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99화 (200/388)

199. 불타오르는 이그드라실 (3)

-쿠구구궁—!!

한창 질주하던 도중에 지진이 일어난 탓에, 키르하스와 페르난데스는 비틀거리며 잠시 균형을 잡아야 했다. 그들을 뒤쫓던 악마들은 제 속력을 이기지 못해 넘어지고 뒤엉켜 쓰러졌다.

잠시 시간을 번 셈이었지만, 페르난데스는 달릴 수 없었다. 불길하다. 그의 본능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 본능이 아니라 디모니카의 신성이 흐르는 핏줄이 경고를……. 마치 비명을 지리는 듯이 울리고 있었다.

두근, 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페르난데스는 진원지, 이그드라실을 노려보며 침을 삼켰다. 지진이 멎는가 싶더니, 곧 하늘을 찢듯이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우우우—!!

고막이 뜯어져 나갈 정도의 괴성이 하늘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페르난데스의 허리춤에 묶여 있던 보탄이 나지막이 말했다.

[갈라르호른이군.]

“이 소리를 낸 괴물 이름인가?”

[괴물? 아니, 나팔이야. 헤임달이 가지고 있는 나팔. 아시르 전체에 위기가 닥쳤을 때 울린다는 나팔. 지금까지 긴 역사상 단 한 번도 울린 적 없었지.]

아시르 전원의 위기. 비프로스트를 통해 안전한 차원으로 도주한 그들에게까지 미칠 정도로 강대한 위협이라면. 달리 있을 리가 없었다.

이건 라그나로크의 징표나 다름없다. 하지만, 아직 이그드라실에 도달하지 못했다. 로프트가 선수를 쳤다면, 그건 그들이 너무 늦은 탓이었다.

시간, 언제나 시간이 가장 소중하고,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자원이었다.

-쿠구구구궁!!

다시 한 번, 지진이 대지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검은 구름이 자욱하게 덮고 있던 하늘이 갈라지며 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그드라실이 마주 보이는 드넓은 평원, 파괴되고 불타오르는 대지 그 위로. 햇살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진과 함께 대지를 밝히며—

[비프로스트가 개방되고 있군.]

그리고 빛무리 아래에서, 군단이 몸을 드러냈다.

* * *

카라드펠린의 목을 끊은 단검이 매끄럽게 돌아, 헤임달의 목젖에 닿았다. 헤임달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물끄러미 로프트를 내려보았다.

지진이 일며 성소로 향하는 교각이 무너져 내렸다. 수은이 부글거리며 끓고, 푸르던 하늘이 점점 달아오르며 석양의 빛을 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그걸론 부족해. 모든 문을 열어라. 모든, 말 그대로. 비프로스트가 닿을 수 있는 모든 차원 관문을 개방해.”

로프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헤임달을 바라보았다. 헤임달은 아무 말 없이 로프트의 눈을 내려보았다. 곧, 그가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탄과 너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군.]

“물론이네. 친구.”

[목적은, 이 세계의 멸망인가?]

“멸망? 하, 그럴 리가. 누가 그딴 것을 바라겠어? 모두가 뒤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 뒤의 지루함은 상상만 해도 자살하고 싶어지는군그래.”

로프트는 턱을 딱, 하고 부딪치며 웃었다. 그 모습에 헤임달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그의 곁에 서 있던 토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왜 아무 말이 없지? 이 꼴이 지금 만족스럽나, 형제여?]

[난 잘 모르겠다.]

토르는 머리칼을 벅벅 긁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혀를 차며 로키와 헤임달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잘 먹고 잘 살다 보니 갑자기 라그나로크가 일어난다지 않나. 아버지는 회까닥 돌아서 악마를 부르고 난장을 피우고, 형제들은 하나같이 눈이 뒤집어져서 미드가르드로 떠났지. 내가 뭘 믿어야겠나, 형제여? 자네는 내게 신실했나? 저 용의 심장이 요르문간드의 봉인이라는 것도, 그 누구도 내게 말해 준 적 없어.]

[나는…… 모두를 위해서 그랬네!]

[슬프군, 형제. 자네의 ‘모두’에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말이야. 뭐 됐네. 난 단 하나만을 확실히 이루기로 약속했으니. 나머지는 어떻게 되든 이젠 상관없네.]

토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에 로프트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단 하나? 그게 뭔가, 형제?”

[지옥에 타락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남긴 단 하나의 명령이 있네.]

“오, 보탄이. 그래, 뭐라던가?”

[요르문간드를 죽여라.]

그 말에 로프트는 박장대소했다. 마지막 불안 요소가 사라진 셈이었다.

보탄의 자식들을 토르가 보는 앞에서 죽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짓이었다. 아시르 궁중의 왕족들은 모두 사이가 좋은 편이었으니.

그러나, 바위도 언젠간 빗물에 뚫리는 법. 로프트는 오랜 시간 그들 사이를 멀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실로, 토르는 이젠 자신의 형제를 죽이겠다고 드는 그를 막으려 하지도 않았다.

당황한 헤임들에게 로프트가 속삭였다.

“비프로스트의 열쇠, 받아가겠다.”

[토르!! 이건, 이건 오해—!]

-서걱.

로프트는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갑옷의 틈에 단검을 쑤셔 넣었다. 단검을 통해 짜릿한 기운이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새파란 불똥이 타닥이며 그의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로프트는 흥얼거리며 단검을 뽑아내었다. 헤임달의 몸이 움찔거리며 떨렸다.

“화목한 가족이야. 언제나 신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때는. 정말 ‘화목한’ 가정이었지.”

“너희 거인족들의 비사는 상관없어. 요툰. 이젠 어쩔 생각이지?”

-쿠구구구궁!!

