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94화 (195/388)

194. 미드가르드오름 (3)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날개 아래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거친 바람 속에서도 사내의 목소리가 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듣고, 로프트는 껄껄 웃었다.

“형제! 그러게 천 년간 살이라도 빼지 그랬나! 흐레스벨그 등에 타기엔 자네 몸이 너무 큰 탓 아닌가!”

[살이 아니라 근육이다. 입 닥쳐!]

“원, 말만 하면 닥치라니 말도 못 붙이겠구만!”

로프트는 낄낄거리며 매의 목을 툭툭 쳤다. 매는 삐이익, 하고 울더니 방향을 틀어 몸을 흔들었다.

[멀미가 난다!!]

“아시르씩이나 되는 양반이 멀미라니! 어디, 물푸레 뿌리라도 달여 줄까? 응?”

로프트의 말에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름 사이에서 번개 한 줄기가 날아들어 로프트의 등허리를 내리찍었다. 로프트는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 질렀다.

“형제! 흐레스벨그가 형제를 놓으면 형제는 죽네!”

[그러면 이 빌어먹을 금수도 죽이겠다!]

비행 내내 이 둘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매는 충분히 컸지만, 로프트는 등에 거인을 앉힐 만한 자리가 없다며 끝끝내 매에게 사내를 붙잡고 비행하라 말했다.

사내는 매의 발에 잡힌 채로 대롱거리며 날아야 했고, 이따금 로프트나 매가 장난스레 몸을 흔들 때마다 고함을 질러댔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키르하스가 낮게 큭큭거렸다. 그건 다행이었다. 그녀의 영혼이 지옥 마력에 타락하지 않았다는 뜻이었으니.

“키르하스, 괜찮나?”

“예, 이 정도는 별것 아닙니다.”

강인한 아이다. 페르난데스는 키르하스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려다가 손을 내렸다. 적절하지 못한 짓이었고, 그녀의 연심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자칫 그녀를 이용하게 될 수도 있었다.

-주책이군.

‘주책 부릴 만한 나이 아닌가.’

페이자쉬가 클클거렸다. 곧, 매가 구름 위로 솟구쳤다. 짙은 구름이 발아래에 넓게 깔려, 붉은 석양이 내려 쪼이는 거대한 평야나 바다처럼 보였다.

비행 도중, 로프트의 외침이 들렸다.

“자, 준비하게!”

“아직 거리가 먼데?”

“이그드라실 근방엔 괴물이 날아다녀 공중은 위험하다네! 흐레스벨그나 나야 살겠지만. 자네들은 날 줄 모르지 않나!”

로프트는 그렇게 말하며 매의 목을 토닥거렸다. 매는 한 번 길게 울고는 구름 아래로 강하를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감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뺨과 머리칼에 온통 달라붙는 물안개를 닦아내며 정면을 노려보았다. 구름 아래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쿠르르릉!

번개가 사방에 산란하고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구름 아래는 어둠에 덮여 있었다. 밤의 어둠뿐만이 아니라, 이제 한껏 가까워진 이그드라실의 거대한 나뭇가지가 만들어 낸 그늘이었다.

그리고 저 아래, 먼발치엔 용암이 흐르는 부서진 평야와 그 위로 늘어선 수많은 막사들이 보였다.

마치 횃불처럼 용암이 흐르고, 그 광원을 중심으로 막사들이 모여 있었다. 물질 세계에서 보기 쉬운 양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에겐 익숙한 양식의 막사였다.

그건 데미드라코들의 전투 막사였다. 그들의 발아래로 데미드라코들의 전투 군영이 늘어서 있었다. 악마들의 군단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관문이군.’

-물질 세계로 통하는 문이 아니야.

‘아마도…… 다른 악마들의 영지로 나아가는 문이겠지.’

로프트가 말하길, 비프로스트 관문은 차원을 넘는 기능이 있다고 했다. 특정 차원으로 향하는 일방적인 문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차원의 벽을 뚫고 고정된 틈을 벌려내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목표 차원이 비단 물질 세계뿐만이 아니라면, 비프로스트 관문은 다른 악마의 영지와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대악마들은 결코 서로의 아군이 아니다. 지옥은 크게 네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건 악마가 물질 세계를 휩쓸던 종말의 순간에도 변치 않는 절대적인 분쟁이었다.

지옥의 전역에선 피의 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이 창세 이래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각기 다른 계파의 악마들이 서로를 향해 벌이는 영원한 전쟁이.

그리고 이곳, 아스가르드는 사다르켈리사의 전초 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칼라드펠린이 대체 어떻게 사다르켈리사를 아직까지 봉인하고 있는 거지?’

-사다르켈리사의 봉인지는 선신 만신전의 작품이야. 고작 저런 하급 악마들로 해주할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이 아니지.

‘전생 시절 사다르켈리사가 봉인을 깨어낸 순간은…….’

