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67화 (168/388)

167. 뱀의 왕 (2)

*

진실의 시야에서 밀려오는 정보량이란, 일반인을 기준으로 잡았을 때 삼십 분을 그 한계로 잡는다. 가시 범위는 약 30여 미터.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반향이 무형의 정보로 뇌리에 틀어 박히고, 이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페르난데스는 눈을 감았다. 정보의 과잉이 곧 혼선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선 감각 기관을 최대한 억제할 필요가 있었다.

-후우웅···.

바람의 와류가 보인다. 악마의 근육이 뒤틀리며 창을 움켜쥐고 이를 던지는 그 궤적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동시에 그의 본능이 외쳤다. 놈의 힘으로 투척된 창이 도달할 속력과 파괴력까지.

-콰아아앙!

페르난데스는 실낱 같은 간격을 두고 고개를 꺾어 창을 피했다. 창의 타격이 지면을 파고드는 그 폭음이 신호탄이 되어, 그의 몸이 빗살처럼 내달렸다.

“놈을 막아라!”

안개 너머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무기를 든 거구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눈을 감은 채로, 페르난데스는 사내들의 틈 사이로 파고들었다.

달리는 궤적 그대로 검은 머리칼이 흩날려 마치 색을 덧칠한 바람처럼 보였다. 페르난데스는 흐르는 듯이 부드럽게 사내들의 사이로 스며들었다.

-콰칭!

사내들이 반사적으로 도끼와 검을 찔러 넣었다. 한 손을 이마에 붙인 채로, 페르난데스의 몸이 휘몰아쳤다. 왼손 손바닥 안에 피어 있는 보라색 눈동자가 빠르게 명멸하고, 동시에 정보가 소용돌이치며 그의 뇌리에 박힌다.

처음은 창. 옆으로 틀어 피하고, 이어서 검. 대검의 검신으로 비껴쳐 흘리고. 다시금 검. 또, 창. 다시 도끼.

-쾅! 쾅! 쾅!

모든 공세를 한 발자국 간격으로 피하거나 흘리고, 이따금은 쳐내며. 페르난데스는 춤을 추듯 칼을 휘둘렀다. 정보의 종합은 곧 사건의 예측으로 이어진다. 이에, 그가 보이는 무예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전투 예지였다.

“괴, 괴물!”

사람을 제물 바쳐 악마를 소환하는 이들이 하기엔 퍽 우스운 단어라서, 페르난데스는 실소를 머금었다. 칼날이 비틀리며 소리지른 사내의 목젖을 치고 지나간다. 죽음이 궤적을 그리며 내려 앉았다.

-투웅.

첫 번째 사내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세 사람이 조각나 흩어졌다. 피와 살점으로 덧칠한 꽃이 그를 중심으로 피어나며 도로와 담장에 뿌려졌다.

-쿵!

그 틈을 노리던 악마가 창을 내질렀다. 격전 후에 잠시 멈춰 있던 페르난데스의 가슴을 향해서 곧장. 일반인이라면 방패 채로 으스러트렸을 거력이—

“네 놈···!”

중간에 막혔다. 어느새 왼손을 내려 악마의 창을 움켜 쥔 페르난데스가 천천히 창을 끌어 당겼다. 우득, 우드득. 잠시간의 힘겨루기 끝에 거구의 악마가 천천히 페르난데스를 향해 끌려 들어갔다.

“인간이··· 아니구나!!”

“아직은 맞을걸.”

검은 머리칼이 흘러내린 사이에서, 짙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그는 진실의 시야 주문을 깨트린 후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아직 관망하는 악마가 둘, 놈들을 부리는 마법사가 하나.

“세상에, 저게 대체 무슨···.”

그의 등 뒤에서 전투를 준비하던 전사들이 망연히 페르난데스의 격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투를 준비하라고 외치고 혼자 뛰어나가서 전투를 거의 끝맺어 버린 것이다.

“어디서 온 놈이냐!!”

“궁금한 게 많은 놈이로군.”

페르난데스는 악마들의 뒤에서 거품을 물며 소리지르는 마법사를 힐끔 바라보았다. 우드득, 손 아래에서 목재 창대가 으스러지며 부서졌다. 그는 부러진 창날을 거꾸로 쥐고 천천히 마법사를 겨냥했다.

‘마법전의 기본은···.’

-마법의 봉쇄지. 하하.

-쒜에에엑.

창날이 섬광처럼 날았다. 마법사의 손을 향해. 마법사는 수인을 맺기 위해 양손을 교차했다가, 그 채로 창날에 관통되어 꺽꺽이는 비명을 내질렀다.

