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44화 (145/388)

< 144. 심해의 사냥꾼들 >

*

-콰지지지직!

엘프의 함선은 파도에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가볍고 단단한 선체는 오히려 거친 파도를 쉽게 올라타고, 극도로 섬세한 조율과 조선 기술로 물살을 가볍게 갈라낸다.

그러나—

-콰아아아앙!!

“포격인가?”

“아니! 이건 작살이야!!”

레이아는 선실에서 균형을 잡으며 창밖을 노려 보았다. 거의 산맥처럼 거대한 파도가 굽이치며, 그 위에 올라선 엘프 함선들이 연신 기울고, 간신히 균형을 잡아갔다.

겨울 바다의 폭풍은 거칠고, 원양의 해일을 거세다. 페르난데스는 균형을 잃고 헛디뎌 구르는 키르하스에게 손을 뻗었다.

“꺅!!”

“꽉 잡아.”

“네, 은공. 이, 익숙하지 않아서···.”

수인족은 대지의 자식이다. 그들은 선상 전투에 적합하지도, 익숙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선천적인 육감이 오히려 독이 되어, 뒤흔들리는 지축에 균형을 쉬이 잡지 못하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팔을 꽉 붙잡고 헐떡이는 키르하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청록색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용도 안전하진 않다.

‘그렇겠지.’

아벨의 상황은 이보다 심각할 것이다. 용으로 변할 수 없는 그녀는 일반 여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검술에 능통하더라도 그녀의 육신은 아낙의 것이나 다름 없다. 이런 해상 재난에서 오히려 키르하스가 더욱 뛰어날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힘껏 팔을 당겨 키르하스를 선실 밖, 복도로 던졌다. 그녀가 당황하며 복도에 발을 디디고 서자, 페르난데스가 외쳤다.

“아벨을 도와라. 키르하스! 그녀를 지켜!”

“···은공···. 저, 저는···.”

키르하스는 그 말에 퍼뜩 놀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자신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일까? 이 상황에서, 자신을 선실 안전한 곳으로 빼내려는 이유는 그것 뿐일 것이다.

하지만 페르난데스는 선실 창가에 붙어 밖을 살피며, 칼자루를 움켜쥐고 외쳤다.

“널 믿는다, 키르하스. 네 동료를 지켜라!”

적이 도함해 직접 백병전이 벌어질 경우, 아벨이 질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적들의 포격에 의해 함선이 파괴될 경우, 그래서 좌초된다면. 아벨은 반드시 용으로 변할 것이다. 그와 키르하스를 구하기 위해서.

그때 그녀를 막을 사람이 필요했다. 페르난데스의 의도를 읽고 키르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를 지킨다.’

백성을, 영토를, 동료를 지킨다. 그것은 더 이상 그녀가 짐이 아니라는 뜻이었으며···. 그녀의 몸 속에 녹아있는, 불패자의 시절, 그 경험과 기억을 품고 있는 영혼을 자극하는 말이었다.

키르하스는 단단하게 자리잡은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뛰어나갔다.

-콰아아아앙!!

창 밖, 벼락이 내리칠 때 마다 짧게 비치는 밤바다의 풍경에서, 엘프 함선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풍랑에 좌초된 것이 아니다. 이 파열음은 적의 공세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라앉는 배는 보여도, 공격하는 함선이 보이지 않았다. 페르난데스는 레이아를 바라보았다. 레이아는 시시각각 뒤바뀌는 해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적선이 없다.’

엘프어에 능통하지 않더라도, 해도에서 적선이 보이지 않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레이아가 입술을 물어 뜯으며 중얼거렸다.

“분명 포성이 아니야. 저건 작살 현을 튕기는 소리···.”

-콰아아아앙!

다시 한 번의 파열음. 또 한 척의 배가 파괴되며 심연으로 가라앉는 소음이었다. 페르난데스는 해도를 바라보다가 무심코 말을 꺼냈다.

“암초가 없소.”

“원양의 암초는 표기하지 않는다. 선창에 닿기엔 너무 먼 심해에 있으니. 이 해도에 암초가 보인다면 그건 인근에 섬이 있거나, 해안선이 가까울 때 뿐이야.”

“또는 함선 정도 크기의···. 이를테면 바다 괴수라던지.”

“엘프의 함대엔 바다 괴수가 다가오지 않아. 놈들은 엘프 함대 특유의 냄새를 싫어하거든.”

“그렇다면 괴수가 해상에 올라온다면 어떻소?”

“해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그게 사람 정도의 크기일지라도 표기가···.”

거기까지 말하던 레이아가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거의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복도로 달렸다.

“제기랄!! 해저였군!!”

“해저에서 함포를 사용할 수는 없지. 화약이 젖으니···. 그러니 그대가 들은 현 튕기는 소리는···.”

