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막간극 : 두 악당
이단심문관들은 어떻게 이단을 구분하는가. 어째서 이단심문관이 선신 만신전 종파들 중 유일하게 베이타서스 교회에서만 운영되는가. 언젠가, 페르난데스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은 그가 페이자쉬였던 시절로 돌아간다. 한번은, 그를 암살하려던 헤레티카를 사로잡아 놓고선 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너희는 대체 무슨 근거로 이단과 결백을 증명하는가?”
“너는 이단이다!!”
“아, 물론 나는 이단이지. 하지만 네가 불태웠던 사람들 중 어떻게 결백한 자들이 없다고 믿지? 오만인가, 광신인가?”
그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를 살려둘 이유가 없었기에 페이자쉬는 헤레티카의 목숨을 취했다. 헤레티카는 ‘조사’와 ‘정보’라고 대답했다.
평생에 걸쳐 이단심문관들과 영웅 지망생들에게 쫓겨 살던 페이자쉬에겐 기회가 많았다. 더 나은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이들이 언제나, 정말이지 언제나 그에게 스스로 찾아오곤 했다.
그래서, 언젠간 그의 마법을 해주하려 들던 엔마기카를 사로잡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너희는 어떤 기준으로 악마 숭배자와 강도를 구분하는가? 그들 모두가 사람의 목숨을 취하고 재물을 빼앗으려 드는 것은 동일하지 않나?”
“지옥의 하수인들은 주의 눈 아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너희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더냐. 지옥 마력을 끌어 쓰지 않는다면 악마 추종자의 마법과 너희의 마법이 외관상 구분되지 않을 텐데?”
엔마기카는 대답하는 대신 혀를 깨물었다. 창졸간의 일이었던 탓에 이를 저지하지 못한 페이자쉬는 혀를 차고는 그 시체를 실험 도구로 사용했었다.
사제의 육신은 평범한 마법사의 몸을 하고 있었다. 마력 회로와 구성도, 지옥 마력에 대한 면역력이나 저항력도 별 볼 일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 페이자쉬가 죽음의 공포 속에 발버둥 치던 때가 있었다.
“베이- 타서스의- 영과아아앙!!”
“좀, 제발, 이젠, 죽어라!”
“영과아아아앙!!”
디모니카. 베이타서스가 만들어낸 천상의 악마들. 신성이 흐르는 육신은 거의 모든 마법에 대한 강력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고, 물리력으로 깨부수려 해도 악마들조차 저 손아귀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뛰어 들어와 그가 정성스레 파놓은 함정을 하나하나 몸으로 박살 내며 밀려들어 왔다.
요란하고, 멍청하고, 직선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달려드는 일직선상에 살아서 저항할 수 있는 악마들이 없었다.
다신 회상하고 싶지 않았던 끔찍한 전투 끝에, 페이자쉬는 가까스로 디모니카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그 당시 명성 드높던 잿빛여명회가 완전히 파괴되고 기반 시설을 잃어버려 다시 방랑길에 올라야 했지만. 어쨌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때, 무력화된 디모니카에게 페이자쉬는 힘겹게 말을 꺼냈었다.
“악마와, 인간의 차이가 무엇이냐?”
“닥쳐라!”
“말해 다오. 우리들은. 너희가 이단이라 부르는 우리들은 너희와 어떻게 구분되는가?”
“악마 숭배자에게선 냄새가 난다!”
그것이, 페이자쉬가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정보였다. ‘악마 숭배자에게선 냄새가 난다.’ 그는 평생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이제 그걸 이해할 수 있었다. 디모니카의 ‘후각’을 가진 지금은.
냄새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능이다. 오랜 시간 마법을 단련하면 마력을 다루는 것에 대해 일종의 본능이 생기는 법이고, 오랜 세월 검술을 닦은 검사에겐 최적의 검로를 읽는 본능이 생기는 것처럼.
베이타서스의 사제가 오랜 시간 악마를 추적하다 보면, 일종의 본능이 생긴다. 다른 사제들에게선 볼 수 없는 투쟁 본능과 본능적 혐오감이 생긴다.
그건 마치 결벽증 환자와 같은 수준의 본능이다. 페르난데스는 이를 베이타서스의 신성이 가진 특수성이라 분류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에게도 그런 본능이 생겨 있었고, 그건 곧 실험 대상이 충분하다는 뜻과 같았다. 흑마법을 사용하고도 이단심문관에게 들통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할 대상이.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 있어서, 페르난데스는 전문가나 다름없었으니까.
* * *
-화르륵.
모닥불 앞에 앉아서, 페르난데스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드래곤스파인 산맥은 깊고 거대한 수림이며, 설령 이단심문관이라 하더라도 산맥의 모든 구석을 감시할 수는 없는 법.
또한, 어떤 멍청한 악마 숭배자가 이단심문청의 바로 코앞에서 흑마법을 사용하고 의식을 펼치겠는가.
-머저리거나, 대담하거나.