단검 투척은 전생에도 즐겨 사용하던 수법이었다. 마법전의 기본은 상대방의 마법 전력을 봉쇄하는 것이고, 최선은 마법이 발현되기 전에 훼방하는 것이다. 마법사를 무력화시킨 페르난데스는 눈 앞에서 당황에 눈을 껌뻑이는 악마를 향해 칼을 치켜 들었다.

“빠르게 가보자고.”

언제나 시간은 가장 소중한 소비재니까.

*

“대사교님. 침입자가 오고 있습니다!”

피에 절어진 단검을 소매에 닦고 있는 오라이온에게,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사내가 외쳤다. 오라이온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대한 어머니의 자손을 다섯 마리나 대동했거늘, 적들의 수가 많았더냐?”

“아닙니다. 대사교님. 놈은 하나였습니다.”

“···무어라?”

단검을 닦던 오라이온의 팔이 멈췄다. 한 사람? 자신과 대등할 수준의 마법사가 놈들 사이에 있었던 것은 이미 감지했다. 그러나 마법사라면, 마법 저항력이 극도로 강인한 데미드라코를 상대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거늘···.

“놈이 생각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였나 보구나. 내 계산이 짧았다.”

“아닙니다. 놈은 전사였습니다. 대사교님.”

“그게 무슨 소리냐?”

“부족 전사들이 한 순간에 썰려 나가고 악마들을 도륙했습니다! 놈은 괴물입니다!”

오라이온은 그제야 사내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잘못 본 것이 아니더냐? 놈이 정말 칼로만 싸웠다고?”

“예, 대사교님.”

“낯이 익은 얼굴이더냐? 갈색수염 모겐이나 도끼왕 케르드. 그 정도는 되어야 그 수준에 맞다.”

“아니오··· 녀석은 젊은 전사였습니다.”

젊은 전사라···. 오라이온은 턱을 쓰다듬으며 시름에 잠겼다. 그런 무력과 용력을 가진 인물이 허공에서 툭 떨어졌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럴 만한 저력을 가진 부족이 아직 이 근방에 남아 있던가···. 투란다르는 이제 허울만 남았고, 팔렌다르는 지금 절체절명의 순간인 바, 외부에 병력을 급파할 여력이 남지 않았을 터.

다른 약소 부족들은 논외로 치고, 접경 지역 인근에서 기습을 감행할 수 있는 씨족들이 남았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용사가 있었다면, 어째서 침략 전쟁 당시에 나타나지 않았단 말인가.

“상관 없다.”

오라이온은 곧 머리를 털며 단검을 단단히 쥐었다. 그는 덜덜 떨며 거품을 물고 있는 제물에게 다가갔다. 이제 곧 주술이 완성되는 시점에서, 그에게 필요한건 단지 시간일 뿐이었다.

자신에 필적하는 마법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사. 에리크를 비롯한 대부분의 부족 병력들이 마을을 벗어난 이 상황에서 분명 그것은 위협적이었지만, 고작 그들 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죽음’이 이미 준비되어가고 있었다.

“남은 뱀들을 모두 데려가 시간을 벌어라.”

“예, 대사교님!”

오라이온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제물의 목젖 아래에 칼을 들이밀었다.

*

“이거 재밌군.”

페르난데스는 악마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대검을 어깨 위에 얹고 천천히 걸었다. 질퍽, 피와 지방이 엉겨붙은 바닥이 신발 밑창에 끈적하게 눌러 붙었다.

그는 피곤한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 보았다. 악마의 습격을 격퇴한 이후 지독한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곧장 걸어가던 차였다. 지리상 마을의 중심지. 번화가와 회관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으어어어···.

페르난데스는 자신을 바라보며 기괴한 신음소리를 내지르는 머리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길가 담장에 머리만 내어 놓고 있던 새빨간 두개골이 으스러지며 바닥에 굴렀다.

이런 식이었다. 담장 벽, 바닥, 이따금 보이는 건물의 외부나 지붕은 썩 유쾌하지 않은 색조로 덧칠되어 있었다. 피와 살점이 마치 피부의 욕창처럼 온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이따금씩 몇몇은 그런 상태로 살아있기도 했다.

내장기관이 꿀렁거리는 소리와, 그 안에서 억눌린 신음이 골목 어귀에서 들렸다. 어딘가에선 찢어지는 비명이 흘렀다. 감각 상으로는 제법 먼 거리에 있는 장소다.

디모니카의 청각은 극도로 예민했고, 그 탓에 그를 중심으로 이 마을의 거리와 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선연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소음과 비명 사이로 상상력이 덧칠되며 색체를 찾아가는 일은, 그다지 즐거운 과정이 아니었다. 페르난데스는 뇌리 사이를 엉겨 붙는 악마의 광기를 느꼈다. 정신 오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다. 대전쟁 말엽의, 악마에게 점령된 민가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죽음의 냄새가 사방에 자욱했다. 페르난데스는 그를 따라 주춤거리며 다가오는 전사들을 향해 말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시오.”

