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특수 작전 보고서 : 뱀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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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를! ‘그 자’가 오고 있습니다!’
막사 안에 감도는 침묵을 찢으며, 씨족 전사가 거칠게 휘장을 걷었다. 그는 두 사람이 서로 노려보며 침묵하고 있는 이 무거운 공기에 잠시 주춤하고는, 곧장 아에렌에게 다가갔다.
“그 남부인이 오고 있습니다. 야를.”
“그래. 들었다. 어디냐?”
“북문 인근입니다. 지금 이리로 데려 올까요?”
“아니, 내가 직접 가겠다. 앞장 서거라.”
아에렌은 코트를 걸치며 고갯짓했다. 군나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단한 놈이군.”
“그 지옥도에서 혼자 빠져나왔다는 것 말인가?”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그 녀석, 북문으로 오고 있잖아. 그 방향엔 적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러 일부러 돌아온 걸 거야.”
군나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팔을 한 바퀴 돌리며 당당하게 아에렌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디 그 소문 자자한 남부인을 직접 만나러 가 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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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썩한 인파가 경계초소의 곁, 마을로 향하는 입구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저 멀리에서 타다다, 하고 달려오는 키르하스를 바라보고는 미소 지었다.
“은공!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내가 무사하지 못하리라 의심했느냐?”
“그럴리가요! 하하···.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죠?”
키르하스는 달려와 안기려다 말고 급하게 멈춰 섰다. 그 말에 망토를 팔락이며 떼어내고는 프레이야가 폴짝 뛰어 내렸다. 그녀는 키르하스와 인파들 앞에 서서 양팔을 당당하게 들어 올렸다.
[이 몸으로 말할 것 같다면! 위대한 바니르 신족 중 가장 위대하신 몸. 에인헤랴르의 절반이 이 몸께 충의를 바치며, 모든 발키리들의 지도자이신 몸! 그래! 내가 바로 프레이야 바나디스다! 이 몸을—.]
-퐁!
그녀의 곁에서 한 순간 꽃망울이 화사하게 터져 올라왔다. 눈송이를 가르며 힘차게 튀어 오른 꽃봉오리들이 그녀의 손짓에 따라 동시에 만개하여, 순식간에 관문 초소의 앞은 꽃잔디가 펼쳐진 동산으로 변했다.
[경배해도 좋다!!]
키르하스는 뒤로 주춤 물러서며 활달하게 떠들어대는 프레이야를 노려 보았다. 은공이 또 여자를···? 그녀는 어딘가 배신감이 느껴지는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올려 보았다.
“은공 이게 대체, 아니. 저 여자는 정신이 좀 이상한··· 마녀인가요?”
“슬프게도 정말 신이란다 키르하스.”
“신··· 이요? 여신이라고요?”
키르하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프레이야를 노려 보았다. 어물거리는 묘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일반인만 못한 수준인 것 같기도 해서 혼란스러웠다.
저 멀리에서 아벨이 걸어오더니 꽃을 툭, 하고 땄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프레이야의 머리칼에 꽃을 꽂아 주었다.
“오랜만이구나. 바나디스.”
[린드부름!! 직접 보니 더 놀랍네! 네가 어떻게 살아있지? 정말 반가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세상에!]
프레이야는 해맑게 웃으며 아벨의 품에 안겼다. 아벨은 웃으며 프레이야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곧 고개를 들어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대도.”
“무얼. 나는 괜찮았다. 어찌 된 일인지 들어볼 수 있겠느냐?”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한 번에 하겠소. 별고 없으셨소?”
“걱정해 주어 고맙구나. 피곤할텐데, 어서 들어가자꾸나.”
그때, 마을 입구가 웅성거리며 인파가 반으로 갈라졌다. 사자의 갈기 같은 샛노란 머리칼이 이글거리고, 기백이 하늘까지 충천한 안광이 번뜩이는 여인. 아에렌이다.
씨족의 전사들이 그녀에게 복종을 표하며 허리를 숙이고 물러섰다. 그 광경을 보며 페이자쉬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군. 저 계집은 당년의 힘을 제법 깨우쳤나 본데?
‘대황야의 피에라넬과는 다른 케이스라고 봐야겠지. 아무래도 위기가 잦은 땅이니까.’