‘바로 그거지.’
의표를 찌른다는 의미에선 유효했다. 당장 이단심문청에서 관도를 통해 하루 사이에 드나들 수 있는 거리 모든 곳엔 헤레티카와 토치맨의 감시망이 촘촘히 펼쳐져 있다. 그러니 당장 며칠 안에 작업을 해야 한다면, 이 편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들키는 순간 화형대로 직행할 것이라는 사소한 문제를 제외한다면.
-화륵.
모닥불 안으로 시약을 붓는다.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며 녹색 불꽃을 피워 올렸다. 페르난데스는 일렁거리는 불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집어넣었다.
뜨겁지 않다. 그를 중심으로 펼쳐진 거대한 마법진과 정밀하게 조제된 시약이 만들어낸 불길은 그의 손을 해칠 수 없다.
마법적인 불꽃 속에서 페르난데스의 손가락이 하나씩 접혔다. 불길이 손가락과 손등을 핥듯이 올라오고, 저릿한 감각이 손등을 타고 울렸다.
-화르륵.
페르난데스의 등 뒤에서 검은 헤일로가 타올랐다. 철컥, 걸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불꽃 속에서 들렸다. 주문이 완성되었다.
[말씀하십시오.]
불꽃 속에서 쉿쉿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곧, 불꽃이 화려하게 타오르며 형체가 빚어지기 시작했다. 불꽃 속엔 낯익은 수인이 앉은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파르탁.”
[저를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 주군.]
“너의 쓸모가 다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럴 리가 있겠느냐.”
불길을 바라보며 페르난데스가 웃었다. 그의 말에 파르탁이 가래 끓는 목소리로 클클거렸다.
[그런 것치고는 보고에 답신 한 번 없으셨습니다만.]
“분주했다.”
[요즈음 동부 정세가 수상하다는 이야기가 들리고는 있습니다. 주군께서 개입하신 일입니까?]
“그래. 그 일 탓에 네가 필요하구나. 원로회에선 별말이 없더냐?”
[별다른 점이라고 있겠습니까. 평소처럼 먹고, 마시고, 설치고. 짐승보다는 낫고, 멍청이들보단 조금 더 모자라게 살고들 있지요.]
파르탁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막사 밖을 바라보았다. 호족 연합의 원로회는 키르하스의 집권이 공고해진 이래로 영향력을 상실했고, 원로회의 지지를 기반으로 삼던 파르탁은 이제 그저 암중의 조언자 역할에 머무르게 되었다.
썩 달가운 변화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 대족장 대리를 맡고 있는 계집이 정말 예언 능력을 가진 무녀 출신에, 호족 족장들부터 전사들까지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그래서 지금 갑작스레 연락이 닿은 이 정체 모를 주군을 향해서, 파르탁은 입맛을 다시며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고작 그런 짐승들 정황이 궁금해 그러시는 것은 아니실 테고, 바라시는 바를 하명하십시오.]
“말이 빨라 좋구나.”
페르난데스는 미소 지으며 불꽃을 내려 보았다. 그 모습을 마찬가지로, 막사 너머에서 흐린 불꽃 너머로 보고 있는 파르탁에겐 기묘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파르탁의 눈앞에 있는 암녹색 불길이 더욱 화려하게 타오른다. 주군이 마력 활용의 완급 조절을 실패했을 리가 없기에, 이것은 명백한 위협이다. 파르탁은 타는 목을 축이며 침착함을 가장하고 불꽃을 바라보았다.
“내분을 일으킨다면 네 말을 따른 군세가 얼마나 되겠느냐?”
[……수인 호족 연합을 나누시겠다는 의미입니까? 어느 정도의 선을 고려하십니까?]
분할은 통치의 근간이다. 선군의 치세는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지만, 폭군의 치세는 백성을 둘로 나눈다. 백성이란 짐승과 같아서 언제나 명확한 적이 필요한 족속들이고, 왕의 정치는 이 적을 최대한 예리하게 나누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지금은 폭군들의 시대다. 이 시대 모든 군주들은 백성들의 분노와 결핍을 외부의, 때로는 내부의 적들에게 돌리는 것에 익숙했다. 파르탁 또한 그런 기술로 집권하는 사내 중 하나였다.
[이미 장로회와 족장들은 명백히 유리되어 있습니다. 족장들은 그 예언가 계집이 쥐고 있고, 장로회는 제가 맡고 있지요. 주군께서 바라시는 통치가 아니었습니까?]
“그걸로는 부족하다. 암중의 모략이 아니라, 서로에게 칼을 돌려 분쟁을, 그리고 그걸 넘어선 투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데에 널 따를 인물이 얼마나 되겠냐는 말이다.”
[…….]
파르탁은 입을 다물고 잠시 불꽃을 바라보았다. 호족 연합을 하나로 모을 때까지 걸린 수고와 노력을 생각하며.
