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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00화 (201/388)

200. 비늘 덮인 여제, 사다르켈리사 (1)

그 어떤 필멸자보다 많은 죽음을 경험했다 자부할 수 있는 그로서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누구보다 명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죽어 가고 있었다. 사다르켈리사의 석화는 비단 시간을 굳히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영향력이 닿는 모든 범위, 모든 지역에 광범위한, 그리고 치명적인 타락이 스며 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멈춤으로써, 사다르켈리사의 타락이 아직 실질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건 단지 그녀가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기랄.’

로프트의 계획이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그의 예상보다 대악마가 더 강대했던 탓인가? 전생, 한 세계의 종말에 대항하기 위해 모여든 문명사회 최후의 영웅들조차도 지옥 마력의 타락에서 온전히 자유롭기 위해선 영혼의 격을 뜯어 고쳐야 했었다.

혈관에 독이 흐르고, 거칠게 맥동하는 심장이 천천히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다른 이들이 타락의 영향력에 뒤틀리지 않는 것이 시간의 동결 탓이라면, 동결된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그는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타락을 정면으로 맞이하고 있는 셈이었다.

-페르난데스.

‘흐…….’

단 숨이 흘렀다. 그리고 폐가 굳으며 호흡이 가빠 왔다. 페르난데스는 붉게 변한 시야가 눈앞에서 이글거리는 불길 탓인지, 또는 자신의 혈관이 파열하며 일어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스륵.

가까스로 펼친 손가락이 한 마디 굽어진다. [축조]. 모든 마법의 기반이 되는 가장 첫 번째 수인. 말라가는 신성과, 급격히 허물어지는 영혼을 느끼며 흐릿한 시야로 한 수.

시야의 왜곡이 격해지며 손이 사슬에 감긴 것처럼 무거웠다. 힐끗 바라보니, 검은 아지랑이가 그의 손에 얽혀 있었다. 그는 멈춤 없이 왼손을 비틀어 한 손을 접었다. 다시 [축조].

-촤륵.

양팔에 아지랑이가 파고든다. 지독한 작열감과 함께 손목이 돌처럼 굳어 가기 시작했다.

[널 알고 있다.]

불타오르는 이그드라실의 꼭대기에서, 하늘에 울려 퍼지듯 목소리가 흘렀다. 정신을 으스러트리는 소음이 영혼에 직접 말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널 안다. 사다르켈리사는 널 기억하고 있다. 네가 처음 사다르켈리사에게 대적하던 그 순간, 네 탄생과, 그 너머의 일들마저도.]

쉭쉭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그드라실의 가지 하나가 으스러졌다. 거대한 가지가 느릿하게 부서지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성벽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대지를 타격하는 가지엔 소음이 없었다. 지반이 뒤틀리고 그 위에 있었을 요툰하임의 군단 일각이 그 아래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수평 세계의 선 그 너머. 사다르켈리사는 오랜 꿈을 꾸었다. 세계가 불타는 꿈을. 한 필멸자가 발버둥치는 모습을…….]

하늘을 찢는 괴성에도, 페르난데스는 차갑게 식은 머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화를 원한다고? 어째서? 그녀의 힘이 시간마저 굳힐 수 있는 수준이라면, 어째서 그녀는 당장 이 세계를 불태우는 대신, 그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겠는가.

-블러핑?

‘반쯤 정답이겠군.’

제아무리 대악마라 하더라도, 강대하고 위대한 존재라 하더라도 선신 만신전이 직접 자아올린 봉인 내에서도 그 힘을 온존하고 있을 리가 없다. 아직 희망이 있다.

‘도와라.’

-스륵.

그의 등 뒤에서 영체가 뻗어 나온다. 참고, 다시 참아 온 비장의 한 수. 오른팔의 기능을 잃어버린 때부터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그의 한 수가 펼쳐진다.

보조 술식, 삼두육비. 전생 시절 그의 시그니처 스펠은 지금의 몸으로 펼치기에 무리가 따르지만. 삼두육비라면 가능하다. 그렇게 뻗어 나온 손으로 한 수. 다시금 [축조]!

