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62화 (163/388)

162. 하자트 팔란의 생존자들 (3)

*

도끼가 하늘을 날았다. 도끼를 쥔 팔과 함께. 단 한 차례의 검격으로 전사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악마가 흉포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전장을 누볐다.

남부 대륙인들은 일반적으로, 북부인들에겐 공포가 없다고 믿는다.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들의 신은 전사(戰士)들의 전사(戰死)를 장려했고, 신의 곁으로 가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투쟁이었으니.

그러나, 그들의 신은 이제 그들을 가호하지 않는다. 세계뱀의 추종자들은 에인헤랴르의 종말을 떠들고 다녔고 그들의 말을 거짓이라 단정하기엔 그 증거가 부족하다.

신들이 더 이상 그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있었으니.

-콰직!

다시 한 사람이 죽는다. 아에렌은 피로에 찌든 눈으로 묵묵하게 방패를 들어올려 눈 앞의 전사를 밀쳐내며 생각했다. 또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곧 우리 모두가.

그러나—

“누구도!! 영원히 살수는 없다!”

“보타아아안!!”

아에렌의 외침에 전사들이 화답했다. 그녀를 눈여겨보던 악마가 곧 그녀에게 몸을 돌리며 으르렁거렸다.

“아, 위대하신 야를. 아에렌. 내 너를 알고 있다.”

“초면인 것 같은데?”

“너희의 신은 너희를 지켜주지 못한다. 필멸자. 놈들은 나약했다. 위대하신 어머니에게.”

“치마폭 운운은. 그 나이 먹고 부끄럽지 않나?

아에렌은 광기에 절어 도끼를 휘두르는 전사를 밀쳐내고 놈의 목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뜨거운 핏물이 촥, 하고 그녀의 뺨을 적셨다. 그 모습을 보며 악마가 킬킬 웃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길을 비켜라 버러지들아. 저 계집은 나의 몫이다.”

“선지자시여, 저 계집을 죽여선 안됩니다.”

“그 꼬마가 원하는 건 저 년의 목숨이지 몸뚱이가 아니었다. 팔다리를 쪼개어도 죽이지만 않으면 되지 않느냐.”

악마가 킬킬거리자 전사들이 흩어지며 길을 열었다. 아에렌은 격전지 속에서 기묘한 해방감을 느끼며 숨을 골랐다. 성큼 다가오는 악마의 위압감이 대단했지만, 그녀는 다행히 자세를 다잡을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다.

“네 최후가 가깝구나. 너희 모두의 최후가. 너희의 신들처럼.”

“말이 많구나. 괴물.”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이!”

아에렌이 빈정거리자 악마가 속력을 높여 달려들었다. 숫제 물소가 뛰어드는 것처럼, 거대한 벽이 들이닥치 듯. 거한의 몸이 그녀에게 육박해왔다.

아에렌은 방패를 다잡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길 수 있을까? 악마 자체는 감당하더라도, 그 뒤는? 가장 격렬하게 싸우던 그녀가 발이 묶인다면, 전선은?

그녀의 시선이 잠시 전선에 닿았다. 그녀의 전사들이 밀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짧은 순간, 어느새 육박한 악마가 거대한 검을 들어올려 내려 찍고, 아에렌은 미끄러지듯 방패를 틀어 공격을 대비했다.

-콰직!

소음과 함께 핏물이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아에렌은 격전 중에 결코 깜빡이지 않지만, 이 순간엔 눈을 비비고 싶어졌다.

악마의 잘린 팔이 하늘에 떠 있었다. 극도로 고양된 정신 탓에 느릿하게 보이는 그 광경에, 아에렌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검붉은 핏물이 사방에 흩날리고, 피격의 충격에 악마가 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사이로—

-쒜에에에엑! 콰지직!

충격이 지표를 뒤엎는다. 강대한 타격에 흙이 비산하고, 진동이 지축을 흔들었다. 아에렌은 눈만 살짝 돌려 바닥을 강타한 물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묵빛 검날을 번들거리는 대검이었다. 북부인의 양식이 아닌, 특이하게 생긴 대검. 어찌나 강하게 던져졌던지 칼날의 반 이상이 땅을 파고들었고, 검신이 휘청이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어떤 개자식—!”

“예의 없는 것들.”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구릉 위에서 들렸다. 악마는 피가 흘러 넘치는 팔뚝을 붙잡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언덕을 바라보았다. 언덕 위에서, 한 청년이 그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

“키르하스.”

“예, 은공.”

“동쪽으로 돌아라. 종심을 돌파해 방어선에 합류하도록.”

