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01화 (202/388)

201. 비늘 덮인 여제, 사다르켈리사 (2)

굳어 버린 시간에 균열이 달린다. 붉은 가시가 하늘을 찢어발기고 실금처럼, 거미줄처럼 뻗어 나간 균열이 곧 시야 닿는 모든 곳에 내리기 시작했다.

페르난데스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시야로 깨어져 나가는 결계를 바라보았다. 멈춘 시간도, 불타는 대지도, 사다르켈리사의 ‘꿈’이다. 그녀의 꿈을 현계시킨 이 결계가 천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너, 필멸자!!]

하늘로 치솟으며 육편이 되어 흩어지던 사다르켈리사의 괴성이 대지를 울렸다. 그 소리를 기점으로 유리가 깨어지듯이 균열이 산산조각 나며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분다. 비명과 괴성이 다시금 들려오기 시작했다.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등을 돌렸다. 불타오르는 이그드라실을 배경으로. 등을 지지는 열기와 녹초가 된 몸, 그리고 핏속을 달리는 지옥 마력에 저항하며…….

“은, 은공? 이게 대체?!”

“쉿. 키르하스.”

-스륵.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키르하스를 품 안에 두었다. 등 뒤로 불어닥치는 열기와 마력에서 최대한 그녀를 지켜내야 했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그의 품 안에 들어가 헐떡였다.

“은공, 세상에! 사, 상처가. 팔이?!”

“숨 쉬는 데 불편한 점은?”

“괜찮아요! 저는 괜찮은데…….”

“나도 괜찮아.”

[그런가?]

페르난데스의 말에 그의 허리춤에서 보탄이 픽 웃었다. 그는 페르난데스의 상태를 짧게 진단하고는 감탄했다.

[대단히 농밀한 마력이로군. 어떻게 이성을 유지할 수 있지?]

“해 봤으니까.”

전생, 지옥 마력에 의해 타락한 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혼을 개량해야 했던 다른 이들과 달리, 영적 순수성에 집착했던 그는 다른 생존 방식을 고려해야 했다.

지옥 마력의 여과, 온전히 그 피해를 무마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어쨌건 그는 몸에 축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것엔 달인의 경지에 닿아 있었다.

그 결과, 페르난데스는 사다르켈리사의 마력에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육신은 시시각각 죽어 가고 있었지만, 그에겐 이성이 육신보다 중요한 요인이었으니.

“페르난데스!!”

하늘 너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위, 검붉은 용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벨이었다. 그녀는 페르난데스를 발견하고 곧장 날아들었다.

“괜찮은 것이냐?”

“우리 모두 소모되고 있군. 아벨.”

“……그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구나.”

-쿠웅!

아벨의 거체가 그의 곁에 내려앉으며 대지가 울렸다. 그녀는 잠시 착잡한 눈으로 페르난데스와 키르하스를 내려 보았다. 곧,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그드라실을 바라보았다. 화염에 휩싸인 이그드라실의 뿌리 밑동 그 아래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치솟고 있었다.

“그녀가 온다. 희망이 있겠느냐?”

“희망에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소. 나도, 당신도, 이 세계도.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소.”

“그래. 희망에 매달리지 말고, 절망에 저항해 보자꾸나.”

-퍼득.

아벨이 날개를 크게 펼쳐 키르하스와 페르난데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불길 사이에서 뿜어진 바람이 그녀의 날개에 부딪치며 불티를 남기고 비산했다. 아벨은 담담히 불벼락을 맞으며 세계수의 지반을 바라보았다.

-콰직!

작은 균열이 땅을 타고 달렸다. 처음엔 발톱, 그 뒤엔 굵은 팔뚝. 곧 거대한 이그드라실의 줄기를 할퀴고 으스러트리며 몸체가 대지를 뚫고 치솟았다.

-콰직, 콰드드드득!!

거대한 뱀, 날개 달린 뱀이 이그드라실을 휘감으며 머리를 드러냈다. 건물, 아니 차라리 성벽에 가까운 세계수가 뱀의 몸 아래에 감춰지며, 불길로 그 경계가 희미해졌다.

그 사이에서 잉걸불 같은 두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콰드드득!

