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황무지의 끝 (2) >
*
동부 왕국 연맹의 진영은 철수 작업에 전념하고 있었다. 동방 원정이 뜻대로 풀리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별다른 물자 소비와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점은 큰 위안이었다.
파프나르메어는 의자에 길게 기대어 앉아 비축 보급품 보고서를 느긋하게 넘겨 보고 있었다. 장기전을 대비해 아끼고 아낀 끝에, 본국에 귀환할 때까지 추가적인 보급품 충원이 필요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쉬우시겠소?”
“뭐가 말이오?”
“데인 왕국의 원탁 기사들은 으레 그렇지 않소? 전투에서 용맹을 뽐내어 위대한 서사시 남기는 것 말이오.”
“아, 물론 그렇소. 서사시를 남기는 것은 중요하지.”
파프나르메어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신을 비웃는 루트비히를 바라보았다. 페이른은 데인 왕국과 오랜 경쟁 상대였고, 루트비히는 사사건건 그를 도발하려 애썼다.
파프나르메어는 곧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보고서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이 원정 또한 위대한 서사시가 될 것이오.”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었소. 그저 지루한 수색작전 뿐이었지.”
“경의 나라는 이 원정에서 무엇을 바랐소? 제국의 환심? 얻으실 거요. 제국이 필요한 순간에 지원을 했으니 반드시 외교적 거래가 오고 가겠지.”
“그럼 그대들은 무엇을 바랬단 말이오?”
“제국의 무관심. 그리고 백성들의 무사 생환. 둘 모두 쟁취했군. 단 한 사람의 장정도 전투 중 쓰러진 이가 없으니, 이는 왕국 입장에서 거대한 승리요. 제국은 우리에게 목소리를 낼 수 없겠지. 어쨌건 군대를 파견한 것은 사실이니까.”
파프나르메어는 보고서를 넘기며 말했다. 루트비히는 입술을 살짝 씹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바위 같은 사내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도발에도 넘어오지 않았다.
경쟁국의 젊은 사령관을 눌러주어 기를 꺾어 둔다는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참이었다. 그러나 루트비히는 그를 도발할 다른 수가 있었다.
“그럼 그 ‘아벨’이라는 여인에게나 가 보아야겠군.”
“···그 분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글쎄, 볼일은 이제 만들면 될 일이고···.”
“그 분은 본국의 귀빈이오. 결례를 범한다면 용서하지 않겠소.”
걸렸구나. 루트비히는 픽 웃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파프나르메어를 바라보았다.
“용서하지 않겠다면? 결투를 신청하시는 거요?”
“군법에 회부할 수도 있소만?”
“무슨 명목으로? 군영 내에 무소속 평민 여성을 건드린 죄목으로? 일국의 기사단장을 처벌할 수나 있겠나?”
“···그대가 바라는 것을 해 드리지.”
-스르릉.
파프나르메어는 보고서를 덮고, 의자 옆에 기대어 둔 장검을 쥐고 뽑으며 일어섰다. 루트비히는 비릿하게 웃으며 칼자루를 움켜 쥐었다.
“장갑을 던질 필요는 없겠지?”
“연병장으로 가시오. 원탁 기사가 무엇인지 알려 드리지.”
“그건 호칭일 뿐이야. 청년.”
둘 사이에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듯 날선 기류가 흘렀다. 파프나르메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콧수염을 기른 페이른 귀족 사내를 노려 보았다.
승산? 크지 않다. 아무리 쇠락하는 중이라 하더라도 페이른은 강성한 대국이며, 그 국가의 최강자 중 하나라 불리는 로얄 그리핀나이츠의 기사단장이다.
그러나 도의상, 명예상, 아니. 감정적으로. 파프나르메어는 저 중년 사내를 반드시 꺾고 싶었다. 그 순간, 천막의 문이 열렸다.
“원탁 기사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아이야. 명예와 도덕, 절개와 지조. 그리고 기사도를 상징하는 자리지.”
“···아벨?”
문을 열고 들어온 아벨이 부드럽게 웃으며 파프나르메어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차갑고 가느다란 손으로 장검을 쥔 손에서 칼자루를 뺏어 들었다.