지진이 다시 한 번 성소를 휩쓸었다. 성소를 이루고 있던 벽면이 터져 나가며 수은 호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땅 위에 서서, 로프트는 미동 없이 슬쩍 웃었다.

“시간을 벌어야지. 아직 다른 군단들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배역이 모두 모이지 않으면 라그나로크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연극의 신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벨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불길한 노을빛을 담은 천구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늘 위에 박힌 붉은 태양은 꼭 눈과 같았다. 그들을 내려보는 어떤 강대한 존재의 시야처럼 보였다.

아시르와 요툰, 그리고 아시르의 정복 전쟁에 희생된 다른 종족들. 라그나로크를 막기 위해 이용당한 사다르켈리사. 종말을 막겠다며 스스로 종말을 일으킨 로프트와 보탄.

그 사이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생명들까지. 마치 그들을 비웃듯이 태양이 일렁였다. 어리석다. 이 총체적인 광대놀음이.

아벨은 시선을 돌려 카라드펠린의 허물어진 유해를 내려보았다. 유해는 부스러지며 수은 호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동생. 존경할 만한 신념의 수호자. 고결함의 표상. ‘천상룡’···….

아벨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로키. 네 놀음에 어울려 주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어차피 우리에게 다음이 있나?”

“없길 바라라. 그땐 널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니.”

아벨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떴다. 그녀의 푸른 눈 아래에서 새파란 화염이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으르렁거리듯 낮게 말했다.

“시간은 내가 벌지. 너는 네 일을 해라.”

“하하, 린드부름. 분부대로 하지.”

로프트는 과장스럽게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토르의 등을 찰싹 때렸다. 그 둘은 곧 비프로스트의 관문을 열고 사라졌다. 아벨은 다시 한 번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한 발자국 앞으로 걸었다.

수은이 흐르는 호수 위로, 그녀의 발이 천천히 올라섰다. 그리고—

-쿠구구구궁!!!

용이 하늘을 날았다.

* * *

-쿠구구궁.

구름이 찢어지며, 그 너머에서 새빨간 하늘이 보였다. 검은 피부 아래로 보이는 붉은 상처처럼. 하늘이 타오르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이그드라실을 향해 달려가며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악마의 존재감이 거대해질수록 심장이 더 거세게 뛰는 탓에 호흡이 가빠 왔다.

-대단하군. 악마들이 거의 대부분 박살이 나고 있어.

‘여기에 있는 녀석들은 군대로 따지면 신병들이니까. 아무래도 나락에 있는 사다르켈리사의 본대에 비하자면 손색이 있지.’

페이자쉬는 주위를 살펴보고는 감탄했다. 비프로스트의 관문을 넘어 도달한 거인의 병력들이 평야에 넓게 전개되며 반발하는 악마들을 모조리 분쇄하고 있었다.

요툰과 헬하임의 군단이다. 천 년간 복수만을 꿈꾸던 민족의 정예들을, 이제 막 빚어져 나락으로 파견되는 갓 태어난 악마 개체들로 막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잠시 숨을 돌릴 시간 정도는 번 셈이다. 여기까지 도착한 이상, 로프트와 접촉하기만 한다면 그다음은 순리대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로프트와 보탄의 계획은 다른 세계의 병력들을 최대한 이그드라실로 집중시키는 것에 있었고, 이건 순전히 저들의 능력에 성패가 걸려 있는 싸움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그제야 어깨를 늘어트렸다. 가까스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컨디션이 완벽하다 할 수는 없었지만 이보다 나쁜 상황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겪어 왔다.

“키르하스.”

“네, 은공.”

키르하스는 지친 기색이 완연한 얼굴로 웃었다.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뻗은 팔과 손등에 소름이 바싹 솟으며 척추가 꼿꼿하게 긴장했다.

‘뭐지?’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이…… 그저 감각만이 경고를 외치고 있었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

“키르하스. 느껴져?”

본능의 영역에서 그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 바로 키르하스였다. 그는 그녀의 승리에 대한 선천적인 감각을 믿었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키르하스는 여전히 피로에 절은 눈으로 웃으며 평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르하스?”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기척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소름이 돋고 뒷목이 빳빳하게 굳을 정도로 긴장감이 치밀어 올랐다.

“키르하스.”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다. 겨울바람이 부는 소리도, 전장의 소음도,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도. 그리고 바로 곁에 있는 키르하스의 기척조차도.

그리고, 유리가 갈라지는 것처럼. 그의 시야에 실금이 끼기 시작했다. 검은색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처럼 눈에 닿는 모든 곳에 천천히 왜곡이 끼기 시작했다.

드넓은 평원도, 저 먼 전장도. 거대한 이그드라실마저도.

‘제길.’

-석화의 사안…….

데미드라코들의 눈은 석화의 사안을 갖는다. 진정한 의미의 석화가 아니라, 마치 뱀이 먹잇감을 바라보는 것처럼. 상대방의 육신을 굳게 만든다.

그리고 사다르켈리사는, 모든 데미드라코들의 어미다. 그녀의 눈은…….

설령 시간마저 석화시킬 수 있다.

멈춘 시간 속에서, 페르난데스는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나무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이그드라실, 정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배경에 가까운 물푸레나무. 지평선을 가름하는 이 거대한 나무 저 끝에—

-Xhiii—

잉걸불처럼 타오르는 거대한 붉은 눈이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사다르……켈리사…….”

그의 신음과 동시에, 이그드라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열기도, 바람도 없이 저 스스로. 지평선 너머까지 늘어진 가지 끝부터 그의 발치 언저리에 있는 나무 밑동에 이르기까지.

이그드라실은 정물이라기보단 차라리 배경에 가깝다. 그 탓에 그 광경은 마치, 세계가 불타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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