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93화 (194/388)

193. 미드가르드오름 (2)

“그보다, 페르난데스. 대체 저기까진 어찌 갈 생각이더냐?”

아벨은 이그드라실을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사다르켈리사의 음모와 계획이 무엇이든, 그녀와 대적하기 위해서라면 그녀의 영지로 향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법 멀리 떨어진, 심지어는 공중에 뜬 섬 위에 있었다. 설령 지상에 안전히 착지할 방법을 찾는다 하더라도, 지상에 들끓는 악마들을 관통해 올곧게 직선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은 망상에 가까웠다.

“린드부름. 지금 용이 창공이 두렵다 하는 것인가?”

“그녀를 꾀어낼 생각 하지 마라. 로프트.”

로프트가 비웃듯이 말하자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용의 활공이라면 저 정도의 거리는 두어 시간 안에 도달할 수야 있겠으나…… 그 대가가 그녀의 목숨이라면 그건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로프트의 말에 아벨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잠시, 아직도 굳은 피가 머리칼에 엉켜 있는 키르하스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 어린 아이도 제 생명을 아끼지 않는데, 정작 내가 그래서 되겠느냐. 좋다.”

“각오는 훌륭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오.”

“다른 방법이 있더냐? 당장 지상에 내려가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 같은데.”

“아니, 반드시 방법이 있소.”

페르난데스는 싸늘한 눈으로 로프트를 바라보았다. 로프트는 싱글벙글 웃으며 아벨과 페르난데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오, 그 방법이 내게 있단 말인가?”

“나는 애당초 관문을 홀로 넘으려 했다. 로프트.”

“그랬지, 그랬지. 자, 그래서?”

“관문은 네가 열었고, 네 목적은 사다르켈리사의 죽음이겠지.”

“죽음? 오, 아니. 영면…… 영락…… 아, 그래. 화내지 말라고, 친구. 농담이야. 자네 말이 맞네. 그래서?”

로프트가 말을 돌리려 하자 페르난데스가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 기세에 찔끔한 로프트가 과장스럽게 손을 휘적거렸다.

“나 홀로 사다르켈리사의 권역에 도전할 수 있도록, 적어도 권역에 닿을 방법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곳에 도달하도록 했을 거야.”

“그건 억측 아닌가? 내가 저 용의 접근을 보고 계획을 급하게 수정했다면 어쩔 텐가?”

“한 사람의 힘도 아쉬운 순간에, 용의 힘을 고작 비행에 낭비할 계획을 짰다라…… 납득이 가는 변명이군.”

“하하, 하하하! 좋아. 좋군. 친구, 이래서 머리가 좋은 친구는…….”

로프트는 껄껄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는 곧 하늘을 향해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그의 드러난 앞니 사이에서 흘렀다. 청각이 예민한 키르하스는 귀를 살짝 눌러 가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퍼드드득.

희미하게, 깃발이 펄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가장 먼저 그 소리를 눈치챈 것은 페르난데스였다. 그는 하늘 너머를 향해 휘파람을 길게 늘여 부는 로프트와,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퍼드드득!

곧 작은 매 한 마리가 삐익, 하는 소리를 내지르고는 로프트의 팔뚝 위에 앉았다. 로프트는 손가락으로 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친구, 오랜만이야. 지난번엔 내가 그냥 가서 서운했나?”

-삐익.

“너무 타박하지 말아. 베드르. 이번엔 오래 있을 테니까. 자, 내 새 친구들을 소개하지.”

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페르난데스와 일행들을 훑어보았다. 매는 곧 머리를 누르는 로프트의 손가락을 톡, 하고 쪼았다. 로프트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며 키르하스가 쌀쌀맞게 말했다.

“참 좋은 탈것이군요.”

“오, 새를 보는 눈이 있군?”

“……이건 비꼰 겁니다만.”

“나도 마찬가지일세!”

로프트는 흔쾌히 소리치고는 팔을 털어 매를 날려 보냈다. 거친 바람이 몰아치며 그의 더벅머리를 흩어 놓았다. 그는 연극을 하듯 팔을 활짝 벌렸다. 바람이 점점 더 거세어지고, 깃발 나부끼는 소리가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퍼드드득!

“자, 따라 오게나. 친구들!”

그는 다이빙을 하듯 팔을 벌린 채로, 절벽 끄트머리에서 훌쩍 떨어져 내렸다. 키르하스가 앗, 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절벽으로 달려 로프트를 확인하려 들자, 페르난데스가 재빨리 그녀의 팔을 움켜쥐었다.

“앗?”

“기다려.”

-퍼드드드득!!!

깃발이 나부끼는 소리가, 아니.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더 크게 들렸다. 페르난데스는 거칠게 불어닥치는 바람을 옷자락으로 막으며 키르하스를 그 안에 두었다.