“하지만 우리 임무는···.”

“’나’의 임무겠지. 그대들은 항만에서 나를 기다리시오. 곧 돌아가야 할 테니.”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던 팔렌다르의 전사들이 내심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뒤를 돌아 달려나갔다. 사태가 어디까지 진행될 지는 모르나, 악마의 타락이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진행된 지역에서 일반인의 정신 오염을 막을 방법이 없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발을 떼고 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 마다 추억이 되살아나 그의 심장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죄책감일까? 아니, 아닐 것이다. 전생의 삶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건 반드시 위선이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앞에서 죄책감에 허물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감정은 오히려, 역겨움에 가까웠다.

사방에서 광기가 날뛰고 있었다. 지붕 아래, 골목의 저편, 그리고 일견 멀쩡해보이는 건물의 창살 안에서 악마의 숨결과 조롱, 그리고 타락의 신음소리가 흘렀다.

이곳은 더 없이 화려하고, 시끄러운, 그리고 동시에 죽어 있는 마을이었다. 사람의 팔다리를 엉성하게 이어 붙여 만든 거대한 마법진이 마을의 중심지에 놓여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어때, 참혹한가? 두려운가?”

그가 잠시 마을 중앙의 마법진을 바라보고 있자, 저 멀리 골목 아래에서 뱀처럼 기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닿을 때 까지 정신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칭찬해주마. 네 이름이 궁금하지만, 이젠 의미 없는 노릇이지. 뛰어난 전사여. 네 영혼은 위대한 어머니를 기쁘게 만들겠구나.”

골목의 그림자 안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단단한 근육으로 덮여 있는 거구의 사내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편안하고 자애로운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전생에도, 현생에도. 페르난데스는 땀과 피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반갑군. 오라이온 위빙랫.”

“···날 아는가?”

“인퍼머르.”

“오, 그 때의 그 청년이로군. 과연, 이단심문관이었다면 이런 짓을 저질러도 이해가 가지. 어디, 악마사냥꾼들에게도 두려움이란 것이 있었나 보군. 아니면, 슬픔인가? 희생된 제물들에 대한 연민인가, 사제?”

“아니.”

페르난데스는 인간의 시체로 만든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살이 찌푸려지고, 역겨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이나, 악마의 존재감에 대한 공포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역겨운 지 알 것 같군. 페르난데스는 대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어설퍼서 역겹군.”

“뭐?”

“소환하려는 대상을 보아하니, 마장급은 아니군. 군왕급? 그런 것 치곤 문이 너무 작게 기안된 것 아닌가? 제 3 중추 어절의 보강이 너무 약하군.”

“···너, 이단심문관이 아니었나?”

오라이온은 어떤 불가해한 대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응시했다. 수 초 안에 악마를 갈아버리던 무력, 그리고 지금 마법진을 파악하는 지식까지. 오라이온은 페르난데스의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마법진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일종의 기시감을 느꼈다.

그건, 악마를 소환해 본 적 있는 사내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오라이온은 고개를 내저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이란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동일하게 작용하며, 특히 마법이란 재능만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다.

항구를 덮은 안개, 자신에 필적하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적어도 그 만큼의 세월을 고스란히 비의를 탐구하는 데에 사용해야 하는 법이다.

페르난데스는 혼란에 빠진 오라이온을 바라보며 비죽 웃었다.

“해봐.”

“뭐라고?”

“한번 불러내 보라고.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오히려 두어 걸음 물러서며, 페르난데스가 고개를 까딱였다. 오라이온은 잠시 멍하니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광기에 젖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 하하하! 오만한 것. 네 명을 재촉하는구나! 오냐, 좋다. 네가 거부하더라도 이미 그럴 참이었다!”

오라이온의 손이 허공에 교차하는 것을 보며, 페르난데스는 픽 웃었다. 만트라의 각도도 어설프군. 이 시기가 놈에겐 전성기가 아니었던가?

세계를 멸망시킨 열다섯 악적이라는 위명을 얻기엔 적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천천히 팔짱을 낀 채로, 맥박치기 시작하는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사다르켈리사의 군왕급 악마라면, 누가 나올 지는 뻔했다. 페르난데스는 마법진을 찢으며 나타나는 검붉은 불꽃을 바라보며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쿠구구궁···.

불꽃 사이로 튀어나오는, 검은 비늘 덮인 손이 바닥을 짚었다. 까드드득, 짐승의 앞발을 닮은 손이 바닥을 긁으며, 불꽃이 찢어지듯 벌어졌다. 지옥 마력이 대기를 적시며 암녹색 연기를 피워 올렸다.

열병의 음울함을 담은 끈적한 온기가 페르난데스의 뺨을 핥고 지나갔다.

“크샤르락스. 오랜만이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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