“어린 기사야. 원탁 기사의 무력이 반드시 최강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푸른 눈이 날카롭게 루트비히를 노려보았다. 루트비히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 명예로움은 만인의 우상이 되어야 하고, 그 고결함은 만인의 도덕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네가 너의 칼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다.”
“대리전을 하겠다는 말이오? 그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루트비히가 비죽거리며 말하자, 아벨은 살풋 웃었다.
“육신의 강함, 약함은 무(武)의 최소 요건일 뿐. 그 기준점이 될 순 없다. 내 너에게 무리에 대해 가르침을 내리마.”
“재밌군! 사령관! 후회하지 마시오! 귀국의 귀빈이 이런 꽃밭 펼쳐진 미친 여인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구만! 하하하!”
루트비히의 웃음을 무시하며, 파프나르메어는 조심스럽게 아벨의 어깨를 잡고 귓가에 속삭였다.
“대모님, 부디 죽이진 마십시오.”
“아니되느냐?”
“국제 문제가 우려됩니다.”
“후후. 나도 죽일 생각까진 없었다. 농담이다. 그냥 가볍게··· 혼을 좀 내어주고 싶더구나.”
“감사합니다. 대모님.”
파프나르메어는 고개를 숙여 아벨에게 인사했다. 그녀가 패배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루트비히는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멍하니 그 둘을 바라보았다.
아벨레사스, 기사왕 다인에게 검술과 기사도를 가르친 전설 속의 수호룡. 파프나르메어는 그녀가 패배하는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황야가 아니라, 진창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대황야라는 지명을 유지하고 있는 이곳에. 페르난데스는 진흙에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말에서 뛰어 내렸다.
-처덕.
저 멀리, 그러나 디모니카의 거리감각으로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동부 왕국 연맹의 군기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먼 거리를 줄곧 내달린 말을 더 이상 괴롭힐 필요는 없었다.
페르난데스는 우의를 깊게 눌러 쓰고 연맹의 군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지! 정체를 밝히고 무장을 해제하라!”
얼마나 걸었을까. 망루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피로에 찌든 눈을 한 병사가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우의를 걷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단심문청 소속, 디모니카 안젤로. 임무 복귀를 보고하기 위해 왔다. 교단의 막사는 어디지?”
“아, 사제님이셨습니까? 이런, 잠시. 검문 절차가 복잡해져서요. 혹시 증명하실 수 있을 만한 것이···?”
“지금은 있는 것이 이것 뿐인데···?”
-촤르륵.
페르난데스의 손에서 작은 로사리오가 걸려 나왔다. 열쇠검이 조각된 정교한 로사리오, 교단의 정품임에 틀림 없었다. 병사는 군영의 대문을 열며 외쳤다.
“잠시 안에 들어와 모닥불에 몸이라도 녹이시지요. 사제님. 곧 담당 사제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천천히 하게.”
급할 것까진 없으니. 페르난데스는 나무 의자에 앉아서 모닥불에 손을 쪼였다. 비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새로운 생명을 상징하는 빗물이, 말라붙고 저주 받은 이 대지에 흐드러지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이제 어디에 시야를 두더라도 들풀을 볼 수 있었다. 이 대황야는 머나먼 고대, 아시트 제국의 시절로 회귀하고 있었다.
대악마의 저주가 대지에서 흩어지며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나···.
‘놈의 신성은 어디로 갔을까.’
그 자가 품고 있던, 수많은 고대 신들을 집어 삼키며 모았던 신성. 타락했고, 쇠락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강대할 그 신성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페르난데스는 그것이 못내 찜찜했다.
-카단이 되살아나는 데에 쓰였겠지.
‘카단은 그저 자신의 몫 만을 취했어. 그 이상을 가지게 된다면 존재의 본질이 뒤틀릴 것을 아니까. 나머지, 정확히는 ‘죽음’을 상징하는 신성이 사라졌어. 그 외의 몇몇도···.’
이것은 며칠째 페르난데스의 머리를 뒤흔들던 의문이었다. 여타의 신성이 지금 이 대황야의 저주를 씻어내는 것에 소모되고 있다고 여기더라도, 뭄토의 존재를 이루고 있던 신성들이 흩어졌다.
이것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일이다. 이미 전생과 역사가 크게 바뀌고 있는 이 시점에서, 페르난데스는 정보 부족을 통감했다. 그의 대계는 정보의 독점을 기준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터벅.