그는 바람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곧, 그림자가 길게 지며 하늘이 어둡게 물들었다.

“극적인 등장이로군.”

“난 연극의 신이 아닌가. 친구.”

-퍼드드득!

절벽 아래에서 솟아오른 그림자를 바라보며 페르난데스가 웃었다. 그림자의 꼭대기에 로프트가 앉아 있었다. 역광 아래, 그림자 사이에서 노란 눈이 반짝이며 빛났다.

거대한, 집채만 한 매가 그들을 내려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로프트는 매의 머리 위에 앉아 목덜미를 마구 쓰다듬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잔뜩 굳어 있는 표정이 보기 좋구만! 빨리 타게! 이그드라실로 우릴 데려다 줄 탈것이 필요하다지 않았나?”

“고, 공격하진 않겠죠?”

“이 아이는 누구보다 라그나로크를 막고 싶어하는 친구일세. 그런 걱정은 말게. 소개하지, 바람의 왕. 눈보라의 군주. 창공의 신. 내 친구……. 흐레스벨그일세!”

-퍼드드득!

거대한 매는 로프트의 말에 따라 짐짓 고개를 빳빳이 들며 날개를 촥 펼쳤다. 그 모습을 보며 페이자쉬가 이죽거렸다.

-왜 친구인지 알겠군.

‘동감이야.’

* * *

거대한 체구와 뽐내는 듯 과장된 몸짓에도 불구하고, 활강은 매끄럽게 이어졌다. 페르난데스는 매의 등허리 위에 앉아서 깃털을 쥔 채로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그리고 저 너머 여전히 배경으로만 보이는 이그드라실을 바라보았다.

“일 년 전이 생각나지 않느냐?”

그의 등에 살짝 몸을 기대어 오며, 아벨이 속삭였다. 그녀는 활강의 거친 바람소리에 묻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인퍼머르, 가이메른의 함선을 부수던 시절 말이다. 그것이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구나.”

“많은 일들이 있었지.”

“그래. 많은 일들이 있었지. 나는 처음만 해도 별다른 욕심이 없었다.”

아벨은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별이 뜨고, 다시 지고……. 내 삶의 모든 빛나는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꽃과 비눗방울, 그리고 불꽃처럼 한순간에 사그라드는 것들이었다. 항구의 지하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차라리 내 삶이 유한하기에 비로소 아름다워졌노라 생각했다. 미련이 없었지.”

“지금은 어떻소?”

“오래 살고 싶구나.”

아벨은 아스가르드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은 석양이 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역겨운 지옥 마력의 기척도, 이 거대한 매의 날개 아래로 쓸려 내려가며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고. 그들은 그저 상쾌한 저녁 바람을 맞고 있었다.

“아주 오래. 하지만 너무 과하진 않을 정도로 오래……. 그래, 너희 인간의 삶. 그 정도만큼. 불길처럼 빛나고, 꽃처럼 피어나고, 비눗방울처럼 터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아벨의 몸이 가까웠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그녀의 체온과 체취보다 그녀의 몸에 남아 있는 신성과 마력의 잔량에 집중하고 있었다. 백 년? 용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그녀는 인간의 수명을 지니고 있었다.

세월에 따라 늙어갈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인간의 모습은 힘을 비축하기 위한 편의성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그러나 그녀의 수명은 결코 용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석양이 아름답구나.”

“해가 지지 않는군.”

“……뭐라 했느냐?”

“관문을 처음 건넜을 때 이미 황혼이었소. 우리가 하늘을 날기 시작한 이후로도 계속 황혼이었고, 두 시간은 넘긴 지금까지도 황혼이지.”

디모니카의 감각은 원한다면 시간을 초 단위로 계측할 수 있었다. 사실 디모니카가 아니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시간을 의식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재주였다.

연금술의 기본은 화합물의 정확한 계량과 측청값이었고, 전생의 페르난데스는 서른이 지나기 전에 기초 연금학은 이미 통달했었다. 그는 시간을 초 단위로 가늠할 수 있었다.

“그다지 낭만적인 대답은 아니구나.”

“낭만은 끝나고 마저 찾지. 마력이 요동치고 있소. 저 구름 아래에서.”

페르난데스는 매의 날개 아래에 낮게 깔린 붉은 구름들을 가리켰다. 지상의 열기와 타락이 증기처럼 솟아나 구름이 평야처럼 드넓게 뻗어 있었다.

그리고 페르난데스가 지목한 지점에서, 희미하지만 소용돌이처럼 맴도는 기이한 구름이 보였다. 아벨은 눈을 가늘게 뜨고 구름을 노려보았다.