대지가 부서지기 시작하며 그 사이에서 일그러진 존재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등장과 함께 지반이 생명을 잃고 허물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시야에 닿는 모든 곳에서 불길과 균열, 그리고 비명이 메아리쳤다.

저 멀리, 요툰과 헬하임의 군단이 악마들 사이에 고립되어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아벨의 날개 아래에서 걸어 나왔다. 그런 그를 잠시 뒤로 밀고는, 아벨이 속삭였다.

“계획은 있느냐?”

“날 저것의 머리 위로 올려 주시오.”

“좋다. 내가 이끄마. 네가 따르거라.”

아벨은 싱긋 웃고는 곧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그드라실을 휘감은 사다르켈리사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그리고 이 세계를 굽어보고 있었다.

“사다르켈리사!!”

아벨이 목청을 높여 소리 질렀다. 용의 고함이 순간 그녀의 정면을 가로막은 불길을 헤치며 울려 퍼졌다.

“나를 기억하느냐!!”

[아, 물론. 아벨레사스. 사다르켈리사의 옛 자매여.]

-콰드드득.

이그드라실의 거대한 가지가 허물어지며 그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뱀의 몸뚱아리가 보였다. 사다르켈리사는 천천히 고개를 치켜들며 속삭이듯 말했다.

[사다르켈리사에게 영혼을 바치기 위해 왔느냐?]

“헛소리! 나는 너를, 네가 저지른 짓들을, 그리고 네가 저지를 짓들을 막기 위해 돌아왔다!”

[사다르켈리사를 막아? ‘나’를 막는다고?]

쉭쉭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이그드라실을 감싸고 벌어지는 전장의 소음마저 그 소리 아래에 묻혀 가는 듯했다. 뱀은 광기를 털어내듯 웃음을 터트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콰드드득!

거대한 가지들이 허물어지고, 뱀의 몸이 그 위로 꿈틀거렸다. 사다르켈리사는 하늘 높이 고개를 치켜들고 부서져 가는 대지를 굽어보았다. 그녀는 타오르는 눈으로 아벨을 노려보며 외쳤다.

[‘나’는 사다르켈리사다. 만물창생의 최후, 수천 세계의 종말, 신들의 운명! 파괴와 멸망과 혹한의 광풍이며 또한 가뭄의 태양이니. 누구도 나를 막을 수는 없다! 저 천상의 대신들조차도 구름 뒤 그림자 속에 숨어 나를 두려워하노라!]

“장황하군.”

페르난데스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사다르켈리사는 눈을 번들거리며 고개를 내려 페르난데스를 노려보았다.

[사다르켈리사의 이름이 곧 라그나로크다! 이제 너희들의 황혼이 도래했노라!]

-콰드드득!

그녀를 중심으로 대지가 일렁이며 바스라졌다. 차원의 균열이 거세지며 무스펠, 그녀가 지배한 나락의 지옥과 이곳 아스가르드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페르난데스는 키르하스를 들어 올려 아벨의 등에 태우고는 아벨의 몸 위로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아벨의 목덜미에서 검은 사슬이 나타나 그의 손목에 감겼다.

“이건?”

“옛날 생각이 나지 않느냐?”

“하하!”

아벨과 페르난데스의 사이에 마력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지배의 사슬. 그녀가 직접 허락한 유대감이, 처음 이 주문을 걸었던 시절보다 더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지낸 시간, 어쩌면 추억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그런 기억들이 그의 손목 어림에 얽힌 주문을 통해 흘렀다.

용의 영혼, 그리고 그녀의 몸을 이루고 있는 엘프 신들의 영성과 마력, 페르난데스 그 자체가 품고 있는 신성들이 그 어느 순간보다 충만하게 맥동했다. 페르난데스는 아벨의 목덜미, 비늘들을 쓸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옛 생각이 나는군.”

“그때 했던 말도?”

지금 페르난데스와 아벨 사이에선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생각이 더 빠르고 적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다. 아벨은 그녀의 심상 세계에서 처음 페르난데스를 만났던 순간을 추억하고 있었다.

* * *

‘어째서 지금 이 시대를 ‘인간의 시대’라 부르는지, 알려 주자꾸나.’