“예. 은공.”

“아벨, 그대는 북쪽으로. 인간들은 무시하고 악마를 요격해 주시오.”

“맡겨라.”

페르난데스는 짧게 명령하고, 열쇠검을 뽑아 양손에 단단히 쥐었다. 대검이 악마의 피를 갈구하며 고동쳤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신성이 그의 핏줄에 스며들어 머리를 달구었다.

가볍게 바닥을 박찬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루를 꼬박 지새운 것 따윈 그의 육신을 둔하게 만들 수 없었다. 악마와 악마 추종자들, 이단과 사교도들. 그들의 존재가 그에게 새로운 힘을 공급하는 자원이었다.

대검이 비스듬하게 꺾인다. 달려가는 속력을 온전히 활용하여 타격에 집중하고, 그를 바라보며 당황하고 있는 전사의 목부터 허리까지 대각선의 빗금을 그어 넣는다.

-콰지지직!

그 다음, 도끼와 검. 죽은 전사의 곁에 있던 다른 전사들이 반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페르난데스는 허리를 꺾어 자세를 낮추며 대검을 크게 횡으로 그었다.

-스가가가각.

전사들의 조악한 갑옷이 그대로 찢겨 나가며 그 사이로 대검이 파고들었다.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부서지며, 피와 기름이 뒤엉켜 튀어 오른다. 말 그대로 살점이 터져 나갔다.

“이, 이놈은 뭐야!”

북부인들이 당혹감 속에서 외쳤다.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틀어 눈으로 들어오는 핏물을 흘렸다. 피가 촥 튀며 뺨을 적시고 흘러내렸다. 그대로 한 발작 더 달려들며, 적진 한 가운데로.

-촤악!

“막아, 놈을 막아!”

“죽여라, 위대한 세계뱀이여! 힘을 주소서!”

전사들의 눈에 다급함이 얽힌다.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믿기지 않을 힘이 터져 나왔다. 페르난데스는 달려가는 그 길, 그 궤적을 그대로 피와 살점으로 바꾸며 방진을 으스러트릴 듯 전진했다.

그의 눈은 오직 한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사들의 머리 위로 불쑥 솟아,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악마의 얼굴을.

“죽여! 죽여라!”

비명이 사방에서 터지고 있다. 키르하스와 아벨이다. 그들 단 셋이 전황을 뒤흔들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눈 앞에 있는 전사를 찢어 발기며 생각했다.

전쟁에서 한 사람의 용맹은 그저 국지적인 분전에 그친다. 그러나 이런 소규모 접전에서 이른바 ‘영웅’이라 불리는 개개인은 전황 그 자체를 뒤집을 수 있다.

이 자리에서, 페르난데스와 아벨, 그리고 키르하스는 그런 존재였다. 대황야 최고의 야전사령관, 디모니카, 그리고 인간이 된 용. 이 신화적인 전사 집단을 막아서기 위해선 머릿수가 아니라, 그 정도의 격을 갖춘 상대가 있어야 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악마가 비로소 그의 눈 앞까지 다가왔다. 페르난데스가 이 지역을 타격하고 종심을 돌파하기 시작한 그 짧은 시간 동안. 악마가 그의 무력에 반응해 몸을 뒤로 돌려 다가오는 그 시간 동안, 페르난데스는 피와 살점으로 길을 닦아낼 지경이었다.

“네 놈은 누구냐.”

“왜 다들 하나같이 내 정체를 궁금해하는 지 모르겠군.”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오는 전사들이 없었다. 이미 피에 푹 절어버린 페르난데스는, 붉게 물든 얼굴 사이로 짙푸른 눈을 빛내며 웃었다.

“어차피 다들 죽을 것들이 말이야.”

“오만하군. 일개 필멸자의 용력이 대단하나, 고작 그 뿐. 네가 한 짓은 우리들 중 누구도 할 수 있는 무력에 불과하다. 너는 저 계집의 부하더냐?”

“내가 만난 악마들 중 가장 말투가 고상하군.”

-스르릉.

페르난데스는 핏물 젖은 검을 다리에 문질러 닦고는 악마의 머리를 향해 칼을 들어 올렸다. 악마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눈에 대검의 검신과 칼자루, 십자막이에 그려진 문양이 보였다.

“베이타서스···?”

“그래. 악마. 기도하겠나?”

“이단심문관?! 어떻게 여기에? 대체 어디서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지?”

페르난데스는 대답 없이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악마는 곧 인상을 찌푸리며 으르렁거렸다.