“이곳의 풍광과 기상이 낯선 것은 외려 자연스럽지 않겠느냐?”

“단순히 자연 현상이라면 차원 간의 차이점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그럴 것 같진 않군. 로프트!”

매의 머리 위에 가부좌를 튼 채로 바람을 즐기던 로프트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페르난데스가 가리키는 것을 보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거친 바람소리 탓에 서로 거의 소리를 질러 가며 대화를 나눠야 했다.

“바로 봤네! 저기가 바로 목적지일세!”

“사다르켈리사에게 곧장 가는 것이 아니었나?!”

“하하,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이고. 라그나로크는 대단히 구체적으로 예언된 종말이라네! 일이 그다지도 수월했다면 우리가 이리 고생했을 필요가 있었겠는가!”

로프트는 그렇게 소리치며 매의 목덜미를 토닥였다. 매는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구름 안으로 곧장 떨어져 내렸다.

“꽉 잡아! 요르문간드를 죽일 무기를 찾으러 갈 테니!”

-퍼드드득!

그의 마지막 말은 날갯짓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구름은 붉은 석양과 짙은 어둠이 뒤섞인 기묘한 색조를 띠고 있었고, 소용돌이의 심부에선 번갯불이 튀기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구름이 천천히 갈라졌다. 로프트가 이 매를 바람의 왕이라 부른 이유가 있었군. 페르난데스는 매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구름이 찢어지며 얼어붙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석양이 그들의 등 뒤로 사라졌다. 짙은 구름 사이사이에서 전류가 튀며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콰과과광!

매가 급격히 제동을 시작했다. 곧 구름의 끝에서 번개에 비치는 작은 섬이 드러났다. 섬의 외곽에 휘몰아치는 번개 구름들을 광원 삼아서, 섬의 윤곽이 또렷하게 보였다. 기둥들이 꽂혀 있는 삭막한 바위섬이었다.

-퍼득!

매가 섬의 끝을 움켜쥐며 멈췄다. 로프트는 매에게 작게 속삭이고는 목덜미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건들거리는 발걸음으로 곧장 섬 가운데에 박힌 기둥에 다가갔다. 번개가 눈부시게 몰아치는 기둥을 향해서 그가 손을 쭉 뻗었다.

“잘 지냈나, 내 형제! 안부가 궁금해 왔는데, 건재해 보여 다행이로군!”

[로키이이이—!!]

-콰르르릉!

기둥 뒤에서 거대한 고함과 함께, 번개 한 줄기가 그의 눈 바로 앞에 내려 꽂혔다. 바위가 움푹 꺼지며 번개를 이루고 있던 마력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매에서 내린 페르난데스는 그 광경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번개가 담고 있는 저력이 심상치 않았다.

“아하하, 형제여. 여전히 인사가 거칠군!”

[감히! 감히! 너, 이 더러운 요툰! 네가 감히 나를 형제라 부르느냐!]

“인종차별적인 언사야. 조심하게나, 형제!”

[이 배신자. 꺼져, 내가 널 죽이기 전에!]

“방금 죽이지 그랬나. 응? 자네도 내가 필요하고, 나도 자네가 필요한데. 우리 공연히 감정싸움은 하지 말기로 하지.”

[빗나간 거다!]

-콰르르릉!

기둥 뒤에서 소리치는 사내가 어금니를 으득, 깨무는 소리가 들렸다. 곧 번개가 휘몰아쳐 로프트의 주위를 할퀴고 지나쳤다.

“그러지 말고 우리 대화로 해결하자고! 형제여, 내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네!”

[친구……? 꼭두각시가 필요했겠지!]

-쿵!

기둥이 박살 나며 거의 사람 머리만 한 주먹이 나타났다. 기둥을 박살 낸 주먹이 곧 뒤로 물러나 사라졌다. 기둥의 잔해가 걷히고, 그 아래로 일반인의 두 배는 족히 됨 직한 거인의 실루엣이 보였다.

-콰릉!

번개가 실루엣을 휘감고 타올랐다. 펑퍼짐한 낡은 로브를 입은 사내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로브의 후드 아래에서 새파랗게 타오르는 안광이 보였다.

“이봐, 형제. 화가 많이 난 건 알겠는데……. 우리 조금 더 건실한 목표를 위해 노력해 보지 않겠나? 이를테면 요르문간드를 죽이고 라그나로크를 막는 것 말이야.”

[요르문간드! 이 더러운 서리거인! 네가 감히 그 이름을 입에 담아! 내 앞에서!]

사내는 바위 기둥들을 밀어내고 로프트의 등 뒤에 서 있는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일행을 훑어보다가 이채가 서린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내려 보았다.

[아주 근본 없는 것들을 데려온 것은 아니었군.]

