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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66화 (167/388)

166. 전술 지원 파병 : 땅꾼 놀음

*

철썩, 하고 거친 파도가 하얀 포말을 흩뿌리며 뱃전에 부딪쳤다. 배는 반절 이상이 파괴되어 있었고, 목조선 특유의 부력을 제외한다면 당장 가라앉아도 이상할 것 없는 뗏목이나 다를 바 없었다.

어중간한 함선들은 원양 항행을 거부했고, 원양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거함들은 북해상에 인접하는 것을 거부했으므로, 제피스와 이단심문관들은 원양과 북해상을 가로지르는 경계면에서부터 소형 쾌속정에 몸을 싣고 와야 했다.

이들이 끝내 바닷길을 잃지 않고, 표류 없이 북부 해안선에 도달한 것은 반절 정도는 기적이오, 남은 반절은 디모니카 특유의 방향감각과 근력 덕이었다.

일반적인 노잡이 배들, 쾌속정이나 롱쉽 등의 소형정들 또한 장기 항행 시에 풍력을 이용한 항해를 한다. 그러나 디모니카들은 사흘을 잠들지 않아도 육신의 기능성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들의 사흘은 일반인의 사흘과 달리, 격전을 가정한 사흘을 의미했다.

온전히 육체 노동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중간중간 짧은 휴식만 주어진다면, 디모니카는 사흘간 동일한 수준의 육체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초인들이다. 따라서 제피스와 이단심문관들은 북부 해안선에 닿는 그 모든 순간을 오로지 노를 젓는 것에 할애할 수 있었다.

“도착했군.”

그러나 제아무리 디모니카라 하더라도 피로의 문제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풍랑에 반파된 선박을 ‘의지’와 ‘기합’과 ‘신념’ 만으로 이끌었다면 더욱이. 그런 와중에 제피스가 툭 내뱉은 말은 퍽 담백하여, 그의 등 뒤에서 뛰어 내릴 준비를 하던 디모니카 형제들을 아연하게 했다.

“찬양하라!”

파비아노는 활달하게 외치고는 크게 도약했다. 쿵, 도약한 순간 선체가 거칠게 요동치며 선수에서 흘수에 이르는 긴 균열이 생겼다. 다시금 쿵. 해안 위에 뛰어 오른 파비아노가 뻐근한 어깨를 붕붕 돌렸다.

“오오, 찬양하라! 마침내 우리가 북부에 도달했노라. 형제들. 어서 내리게!”

“진정해라, 형제.”

“오, 형제님.”

제피스는 보다 가볍게 뛰어 가볍게 착지했다. 두툼한 모직 망토가 펄럭이며 그의 주위로 내려 앉았다. 곧 선박 위의 이단심문관들이 하나 둘 뛰어올랐다.

마지막으로 뛴 형제는 기괴한 비명을 지르는 사제를 등에 업은 채로 해안에 착지했다. 바닥을 밟는 순간 디모니카의 드넓은 등판 위에서 덜덜 떨던 사제가 돌연 뛰어내려 해안선에 걸쭉한 토사물을 내뱉었다.

“괜찮은가?”

“괜찮, 괜, 괜찮습···.”

“대답하지 않아도 좋네. 형제. 진정될 때 까지 기다리지.”

제피스는 품 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며 말했다. 엔마기카에겐 다소 거친 여정이었을 수 있다. 이들의 진정한 힘은 육신이 아닌, 저들의 머리 속에 있으니.

반면에···. 제피스는 여전히 활달하게 기도문을 외치고 다니는 파비아노와 그에게 어느새 동화되어 주위를 쏘다니는 디모니카들을 보았다.

저들의 진정한 힘은 머리가 아니라 육신에 있었다. 그게 곧 머리를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제피스는 한탄하며 수도원장의 명령을 곱씹었다.

*

“그대들 중 가장 뛰어난 이들을 추려 가게.”

*

대악마의 출현이 임박했다는 작전 제안서를 온전히 신뢰한다면, 그런 지역에 디모니카를 제외한 다른 이들을 동원할 수는 없었다. 악마가 직접 지상을 활보하는 종류의 사건은 오직 디모니카들의 의무였으며, 그들조차도 그런 사건들 속에서 종종 목숨을 잃곤 했다.

그러니 제피스는 처음부터 디모니카로 이루어진 테스크포스를 기획했다. 이중 엔마기카를 포함시킨 것은 미지의 악마가 사용할 미지의 마법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좀 진정이 되나?”

“예, 예 감사합니다. 형제님.”

엔마기카, 사르벨리오는 입가에 묻은 위액을 닦아내며 헐떡였다. 제피스는 측은한 눈으로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엔마기카는 하나하나가 귀중한 재원이다. 내부에선 일반인에겐 결코 공개할 수 없는 교단의 온갖 비밀들이 잠들어 있는 이단심문청의 행정을 담당해야 했으며, 그들 자신들은 교단의 신성한 주문들을 익히고, 또한 악마의 술수와 마법에 박식해야 했다.