* * *

인간이란 무엇인가. 페르난데스는 어느 때보다 그 논지에 깊게 빠져들었다. 대저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벨은 용이고, 그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일반인이라 부를 수 없는 몸이 되었으며, 키르하스마저도 신성을 입은 이 시점에서, 그들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전생은 어땠는가. 그 누구보다 영적 순수성에 집착했던 흑마법사 페이자쉬가, 문명을 지키기 위해 영혼을 개량한 인간 영웅들보다 더 인간답다고 할 수 있을까?

‘네가 틀렸다. 베이타서스.’

유일한 인간이기에 회귀시켰다? 아니, 아니다. 그는 그래선 안 되었다. 설령 그보다 더 뛰어난 이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 오만한 신은 인간의 순수성에 매몰되어선 안 되었다.

영혼의 정결함, 육신의 순수함.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페르난데스는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아벨의 강인한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래. 알겠소.”

인간의 시대를 보여 주자. 그렇게 말한 용은 그 어떤 누구보다 인간다웠다. 그리고 그 또한. 페르난데스는 칼자루를 움켜쥐며 생각했다. 다인 왕의 검. ‘연민’.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척도일 것이다.

‘아들아.’

페르난데스는 잠시, 이젠 얼굴도 희미하게 잊혀져 가는 아들을 떠올렸다. 바람이 거칠게 그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끓어오르는 마력 사이에서 영혼과 육신이 천천히 사멸되어 가는 그 순간에, 그는 아들이 느꼈을 고통과 공포를 그 어느 순간보다 절절히 공감하고 있었다.

‘어째서 네가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이젠, 알겠다.’

언데드로 부활한 것에 대한 자기혐오? 아들이 느꼈던 공포와 광기는 그 탓이 아니었다. 인간성을 상실한 그 자신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아들은, 아리아는, 페이자쉬가 품고 있던 마지막 양심이자, 그가 그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한 마지막 인간성이었다.

그 최후의 한 조각을 잃어버린 순간, 페이자쉬를 더 이상 인간이라 분류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역으로.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해.’

연민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육신과 영혼의 상태는 인간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스르릉.

“아벨.”

“왜 그러느냐?”

“뱀의 시선을 끌어 주시오.”

페르난데스는 아벨의 목덜미를 한 번 더 쓰다듬고는 그대로, 칼자루를 손에 움켜쥔 채로 그녀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 * *

페르난데스의 생각을, 지배의 사슬을 통한 정신적 교감으로 인지하고 있던 아벨은 그를 막지 않았다. 그녀는 떨어져 내리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은공, 은공!”

키르하스가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아벨은 그녀를 다독이듯 속삭였다.

“진정하거라. 키르하스.”

“당신……! 당장 방향을 틀어요! 은공이 저 아래로!”

저 먼 땅, 설령 바닥이 멀쩡하다 한들 일개 인간의 육신으로 이 고도에서 추락하면 온전할 수 없거늘. 심지어 지금 지상은 지옥으로 변하고, 무스펠로 나아가는 균열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저 아래로 추락한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키르하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타는 눈길로 지상, 검은 연기가 올라오는 자욱한 불길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에겐 그의 길이 있고, 우리에겐 우리의 길이 있다.”

“내 길이 곧…… 어……?”

으르렁거리며 외치려던 키르하스가 순간 말을 멈췄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든 창공에서, 작은, 실낱같은 푸른빛이 보였다.

‘승리’로 향하는, 본능과 직감의 영역이 외치는. 오로지 그녀에게만 보이는 그 빛이.

“뭐가 보이느냐?”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아벨이 말했다. 키르하스는 잠시 침을 삼키고는 불길이 가장 거세게 타오르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거친 바람 탓에 눈을 뜨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정면에……. 사다르켈리사가 포효하는 이그드라실의 중앙. 이성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라 외치는 그 장소에서부터 천천히, 작게, 그러나 찬란하게…… 승리의 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겠느냐?”

“오른쪽 아래. 살짝 더…… 더 아래. 네. 지금 그 방향입니다.”

“좋다.”

아벨은 싱긋 웃고는 입을 벌렸다. 그녀의 입에서 거친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키르하스가 가리킨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콰아아아아!