영혼의 질과 업을 쌓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이고, 모든 경험 중 가장 순도 높은 경험은 위기 속의 경험이다. 아에렌의 영혼은 대천사의 것. 그 격이 일부나마 깨어난다면 일반인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페르난데스는 시선을 돌려 그녀의 곁에 서 있는 낯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 또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한참 그와 눈을 마주치던 사내가 대뜸 도끼를 치켜 들고는, 그대로 집어 던졌다.
-콰아아앙!
대기를 찢어 발기는 강렬한 일격이다.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등 뒤로 손을 돌려 대검을 뽑아 궤적을 끊어 쳤다. 그 기세에 옷자락과 머리칼이 펄럭이고, 눈발이 사방에 흩어졌다.
그는 저릿한 손을 잠시 가늠하고는, 빙글 돌려 다시 대검을 납도했다. 적의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사내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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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가 갈라지고, 남부인의 모습을 본 순간. 군나르가 체득한 생존본능이 거칠게 비명을 질렀다. 그는 남부인의 반백 곱슬머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렁이는 음울한 푸른 눈에 사로잡혔다.
‘제기랄, 저건 무슨···.’
군나르는 눈이 좋았다. 다시 말해, 사람을 보는 눈이 좋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상대의 존재를, 외양이 아닌 보다 영적인 영역에서 파악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이 도시의 남부인들이 어딘가 뒤틀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쾌하고 당당하게 행동했지만, 그의 기저엔 경계심이 싹트고 있었다. 신의 가호를 입은 전사들이 바글거리고, 가장 약해보였던 계집애에게선 신의 직접적인 존재감마저 느껴졌다.
그러던 와중에, 이들 모두가 목놓아 기다리며 매일 매 순간 속삭이던 그 ‘남부인’이. 짐작컨데 남부인 전사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을 만한 녀석이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군나르의 심장은 호승심과 경계심으로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저건 괴물이잖아.’
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세상이 어둠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놈이 들쳐 업고 왔던 짐짝에서 여신이 튀어 나온 것은 물론 놀라운 일이지만, 그 놀라움이 페르난데스를 본 순간보다 더 크진 않았다.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지고, 세상에 오직 놈과 자신만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씨족을 이끌고 하자트 카잘의 악마들과 맞서던 그에겐, 악마의 존재감은 오히려 익숙한 편에 속했다.
그러나 저 사내. 페르난데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악마의 것이라기엔 과하게 정순했다. 냉혹하고, 침착하고, 낮게 가라앉은 살의와 광기가 저 심연 너머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힌 군나르는 대뜸 도끼를 던지고 말았다.
-카앙!
십수 년간 갈고 닦은 도끼 투척이 가벼운 한 수에 무마되고, 놈의 이글거리는 눈이 군나르의 눈을, 그리고 그 너머의 심장을 움켜 쥐었다. 군나르는 어금니를 깨물며 옆에 서서 당황하고 있는 아에렌에게 속삭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은 네가 한 것 같은데, 군나르? 갑자기 내 손님에게 무슨 무례지?”
“손님? 넌 네 씨족에 괴물을 들였어.”
-화륵.
순간 그의 시야가 다시 밝아졌다. 압박감이 가시고, 군나르는 눈을 꿈뻑이며 어느새 다가와 그를 바라보는 페르난데스를 발견했다. 한 뼘 이상 작은, 호리호리한 체구. 당장 툭 치면 부서트릴 수 있을 것 같은 허술한 외관···.
“괴물이라.”
그가 속삭이는 순간, 군나르는 그의 입가에 맺혀 있는 미소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척, 페르난데스가 손을 내밀었다. 군나르가 멍하니 그걸 바라보고 있자, 페르난데스가 그의 빈 손을 움켜쥐고 천천히 흔들었다.
“어, 엇?”
“반갑군. 자네 이름이?”
“구, 군나르. 군나르 비그르드선.”
“방금 일은 문제 삼지 않기로 하지. 우리가 문제를 삼아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으니.”
페르난데스는 딱딱하게 굳은 군나르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군나르는 작게 흡, 하는 소리를 냈다. 그는 아에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로들을 소집해 주시오. 상황을 설명하지.”
“···좋아. 내 막사로 오도록 해. 그리고 네 친구들도 찾아가 보고. 해안가에 있을 거야.”
아에렌은 군나르와 페르난데스를 힐끔거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내들이란. 만나면 서열을 잡아 놓으려 항상 으르렁거린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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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피스는 세인트메탈 장검에 숫돌질을 하고 있었다. 다른 이단심문관들 또한 그와 함께 무장을 닦아내거나, 또는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씨족의 전사들은 그들을 경계했고 그들은 굳이 분쟁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해안가 외곽에 머무르고 있었다.