그의 예민한 귀에, 저 멀리. 진창을 밟고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올려 보니, 한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비와 진흙에 밑단이 더럽혀진 잿빛 로브 차림의 사내였다.
바위처럼 단단한 걸음걸이와 신념에 가득한 단호한 힘이 그 걸음에서 느껴질 지경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다가오는 사내를 바라보며 점점 더 크게 미소 지었다.
-처덕.
발걸음이 멈췄다. 다섯 보 앞에서. 사내는 빗줄기를 맞으며, 처마 아래에 있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형제여···.”
“예, 형제님.”
“형제여, 나는. 우리는 형제가 죽었다고 생각했네.”
“언제쯤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망령 파라오의 군세가 소실된 순간부터. 우린 그 광경을 보았네. 도시 전체가 토사 아래로 쓸려 내려가고 악마의 강대한 기척이 한 순간 황무지에 울려 퍼지는 광경을···.”
사내는 떨리는 손으로 로브를 걷어 올렸다. 충격과 기쁨이 두 눈에 가득 얽힌 진득한 피로를 억누르고 흘러 넘치고 있었다.
“제피스 형제님. 다시 만나 뵈어 기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네.”
“지금 우시는 겁니까?”
“재밌는 농담이군.”
제피스는 빗물에 얼굴을 흠뻑 적시며 무뚝뚝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페르난데스는 빙글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렐리기오사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임무를 완료했으며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촤르륵.
그가 로사리오를 건네자, 제피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로사리오를 받아 들었다. 그는 로사리오를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진심을 다하여 찬양하라.”
“오, 기도문을 공용어로 하십니까?”
“관용어나 인사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을 다해서 찬양하고 싶으니까.”
“···어떻게, 안아 드릴까요?”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말게.”
“저도 농담입니다. 하하.”
그 말에, 제피스는 비로소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저렇게 웃는 모습은 정말 처음 보았기에, 페르난데스는 멋쩍게 마주 웃어주었다.
“우선 내 막사로 가게. 식사를 좀 하면서, 그간 어떻게 된 일인지 들어 보지.”
“보고서는 미리 써두었습니다. 조금 수정만 거치면 될 것 같군요.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언가?”
“데인 왕국의 군영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벨, 그녀가 이 시대에 있을지 확인을 해야 했다. 이 세계는 뭄토의 미명이나 환몽이 아니겠지만.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겪는 이 불안감을 해소해야 했다.
제피스는 그의 말에 픽 웃었다.
“긴 임무 끝에 여인의 품을 가장 먼저 찾다니. 수도사들의 반면교사로 기록되겠군. 성자 형제.”
“아, 저 이제 성자 아닙니다.”
“···그게 반납이 가능한 직책이던가?”
“성흔을 잃었거든요. 하하.”
“설명이 필요한데.”
“보고서에 자세히 써두었습니다. 그보다 먼저 제가 데인 왕국 기사들을 좀 만나봐도 될까요? 이게 더 급한 것 같아서···.”
“쯧, 보고서 내놓고 가게. 형제.”
“아하하.”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짐가방을 건네고는, 군영의 중심지로 향했다. 알트하이스의 군기가 흔들리고 있는 곳으로.
*
“아벨레사스! 아벨레사스! 아벨레사스!”
-쿵! 쿵! 쿵!
쏟아지는 장대비에도 불구하고 연병장은 수많은 기사들로 가득했다. 기사들은 떨어지는 빗물을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연병장 끝에 도열해서 병장기와 발로 바닥을 구르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살짝 기가 죽은 루트비히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거 인기 좋으십니다?”
“후후,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다인, 그 아이가 왕이 된 이후에. 왕실의 기사들과 대련을 하며 검술을 가르칠 때엔 거진 이런 분위기였다. 아벨은 부드럽게 웃으며 칼을 뻗었다.
“자, 아이야. 첫 수를 양보하마.”
“···정말 로얄 그리핀나이츠의 명성이 바닥에 곤두박질친 기분이로군.”
데인 왕국의 기사들을 모욕하기 위해 다소 과하게 행동하긴 했지만, 오히려 모욕을 당한 쪽은 그인 것 같은 심경이었다. 이렇게 된 것, 철저하게 이기는 수 밖에. 루트비히는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칼을 뽑아 들었다.
“후회하지 마시오!”