[네 발악은 무의미하다. 너를 찢어 삼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나, 사다르켈리사는 너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사다르켈리사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

-콰드득.

그를 옥죄어 오는 아지랑이가 거세어지며 지옥 마력이 그의 혈관을 태우기 시작했다. 손끝 발끝부터 시작된 마력의 거센 흐름이 그의 혈관을 타고 올라와 천천히 몸을 잠식해 나갔다.

감각 계통이 미쳐 날뛴다. 간지럽고, 뜨겁고, 동시에 칼로 에이는 듯 찬 기운이 그의 뱃속을 헝클이며 흘러 다녔다. 심장이 천천히 박동을 멈춰 간다.

죽음이 가깝다.

‘심박.’

-오냐.

심장은 단지 혈액을 뿜어내는 기관이 아니다. 심장은 마력을 담는 가장 좋은 기관 중 하나. 페르난데스의 등 뒤에 솟은 팔이 순간 가슴팍 안으로 파고들며 손끝을 실체화했다.

-쿠드득.

“크흡……!”

[저항하지 말라.]

사다르켈리사의 속삭임을 무시하며 손끝의 감각에 최대한 집중했다. 손이 실체화하며 장기와 근육을 헤집지만, 그건 부차적인 손해에 불과했다. 손을 천천히 그러쥐며 강제로 심장을 움켜쥐어 맥박을 이어 나간다!

-쿵, 쿵, 쿵!

핏물이 다시금 활력을 얻고, 뜨겁게 달아오르던 뇌수에 이성이 돌아왔다. 페르난데스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사다르켈리사의 눈을 노려보았다. 멀다. 이그드라실의 꼭대기에서 그를 내려 보는 시선이…….

꼭대기?

놈의 봉인은 이그드라실 내부에 있는…… 카라드펠린의 성소였을 텐데?

‘페이자쉬! 환각이다!’

-하지만 마력은 실제야. 주위 환경은 환각이더라도, 이 농밀한 마력 자체는…… 대악마의 존재감은 환각이 아니다.

‘봉인이 풀린 건 맞아. 하지만, 아직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야!’

[세계의 파괴자여. 사다르켈리사는 긴 꿈을 꾸었다. 너의 세상이 불타오르는 꿈을. 그리고 네가 바라는 소망을……. 네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라. 사다르켈리사에게 복종해라. 네 소망을 이루어 주마.]

시선이 강렬해지며, 그의 주위에 불타는 세상이 점차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암녹색 하늘, 부서지는 대지, 진군하는 악마들……. 전생의 익숙한 광경이다.

그리고 그 너머에 위치한 첨탑…… 진홍 첨탑. 페이자쉬가 당년에 축조했던 그의 본거지가 보였다. 하늘을 까맣게 뒤덮는 악마들과 이에 맞서는 한 줌 되지 않는 영웅들의 분투까지.

사다르켈리사는 그 사이에서 속삭였다.

[타이반은 어리석었지.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놈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다르켈리사는 현명하다. 네 혈육의 영혼, 수평 세계 너머에 유기된 그 영혼을. 사다르켈리사라면 구해줄 수 있다. 그것이 네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더냐?]

페르난데스의 양팔에 얽힌 아지랑이가 꿈틀거리며 막대한 마력이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혈관 속 신성이 완전히 타들어 가며 양팔이 거멓게 괴사하고, 팔뚝어림 아래로 감각이 사라졌다. 그러나, 마력이 넘쳐흘렀다.

[그 모든 힘이 곧 너의 것이 되리라. 이 세계 또한 너에게 주겠다. 너는 다만 사다르켈리사를 위해 종군하라. 수천 세계를 불태우고, 잿더미가 된 세계 위에 너를 위한 소꿉놀이 하나쯤은 눈감아 주겠다.]

“내게 이렇게 호의적인 이유가 뭐지?”

[사다르켈리사는 너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든다.]