말 그대로, 수리학, 신비학, 기호학, 법학과 교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면의 지식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교단 최고의 인재들이 엔마기카였다.

제피스는 이 젊은 엔마기카 형제가 진정될 때 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의 등을 토닥이고는 그에게 두루마리를 건넸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수도원장님의 지도에 따르면···.”

사르벨리오 형제가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고는 뜸을 들였다. 천문학에 밝은 그는 북해상까지 걸린 시간, 그 시간에 주파한 속력, 그리고 시간과 속력 간의 관계에서 도출되는 거리. 거리에 따른 위도의 변화로 틀어지는 천구의 각도를 복잡하게 연산하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사르벨리오가 다시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지도의 남쪽 한 귀퉁이를 짚었다.

“하자트 투란···. 이 근방의 해안선에 도착한 듯 싶습니다.”

“음. 예상보단 살짝 동쪽으로 들어왔군. 시간이 없겠어···. 형제들!!!”

“예, 형제님!”

어느새 저 멀리까지 나아가 무언가를 뒤적이고 있는 디모니카들에게 제피스가 소리를 질렀다. 디모니카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뭘 좀 찾았나?”

“예, 형제님! 3 마일 거리에 인가의 불빛이 있습니다!”

“좋네, 형제들. 이동하지!”

아무리 순박해 보이더라도 디모니카들은 악마 사건의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반쯤은 새로운 대륙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리고 남은 반절은 근방 민가나 행인의 흔적 따위를 찾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제피스는 뛰어가려다가, 비틀거리는 사르벨리오 형제를 바라보고는 혀를 찼다. 그의 나약함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했던 배려심에 대한 자책이었다.

“세르지오 형제!”

“예 형제님!”

“사르벨리오 형제를 업게!”

“예!”

곧 거구의 디모니카가 달려와 쿵,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그 기세에 기겁한 사르벨리오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괘, 괜찮습니다. 형제님. 형제님들! 제 발로 걷겠습···. 으악!”

“내 등에 토해도 괜찮다네 형제!!”

사르벨리오가 머뭇거리자 등을 밀어붙여 그를 위에 올린 세르지오가 곧 벌떡 일어섰다. 엉겁결에 그의 등 위에 올라탄 사르벨리오가 꺽꺽이는 신음 소리를 냈다.

일견 거칠어보이는 행동이었지만 정작 사르벨리오에게 가해진 충격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디모니카 다운 힘의 배분과 균형감각, 그리고 거리감각 탓이었다.

제피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민가가 발견되었다는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디모니카들이 그의 등을 따라 뛰었다.

*

그들이 속력을 줄이며 질주를 경보로, 경보를 다시 걸음으로. 끝내 은폐 기동으로 바꿀 때 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단심문관들은 거의 소리 없이 발을 내딛으며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가볍고 활달했던 분위기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디모니카들의 눈에 마을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들은 칼날처럼 절제된 분위기를 흘리며 전진했다.

“형제님. 저거.”

“사르벨리오 형제를 내려라. 교전을 준비한다.”

제피스는 투구의 바이저를 내리며 속삭였다. 한 손에 모닝스타를, 다른 한 손에 강철 방패를 쥔 채로 제피스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그의 말투는 어느새 작전 지역에 투입된 이단심문관 안젤로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의 눈에서 분노가 흐르고 있었다.

마을의 외부, 허름한 목책은 반으로 갈라지고 불타고 있었다. 최초의 디모니카가 발견한 민가의 불빛은 조금 밝은 횃불이 아니라, 불타는 마을의 정경이었다.

북부의 상황을 모르니 이를 단순한 부족간의 전투와 약탈 따위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루엣이 온전히 보이는 심야의 마을. 그 외곽엔 장대들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을 걸어 놓은 장대들이. 그건 이단의 상징이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수도원장님의 교전 수칙은 폐기한다.”

제피스는 마을의 입구를 향해 걸으며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등 뒤를 따라 걷는 중갑 전사들의 발걸음 소리만 있을 뿐.

수도원장 베오른 실드베인은 무차별적인 교전을 최대한 회피하라 명했다. 북부는 북부의 종교를 믿고 있었으며, 이는 낯선 토착 신앙일 뿐, 이단이라 판단할 수는 없었다. 상호 교류가 전혀 없는 외부 대륙의 토착 종교를 악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만신전의 신들은 그 기원을 저마다 다른 지방의 토착 신앙에 두고 있다. 어딘가의 태양신, 어딘가의 전사신, 어딘가의 해신···. 단일 종교와 단일 교리를 주창하는 것은 오직 악마의 손에 넘어간 배교도들 뿐이며, 기본적으로 선신 만신전은 외부 세력의 토착 신앙이 온전히 파악될 때 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인간을 장대에 내걸고, 내장으로 문양을 박아 넣고, 피를 쏟아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며, 인간의 팔다리로 그 진법을 보강하는 행태는···. 반드시 이단이다.