진심인가? 호족 연합은 황무지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간신히 조타를 잡아내고, 이에 반발하는 대립 호족군을 모조리 몰살시키며 성장했다. 이제 막 성장 동력을 얻고 있는 수인족을 다시 반으로 나눈다는 것은, 거시적으로 수인족의 미래를 빼앗는다는 뜻과 같았다.
물론, 수인족의 미래 따윈 파르탁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로, 그의 주군은 수인들의 하나 된 국가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 어디서 이상한 수인 계집 하나를 영웅으로 만들어 가면서까지.
[쉽진 않을 겁니다. 하트테이커의 지지층이 생각 이상으로 두텁습니다. 라비레타 왕조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지금 수인 호족 연합의 중추를 맡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대족장이 죽으라 명하면 몸에 기름을 바르고 불길에 투신할 정도의 인물들입니다.]
“불가능하더냐?”
[대족장을 또다시 영웅으로 만들려 하십니까? 이미 하트테이커의 권위는 수인 전체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반란군을 조직해 대족장에게 토벌당하는 역할 놀이라면, 더 차라리 적합한 이들이 있습니다. 빼앗긴 고토를 되살린다는 기치를 세우고 망령 왕조를 공격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겁니다. 주군.]
파르탁이 반란을 조직한다면, 주군의 성격상 반드시 토벌당할 것이다. 오직 시간의 문제였을 뿐, 지금까지 보였던 페르난데스의 계략 기조에 근거한다면 반드시.
그는 지금 어떤 불가해한 생물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불꽃 너머로 보이는 음산한 실루엣을 보았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도 느껴지는, 감정 없는 유리알 같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불가능하더냐?”
[굳이 대족장의 권위를 더 강하게 만드실 필요가 있습니까? 제가 이끌 수 있는 병력은 호족 전체의 1할도 채 되지 않을 것인즉, 대족장이 오기 전에 제 반란은 무마되고, 주군께서 보실 것은 오직 장대에 매달린 제 시체에 불과할 겁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구워지는 법. 파르탁은 그 스스로도 대족장의 그늘 아래에서 그의 역할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장악한 장로회는 더 이상 대족장의 권위를 견제할 수단이 되지 못하므로.
그는 멍청하지 않다. 살기 위해선 권위가 필요했고, 대부분의 권위는 상대방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부재 중인 대족장, 수인 호족을 버린 영웅. 이런 논조로 퍼트린 여론은 다행히도 아직까진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충분했을까. 여전히 키르하스의 지지층은 광신도들에 가까웠고, 파르탁의 여론 몰이에 쉽사리 쓸려 나가지 않았다. 최근 파르탁은 키르하스의 지지자들에게 암살 위협마저 느끼고 있었다.
[저를 버리려 하십니까?]
그래서, 그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버리려 한다 한들 쉽게 버려지진 않으리라. 그런 각오와 함께, 머릿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셈하면서.
“너의 쓸모가 다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럴 리가 있겠느냐?”
처음의 질문과 정확히 똑같은 답을 들었을 때, 그리고 페르난데스의 미소를 보았을 때. 파르탁은 이 불가해한 주인에게 다시금, 잊고 있었던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굳이 네가 직접 칼을 뽑을 필요는 없다. 정치란 그런 것이니.”
말이 이어질 때에도.
“허수아비를 세워라. 병력이 부족하다면 망령 군주들과 손을 잡아라. 최대한 강대한 적을 만들어라.”
대족장이 밟아 나가기 적합한 종류의 적을 만들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런 의미였다면, 파르탁 그 자신이 앞에 나서는 편이 나았다. 대족장의 권위에 명백히 저항하는 호족 연합 내의 유일한 세력이었으니까.
“인간 귀족들은 명분과 체면, 그리고 실리 속에서 움직이니.”
인간 귀족? 파르탁은 고개를 들었다. 막사 한 귀퉁이에 걸린 대황야의 전도가 눈에 보였다.
“저들이 원하는 명분을, 저들이 바라는 실리 앞에 던져두고. 사냥개를 풀도록 하지.”
[외세를 끌어들이는 전쟁을, 대족장이 달가워하진 않을 겁니다.]
“불가능하더냐?”
무엇이 되었든, 수인 호족 연합의 성장 동력을 아작 내겠다는 의미였지만. 파르탁의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었다.
[저는 살 수 있습니까?]
“네가 쓸모 있다면.”
[제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좋습니까?]
“그러길 바란다.”
[그렇다면 주군, 기꺼이 영웅을 만들기 위한 연극을 감독하겠습니다.]
키르하스 하트테이커라는 인물은 노예 출신의 이방인 수인 소녀에 불과했었다. 그녀가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 발판은 파르탁과 페르난데스의 합작품이었다.
그러니, 영웅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어서 이 두 사람은 전문가나 다름이 없다. 무릇 영웅에겐 악당이 필요한 법이므로.
암녹색 불꽃이 타오르는 밤. 모닥불을 바라보며.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 악당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