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비늘 덮인 여제, 사다르켈리사 (3)
페르난데스가 아벨의 등에서 떨어졌을 때, 그는 이그드라실을 노려보며 신중하게 방향을 가늠하고 있었다.
무섭도록 불어나는 가속도, 불타오르는 이그드라실을 휘감은 거대한 뱀의 육체와 그로부터 말미암은 농밀한 마력…….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대검을, 다인 왕의 대검을 그러쥐며 죽음과 자신의 거리를 잡고 있었다.
아직, 예상보다 더 가깝지는 않다.
-콰지지지직!!
이그드라실의 거대한 기둥에 충격하는 동시에 페르난데스는 대검을 내려 그었다. 팔뚝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몸은 이그드라실의 기둥 외부를 타격한 이후 간신히 매달렸다.
그가 만들어 낸 긴 검흔과 핏자국이 보였다. 페르난데스는 어금니를 짓씹으며 대검을 더 깊게 박아 넣었다. 양팔의 감각은 이미…… 이미 없다.
보탄과의 싸움, 그리고 곧장 이어진 수많은 교전, 사다르켈리사의 결계를 박살 내며 입은 부상과 오염으로 인해 그의 두 팔은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술식의 보조가 없었다면.
-파손률이 85%를 넘었어. 이젠 팔이 아니라 육편이라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심실세동을 15% 올려.’
-혈관에 부하가 이미 심각해. 전신 혈맥이 터져 죽는 꼴을 보고 싶진 않은데?
‘심장 근처 혈관들은 터진 만큼 재생되니까. 아직 괜찮아.’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가슴팍에 팔을 박아 넣고 있는 페이자쉬에게 말했다. 대부분의 연산과 주문은 그에게 일임하고, 페르난데스는 이성을 유지하는 것에 전념하고 있었다.
가슴 속에 파고든 영체 팔이 심장을 거칠게 주무르고, 느리게 잦아가던 심장에 다시 활력이 돌았다. 심장은 그 어떤 장기보다 마력, 그리고 신성을 담기에 적합한 장기이며, 디모니카의 혈액이 공급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심장을 직접 압박함으로써 일시적으로 혈압을 올리고, 디모니카의 혈액을 최대한 강하게 분산시켜 육신을 수복하고 체력을 회복한다.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는 투박한 자살 방식이지만, 보다 미시적인 관점에선 효과적인 응급처치다.
어차피 지금 상황은 외줄 타기나 다름없다. 멈춰 서는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외줄 곡예. 페르난데스는 으스러진 뼈를 마력으로 이으며 이그드라실의 기둥을 타고 올랐다.
-이건 숫제…… 골렘이나 마찬가지군.
‘하수인 연성 자체는 내 특기 분야가 아니었지만 말이야.’
-무얼. 뭐든지 이론만 충실하면 결론은 대강 비슷한 법이지.
페이자쉬는 페르난데스의 팔, 끊어진 근섬유와 뼛조각들을 섬세하게 이어 붙이며 키득거렸다. 당장 마력 공급이 끊기거나, 디모니카의 혈액으로 혈관이 수복되지 못한다면 곧장 부스러질 몸이다.
그러므로 섬세하게. 제국 외과의의 시술보다도 더 조밀하게. 모든 흑마법사는 인체 해부의 달인들이며, 페이자쉬는 거기에 더불어 고문의 달인이다. 그리고 조립은 해체의 역순이니…….
-뭐, 보통 인간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마음가짐의 문제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디모니카의 육신 성능, 그리고 지옥 마력에 푹 절여진 양팔의 상태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냈다.
-콰득!
페르난데스가 다음 한 발자국을 딛기 위해 다시금 대검을 박아 넣었을 때, 심장에서 돌연 핏물이 터져 나왔다. 페이자쉬가 씁쓸하게 투덜거리며 천천히 손을 빼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군. 더 이상 기능을 유지할 수 없겠어.
‘고생했다.’
-이제 어쩔 생각이지? 자살하기 위해 추락한 것은 아닐 텐데.
‘정지 상태가 필요했어.’
페르난데스는 마침내 거대한 나무줄기 위에 올랐다. 그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기둥 위에 허물어졌다. 열기 탓에 숨 쉬는 것조차 수월하지 않아, 그는 연신 쿨럭이며 평평한 공간을 찾기 위해 바닥을 더듬었다.