그녀의 마력은 이미 신성을 담고 있다. 엘프 여신의 힘이 깃든 숨결이 사다르켈리사의 마력을 일소하며 잠시 주위를 마력적인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로 사다르켈리사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그 방향을 향해 날개를 치며 아벨은 자신의 몸 안에서 빠르게 고갈되어 가는 생명력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 지상으로 떨어져 내려간 페르난데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비행이라 하더라도 좋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다르켈리사!!”

[하찮은 버러지들 같으니. 힘도, 능력도 부족한 주제에 분수에 넘게 욕심을 부리고, 영원히 살 것처럼 굴다가도 찰나의 시간조차 견디지 못하는 것들. 불길에 날개를 그슬리는 부나방들…….]

불길 한가운데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분노와 광기가 느껴졌다. 곧, 거대한 팔이 불길을 뚫고 아벨의 몸을 향해 뻗어 나왔다. 아벨은 급히 몸을 틀며 팔을 피하고, 비늘 덮인 팔뚝을 할퀴며 다시 날아올랐다.

[인간들. 필멸자들! 역겹게 꿈틀대며 끊임없이 칭얼거리는 족속들. 위선을 떨어대고, 위악으로 가장하고, 스스로를 기만하면서도 오직 자신만이 그 추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짐승들. 네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족속들을 위해, 감히 사다르켈리사에게 대적하려 드느냐?]

“아니, 아니다. 사다르켈리사. 아니야…….”

-콰득!

뱀의 발톱이 다시 허공을 거칠게 그었다. 아벨은 사다르켈리사의 공격을 피해 내며 외쳤다.

“가냘프고 약하고 작아도. 너와, 우리와 달리 이들의 시간은 흐른다. 영원히 같은 시간에 고정된 우리 장생족들과는 달리, 별도, 보석도, 황금도 반짝이지만. 내가 보는 가장 아름다운 보물은 한순간 스스로를 불사르며 타오르는 불길이다!”

[역겹다! 너는 다만 저들을 가련히 여기고 동정할 뿐이다. 위선, 사다르켈리사는 네 위선이 역겹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아벨레사스는 침착하게 사다르켈리사의 공격을 회피하며 창공을 날았다. 그녀의 공격은 화염 속에서 돌연 나타나 예측하기 까다로웠지만,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마다 키르하스가 먼저 파악하고 아벨레사스에게 신호를 주고 있었다.

아벨은 다시 한번 사다르켈리사의 팔을 피하며 외쳤다.

“자신의 주제를 넘는 욕망을 가진다 하였느냐. 수천 년이 지나도록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곤 고작 비늘 몇 장의 무게를 더하는 것뿐이었다! 스스로 가진 바를 넘어서는 소망이 어찌 비난받아야 할 일이더냐? 저들의 발전을, 저들의 나아감을 보아라. 우리에게 없는…… 필멸자, 단생종들의 강인함을…… 어찌 내가 저들의 불빛에 매혹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이제 그녀의 말은 설득이라기보다는 호소에 가까웠다. 아벨은 몸 안에서 고갈되어 가는 생명력에 반발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페르난데스. 어찌 내가 너에게 매혹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영혼과, 육신을 모조리 불태워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 걷는 사내에게. 그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자신의 후회를 되돌리기 위해 달리는 사내에게. 인간에 대해 누구보다 냉소적이면서도, 지금껏 문명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행복과 안온함을 모조리 포기한 그 사내에게.

어떤 용이 그런 삶의 불빛에 매혹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아벨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허공에 멈춰서, 불꽃을 토해 냈다. 이것이 그녀가 가진 마지막 숨결이 될지도 몰랐다. 이제 더는 생명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벨!”

그녀는 키르하스를 털어 내고 재빨리 움켜쥔 후, 이그드라실의 가장 가까운 가지 위로 던졌다. 그리고 곧장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번 짧은 시간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그녀는 비늘이 벗겨 나가고, 천천히 몸이 작아져 가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형태로 변한 아벨은 지상을 향해 곧장 떨어졌다.

“이제부터는 내가 이끌겠소.”

-턱.

그런 그녀가 이그드라실의 기둥 근처까지 떨어졌을 때, 그녀의 팔뚝을 잡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거칠고 흉터 덮인 손. 흐려져 가는 시야 속에서 아벨은 부드럽게 웃었다.

“내가 따르겠다.”

그녀를 마주 보며 페르난데스 또한 미소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