“그치? 내가 또 사람 보는 눈 하난 확실하지 않나.”

[너희, 필멸자들이여. 너희 세계로 넘어갈 방도를 알려줄 테니 떠나라. 이 잡종 거인의 말을 들을 필욘 없으니.]

사내는 로프트를 완전히 무시하며 페르난데스에게 말을 걸었다. 페르난데스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사내의 안광을 마주 올려보았다.

“어디로 말이오? 이 세계가 멸망한 이후에, 다른 세계들이라고 안전할 수 있을까. 정해진 종말을 그저 막연히 기다리며 무덤이나 파고 있으란 말을 하는 거요?”

[너, 작은 인간아. 너는 에인헤랴르처럼 말하는구나. 마음에 들었다.]

후드의 그림자 아래에서 사내가 클클거리며 웃었다.

[그러니 조언해 주마. 저 거인은 믿을 수 없다.]

“믿은 적 없소.”

“그건 상처 받는데, 친구?”

[저 배신자가 뭐라 말하며 너를 꾀어냈지? 힘인가? 명분인가? 정의인가? 그게 무엇이었든 저 잡종은 감히 그를 입에 담을 수 없다. 이 사달은 결국 저 잡종이 일으킨 것이니.]

“……뭐?”

사내는 페르난데스의 반응을 살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라그나로크, 내 아버지의 타락. 에인헤랴르의 멸망, 아스가르드의 붕괴. 요르문간드의 탄생까지……. 저 빌어먹을 배신자가 일으킨 일이란 말이다. 어린 인간아, 미드가르드의 구원을 원한다면 미드가르드에서 구하라. 아시르 만신전은 저 요툰에 의해 몰락했으니. 너희가 기도할 수 있는 다른 신을 찾아라.]

이게 다 무슨 소리요? 페르난데스가 그런 눈으로 로프트를 바라보자. 로프트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음…… 뭐. 라그나로크는 어차피 일어날 일 아니었나. 형제.”

[닥쳐.]

“어차피 일어날 거라면 변인을 통제하는 편이 막아 내기 수월하지 않겠느냔 말이지.”

[입 닥치라고 했다.]

로프트는 그 말에 픽 웃으며 페르난데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음, 친구. 라그나로크는 대단히 구체적으로 예언된……. 예정된 종말일세.”

“그래서?”

“모두가 뒤질 종말이 떡하니 예언되어 있는데, 막아야 하지 않겠나? 에인헤랴르를 위해 북부를 희생한 것처럼 말이야. 어떤 방식으로라도 살아남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거지.”

“……그래서?”

“그러니.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종말보단, 확실하고 구체적이며 눈앞에 당면한 종말이 더 막기 쉽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네.”

그의 말에, 등 뒤에 서 있던 아벨이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충격에 뜨인 눈으로 로프트를 바라보았다.

“설마, 사다르켈리사…… 그녀가……. 갑작스레 지옥 마력에 심취했던 것이…….”

“음. 맞아. 내가 타락시켰다네. 이천 년 전에. 나는 요르문간드가 필요했고, 그 계집은 힘이 필요했으니. 서로 합의하의 관계였으니 그렇게 날 바라보지 말게. 그냥, 내 예상보다 그 계집이 너무 강했던 것이 문제……!!”

-콰아아앙!

로프트는 갑작스레 날아든 주먹에 튕겨 사라졌다. 로프트를 휘둘러 친 사내는 주먹을 툭툭 털며 끙 하고 이마를 감싸 쥐었다.

“저 스스로 저지른 짓을 치우고자 우릴 꾀어냈다 이 뜻이었군. 그대는?”

[맞아. 저 빌어먹을 자식이 생각하는 것이 으레 그렇지. 종말 전에 돌아오겠다고 미드가르드로 떠난 뒤 거의 천 년을 잠적했다가 나타난 거야. 그리고 놈이 나타나기 직전쯤에 정말로, 종말이 시작되고 말았지. 이게 우연이었겠나?]

사내는 후드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마구 머리칼을 헝클며 끙끙거리다가 불쑥 손을 뻗었다. 페르난데스는 엉겁결에 사내의 손을 잡았다.

[정말 돌아가지 않을 생각인가, 어린 인간? 종말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고, 살 가능성은…… 없어. 나도 그저 여기에 숨어 있는 것이 전부였네.]

“그저 살기 위해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소.”

[좋아. 네가 바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겠지. 요툰?]

부서진 기둥 위에 앉아서 씩 웃고 있는 로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 아주 좋군. 아시르, 인간, 요툰, 용, 수인, 그리고 매라……. 요르문간드라도 사냥할 만한 구성 아닌가. 친구들?”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로프트는 클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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