-칼라드펠린이 죽었을 때뿐. 그래, 아마도 천상룡의 목숨이 봉인의 조건이었겠군.

매가 점점 낮게 날며, 지상에서 소란이 들렸다. 짙게 깔린 어둠 아래를 비행한다 하더라도, 악마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호각 소리나 뿔 나팔 소리가 그들의 비행을 따라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너무 요란한 것 아닌가?”

“보탄의 궁이 머지않았어! 어차피 들킬 것, 최대한 빨리 돌파한다!”

매는 점점 속도를 높이며 날았다. 지상에서 발사하는 투창이나 화살 따위는 날갯짓 바람에 막혀 튕겨 나가거나 밤하늘 어딘가로 날아갔다.

-삐이이익!

매가 날카롭게 울었다. 거친 날갯짓에 구름이 산산조각 나며 석양이 드러났다. 어둠이 깔린 평야에 빛이 한 줄기 길게 이어지며, 마치 긴 길을 뚫어내는 것처럼, 또는 유성이 바닥을 낮게 나는 것처럼 보였다.

저 멀리, 거대한 요새가 보였다. 돌과 강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요새가 이그드라실의 밑동 근처에 우뚝 솟아 있었다. 아직 그리 가깝진 않았지만, 이 속력으로 나아간다면 머지않아 도착할 것 같았다.

“흐레스벨그! 위!”

-삐이이익!!

그때 갑작스레 매가 울었다.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 바로 위에서 구름이 찢어지며 비늘 덮인 발이 불쑥 솟았다. 매가 급격히 몸을 뒤틀며 피하려는 순간, 구름에서 튀어나온 발이 재빨리 매의 목을 움켜쥐었다.

“니드호그!! 어째서 이 고도까지!”

-콰아아앙!

급격한 제동에 매의 등에서 몸이 튕겨나갈 뻔했다. 페르난데스는 한 손으로 매의 깃털을 꽉 움켜쥐며, 재빨리 왼팔을 뻗었다. 바로 등 뒤에 있던 아벨을 잡아채고 그 뒤를 바라보았다. 어둠과 빗물, 그리고 혼란 탓에 시야가 거칠게 흔들렸다.

‘제길.’

상황을 온전히 인지하기 어려웠다. 매가 목을 움켜쥔 발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고, 공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니 등 뒤에 탄 입장에선 위치도, 방향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으아아악!!]

매의 발에 잡혀 있던 사내가 거친 소리를 내질렀다. 페르난데스는 아벨을 단단하게 붙잡고는 두 다리에 힘을 강하게 주었다. 그는 빠르게 외쳤다.

“아벨, 날 믿소?”

“무, 물론!”

“가만히 있으시오!”

다른 말을 건넬 시간이 없었다. 그는 아벨을 한 손으로 공중에 들어 올렸다. 그녀의 등 뒤에 키르하스가 간신히 매달려 헐떡이고 있었다. 빗물에 미끄러워진 깃털이 그녀의 손에서 점차 빠져나가고 있었다.

“잡아라!”

“소, 손을 뗄 수 없습니다!”

-삐이이익!

매의 울음소리, 거친 날갯짓, 사방에서 쏘아져 오는 창과 화살, 그리고 구토가 올라올 정도로 거칠게 움직이는 시야……. 페르난데스는 어금니를 강하게 씹으며 힘껏 팔을 휘둘렀다.

“꺄악!”

그는 팔에 매달린 아벨을 매의 등에 다시 앉히며 그 반동으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아벨을 놓고, 키르하스를 잡으려는 순간—

“꺄아아악!”

매가 거칠게 몸을 틀며 키르하스가 공중에 떨어졌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들이 느리게 흘러갔다. 키르하스의 손끝이 잡히기 직전에 허공을 미끄러지며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겁에 질린 눈과 애처로운 손이 보였다. 페르난데스는 허공을 움켜쥔 자신의 손, 그리고 바닥까지의 거리를 재빨리 살폈다.

떨어지면 반드시 죽는 높이다. 할 수 있을까? 판단할 시간이 없었다. 키르하스를 여기에서 잃을 순 없었다.

-안 된다.

‘키르하스를 살려야 해.’

-저 계집은 도구야. 도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머저리들이 하는 짓이다. 저 계집이 필요한 이유는 카라드스카르의 북진 전쟁을 막아내기 위한 방패막이에 불과했어. 그건 우리가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에 포함되지 않는다.

목적보다 이유가 더 중요하다. 그가 처음 키르하스를 구하던 그 시절, 작년 지하수로에서 그녀에게 건넨 말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 그리고 지금의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멈춘 것같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페르난데스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아벨에게 속삭였다.

“밑에서 봅시다. 안전하게 내려오시오.”

“……페, 페르난데스? 페르난데스!!”

그는 그대로 매의 허리를 박차고 지상을 향해 도약했다. 멍청한 것, 아둔한 것, 맹목적인 것. 옆에서 페이자쉬가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반박할 시간 따윈 없었다. 반박할 말이 부족하기도 했고.