그리고 여기에, 다섯 사람의 이단심문관이 있었다.

*

-퍼석.

제피스는 반파되고 불에 탄 마을회관의 입구에 걸린, 검게 타들어간 해골을 주먹으로 내리 찍었다. 제피스를 발견하고 저 혼자 턱을 따닥거리던 해골이었다. 해골은 즉시 으깨지며 잿가루를 흩날렸다.

투구 아래에서 더운 숨이 흘렀다. 증오와 분노가 날뛰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신성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이 지역에 벌어진 학살과 타락한 번제 의식의 잔해물들 탓이었다.

아이가 어미를 찌르고, 그 자세로 불에 타 벽에 못박힌 시체가 있었다. 그 옆엔 자신의 다리를 문 채로 웃고 있는, 타지 않은 시체도 있었다. 마을은 봄 태양절의 축제 광장처럼 휘장이 걸려 있었다. 남부 문명 사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아마포나 물감 먹인 천 대신 사람의 내장을 썼다는 것이다.

제피스와 이단심문관들은 마을에 보이는 모든 이단 흔적들을 파괴했다. 사실상 마을의 모든 구석이 그런 모양이었고, 따라서 이들이 하고 있는 행동은 마을을 온전히 폐허로 철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거진 사흘을 꼬박 밤새워 항해했음에도 이들의 움직임에선 피로의 흔적이 없었다. 시체가 탄 냄세, 그리고 피와 기름이 부패하며 흐르는 지독한 시취 탓에 예민한 후각이 둔해지고 정신이 이따금씩 아찔해졌다.

-쒜에에엑.

그 탓에 제피스는 허공을 찢는 화살의 파공성이 충분히 가까워지기 전까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피하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제피스는 고개를 돌리거나 방패를 들어 올리는 대신 소리를 질렀다.

“형제를 보호하라!”

“형제를 보호하라!”

제피스의 외침에 반문이나 의문 따위를 표하는 디모니카들은 없었다. 분노 속에서 마을을 철거하던 디모니카들은 제피스의 소리를 듣고, 또 동시에 화살이 쏟아지는 소리를 들은 직후에 몸을 날렸다.

-두두두두두두!!

최소한의 급소만 보호한 자세로 디모니카들이 둥글게 벽을 만들고 섰다. 그들이 걸친 두꺼운 강철 갑주에 화살비가 쏟아져 내려 묵직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괜찮은가?”

파비아노는 자신들의 아래에 웅크리고 앉은 사르벨리오 형제를 내려보았다. 많은 이들이 쉽게 믿지 않지만, 디모니카들 또한 피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었기에 전선에 투입될 때 이들은 종종 과도한 방어 무장을 챙겨 입곤 했다.

일반인이라면 착용하는 것 만으로도 꼼짝 할 수 없는 두껍고 무거운 강철 갑주는, 착용자가 디모니카였기에 비로소 의미를 가졌다.

무게의 한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디모니카들은 오직 방호력에만 치중된 갑주들을 선호했고, 이런 갑주들은 입는다는 동사보다 차라리 설치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수준의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 덕에, 그러한 디모니카들의 보호를 받는 사르벨리오는 일종의 방어 첨탑 내부에 있다는 감각을 받았다. 사르벨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눈을 감았다.

디모니카에겐 디모니카의 일이 있듯이, 엔마기카에겐 엔마기카의 일이 있는 법. 따라서 그는 감사를 표하지 않는다. 입장이 반대 되어 적들의 마법이 쏟아졌다 하더라도 그는 이들과 똑같이 몸을 다 바쳐 희생했을 테니까.

이 숙련된,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엔마기카는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 쪽에 있습니다. 더 이상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화살비가 멎고, 사방에서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디서 찾아온 머저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위대하신 분들께 식사감이 생겨 좋군.”

거친 북부어가 마을 외부에서 울려 퍼졌다. 이단심문관들은 북부어를 할 줄 몰랐지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가늠할 수는 있었다.

제피스는 화살이 촘촘히 박힌 망토를 등 뒤로 떼어내며 수신호를 보냈다. 파비아노, 동쪽. 세르지오, 서쪽. 나머지는 사르벨리오를 보호. 그리고 나는, 정면으로 향한다.

사르벨리오가 가리킨 방향. 악마와 놈을 부리는 마법사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제피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악마를, 이단을, 그리고 마녀를 불태우리라.”

“”막토.””

모든 이단심문관들이 조용히 후창했다. 제피스는 자세를 낮추며 거리를 잡았다.

“막토 수페를라우도.”

그 말과 동시에, 세 사람의 디모니카가 질풍처럼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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