“재밌는 말이구나.”
루트비히가 입술을 씹으며 달려들기 위해 자세를 잡을 때, 기사들 사이에서 소란이 터졌다. 아벨과 루트비히는 격돌 직전에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결투를 방해하기 위해 모인 거요, 당신들은?”
루트비히가 투덜거렸지만, 기사들은 그에게 관심도 주지 않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는 자리를 비켰다. 곧, 기사들 사이로 길이 열렸다. 한 사내가 연병장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저벅.
호리호리한 몸, 훌쩍한 장신. 스무살 앳된 얼굴에도 불구하고 반백으로 새어버린 머리칼. 그 아래로 빛나는 음울한 푸른 눈동자···.
“왔느냐?”
“잘 지냈소?”
아벨은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포근하게 웃었다. 페르난데스는 성큼거리는 걸음으로 연병장 위로 올라섰다. 기사들은 그의 등 뒤에 메여 있는 검은 대검을 바라보며 수근거렸다.
“저게 말로만 듣던···. 실물은 보긴 처음인데!”
“왕의 검···. 저 분은, 원탁 기사 알베르트···?”
“왕실의 구원자, 샤일드의 성자?”
다소 비틀린 평판이로군.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아벨에게 다가갔다. 아벨은 손을 뻗어 페르난데스의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고난이 있었나 보다. 함께 있지 못해 미안하구나.”
“나는 오히려 다행이오.”
“내가 너의 약점이 되지 않아서?”
그것은 헤어질 때, 아벨에게 했던 말이었다.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처럼 맑고 따듯한 눈이었다.
“그대가 이 자리에 있어서. 그대가 내 곁에 남아 숨을 쉬고, 웃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이라서. 지금이 꿈이 아니라서. 그것이 다행이오.”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는 존재였으니. 영면에 들었던 그녀를 깨우고, 현실로 이끈 것이 그였기에, 그는 아벨에게 일종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막 밤하늘의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글 속에 익어가는 열대 과일들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려주겠다고 말한 지 일 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다. 페르난데스는 그녀가 이젠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눈이 젖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건 고백이더냐?”
“그건 오핸데···.”
“그만, 더 말하지 말거라. 나는 물론 네 고백을 받아들이겠다.”
아벨이 눈을 글썽거리며 말하자, 페르난데스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아리아가 참 기뻐할 광경이로군. 미안하다, 아리아. 내 육신이 못난 탓에 네가 모욕을 받는구나···.
‘닥쳐봐 좀.’
-하하, 멍청한 녀석.
페이자쉬가 낄낄거렸다.
“지금 뭣들 하시는 거요? 날 모욕하는 건가?”
루트비히가 칼을 움켜쥔 채로 분노에 차 말했다. 페르난데스는 그를 흘낏 바라보며 물었다.
“저 자는?”
“페이른 왕실의 기사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나와 원탁 기사를 모욕하기에, 가르침을 주려 했다.”
“나는 루트비히 폰 볼트스탈이다!! 이런 모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군!”
“아, 저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 그래.”
아벨의 말에 루트비히는 얼굴이 달아올라 소리질렀다. 페르난데스는 미소 지으며 몸을 돌렸다.
“내가 온 첫 날에 그대가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지. 내가 대신해도 좋겠소, 볼트스탈 경?”
“귀하의 이름은?”
“지금은···. 세르너드의 알베르트.”
“아, 소문으로는 들었지. 충분하오. 젊은 원탁 기사.”
실존 여부가 오히려 왕실의 프로파간다라고 여겨졌던 전설적인 원탁 기사의 소문 정도는 이미 들은 바 있었다. 루트비히는 비죽 웃으며 칼자루를 고쳐 쥐었다.
그래, 저런 가냘픈 여인을 이기는 것보다, 데인 왕국의 기사들 면전에서 원탁 기사를 박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지. 루트비히는 기수식을 취하며 말했다.
“첫 수를 양보할 필요는 없겠지? 원탁 기사?”
“최선을 다하지.”
-스르릉···.
묵빛 대검이 그의 손에 쥐여 뽑혀 올랐다. 쏟아지는 빗물에 잔뜩 젖은 대검이 연병장의 횃불에 번들거렸다. 도열한 기사들은 그 광경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그것은, 건국왕의 검이자 기사도의 상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