“키르하스!!”

그러니 외쳤다. 이곳을 보라고.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생존 본능이 비명을 지르며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키르하스는 비명을 내지르며 추락하고 있었다.

저 바보. 적어도 추락을 대비하는 낙법이라도 치고 있어야 했다. 그런다 한들 멀쩡할 수 있겠냐마는.

“잡-아-라-!”

“은공!!”

그의 외침에 키르하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우선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힘껏 끌어 올린다!

“은공! 어째서!”

“도구로 쓰여도 좋다 하지 않았느냐!”

“네, 네?”

지상이 코앞이었다. 페르난데스는 한 손에 키르하스를 감싸 올리고 허리를 틀었다. 전신 근육에 피가 돌고, 생존 본능이 심장을 거칠게 강타하며 혈류의 압력을 끌어 올린다. 아드레날린이 펌핑하고 시간이 더, 더 강렬하게 느려졌다.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만 한다. 희생은 최소한으로, 목적은 최대한으로. 이것이 평소 그가 지니던 마법사의 정신이었고, 그건 필요한 희생이라면 거리낌이 없으리란 각오를 뜻하기도 했다.

“더 필요한 도구를, 쓸모없는 도구와 바꾸는 것이다!”

그건 키르하스가 아니라, 페이자쉬에게 건넨 말이었다. 페이자쉬는 그 말을 들으며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내가 너다. 페르난데스. 그러니까, 그건 자기변명에 불과해.

키르하스를 품 안에 감싸 쥐고, 있는 힘껏 허리를 틀었다. 강력한 코어, 단단한 근육, 거칠게 힘을 뿌리는 혈류. 완벽한 모멘텀과 타이밍! 살며 가장 완벽에 가까운 일점타격이 오른팔 끝에 걸리고—

-콰아아앙!

지면을 내리찍었다! 바닥이 으스러지며 몸이 그 반동으로 튕겨 나갔다. 충격을 최대한 분산시키며 페르난데스는 거칠게 바닥에 처박혔다. 그 와중에 키르하스의 몸이 왼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을 굴렀다.

짧은 순간, 충격으로 신경이 교란되며 시야가 흐릿해졌다. 내장이 상해 피가 쿨럭이며 역류했다. 오른팔에 감각이 없었다. 슬쩍 보니, 완전히 아작이 나 있었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추락의 충격이 전신을 휩쓸어 아직 붙어 있는 사지도 이따금씩 경련할 뿐이었다.

‘더럽게 아프군.’

손가락 끝부터 한 마디, 한 마디씩 천천히 움츠리고, 펴내며 감각을 되살려 보았다. 다행히 움직이긴 했다. 저 창공에서 맨몸으로 추락한 것치고는 제법 적은 피해였다. 디모니카의 근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실감이 들었다. 그 낙하 충격을 오른손의 일권으로 해소한 것이다.

그 덕에 오른팔은…… 기능을 정지한 셈이다. 페르난데스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도구의 기능성엔 한계 효용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고, 오른팔은 그것을 다한 것일 뿐이다.

저 멀리에서 키르하스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축 늘어져서 피를 흘리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키르하스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은공, 어째서. 어째서…….”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늘어진 페르난데스의 어깨와, 부서진 오른팔을 쓰다듬었다. 페르난데스는 그 모습에 슬쩍 웃음이 났다.

“내 칼.”

“예, 예?”

“내 칼을 가져와. 키르하스. 적진 한복판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애써 상체를 들어 올렸다. 전신 근육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았고, 몸엔 힘이 없었다. 상한 장기에서 혈액이 역류해 숨 쉬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나, 멈춰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일평생 안주하며 산 적 없었다. 페르난데스는 당혹과 슬픔이 엉켜 있는 키르하스의 얼굴을 보며 웃어 주었다.

“이제 네가 내 오른팔을 대신해.”

“기꺼이. 네, 기꺼이…….”

키르하스는 울먹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닥에 처박혀 있는 페르난데스의 무구들을 집어 왔다. 나 때문에, 하고 자책하는 그 얼굴이 너무나 처량해 보여서 문득 손이 올라갔다.

무구를 몸에 하나씩 채워 주는 그녀의 머리칼을 한번 쓰다듬으려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이것도 일종의 ‘여지’를 남기는 것일까? 또는, 그녀의 애정을 이용하려는 것일까?

그때, 차갑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손을 덮었다. 키르하스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머리칼 위에 페르난데스의 손을 얹고는 스스로 쓰다듬었다.

“몸을 던져 저를 구하시고, 이제 와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비겁합니다. 은공.”

“키르하스.”

“제가 은공의 팔을 대신하게 되었으니, 당신과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살고, 죽겠습니다. 일어나세요.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키르하스는 그대로 페르난데스의 손을 붙잡고 그를 부축했다. 보탄의 요새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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