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58화 (159/388)

< 158. 파견 임무 보고서, 특수 작전 제안서 >

*

베오른은 차를 마시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수도사는 언제나 정갈해야 했으며, 베오른은 뼛속까지 수도사의 덕목을 지키는 참된 교인이었다.

창 밖에선 훈련하는 이단심문관들의 목청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주로 디모니카들의 소리였다. 그들은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벨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베오른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창을 닫았다. 그때, 누군가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

“제피스 시라다스트입니다. 수도원장님.”

“오, 들어오게.”

-끼이익.

문이 열리고, 거구의 중년 사내가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제피스는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걸어와 베오른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잠시 말을 삼켰다.

“뭔가?”

“보고서가 들어왔습니다.”

“어느 형제의 것인가? 지금 임무에 나간 형제가, 어디보자···.”

“페르난데스 형제의 보고서입니다.”

“으음.”

베오른은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려놓고는 손이 닿지 않을 위치까지 밀었다. 아무리 당황해도 찻잔을 깨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안전을 확인한 다음에야 베오른은 보고서를 건네 받았다.

얇은 가죽에 감싸인 보고서엔 페르난데스의 밀랍 봉인이 박혀 있었다. 밀랍을 뜯어내고 노끈을 풀며, 베오른은 제피스에게 맞은 편 자리를 권했다.

“이 형제가 뭘 보내면 겁부터 나더군.”

“저도 그렇습니다.”

“기대도 되고. 좋아. 한번 보지.”

*

[파견 임무 보고서 : 빙어 낚시]

작전 지역 : 북해상 가이메른 함대.

작전 개요 : 북해상에 위치한 말레이른 왕실의 계획 파악 및 저지. 말레이른 왕실의 격퇴.

작전 경과 :

1) 항해 도중 프란츠리트 혈족의 기습 발생. 격퇴함.

2) 프란츠리트 혈족과의 산발적인 교전, 격퇴함.

3) 릭터 반 프란츠리트, 가이메른 왕실의 난파된 기함을 활용, 대대적 교전 개시. 격퇴함.

4) 교전 도중 말레이른 왕의 기함 조우. 교전 지속됨.

5) 말레이른 왕의 기함에 단독 침투 작전 시행. 성공.

6) 말레이른 왕, 사살함.

7) 북해상 안전 해역 확보, 레이아 핀 가이메른 여왕의 평화 조약을 재확인.

작전 테스크포스 팀 :

1)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 생환

2) 토치맨, 키르하스 하트테이커 – 생환

3) 토치맨, 아벨 – 생환

악마를, 이단을, 마녀를 불태우리라.

작전 책임자 :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

보고서는 아주 짧고 명료했다. 베오른은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굉장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 아무렴. 보고서는 이래야지. 무슨 특별한 반전 없이, 이렇게 부드럽게 끝나는 보고서가 얼마 만이던가.

“아주 좋군. 그리고 역시 훌륭해. 프란츠리트와 말레이른을 둘 다 격퇴했다라···. 그래, 훌륭하군.”

그 말이 끝나도록, 제피스는 아무 말 없이 베오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베오른은 미묘한, 아주 미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외눈 안경을 고쳐썼다.

“왜 말이 없는가?”

“···물론 훌륭한 일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하기엔 믿기지 않는 일이기도 하지요.”

“뭐, 이번엔 우리 성자 형제가 혼자 한 일도 아니고, 북해 최고의 황금함대가 함께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제피스는 마지못하다는 표정으로 다른 서류철 하나를 더 꺼내어 건넸다. 서류철엔 봉인이 뜯어져 있었다. 뜯어 나간 봉인이 함께 있었는데, 이것 또한 페르난데스의 것이었다.

“두 부가 왔기에 먼저 읽었습니다.”