“오로지 해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사냥용 작살! 그것도, 함선을 사냥하기 위해 특별히 주조된 작살이다!

“연락할 수단은 있소? 다른 함선들에게!”

-쏴아아아!

-콰아아아앙!

갑판이 가까워질수록 거친 파도 소리와 뇌성에 소리를 질러야 했다. 페르난데스는 싸늘하게 얼어붙는 공기를 느끼며 외쳤다.

“당연하지! 우리가 무슨 봉화라도 올릴 줄 알았느냐!!”

레이아 또한 따라 외치며 힘껏 갑판으로 향하는 문을 박찼다.

-콰아아앙!

-콰아앙!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다. 사방에서 벼락이 내려 꽂히는 거대한 바다. 거대한 언덕들이 달리는 신들의 평원이 있었다!

단 한 차례의 파도, 고작 한 번의 너울조차도 해상의 선박들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거대했다. 페르난데스는 급격히 몸이 기울어가는 것을 느꼈다. 하늘이 정면으로 향하고, 땅이 등 뒤로 멀어지는 감각—

“아무거나 잡아! 여기서 떨어지면 죽어!!”

레이아가 고함을 치며 갑판의 밧줄을 붙들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다리를 박차고 뛰어 올랐다.

“미, 미친 것이냐!”

“연락 수단!!”

“뭐?!”

“연락 수단을 주시오, 레이아 여왕!!”

레이아는 그의 말에 눈을 빛내며 품 속에서 작은 나무 막대를 집어 던졌다. 페르난데스는 공중에서 그것을 붙잡고 돛대를 타고 올랐다.

배가 파도를 타고 오르며 급격하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돛대 위에서 선실 방향을 바라보니, 선원들이 저마다 돛줄을 잡거나, 조타를 쥐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 돛대는 눈비와 바닷물에 절어 미끄러웠다. 페르난데스는 손아귀에 힘을 주며 돛대를 붙들고 올랐다. 마침내 장루, 그 꼭대기에 올라서서 레이아가 건넨 나뭇조각을 바라보았다.

기묘하게 생긴 나무 뿔나팔이었다. 이걸 이 폭풍 속에서 불면···. 의사가 전달이 되는 것일까? 낯선 마력이 이 단단한 뿔나팔 아래에서 느껴졌다.

“입에 대고!! 외쳐!!”

갑판에서 레이아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레이아의 눈을 잠시 바라보고는, 뿔나팔의 물부리에 입을 대고 힘껏 소리질렀다.

[전 함대, 해저를 향해 발포하라!!]

*

엘프 선원들은 원양 경험이 풍부했다. 원양에서 만나는 폭풍과 해일은 오히려 익숙한 재난에 가까웠다. 그러나 기습에 의해, 벼락이 칠 때 마다 한 척씩 근처의 선박이 좌초하는 모습을 보며 혼란에 휩싸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잡아! 끌어!”

“흐—앗! 끌어! 더!”

엘프 항해사들이 일제히 돛줄을 잡고 당기며 찢어질 듯 팽창한 돛을 풀었다. 이 이상 바람을 맞으면 좌초하거나, 돛이 찢어지거나, 함대와 멀어져 표류할 것이다.

엘프 해상 왕국, 서펜트 킹의 기함이 없는 그들에게 표류란 죽음과 동의어였다. 그들은 어금니를 깨물며 돛을 풀었다.

-콰아아앙!

다시 벼락이 치고, 폭풍우 속에서 또 다른 함선이 부서졌다. 용골을 정확히 노리고 파괴한 탓에 함선은 긴급 보수 작업을 시도하기도 전에 파괴되었다.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조타수가 어금니를 물고 타륜을 돌렸다. 흔들리면 안 된다. 집중이 깨어지면 해일에 휩쓸린다!

“어디에서 공격하는 거야!!”

이런 거친 풍랑 위에서 그들을 공격할 수 있는 해상 세력은 오직 같은 엘프 뿐이었다. 그러나 적함이 보이지 않았다. 포성조차도!

그들의 여왕에겐 적함의 위치를 언제나 파악할 수 있는 유물 지도가 있었다. 그들에게 기습은 의미가 없었다. 그 탓일까, 그들은 오히려 기습에 취약한 병력이 되어 있었다.

“제기랄!”

-콰아아아아앙!

이번엔 바로 옆, 바로 그들의 근처에서 파도를 타던 함선이 박살나며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파괴의 충격에 눈을 크게 치켜뜨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동족의 얼굴이 항해사들의 망막에 박혔다.

그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바로 눈 앞에 있다면, 설령 용이라 할지라도 두려움 없이 덤벼들던 역전의 용사들조차. 해일과 폭풍, 기습, 그리고 미지의 적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귓가에 낯선 사내의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 함대! 해저를 향해 발포하라!]