-콰드드득.

시선이 대굴 굴러 아래로 흘렀다. 페르난데스는 그의 정면, 불타는 이그드라실의 밑동 아래에 스며든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림자 속에서 붉은 두 눈이 반짝였다.

-촤르륵.

양팔에 얽힌 아지랑이가 그림자 속으로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 뱀을 닮은 한 여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

[네 강인함과, 네 근성이 마음에 든다. 용은 본디 희귀한 것을 수집하는 종족이며, 사다르켈리사는 수천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것들을 모아 왔다. 세계에 종말을 가져온 필멸자이자, 대악마를 배반한 필멸자이며, 동시에 신성을 띠고 다시금 부활한 필멸자는 개중 너 하나뿐이었으니. 사다르켈리사는 네가 탐이 난다.]

그녀는 사뿐히 걸어 그의 앞까지 나아갔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달콤한…… 끈적한 마력이 그의 뇌리를 잠식해 들어갔다. 지옥의 타락은 그 어떤 영웅이라 하더라도 온전히 회피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며, 대악마의 유혹은 이성과 의지의 문제를 초월한다.

점차 페르난데스의 동공이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사다르켈리사가 널 죽이고자 했다면, 네가 여기까지 닿을 수 있었겠느냐?]

“일단, 난 묶이는 걸 싫어한다.”

[뭐라 했느냐?]

페르난데스는 검게 물든 손을 잠시 내려 보았다. 곧 그의 등 뒤에서 영체 팔이 튀어나와 수인을 짚었다. [축조].

“그리고, 노력 없이 얻어낸 보상도.”

아무런 노력 없이 얻어낸 보상은, 온 것만큼 쉽게 사라질 수 있다. 페르난데스가 신들의 축복을 경계하고, 남용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곧 다른 영체 팔이 천천히 뻗어 나왔다. 다시금 [축조]. 하늘을 향해 뻗은 손이 수인을 짚으며, 긴 실이 검게 물든 왼손에 이어졌다.

이어서 작성, 왜곡. 세 수의 수인이 한 손에서 동시에, 매끄럽게 얽혔다. 섬세하게, 그러나 천려의 일실조차 없는 조밀함으로. 완벽한 각도, 완벽한 계산하에 한 수—

‘마력이 이 정도로 공급되면 오히려 감사한 일이지.’

꼭두각시처럼, 실이 이어진 왼손이 영체의 손짓에 따라 수인을 맺었다. [반전]. 그리고 빙글 돌아 다시금 다른 팔이, 또 다른 팔이 그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연산을 도와라!’

-네 일에나 집중해.

세 쌍의 팔이 그의 등 뒤에서 날개처럼 펼쳐지고, 그 위로 천천히 어떤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 노인의, 그리고 아이의 머리가 허공을 일그러트리며…….

[무슨 짓을…… 감히 사다르켈리사에게 저항하려 드느냐? 네게 보여 줄 호의는 이제 끝이다!]

“호의는 무슨.”

페르난데스는 짧게 웃었다. 그는 발치에 일렁이는 수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사다르켈리사의 봉인지로 이어진 수은 호수가 그의 발밑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은백색 수면에 그의 모습이,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쉭쉭대는 뱀의 모습이 비쳤다. 거울을 밟고 있는 듯, 세계가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러니 [반전]. 이곳 이그드라실은, 그리고 아스가르드는 수평 세계로 나아가는 비프로스트의 중심이자 차원의 균열이 가장 거세게 일어나는 곳이며, 이 세계 곳곳에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관문이 열리고 있었다.

허약하게 일그러진 차원의 균열을 억지로 열어젖히고, 찢어발기며 [반전]. 넘치는 지옥 마력이 그 동력이 되며, 매 순간 꺼져 가는 심장을 강제로 움켜쥐어 전신으로 마력을 터트린다!

-그래, 그래! 이 감각, 이 충만함……!

‘소란 피우지 말고, 계산이나 똑바로 해.’