“뭐, 디모니카를 관리하는 것이 자네 일이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

왜 보고서를 두 부나 썼지? 베오른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가죽 표지를 벗겼다. 그는 곧 이것이 보고서가 아니라 제안서라는 것을, 그리고 승인 절차 없이 이미 다음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장 요원의 판단과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사후 승인 제도는 이단심문청을 더욱 유연한 조직으로 만들어주는 절차였으니. 그러나 제피스의 표정에서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며, 베오른은 제안서의 첫 장을 넘겼다.

*

[주의, 급령 제 221호. 해당 자료 조회의 인가 대상자는 중 1급 대주교, 또는 그 이상에 한함.]

[작전 제안서 : 설산 산보]

작전 지역 : 북부, 하자트 팔렌.

작전 개요 : 북부에 발생한 악마 사건의 조사 및 배후 근절.

1) 말레이른 왕이 북부인과 접촉해 모종의 밀약을 맺었던 정황 파악됨.

2) 북부인들이 물질 세계의 준신 및 반신들을 사냥한다는 첩보 확인됨. (붙임 1, 현장 요원 추가 자료 보고서)

3) 말레이른 왕과 접촉했던 북부인 포섭 성공함.

4) 북부 내륙의 내전 정황을 파악함. 배후에서 신성을 제물로 바치는 악마 숭배자들의 징후를 파악함.

5) 악마 숭배자들의 배후. 대악마, 사다르켈리사로 추정됨. (붙임 2, 북부 미신에 대한 현장 요원 사견)

6) 현장 요원의 판단 하, 시일이 다급한 사건으로 분류함. 선제적 타격 작전 제안 발송.

7) 현장 요원 전원 북부 내륙으로 파견.

음성 기호 : 생략함.

악마를, 이단을, 마녀를 불태우리라.

작전 책임자 :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

베오른은 아무 말 없이 보고서를 내려놓고 외눈 안경을 닦았다. 잠시간의 침묵 후, 베오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엘프 왕을 죽이고, 고위 흡혈귀를 저지하고, 곧장 갑자기 북부로 향했다고?”

“···예.”

“허, 북부라. 하. 후···. 하자트 팔렌. 제피스 형제, 혹시 북부에 대해 좀 알고 있나?”

“남들보다 잘 알지는 못합니다.”

“대개 사람들이 그렇지.”

베오른은 안경을 마저 닦고는 서랍에 넣었다. 그는 차를 마시며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북부, 작물이 자라는 땅은 한정적이고, 대부분의 계절은 춥거나, 메말랐지. 그 곳의 사람들은 가난과 기아, 또는 분노에 허덕이며 살아간다네. 적은 식량으로 모든 부족들이 서로를 향해 칼부리를 돌리고 으르렁거리지.”

베오른의 시야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덮인 드래곤스파인 산맥이 아니라, 그보다 더 멀리. 그러나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의.

침엽수림이 빡빡하게 늘어선 웅대한 산맥, 개간되지 않은 모든 지역에선 얼음 트롤과 서리 거인, 그리고 그보다 더 어둡고 음습한 괴물들이 날뛰는 곳.

천상 전쟁 이전까지, 대륙 문명 사회들에 크게 밑돌지 않을 정도로 융성한 고대 국가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사토와 설산 아래에 묻혀 있을 뿐.

전설에 따르면, 그곳의 인간들은 ‘인간’이 아니다. 천상 전쟁 시절 거인들이 퇴화한 종족이다. 외관으로 다를 바 없고, 실제 주요 장기나 형태도 전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들이 ‘남부인’이라 부르는 대륙 인간들에 비해, 그들의 몸집과 힘은 과연 특출난 구석이 있었다. 신의 축복을 받은 디모니카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민족 개개인이 모두 일반인을 상회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자트 팔란, 팔렌다르 씨족의 마을이라는 뜻이라네. 내가 있을 때 팔렌다르 씨족은 대단히 융성한 씨족이었지. 아주 유능한 야를과 강맹한 부족 전사들이 있는 곳이었어.”

베오른 실드베인. 혹은 방패파괴자 베오른이라 불리던 젊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베오른은 보고서의 붙임 서철을 꺼내 펼치며 말했다.