그리고 몸을 누일 공간을 확보한 이후엔,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한 손을 하늘로, 다른 한 손을 지상으로. 아세아스 고위 의회에서 흔히 [양의의 만트라]라고 부르는 자세를 취하고는 천천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안-켈의 승천. 주문 성공률이 어느 정도 될까?’
-제정신인가?
‘안 될 건 뭔가?’
-장장 팔십 년을 유지하려 개처럼 들었으면서, 기껏 과거로 돌아와 한다는 것이…… 고작, 고작 리치라고? 그럴 거면 처음부터, 애당초부터 마법으로 시작하지 그랬나? 신성을 얻고, 신의 하수인이 되고, 온몸을 무식하게 박살 내며 싸워 댈 이유가 있었나?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페르난데스는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아들의 미래를, 아들의 행복을 바라는 아비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목적이, 우리의 이유를 살라 먹지 않기를 위해서…….’
-나약하고, 어리석고, 감정적이야.
‘그게 사람이다. 페이자쉬. 더운 피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들 그래. 주어진 자극에 정해진 결과만을 도출하는 유기체는 인간이 아니라 생체 골렘이야. 우리의 회한은, 우리의 한탄은. 우리가 맞은 최후의 순간, 그 순간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인간이었던 때였다.’
-동의하는 건 아니야.
페이자쉬는 쯧, 하고 혀를 찼다.
-하지만 확률로 따지자면 20%……. 그 정도가 된다. 지금 이 상황과 조건 속에서, 의식과 제물 없이 오로지 주문만으로 스승의 리치화 주술을 카피하는 것은 성공을 잘 쳐줘도 2할 이하야.
현대 마법의 삼 요소는 주문, 의식, 제물이다. 기타 모든 조건들을 포기하고도 대주술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페이자쉬의 능력을 반증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도박의 대가가 목숨이라면 달리 생각해야 했다. 베이타서스의 신성을 포기한 이후 이제 더 이상 소모품으로 여길 수 없는 가치를 지녔음에도, 굳이 생명을 판돈으로 도박을 해야 한다면 그보다 더 가치 높은 보상이 있어야 했다.
[내가 돕는다면 그럴 필요까진 없다.]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허리춤에서 보탄이 말했다. 페르난데스가 그를 힐끔 바라보자 보탄은 클클거렸다.
[리치, 그러니까 언데드가 되는 방식이 아니라, 생체를 유지한 상태에서 몇 가지 생득적 요인을 포기하는 정도라면 내 전문 영역이지. 굳이 언데드가 될 필요는 없어.]
“성공률은?”
[오 할.]
단순 계산상으로 따져도 30% 이상의 기댓값이 보장되는 셈이다. 생득적 요인을 포기하고 생체 기능을 유지한다? 그 정도라면 디모니카 시술과 다를 바가 없다.
페르난데스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시작하지.”
[길고 편한 것. 짧고 고통스러운 것. 둘 중 어떤 걸로 해 줄까?]
“대답해야 하나?”
[클클, 하여간 재밌다니까.]
보탄은 혀를 차며 웃었다. 곧, 페르난데스의 주위로 둥그런 원이 그려지며 번갯불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사이로 빼곡하게 루네글리프가 박히며, 톱니바퀴가 움직이듯 주술이 기동했다.
그 너머로, 보탄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재갈 하나 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기는 하군. 아주, 아플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말대로였다.
* * *
키르하스는 본능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허물어지는 가지를 타넘고, 이따금 박차 오르며 아래로, 또 위로. 단 한 순간도 멈춤 없이.
[버러지 같으니!]
그녀의 머리 위에서 사다르켈리사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온 세상이 불길에 휩싸여 있고, 땅이 허물어지며 일어나는 거대한 지진이 이그드라실을 흔들었다. 그러나 키르하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녀는 한때 달리기로 베이타서스의 영체 전령을 추격한 적이 있었다. 수인족 특유의 기민함에 더해 그녀가 가진 천성적인 재능이 그녀를 이끌고 있었다.
더불어, ‘가능성’ 또한.
‘아직 살아 계셔.’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다. 페르난데스가 살아 있다는 것. 삶의 목표는 여전히 명징했고, 그녀가 가야 할 길은 어느 순간보다 또렷했다.