“형제님.”
칼을 다듬던 제피스가 팔을 멈추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을의 입구에서 페르난데스가 천천히 걸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2급 이단심문관,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작전 수행에 보고 승인 절차가 누락된 점. 그리고 형제님들을 이 만리타향까지 오도록 한 점에 교화를 청합니다.”
“일어나게. 형제. 답지 않은 과례로군.”
제피스는 단단한 손을 뻗어 페르난데스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디모니카 형제님들만 오셨군요.”
“엔마기카 형제도 한 사람 있다네. 지금 방 안에서 천문도를 그리고 있지.”
“수도원장님께서 직접 파견 임무를 하달하신 겁니까?”
“여전히 눈치가 빠르군.”
제피스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악마를 사냥하겠다고 보고서를 올린 시점에서 페르난데스는 이단심문청의 전술 지원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굳이 보고서에 파병 요청을 붙이지 않은 이유는. 이들 중 생환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며, 이는 곧 그가 제피스의 눈 앞에 무릎 꿇은 까닭이다.
-왜 슬퍼하지? 이들은 쓸모 많은 기물인데.
페이자쉬의 말에 페르난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다가오는 다른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제피스의 눈 앞이라 자중하고 있었지만, 디모니카 형제들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그것이 죄책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들을 사지로 이끌어야 한다는 종류의 죄책감이. 이 순간 페르난데스는 눈 앞에 있는 사내가 30년 째 이단심문관으로 근속한 베테랑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쓸모 없는 자책일세. 형제.”
“제피스 형제님.”
“이미 수도원장님께서도 하셨으니. 굳이 반복하지 말게나.”
제피스의 출정 전날, 베오른이 직접 그를 불러 건넨 말이 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대악마를 죽이겠다는 페르난데스의 계획이 적중한다면. 물질 세계의 종말을 막아내는 가장 큰 한 수가 될 것이니.
이에 제피스가 했던 말은, 이단심문관들의 짧은 기도문이었다.
‘천국에도 우리 자리는 있겠지요. 형제님.’
이단심문청은 페르난데스의 판단을 신뢰했다. 기실 믿지 않을 방도가 없다. 그가 이룬 업적들이 곧 그의 신뢰를 증명하고 있으니. 따라서 제피스는 웃으며 레드존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 모인 이단심문관들 중 그렇지 않은 이가 없었다.
“저는 형제님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상의 안온과 화평을 바라지 아니하니.”
“영광스러운 희생이 아니라, 비참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데우스 불트(Deus Vult : 신의 뜻대로)”
“그렇다면 안젤로 형제. 작전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페르난데스는 굳은 눈으로 제피스를 바라보았다. 제피스는 그의 시선을 마주보며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안젤로일세. 형제여. 우리는 이 임무에서 주 베이타서스의, 그리고 자네의 검일세.”
제피스는 품에서 두루마리와 강철 막대를 꺼내어 페르난데스에게 건넸다. 베오른의 인장이 박힌 임무 허가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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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테스크포스 팀 – 음성 기호
1)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 안젤로(A)
2) 디모니카, 제피스 시라다스트 – 바르도(B)
3) 디모니카, 파비아노 메이다스 – 카를로(C)
4) 디모니카, 세르지오 필레르모 – 다리오(D)
5) 디모니카, 브랜드 차일로스 – 에르미노(E)
6) 엔마기카, 사르벨리오 알론토 – 펠리치아노(F)
악마를, 이단을, 마녀를 불태우리라.
최종 승인 :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장 베오른 실드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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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른이 직접 눌러 쓴 필치가 양피지에 균열을 남기고 있었다. 그가 어떤 심정으로 이 명단을 작성했을 지 역력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일반적인 보고서라면 결코 기록되지 않을 문장이 있었다.
[형제여, 우리 가는 길 언제나 같았으니.]
[다시 만날 때까지 기도 드리세.]
[교단의 성물을 허가한다.]
거기까지 읽고, 페르난데스는 뻑뻑한 눈가를 쓰다듬었다. 묵직한 강철 막대···. 이건 베오른이 애지중지하는 드워프 썬더쓰로워였다. 물질 세계에 몇 정 남지 않은 고대 유물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썬더쓰로워를 소드벨트에 걸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피스가 뿌듯하게 웃었다.
“이제 악마를 불태우러 가 보세.”
“예,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