“북부 미신이라. 사실 나는 미신이라 생각하지 않네. 북부인들이 믿는 신들은 우리 남부 교단의 종교와 큰 차이가 있지만, 실존하는 신들에 대한 이야기지. 북부 만신전. 전사들의 신전이. 그리고 우리 ‘성자’ 형제가 밝혀낸 이 대악마라는 것은···.”

세계뱀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 서철을 제피스에게 건네며, 베오른은 깊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저 동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옛 이야기라네. 세계가 멸망할 때, 그러니까. 그들 말로는 ‘라그나로크’가 덮칠 때. 세계뱀이 일어나고 해와 달이 찢어지고, 신들이 몰락하고, 세계가 얼어붙고, 또는 불타오른다고.”

“수도원장님.”

“그래. 우리의 역할은 신화를 분석하는 일이 아니지. 그건 교단의 다른 사제들이 할 일이고. 우리의 일은 이단의 섬멸이라네.”

-탁.

베오른은 테이블 위에 올려있는 서철들을 쳤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제피스를 바라보았다.

“대악마의 준동이라고? 좋네. 라그나로크? 재밌군. 제피스 시라다스트. 그대는 북부의 전설을 믿는가?”

“우리의 주는 오직 하나. 베이타서스 뿐이니.”

“오직 우리의 등불은 신앙이오, 우리의 갈 길은 신념이니.”

제피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베오른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가장 뛰어난 형제들과 함께, 그리고 가능한한 빠르게. 페르난데스 형제를 돕게나. 대악마를 섬멸하고 북부인들이 말하는 ‘종말’이란 것이. 저들의 동화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막토.”

“막토 수페를라우도. 형제여.”

베오른은 떠나가는 제피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황야의 대악마가 죽고, 그 일대에 생명이 뿌리 내렸다.

이는 천상 전쟁 시절에도 불가능했던 위업이다. 대악마의 죽음. 그리고 그 여파까지. 대황야는 이제 더 이상 황무지가 아니다. 수풀이 자라나고 샘물이 흐르는 땅이 되어가고 있었다.

풍요를 되찾은 거대한 무주지를 향해, 언제 다시 전쟁이 발발할 지는 모른다. 술탄도, 황제도. 욕심이 많은 인간들이었으니.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다. 그리고 아무리 거대한, 어떤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것이다.

물질 세계에 뿌리 내린 악마들, 그리고 그 악마를 추종하는 어리석은 하수인들을 하나씩 끊어내고, 마침내 대악마들을 처치하여 평화가 찾아온다면···.

제아무리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이 인간의 죄악이며, 인간이 스스로 저지른 악행이라면. 베오른은 오히려 기쁘게 그 사건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단심문청은 오직 악마를 향해 칼을 겨눈다. 문명 사회의 비극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것에 악마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물질 세계는, 이 세계는 오직 인간의 것이다. 베오른은 찻잔을 내려놓고 새 종이를 꺼냈다. 교황청을 향해 보낼 정기 보고서가 아직 남아 있었다.

이단을, 마녀를, 그리고 악마를 불태우리라. 그 타고 남은 재 아래에서 인간의 문명이, 인간의 비극과 희극, 온전히 인간 만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면. 선악의 관념을 넘어, 그것이 오직 인간의 것이 될 수 있다면.

성직자는 기적을 간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신에게 기도할 뿐이다. 베오른 또한, 보고서를 적던 손을 잠시 멈추고 로사리오를 손에 쥐었다.

“또 다른 대악마가 쓰러지고, 세계가 한 걸음 더 평화에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그 희생이 무엇이 되더라도. 설령 저 자신의 목숨이라도 바치라 하신다면, 기꺼이 그리 하겠나이다. 고향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탓일까. 베오른은 다소 감상적인 표정으로 로사리오를 굴렸다.

*

베오른이 기도하던 그 시각, 하자트 팔렌의 피오르드 만 내항으로. 레이아의 기함이 입항을 시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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