-하하! 계산? 날더러 계산을 똑바로 하라 했느냐? 나는 페이자쉬다!

수은이 비추는 그의 발아래, 표면이 일렁이며 페르난데스의 잔상이 흐려진다. 시야의 왜곡이 점점, 점차 더 커져 가며—

불타오르는 대지, 무너져가는 세계, 그를 바라보는 뱀과…… 뱀을 마주 보는 노인의 형상으로!

-나는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다! 내 생전 주문을 외는 것에 천에 하나, 빗겨 가는 술식이 없었거늘!

‘잘나셨어, 정말.’

페르난데스는 한쪽 눈을 감은 채로 웃었다. 지옥 마력이 양손에서 끓어오르고, 수인을 짚는 팔은 감각이 아니라 계산에 의해 움직인다. 삼두육비의 지원, 수많은 실들이 그의 양손에 얽혀 마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고, 그 한 수, 한 수가 고절한 주문의 일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며—

[그만두어라. 네 발악은 무의미하다! 사다르켈리사는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

여인의 형상을 한 뱀, 피부 조각이 하나둘 떨어지며 그 아래에서 비늘이 드러난다. 사나운 기세가 터트릴 듯 뿜어져 나오나, 멈추지 않는다. 영혼이 사멸하고 신성이 말라붙는 그 순간에도.

결코 멈춤 없이. 다시금 한 수. [축조]. 그 수는 모든 마법의 시작을 나타내며.

[작성]. 마법의 전반. 환경을 구축하고.

또 다시금. [전도]. 사방에 뻗은 지옥 마력을 이어 붙여— [왜곡]. 차원의 균열, 수은의 화면 너머의 세계와 이곳, 지금 여기 아스가르드의 차원. 멈춘 시간, 고정된 좌표로 힘을 이어!

“반전. 조각을 잘라 붙여 패배를 승리로…….”

마지막 수인이 허공에 맺힌다. 외과의의 수술 칼처럼 정교하게, 장인의 세공 톱처럼 조밀하게. 느리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지만…… 법관의 집행 봉처럼 준엄하게…….

-팅!

마치 거문고가 튕기는 듯한 맑은 소리가 울린다. 사다르켈리사는 눈을 부릅뜨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페르난데스의 양 눈이 모두 감겨 있다. 세계는 여전히 멈추어 있다. 그녀의 사안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 또한 석화시켜 버렸다.

비록 이 순간은 환각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영향력은 실재하며, 그녀의 본체는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현계하고 있다. 적들의 예봉을 꺾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그리고 적의 핵심 인물을 회유하는 것에도 실패했지만…….

[어리석은 녀석.]

사다르켈리사는 돌처럼 굳은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비죽 웃었다. 멍청한 필멸자의 최후였다.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찰팍, 수은이 찰랑이는 호수가 그녀의 발치에 밟히며 기분 나쁘게 질척였다.

[사다르켈리사는 네 능력을 귀하게 여겼다. 결국 너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여기에서 스러진다. 이것이 네가 바란 일이었더냐?]

-찰팍.

그녀가 페르난데스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는 그 순간. 수은 호수 아래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고맙군.”

[……!!]

-팅!

다시 거문고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사다르켈리사는 딱딱하게 굳으며 수면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 아래, 거울처럼 비치는 그녀와, 불타는 세계와…… 노인이 있었다.

노인이 그녀를 내려 보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페이자쉬의 진홍창.”

-팅!

수면 아래에서 위로. 공간을 갈아내며 튀어나온 물체가 사다르켈리사의 미간을 꿰뚫고 치솟았다. 하나, 다시 하나. 수십 갈래의 붉은 기둥이 그녀의 육신을 산산조각 내고 하늘 너머로 솟구친다.

[이……놈!]

“마법사에게 마력과, 시간과, 여유를 주면…… 불가능한 것이 있던가.”

페르난데스가 찢겨 나가는 사다르켈리사를 바라보며 웃었다. 수은 수면 아래에서 페이자쉬 또한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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