‘붉다.’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방향을 틀어 다른 나뭇가지로 몸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사다르켈리사의 팔이 이그드라실의 가지를 바스러트리고는 다시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여긴 파랗군.’
안전하다는 뜻이다. 아니, 안전보다는…… 승리에 가깝다는 뜻이다. 키르하스는 점점이 이어진 푸른 점과, 이를 잇고 있는 실낱같은 파란 선을 바라보며 달렸다.
언제나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그녀의 눈은 혼란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종족 전체를 여과해 단 하나의 원석을 찾아낸다면, 이 시대에 그것은 키르하스가 될 것이다.
‘위험.’
푸른 선은 시시각각 붉게 물들고, 어떤 붉은 지역은 한순간 짧게 파란 빛을 내뿜으며 명멸했다. 그녀는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 끝에 차오르던 순간이 지나고 이젠 그저 멍해진 머릿속으로도 단지 본능에 따라서.
‘은공…….’
그녀의 승리는 그녀 혼자만의 생존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녀는 삶 전반을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벼려 내기로 맹세했다. 그러니, 페르난데스는 살아 있다. 반드시. 그녀의 눈앞에 희망이 보인다면 그 뜻은 페르난데스의 생존을 의미할 테니.
-으적!
그녀가 밟고 있던 발판이 불길 속에서 허물어졌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틀어 부서진 나뭇가지의 한 귀퉁이를 낚아챘다. 허공에 대롱거리며 매달린 상태에서도 그녀는 눈을 굴려 방향을 가늠했다.
[성가신 짐승 같으니!!]
사다르켈리사의 괴성과 광기, 그리고 분노가 하늘을 뒤덮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로 키르하스는 승산을 찾고 있었다. 반쯤 본능의 영역, 그리고 나머지 반은, 소망의 영역으로.
‘은공. 무사하셔야 합니다.’
나뭇가지가 붉게 변하려는 찰나, 그녀는 나뭇가지를 놓고 빠르게 기둥을 달렸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어떤 대안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페르난데스의 마지막 명령이 그것이었다. 시간을 끌어라. 그렇다면…….
“도마뱀!!!”
키르하스는 버럭 소리치며 나무를 타 넘었다. 그녀는 칼을 뽑아 움켜쥐며 이그드라실의 꼭대기를 향해 질주했다.
“나를, 죽여 봐라!”
[재미있는 자살법이군.]
광기가 흘러넘치는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 쏟아졌다. 키르하스는 그 끔찍한 존재감에 비틀거리며 빠르게 몸을 틀었다. 그녀가 있던 자리가 완전히 으스러졌다.
[아니면……. 그래. 사다르켈리사를 속이려 드는 것이거나.]
사다르켈리사의 목소리가 문득, 이성적인 어투로 변했다. 차갑게 벼려진 광기가 그녀의 목소리 아래에서 느껴졌다. 키르하스가 당황해 이그드라실의 정상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뱀의 머리가 비릿하게 웃으며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빛 무리가 하늘 아래로 내리쪼이는 그곳엔, 다른 세계의 군단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악마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네가 온 세계가 안전하리라 믿느냐, 필멸자?]
키르하스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사다르켈리사는 쉭쉭거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비프로스트의 열쇠지기…… 그 빌어먹을 잡종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사다르켈리사를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너, 그리고 너희. 감히 사다르켈리사에게 대적한 너희의 세계를 가장 먼저 짓밟을 것이다. 너는 죽이지 않으마. 필멸자여. 영원히, 영원히 가둘 것이다. 네 영혼은 불타는 너의 세계에서 네 마지막 친구와 마지막 가족이 숨을 다할 때까진 이성을 유지할 것이다.]
그녀의 속삭임이 점점 커지며 지독한 저주를 품고 울려 퍼졌다. 키르하스는 비틀거리며 그녀의 팔뚝 바로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에 주저앉았다.
공포와 혐오, 역겨움, 절망감이 그녀의 심장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건 의지의 문제를 넘어선 광기의 오염이었다. 키르하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애써 칼을 움켜쥐었다.
[아니면…… 그래. 네 마음이 읽히는구나……. 좋아……. 너는 네 세계에 미련이 없구나. 네가 아끼는 것은 단 하나뿐이야. 그래, 그렇겠지. 그 필멸자. 그건 연심이더냐? 동경이더냐? 무엇이든 좋다. 놈은 네 앞에서 으스러지고, 내게 자비를 구걸할 테니. 네 죽음은, 그 뒤에 허락하겠다.]
