회하지는 않으시겠나요?”

그녀가 그를 올려보며 미소 짓던 순간. 그가 건넨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행복하게 웃던 순간. 그에게 우유를 건네고,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그의 품 안에서 잠에 들던 순간.

그 모든 순간을—

“후회한단다. 아리아.”

“그거면 됐어요. 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후회를 대신 안겠습니다.”

아리아는 울음 속에서 웃음 지었다. 석양 아래에서, 그녀의 미소가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니 선생님께선, 오로지 저로 인해 후회하세요. 그 외의 모든 순간에 있어서. 언제나 그랬듯이. 선생님 답게. 당당하시기를.”

제가 선생님의 유일한 약점, 유일한 후회, 그리고 오롯한 등대가 된다면. 저는 그걸로도 족합니다. 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가슴팍에 뺨을 문질렀다.

가슴이 그녀의 눈물로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내 약속하마.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알고 있다. 이것이 백일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뭄토가 자아낸 환상이며, 그의 기억을 기반으로 만든 장구한 기만이다. 그러나—

액자 속 명화가 단순한 현실의 모사이겠는가. 그림은 그림의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며, 페르난데스는 그 석양의 따스함을, 그녀의 품이 가졌던 온기와 눈물의 물기, 또는 우유의 달콤함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불길이 그들을 감쌌다. 아리아는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하나의 꿈이 깨어졌다. 감정 또한, 작은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네 업은, 내가 이고 가겠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손 아래에 남아있는 감촉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안개가 일렁거렸다. 이젠 목소리로, 끈적하고 낮은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극도로 현실적인 환상이라면, 그것이 현실과 다를 것이 무엇 있겠느냐? 바라는 바를 말하라. 원한다면, 네 꿈을, 네가 가장 원하는 순간을. 가장 행복한 시절과 가장 영광스러운 나날을 영원히 느끼게 해줄 수 있다.”

코 끝에 온갖 향기가 감돌았다. 불, 마력, 그리고 꽃. 프레지아. 그녀의 꽃이다. 그가 가진 죄악의 무게를 대신해, 후회를 상징하던 꽃이다.

“네가 바라던 모든 순간이 네 손 안에 있노라. 너는 포기하겠느냐?”

페르난데스는 그 말을 들으며 눈을 떴다. 안개가 가득한 공동, 실체화된 안개 저 너머에, 거대한 실루엣이 보였다.

붉은 안광이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쟁취하겠다.”

행복을 적선하지 말라.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손 아래 잡혀 있는 꽃 줄기를 천천히 내려 놓았다.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그는 등 뒤에 돌려 메고 있던 칼자루를 움켜 쥐었다.

“내 너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무엇이더냐?”

“이것이 꿈결에 불과하다면, 너는 죽는다고, 뭄토.”

“이곳은 나의 세상이며, 나의 힘 아래에 복속된 나의 영지니라. 너는 감히 나의 영토에서 나를 대적할 수 있다 선언하느냐?”

“기도해라.”

페르난데스의 손이 칼을 뽑아 올렸다. 안개를 가르며, 세인트메탈 대검이 느리게 뽑혀 나왔다. 검은 머리칼이 그의 눈가어림 아래로 흘러 내렸다. 주름이 사라지고, 낡은 근육과 인대에 새로운 힘이 감돌기 시작했다.

-스르릉···.

완전히 뽑혀 나온 칼을 그러쥐고, 그는 바닥에 칼날을 거꾸로 박아 넣었다.

“내가 이 세계의 신이며, 내가 이 세계의 창조주다. 내가 누구에게 무어라 기도하겠느냐?”

“기도는 바람이 아니다. 네가 해야 할 기도는 네 죄악에 대한 변론이니. 기도하라. 대황야의 죄인아. 네가 삼킨 모든 신들에게. 마땅한 회개의 자세를 갖추며.”

“나에게 그런 말을 한 놈이 있었지. 네가 처음이리라 생각하느냐? 너는 처음이 아니오,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페르난데스의 근육, 그 사이에 힘이 솟았다. 혈액을 타고 흐르는 낯선 영성의 맥동을 느꼈다. 익숙하지 않지만, 느낀 적 있는 감각이다.

[그렇겠지.]

그의 목을 타고, 자칼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세계에 남아 있는 신성들이, 약해진 놈의 지배력을 뚫고 날뛰고 있었다.

죽은 신의 힘이 그의 손등 위를 덮었다. 털이 자라나고 발톱이 드러나는 것처럼. 그의 손이 칼자루를 으스러질 듯 움켜 쥐었다.

“악마를, 이단을. 그리고···.”

[마법사를 불태우리라.]

촉매는 열쇠검. 최후의 순간, 카단의 심장을 꿰뚫어 스스로를 봉인한 신의 칼날이었다.

규율의 신, 천칭의 지배자. 단죄자. 뭄토에 의해 가장 먼저 신성을 잃은 영락한 신.

이단 사냥의 카단이 그의 몸의 강신했다.

*

-촤르르륵!!

안개 너머에서 뻗어 나온 사슬이 뱀처럼 그의 몸을 노렸다. 몇 자루는 쳐내고, 다른 몇몇은 피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은—

‘몸으로 받는다!’

-콰직!

핏물이 목젖을 타고 넘쳐 흘렀다. 왼쪽 어깨, 오른쪽 종아리를. 검은 사슬이 꿰뚫고 바닥에 틀어박혔다. 순간 균형을 잃을 듯 기울어지던 몸이, 기적적인 균형감각으로 자세를 잡았다.

-카직!