“상관 없다. 너흰 이미 늦었으니! 그리고 고작 셋이서, 너희 그 한줌도 되지 못하는 필멸자들이 이 북부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금언하라.”

페르난데스는 달려드는 악마를 바라보며 칼날을 들어 올렸다.

“이제부터 보여줄 테니.”

악마와 악마사냥꾼이, 전사들이 물러서 만들어진 작은 공터에서 격돌했다. 칼과, 피와, 흙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폭풍을 그렸다.

*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아에렌은, 그리고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서, 전사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레 난입한 사내는 전선에 돌입하는 순간 악마를 말 그대로 갈아버리고 있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악마의 눈에서 분노가, 이윽고 공포가, 다시금 저주가 흘렀다. 악마의 살점이 크게 떨어져나가고, 두꺼운 갑옷을 입은 채로 가슴이 갈라지며, 단단한 팔뚝이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청년은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또는 미래가 보인다는 듯이 움직였다. 그는 악마가 저주 쏟아내고, 강철을 부식시키는 입김을 내뿜고, 검을 휘둘러 바닥을 찍을 때 그 사이로 물살을 갈라 헤엄치듯 뛰었다.

-콰드드득!

다시금 대검이 빛을 발한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대검은 악마의 피를 머금을수록 더욱 밝고 강렬하게 타올랐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다, 이건 학살이다.

아에렌은 그가 대검을 다루는 방식에 집중했다. 일반적인 무예나, 검술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용을 얻어내는 것을 기본 과제로 삼는다.

그러나 청년의 검술은 호쾌하다 할만큼 거칠었다. 사람이 아니라, 사냥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마치 저런 크기의 괴물들을 상대로 상정하고 익힌 검술처럼.

그것이 디모니카의 전투법이었다. 검술이나 무예의 일종이 아니라, 원시적인 사냥법에 가까운 동작이다. 복잡한 기교가 아닌, 육신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터트리며 싸우는 박투에 가까운 기술이다.

-챙! 카가가각!

악마의 가슴에 걸린 강철 흉판이 불똥을 튀어내며 반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장기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어느새 악마의 등 뒤로 올라선 청년이 빙글, 깨끗하게 한 바퀴 돌고. 그대로 끝이었다.

악마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저것이 벌써 세 마리 째였다. 부족 전사 셋이 달라붙어도 승산을 확신하기 어려운 끔찍한 적수를 상대로 단 한 차례도 쉬지 않으며 몰아치듯 나아가. 세 놈을 격살했다.

“인간이 아니군.”

확정적인 어조로 아에렌이 중얼거렸다. 그건 이 자리 모두의 감상과 같았다. 페르난데스의 주위로 감히 접근하지 못한 채 주춤거리던 사내들은, 전장에 남은 두 마리의 악마를 무시하고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기 시작했다.

-턱.

그녀는 바로 곁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청년과 함께 전선에 뛰어들어 적들을 난도질하던 수인족 여인이 긴 흑발을 흩날리며 서 있었다.

“그대들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 발할라에서 왔나?”

“···?”

키르하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부 언어를 모르는 탓에, 이 땅에 도착한 이후 그녀는 상대방의 어조에서 적의를 파악하며 피아를 구분하곤 했다.

그녀는 곧 품 안을 더듬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끼던 담뱃대가 전투 중에 유실된 것 같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페르난데스가 악마의 시체에 칼을 박아넣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아벨이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어 페르난데스의 얼굴에 늘러붙은 핏자국들을 떼어주며 무어라 말을 걸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키르하스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눈을 감았다. 한걸음 앞섰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한 바퀴는 더 뒤처져 있는 셈이구나.

‘카단,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사냥이란 사냥감을 추격하는 과정 전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냥의 여주인인 그녀는 뒤돌아 달려 나가는 사내를 쫓는 일에 자신이 있었지만···.

항상, 너무 멀다. 너무 빠르다. 팔을 뻗어 옷가지를 잡았다 생각했을 때 쯤이면 이미 그는 저 멀리 내달려 있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아벨이라면.

애가 닳았다. 그녀는 다가오는 페르난데스를 한참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아벨의 손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에렌을 바라보며 걸어오던 페르난데스가 그녀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다쳤느냐?”

그 말투에서 걱정을, 따스함을 느낀다면 과대망상일까? 키르하스는 이제 이런 생각까지 드는 자신에게 혐오감마저 느끼며,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은공.”

슬픔과 고통이 파편처럼 부서져 심장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키르하스는 연적을 증오하거나 페르난데스를 원망하기엔 너무나 올곧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웃으며 페르난데스에게 다가가, 그의 옷가지를 살짝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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