사다르켈리사의 긴 혀가 그녀의 입술을 핥았다. 그녀는 쉭쉭거리며 붉은 눈을 굴려 키르하스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키르하스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존재감과 절망감 앞에서, 천천히.
-팅.
그 순간, 현악기의 맑은 소리가 들렸다. 비파를 튕기는 듯한 맑은 소리. 불타는 이그드라실과 파괴된 대지. 그리고 지옥이 도래하는 지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찰나의 순간, 그녀의 이성이 회복되며 빛을 보았다. 푸른빛을, 승리와 희망을 상징하는 푸른빛을—
역설적이게도, 사다르켈리사의 목덜미에서.
[놈이 왔군.]
사다르켈리사는 고개를 비틀며 이그드라실을 휘감은 자신의 몸을 내려 보았다. 그녀의 시선에서 벗어난 키르하스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제야 온전히 보였다. 푸른 빛 무리가 점점 짙어져 원이 되고, 원들이 모여 선이 되어 흐르는 방향이 보였다. 사다르켈리사의 거대한 목덜미에서 그녀의 몸통을 지나 꼬리로 향하는 긴 길이.
점점 더 푸르게, 점점 더 짙게. 쪽빛에서 남색이 우러나오듯. 한없이 검정색에 가까운 짙푸른 빛이!
“사다르켈리사.”
차가운 목소리가 불길을 뚫고 들렸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덮인 이그드라실의 상층부, 그 먹구름을 뚫고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죄를 심판하지 않겠다. 심판이란 죄의 경중을 넘어 공정함으로 죄악을 가름하는 과정이니. 네 죄악의 맞은편에 공정함의 무게 추를 얹을 자격이 내겐 없다.”
바람마저 멈춘 것 같은 그 순간에, 키르하스는 검은 연기 한가운데에서 푸른빛을 보고 있었다. 승리, 희망, 이성과 애착…… 연모. 그녀의 모든 마음을 온전히 담은 빛은, 오히려 음울했다.
저벅, 하는 발소리가 천둥처럼 울리는 듯했다. 음울한 검푸른 눈, 반백의 머리칼.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페르난데스가 걸어와 사다르켈리사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한때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에게도 그럴 기회가 있었듯이. 어떤 악인에게도 마지막 회한이 남아 있을 수 있는 법이니. 성직자로서 네게 기회를 주겠다. 용, 사다르켈리사. 회개하겠느냐.”
[이게 너의 계획이었더냐? 회개? 기회? 그런 말로 네 목숨을 구걸하려 드느냐? 추하구나. 추하구나! 사다르켈리사는 이보다 더 극적이고, 장엄한 광란을 바랐다!]
사다르켈리사가 실망한 기색으로 쉭쉭거렸다. 페르난데스는 어두운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몸이 온전히 보였다. 그의 등 뒤엔 아벨이 업혀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키르하스에게 걸어와 그녀의 곁에 아벨을 앉혔다. 페르난데스는 딱딱하게 굳어 간절히 자신을 바라보는 키르하스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고는, 뒤로 돌았다.
넓은 등. 찢어진 옷가지 사이로 비쳐 보이는 날렵한 근육과 그 위에 그려진 수많은, 기이한 글자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스르릉.
그의 손에서 천천히 대검이 뽑혀 나왔다. 그는 사다르켈리사를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절망 속에서는 한 마디 기원을 올리는 법이니. 사다르켈리사. 피고의 변론의 기회는 끝났다. 그러니 기도하라. 아무 신에게나, 어떤 말이든. 간절히.”
[사다르켈리사는 이 세계의 종언이다! 사다르켈리사는 오랜 시간, 수많은 꿈들을 꾸어 왔도다. 이 세계를 불태우는 꿈을! 이제 ‘나’의 꿈이 네가 볼 최악의 악몽이 되리라!]
-팅.
맑은 거문고 소리가 들렸다. 무섭게 타오르는 사다르켈리사의 광기가 한순간 주춤했다. 키르하스는 자신의 몸 속에서 타락의 기운이 흩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너…… 신성을 얻었구나!]
“나는 이미 황무지에서 악몽을 죽였다. 어떤 것도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니.”
악마를, 이단을, 그리고 마녀를 불태우리라.
페르난데스는 사다르켈리사의 머리를 향해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