대검을 짧게 끊어쳐 사슬을 끊어냈다. 증오, 저주, 타락···. 굳이 이름을 짓자면 그런 식이 될 것이다. 끈적한 지옥 마력이 상처를 통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육신이 그 즉시 상처를 수복하기 시작했다. 카단의 영성이 그의 몸에 깃들어 있다. 그의 축복은 [사냥]. 적의 목젖을 물어뜯어 그 피로 자신의 분노를 식히기 전까진, 끝없이 타오르는 의지의 표상이며—

설령 팔이, 설령 다리가, 그 뒤로 어금니 전부가 뜯어져 나가더라도 적의 심장에 마지막 송곳을 박아 넣기 위해 스스로의 심장을 갈라 몸을 도사린, 정글 속 뱀이다!

-콰지지직!

저주가 잇따른다. 사슬의 형상을 띄고, 수십 종류의 고위 주술이 얽혀 그의 몸을 향해서! 그러나 피한다. 파고들고, 내찌른다. 쳐내고, 흘리고, 빗겨치고, 몇몇은 몸으로!

적의 목을 물기 위해 내달리는 상처 입은 자칼. 온몸에서 영성이 타올라 짙은 고동색 털가죽의 형상처럼 변했다. 전신에 내달리는 부상과 격통 탓에 거의 기듯이. 네 발로 달리는 짐승처럼 적을 향해 달려갔다.

영성이 타오르는 손아귀가 짐승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벼려졌다. 팔뚝을 파고든 저주의 사슬과 주박을 끊어내고, 씹어 삼켰다.

-일어나라!!

안개 너머의 형상이 울부짖는다. 놈의 목소리 저 아래 깊은 곳에서 공포가 진득하게 흘러 넘쳤다. 곧, 그의 반경 안에 해골과 미이라들이 솟구쳐 덮쳐 왔다. 그러나—

“이게 끝이냐!!”

대악마, 뭄토. 악몽의 군주, 대황야의 재앙, 제국의 종결자. 수천 저주를 두른 자. 망령제국의 황제—

-콰지직!

해골과 미이라가 그의 손아귀와 칼날 앞에서 가루가 되어 비산했다. 그때마다 상처가 늘었지만, 이젠 그 아래에서 피 대신 마력과 저주가 흐를 지경이었지만.

당장이라도 고꾸라져 절명해도 이상할 것 없는 극도의 오염. 전신의 혈액이 불타며 그 자리를 뭄토의 저주가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혈관벽의 가장 작은 통로마저도, 저주의 주박이 조각되는 끔찍한 상태에서도. 자신의 죽음을 대가로 영원히 악마를 사냥하기로 맹세한 신의 영성은 멈추지 않으니.

[약해졌구나. 뭄토.]

자칼이 웃는다. 새파란 안광을 뿜으며, 안개 너머의 대(大)사령술사를 향해서!

[약해졌어. 고작 이것이 네 최후라면, 나는 애도하겠다.]

‘웃기는군. 저 녀석을?’

[아니. 필멸자여. 나의 오랜 복수가 이토록 허망함을.]

페르난데스는 뭄토의 실루엣을 향해 달리며 해골과 미라, 솟구치고 내리치는 저주들을 돌파했다. 칼날과 어금니의 폭풍이었다.

“잠깐! 이 세계가 정말 네 환상이라 생각하느냐?”

뭄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귓가를 때리는 음성에, 페르난데스의 달뜬 머리가 잠시 멈췄다. 카단의 야성이 그의 몸을 장악하고, 뭄토의 저주가 혈관을 내달리는 그 순간에도, 그의 머리는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 기억으로 조성된 세계다. 그래. 나는 네 기억을 봤노라. 인류의 배신자 페이자쉬. 네가 파괴한 세계를 봤도다. 본산세계라. 그리고 이곳이 베이타서스의 수평 세계라 하지 않았더냐?”

-쿠우웅!

그 말과 함께, 페르난데스의 눈 앞에 뼈만 남은 거대한 손이 내려 앉았다. 검은 골격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아귀가 그의 바로 발치 앞을 찍었다.

지진에 잠시 비틀거리자니, 주위 사물이 하나 둘 흐려지고, 멀어져갔다. 일순간 세상이 검게 뒤얽히고, 안개의 조성이 마력으로 미쳐 날뛰며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거대한 검은 해골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파라오의 화려한 관을 쓰고 있는 해골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놈이 속삭이듯 말했다.

“허상이라도, 이토록 정교한 세상이라면 실제와 다르지 않다. 현실을 가늠하는 주체는 언제나 너 자신이니. 그러나, 생각해보거라. 베이타서스가 가능했거늘 내가 불가능하겠느냐? 놈보다 내가 더 신비에 익숙하거늘.”

해골이 낮게 웃었다.

“이곳은 오로지 널 위해 만들어진 수평 세계다. 그래. 나는 네 지식을 엿봤다. 경의를 표하마, 필멸자여. 나를 이토록 위협한 존재는 천년 하고도 칠백이십 년간 네가 처음이다. 그러니 기회를 주마. 이 수평 세계를 본산 세계에 덮어 씌워, 베이타서스가 그토록 이루고 싶어하던 역천을 이루라. 네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그래. 네 아들의 영혼 또한 내가 구원해주마.”

네가 바라는 바는 오로지 그것 뿐 아니더냐? 굳이 가까운 길을 돌아갈 필요가 있더냐? 뭄토는 낮게 속삭였다.

[듣지 마라. 필멸자.]

‘쉿.’

페르난데스는 짧게 혀를 차며 숨을 골랐다. 핏줄을 거칠게 흐르는 뭄토의 마력, 저주, 증오가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네 아들을 구해주마. 네 부인을 살려주마. 네 세계를 영원히, 네가 바라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네 최후까지 영사해주마.

액자 속 명화라고, 그것이 무가치하더냐? 뭄토의 말끝에서 벌꿀이 흘러 나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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