철두철미한 훈련, 오랜 항해 생활과 전투 경험. 그들의 경험이 그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본능의 영역에 새겨진, 학습된 작업이었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그들의 손은 일사분란하게, 거의 동시에 함포를 준비하고, 장약을 넣고 포환을 채우며 움직였다.

모든 함선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해저, 저 먼 심연. 그들의 동족을 끝 없이 집어 삼키는 거친 바다 한 가운데를 향해···.

[발포하라!!]

북해상 최강 함대. 가이메른 왕조의 황금 함대. 그들의 포대가 동시에 격발했다.

-콰아아아앙!!

*

“함장들.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해수에 푹 절은 레이아가 시종의 수건에 머리를 말리며 입을 열었다. 선내 회의실에 모인 함장들 또한 그녀와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한쪽 눈에 안대를 찬 엘프 사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열함 세 척, 상선 두 척, 보급함 두 척, 그리고 민선이 한 척입니다.”

“피해 병력은?”

“파괴된 함선들의 피해 인원은 추산 중에 있습니다. 생환한 함선 총 쉰일곱 척. 함내의 항해사 중에 중상 및 실족 사례는 보고된 바 없습니다. 민선의 경우 민간인 피해가 약 일흔 명에 달합니다.”

“흐음···.”

레이아는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칼을 넘기며 다리를 꼬았다.

“풍랑 중에 기습 치고는 피해가 적군.”

“놈들이 벌인 공세의 빈도가 적었습니다. 아마 함재포, 아니···. 작살의 사용에 익숙하지 않았거나···.”

“놈들에게도 충분한 수의 공격 수단이 없었거나.”

“예, 그렇습니다. 이런 종류의 공격은 처음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은 놈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함장의 말에 레이아는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잠시 찻물을 머금고 삼키던 레이아가 찻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해저의 공격이었어. 어떻게 생각하나, 이단심문관?”

“해저에서 문명화된 병기를 사용할 수 있는 종족은 단 하나뿐이오. 레이아 여왕. 전설 속 바다뱀 일족들이 아니라면 말이지.”

“그래. 흡혈귀들이겠지.”

레이아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픽 웃었다. 거의 처음 포격의 위치를 포착하자마자 해저의 기습을 가정하고, 두 번째 공습에서 그를 확신하고. 세 번째 공격 때 이미 대응책을 생각하며 행동한 인물이다.

레이아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웃었다. 역시, 인퍼머르 때에도, 지금도. 마음에 드는 인간이었다. 저 유능함과 재치, 그리고 순발력이.

-끼이이익.

그때, 시종이 문을 열며 조심스럽게 들어와 경직된 자세로 경례를 했다.

“위대하신 서펜트 퀸, 레이아 핀 가이메른 폐하! 다섯 바다의 으뜸이시며···.”

“그만. 용건부터.”

“표류자가 있습니다!”

“하. 표류자라. 어떻게, 인도적 처사라도 해주어야 하나? 다시 말해봐.”

“···포로를 잡았습니다.”

“끌고와.”

레이아의 말에 시종이 문을 열었다. 갑주를 차려입은 와일드프린스들이 밧줄에 단단히 묶인 한 사내를 끌고와 바닥에 던졌다.

“쿨럭!”

사내는 바닷물을 뱉으며 기침했다. 희고 곱슬거리는 머리칼과 번쩍이는 붉은 동공, 그리고 입을 벌릴 때마다 보이는 송곳니까지. 흡혈귀였다.

“멍청하게 해상 위로 올라와 숨이라도 쉬려고 했던 것은 아닐텐데. 흡혈귀. 네 정체를 밝혀라.”

“지고한 밤의 군주, 송곳 대공의 전갈이다. 엘프.”

흡혈귀가 쉭쉭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바다가 너희의 무덤이 되리라. 피 주머니들아. 밤을 두려워하라.”

“쯧.”

흡혈귀가 킥킥거리며 속삭이자, 레이아가 짧게 혀를 찼다. 그녀는 창밖을 힐끔 바라보았다. 잔잔해진 해수면 위로, 저 멀리 파랗게 동이 트고 있었다.

“흡혈귀식 장례법이 우리에게 맞을지는 잘 모르겠군. 여봐라. 놈이 추워 보이는구나. 불쌍하게도 푹 젖었고.”

레이아는 흡혈귀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볕에 말려 주어라.”

“너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이미 죽은 놈에게도 저승이 있다면 좋겠군. 네 주인도 너와 같은 꼴이 될 테니.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좋겠어. 끌고가.”

“매일 밤을 두려워하라!!”

흡혈귀는 와일드프린스들에게 끌려가며 비명을 질렀다. 지독한 저주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레이아는 피식 웃고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우리의 신이 ‘여명의 여신’이라는 건 몰랐나 보군.”

“놈들도 인퍼머르에서 충분히 알았을 텐데요.”

레이아의 농담에 함장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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